나의 인생은 충분했을까 - 살아온 날들의 무게보다, 살아갈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
이송이 지음 / 하모니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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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죠. 늘 타인의 안부는 묻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안녕했니?” 하고 물어본 적이 있을까요? 가끔은 멈춰서,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묶고 매듭짓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에세이의 저자 이송이는 감정의 결을 오래 들여다보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즉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 속에서 문장이 되는 순간을 붙잡아 하루를 천천히 이해해가는 글을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진한 여운, 도쿄>가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좀 독특하다. 총 11개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글의 자음들인 ㄱ, ㄴ, ㄷ, ㅁ, ㅅ, ㅇ, ㅈ, ㅊ, 트, ㅍ, ㅎ 등의 카테고리에 가족, 날씨, 다양함, 말, 사과, 약속시간, 저축, 청춘, 트라우마, 평범함, 헤어짐 같은 누구나의 일상 속에 들어오는 그런 단어를 주제로 삼아 글을 펼치고 있다. 

독서하던 중 저자의 에세이 글 중에서 지난 내 삶에 있었던 경험이나 추억과 오버랩되는 내용들을 추려서 소개함으로써 책의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건강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줘서 고마워. 숨 쉴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29쪽)


우리 모두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칠십대 중반인 이 몸도 어제와 오늘이 다름을 느끼고 있다. 사실 현재도 최근에 찾아온 몸살 기운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책을 읽고 글을 써던 일들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방한防寒을 위해 현관 부근에 커튼을 설치해 보겠다고 망치를 들었다가 손을 다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조차 다소 버거운 실정이다.

내 거주지는 원룸 임대아파트 1층이다. 산 아래에 위치헤 있어서 사전 입주 점검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엔 소규모 아파트 단지 주변에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산이 있어 내 취미인 야생화 감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교통이 불편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입주하기로 결심했었다. 6월 초에 입주했는데 1층인지라 모기들의 극성에 곤란을 겪었다. 주위에 산이 있어서 시원할 줄 알았는데 1층은 산이 막고 있어서 오히려 바람부는 게 부족했다. 또 동절기엔 왜 그리 추운지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겐 최악이었다. 난방을 올렸더니 관리비가 많이 나온 것이다.

젊었을 땐 매주 주말엔 북한산, 청계산, 종종 이름난 강원도 산 등지로 동호인들과 함께 산행을 즐겼고, 또 한 때는 마라톤에 꽂혀서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찾아 다녔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무리하게 움직인 만큼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법임에도 전업투자자로 살다 보니 몸 관리는 뒷전이고 무리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던 인생이었다. 지나고 보고 깨닫는 게 있다. 타인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는 것을. 이를 게을리한 까닭에 몸은 망가지고 좋아했던 술담배 또한 완전 끊어야만 했다. 하루하루 숨 쉬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독거노인의 푸념이다.

날씨

사람들은 종종 "그날 날씨가 기억나?"라는 말로 추억을 꺼내곤 하잖아요. 결국 날씨가 감정의 기록장이었다는 뜻 아닐까요. 그날의 햇살, 바람, 온도가 기억의 표지처럼 우리 안에 새겨져 있었던 거예요.(54쪽)


저자의 글 중 검색창에 'ㄴ'을 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날씨'라고 하길래 한번 따라 해보았다. 정말이었다. 이 정도로 임팩트있는 키워드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사실 누구나 모두 날씨와 관련된 추억이나 에피소드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슬픈 추억을 소환해본다.

고시에 낙방한 후 대학시절 교제하던 여성과 한동안 냉각기를 가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졸업 후 난 서울에서 중견행원으로 은행에서 근무 중이었고 상대 여성은 학업을 더 연장해 박사학위까지 염두에 두고서 경기도 소재 대학에서 조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로 바쁜 일과로 살다 보니 만남의 횟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날, 여성의 모친이 은행을 방문해 결혼 얘기를 꺼내길래 둘이 만나서 이를 상의하겠다고 답하고, 이후 신촌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현재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나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임을 알려주며 결혼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당시 좋은 혼처가 들어와 여성은 부모로부터 맞선을 종용받고 있었기에 차마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어서 나를 포기하라는 매정한 말로 만남을 끝냈다. 이날 귀가길 버스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핍

그런데 ‘제대로 된 연애를 몇 번이나 했냐’는 질문 앞에 서면,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작 한 번 정도라고 답할 것 같아요. 횟수나 길이와는 별개로, 제 안에 단단히 남겨진 관계는 손에 꼽혔으니까요.(34쪽)


난 사귀었던 그 여성의 결혼식에 조용히 참석했었다. 결혼식 소식은 그 여성의 절친으로부터 연락받아 알게 되었다. 혹시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곤란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가지 않으려다 근무지인 은행에서 가까운 거리였고 해서 발걸음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우리들은 대체로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잘 모를 수가 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없어지면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은 혼처가 생겨 부모님들도 권하니 날 떠나도 좋다는 식의 호기를 부렸지만 막상 결혼식 소식을 듣고나니 내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흔들리는 내 마음의 뿌리엔 결핍이 있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난 결혼이 많이 늦었다. 굳이 그 여성 때문이었다고 말하진 않으려 한다. 홀로 지내는 게 무척 편했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릴 수 있다는 게 내 마음의 위안이었다. 나이 마흔에 결혼을 결심한 것도 승진 문제와 집안 막내 동생의 결혼 때문이었다. 내가 모시던 회사 대표가 사석에서 미혼자에게 임원 승진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과 함께 나보다 열 살 아래인 막내가 결혼을 재촉받는다는 이런 압박이 없었다면 아마도 계속 비혼을 고집했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아무튼 결핍은 나를 흔들기도 했지만 결국 성장하도록 도와준 셈이다.

 

이밖에도 저자는 말, 스트레스, 인정, 죽음, 집착, 추억, 트라우마, 헤어짐 증과 같은 주제어로 자신의 경험과 감정들을 펼쳐 내보인다. 우리 모두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속엔 다양한 모습을 한 후회, 행복, 외로움 등이 자라하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내 인생은 어땠는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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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넥 -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
댄 왕 지음, 우진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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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규제로 인해 공장 가동이 멈추고 심지어제조시설이 녹쓸어가는 미국 제조업의 실태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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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일 1땀 - 내 몸을 다시 켜는 순환 스위치
박민수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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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하루하루가 1일 1땀이라는 작은 목표로 채워진다면, 당신의 몸과 마음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달라질 것이다. 피로가 줄고, 숙면이 늘고, 감정의 기복이 적어지고, 체온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울 속의 당신이 더 건강하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시작하며' 중에서



책의 저자 박민수는 25년 경력 가정의학 전문의로 <혈관력>이란 도서로 첫 인연을 맺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번 책은 건강한 땀을 주제로 하루 한 번 땀을 흘리자는 메시지를 담아 매일 이를 반복한다면 노화의 속도를 늦추고 면역과 순환을 최적화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건강이 늘 고민거리였다. 젊은 시절부터 '근력이 미약하고 또 풍질로 인한 질환으로 서무를 보기 힘들다'라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세종대왕의 공식적 사인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알려져 있다. 편식이 심했고, 정사에 골몰해 운동과 신체 활동이 부족했다. 이 책의 주제인 '1일 1땀'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의 에어컨 보급율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장기간 땀을 흘리지 않을 때 우리 몸에 분포하는 많은 땀샘(약 200만~400만 개)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즉 작동의 필요성을 못 느껴 기능이 저하되거나 아예 퇴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처럼 제 기능을 상실한 우리 몸의 땀샘들이 많아진다면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된다. 체온이 올라가도 땀을 밖으로 배출시키지 못함에 따라 자율신경 전반이 손상될 수도 있다. 그렇다. 건강한 땀샘을 유지하려면 매일 한 번이라도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런데, 운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땀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다. 사우나를 이용해 억지로 땀을 뽑아내는 경우인데, 이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내 과거 직장생활 경험을 하나 소개해 본다. 내 직속 상관은 오후 네다섯시만 되면 슬그머니 자리를 비우고 사우나로 향했다. 거의 매일 저녁 지인들 또는 거래처와의 음주를 즐기려고 미리 땀을 강제로 뽑아내곤 했다. 불행하게도 간경화증이 발생했다. 

"좋은 땀은 신체 온도가 올라가면서 서서히 배출되는 땀이다."

체내의 지방 조직은 백색 지방과 갈색 지방으로 나눌 수 있다. 백색 지방은 대부분의 지방을 포함하며 세포 내 중성 지방을 축적한다. 특히 렙틴은 지방 조직에서 분비되는 대표적인 아디포카인으로, 비만과 관련된 에너지 섭취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체중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매일 흘리는 땀은 내 몸에서 지방이 분해되고 근육이 늘어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1일 1땀을 꾸준히 실천한다면 외모뿐만 아니라 내부의 장기들마저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가장 좋은 땀은 운동을 해서 흘리는 땀이다. 운동과 땀은 불가분의 관계다. 하루 단 30분이라도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린다면 최고의 건강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땀을 지나치게 많이 흘린다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땀의 질이 중요하다. 땀 상태를 살펴보면 마치 혈액 검사를 통해 건강검진을 하듯, 땀 상태만으로도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건강한 땀은 투명하고 냄새가 거의 없으며, 물처럼 흐르다가 적절히 마른다. 운동 후 흘리는 땀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땀은 체온을 조절하고, 혈액 순환을 돕고, 노폐물을 배출한다.

"땀이 멈췄다는 것은 몸속 시계가 멈췄다는 신호일 수 있다." 

운동을 해도 땀이 잘 나지 않거나 몸이 뜨거운데도 정작 땀은 나지 않고 머리가 띵한 경우가 많다면, 몸속 자율신경계의 손상을 의심해 봐야 한다. 자율신경계가 무너지면 수면에도 문제가 생기고 자다가 흘러 내리는 땀 때문에 잠에서 깨는 일이 잦아지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보면 이는 몸속 생체 리듬이 깨졌다는 명백한 증거일 수 있다.

만성 피로, 체온 저하, 잘 나지 않는 땀 등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 문제들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세포 에너지 대사가 흔들리고, 자율신경계가 리듬을 잃으며, 호르몬 조절이 미세하게 어긋날 때 이 세 가지 증상이 함께 드러난다. 

넬슨 만델라는 무료 27년 간의 수감 생활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잃지 않고 강한 체력을 유지했다. 그 비결은 바로 매일 땀을 흘리는 성실한 루틴에 있었다. 좁은 감방 내에서도 운동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아래의 운동 루틴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운동은 내 좌절을 풀어내는 통로였다" 

제자리 달리기: 매일 아침 30~45분
푸시업: 100회
윗몸일으키기: 200회
깊은 무릎굽힘 운동: 50회
스트레칭 및 맨몸 운동: 팔굽혀펴기, 스쿼트 등

"땀을 많이 흘리는 게 아니라 잘 흘려야 한다"   

땀을 많이 흘려야 운동한 보람이 있다고 믿는다. 여름 한낮에 달리기를 하거나, 실내에서 난방을 높이고 두꺼운 옷을 껴입은 채로 운동을 하기도 한다. 나 또한 때 늘 땀복을 착용하고 운동했다. 당연히 이렇게 하면 땀은 빠르게 많이 흐른다. 하지만 억지로 짜낸 땀은 오래가지 않는다.

더운 환경에서 흘리는 땀의 상당 부분은 지방이 아니라 수분이다. 체중이 단시간에 1~2킬로그램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연소된 지방이 아니라 땀으로 배출된 빠져나간 수분인 것이다. 말하자면 착시인 것이다. 따라서, 물을 마시면 체중이 원상복구된다.

건강한 땀으로 인생을 바꾸자

몸을 그저 관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체중계, 혈압측정기, 건강검진표 등의 수치로 신체를 평가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몸은 이같은 일차원적인 수치보다는 고차원적인 의식 활동이다. 즉 생물학적 기계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유기체'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나 자신을 사랑하고 건강을 쟁취할 수 있다. 다이어트에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1일1땀 #유노북스 #박민수 #신간도서 #건강도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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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돈의 시대, 스테이블코인 - 경제 현장에서 본 달러 이후의 돈, 디지털 화폐 이야기
김신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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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국의 법정화폐인 '원'에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은 없다. 사실 세상에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99%가 미국 달러 기반이다. 최근 들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어 국회에 관련 법이 여럿 계류돼 있다. 이에 대해서는 '돈의 혁신을 놓쳐선 안 된다'는 찬성론과 '이미 다양한 결제 서비스가 있는 한국의 스테이블코인은 불필요하며 자본 유출과 불법 행동만 부추길 것'이라는 반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책의 저자 김신영은 <한국일보>(2002년)를 거쳐 <조선일보>(2006년)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글로벌 경제 섹션 '민트'(현, 위클리비즈) 편집장을 역임했다. 또 뉴욕 특파원(2011~12년)으로 일할 때 글로벌 금융 위기의 후유증, 미국 국가 신용 등급 강등 등을 취재했다. 


여덟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돈의 본질을 묻다(파트1), 스테이블코인의 탄생(파트2), 스테이블코인의 미래(파트3), 스테이블코인, 위험과 경고(파트4),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한 이유(파트5), 원화 스테이블코인(파트6), 달러가 아닌 여러 형식의 스테이블코인(파트7), 스테이블코인 전문가 인터뷰(파트8) 등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뜨거운 논의의 흐름을 따라간다.


돈의 본질을 묻다


법정화폐(피어트 커런시)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 권력이 명령해 가치를 가지게 되는 화폐'이다. 한국 정부가 세종대왕이 그려진 초록 종이에 대해 '1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명령 혹은 지시하면 그 종이가 1만 원의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돈이 돈 노릇을 하게 해주는 바탕은 '믿음'이다. 이같은 믿음이 없다면 종이로 만들어진 지폐는 돈이 아니라 단지 휴지 조각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돈은 가치 저장, 교환의 매개, 가치의 척도 역할을 한다는 그런 믿음이 유지되는 사회 안에서만 돈 노릇을 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어쩌면 금 태환 화폐에서 출발해 '신뢰'만을 바탕으로 통용되는 피어트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피어트 달러 태환 디지털 화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피어트 달러가 꼭 필요할까? 만약 달러의 출발점이 금 태환 증표였다면 금으로부터 달러를 건너뛰고 바로 스테이블코인으로 ‘점프’가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스테이블코인은 최근 아예 피어트 달러를 건너뛰고 ‘금 태환 스테이블코인’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어쩌면 간단한 개념인 스테이블코인이 화폐, 그리고 달러에 관한 철학 자체를 흔들고 있지는 않은가 싶다.


스테이블코인의 탄생과 미래

'스테이블코인'이란 용어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불분명하다. 통상적으로 '가격이 안정적인 가상화폐', '안정적인 디지털 화폐'라는 표현이 사용되다가 어느 순간 '스테이블코인'으로 굳어진 셈이다. 사실 세계 최초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가 나왔을 때 그 이름은 '리얼코인'이었다. 2015년부터 이는 '테더(USDT)로 변경했는데, 이후 'USDT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표현이 기사와 가상화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개한다. 월급이 들어오면 즉시 마트로 달려가 생필품 한 달 치를 한꺼번에 쓸어 담는다. 왜 이런 행동을 보일까? 이는 '오늘이 제일 싼 날'이라는 판단이 작동해서다. 실상은 한 달 사이가 아니라 하루에도 라면값이 25%나 오르기 떼문이다. 


(사진,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

아르헨티나에서 이같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들이 뒤따르는데, '복지 퍼주기'를 내세운 좌파 포퓰리스트 정권의 장기 집권이 초래한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마구잡이 돈 찍어 풀기로 해결했던 부메랑 효과가 통화량 증가에 따른 돈 값의 하락으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라는 개 가장 유력한 정설이다.     

이런 상황 하의 아르헨티나인들에게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마치 단비와도 같다. 일단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공급이 넉넉해서 구하기가 쉽고 코인 시장은 온라인에서 24시간 운영되므로 굳이 암시장 환전상을 찾을 필요도 없다. 아르헨티나 소비자들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늘자 ‘레몬 캐시’라는 앱(사용자가 2백만 명이 넘는다)까지 등장했다. 자국 화폐보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훨씬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위험과 경고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려는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규모가 커지고 시스템 곳ㄳ에 침투해 까딱하면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와 반대로 스테이블코인을 옹호하는 사람 중에는 스테이블코인이 다른 디지털 포인트나 은행 온라인 예금과 큰 차이가 없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존재'로 지나친 걱정은 불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가장 무지막지한 재앙은 뭘까? 다수의 경제학자와 중앙은행 관계자는 "금융과 통화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어 금융 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한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스테이블코인의 세계를 수년 동안 침체에 빠뜨렸던 금융 위기급 충격을 일으킨다고 보는 건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하지만, 경고하는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초래할 수 있는 금융 위기의 발생 과정을 가장 명징明徵하게 정리해 보여준 보고서는 2025년 BIS(국제결제은행)에서 잇달아 나왔다. 마지막 장에 관련 인터뷰를 싣기도 한,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신현송 BIS 이코노미스트가 이끌어 많은 학자가 전문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초래할 여러 위험을 분석했고 그 어떤 국제기구보다 면밀한 보고서를 차례로 발표했다. 그중 신현송 이코노미스트가 직접 집필해 2025년 6월에 나온 ‘다음 세대의 통화 및 금융 시스템’은 스테이블코인의 잠재력과 위험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보고서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선택 

트럼프 1기(2017~2021년)엔 가상화폐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라 "비트코인은 완전 사기 같다"라고 말했지만 재집권한 트럼프 2기는 가상화폐의 든든한 서포터 역할을 보여준다. 트럼프 일가와 가상화폐의 단단한 관계를 보여주는 회사가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이다. 이 회사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이 USD1이다. 


(사진,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 홈페이지)

이 회사가 사업을 해서 돈을 벌면 트럼프 일가가 75%, 윗코프 일가가 25%를 가져간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트럼프 일가가 이 회사의 사실상 소유주인 셈이다. 이후 이 지분이 50% 아래로 내려갔지만, 누구에게 지분을 넘겼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대한민국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권력을 이용한 부정축재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한국에서도 점점 많이 사용하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휴대폰 앱을 통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상인들도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수령할 것이다. 이렇게 모두 사용하는 세상이 된다면 원화를 사용할 일은 극히 적을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이들은 이런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엄격한 '외국환거래법'을 통해 실물 달러를 특정 규모 이상 환전해 보유하면 신고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제를 스테이블코인에 적용할 수는 없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각국에서 점점 더 많이 쓰이고 결국 한국까지 침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가정하에 제기되는 화두가 ‘통화 주권’ 문제다.

여러 형식의 스테이블코인 

중국은 미국과의 경제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기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경계한다. 무역 결제 대금에 위안화 비중을 늘리려고 애쓰는 중국 정부가 그냥 지켜볼 리가 없다. 중국 법원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처벌을 강화하는 조짐이다. 그리고 중국은 민간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대신에 정부와 중앙은행이 관장하는 위안화 CBDC를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미국보다 앞서서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했었다. 하지만 유로와 엔화 스테이블코인의 규모는 미미하다. '달러 승자 독식'이란 점이 작용하는 문제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EU와 일본의 규제가 미국에 비해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다. 굳이 발행사가 이런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매력이 없다는 거다.  

전문가 인터뷰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금융, 통화 경제학자인 신현송 BIS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2025년 6월 BIS를 통해 낸 보고서 '다음 세대의 통화 및 금융 시스템'은 스테이블코인을 경제학자이자 통화 당국자의 시각으로 가장 면밀하고 정확하게 분석한 문서로 꼽힌다. 책(파트8)엔 그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 화폐 역할 하기엔 한계 많다"고 말한다. 

#경제경영 #디지털화폐 #스테이블코인 #새로운돈의시대 #김신영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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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제국의 미래 - 전기차·탄소중립 시대에도 끝나지 않은 석유의 지배력
최지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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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에서 석유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해왔음을 보여줍니다. 오일쇼크, 달러의 등장, 세계화, 9 · 11 테러, 금융위기, 미국의 중동 정책 그리고 중국의 굴기와 그 제약의 지점까지, 석유는 늘 중요한 요인이거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오늘 우리가 직면한 정치적 · 경제적 · 환경적 문제들은 석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석유, 오늘을 열다(1부), 석유, 무기가 되다(2부), 석유, 시장을 열다(3부), 석유, 오늘을 결정하다(4부), 석유, 전쟁을 지배하다(5부), 석유의 시대를 끝내는 법(6부) 등을 통해 현대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석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바라본다.

석유, 오늘을 열다 

1940년대 초반 중동의 석유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5~10%에 불과했기에 미국이 중동 정세에 본격 개입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사실 미국은 1941년 12월 진주만 피습까지 2차 세계대전 참전을 유보하며 자국 운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엔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어서 석유를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석유 확보는 많은 나라들의 안보 문제로 취급된다. 석유 공급이 끊기면 나라의 제조 시설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일상 또한 마비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나라의 국방마저 위기에 빠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석유라는 애너지 자원은 국제 질서의 결정 요소로 작용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집트 나세르 정권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조치였다. 이는 중동 전쟁을 촉발하는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 중동 석유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통로였다. 1952년 군부 쿠데타로 이집트 실권을 장악한 나세르 대통령은 제3세계 국가들과 함께 비동맹주의를 주창했다. 즉 미국과 소련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보는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고 당시 적성국이었던 중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등 미국의 의도와 다른 행동을 보이자 미국은 나일강에 건설하던 아스완 댐 건설 지원을 취소했다.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나세르는 영국과 프랑스의 자산이었던 수에즈 운하를 일방적으로 국유화했던 것이다. 

참고로 수에즈 운하는 1869년 프랑스 기술자에 의해 완성됐는데, 1875년 이집트 통치자 이스마일 파샤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소유 수에즈 운하 지분(44%)를 시장에 내놓자, 이를 영국이 취득함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이 운하를 공동 소유하면서 운하 운영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갔다. 

나세르의 수에즈 국유화 조치를 그냥 앉아서 당할 영국과 프랑스가 아니었다. 1956년 10월, 영국 -프랑스-이스라엘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다. 당시 미국은 최대 산유국이었기에 중동 지역의 안정과 아랍 국가들과의 정치적 파장 및 소련의 개입을 우려해 이를 반대했지만 이후 소련의 런던과 파리 핵 공격 반응에 미국은 즉각 대응해 소련도 이에 상응하는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 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미국산 원유 공급 계획을 취소하고 즉각 실행했다. 결국 1956년 11월 두 나라 군대는 조용히 철수했다. 소련의 핵 공격 엄포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이 철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바로 '원유 공급' 취소라는 제재였다. 수에즈 위기 수습은 현대 국제 질서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이집트에서 철수시킴으로써 국제 질서에서 주도적 지위를 확립했다.

석유, 무기가 되다 

미국은 1970년대 초까지 자국 석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석유 수입 물량을 제한했다. 석유 생산량이 충분했고, 심지어 석유 생산 시설을 100% 가동하지 않고 여유 생산 능력을 남겨 두어 비상시를 대비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수요의 증가가 공급의 증가를 앞지르면서 상황이 바뀐다. 

미국은 1968년 파리에서 열린 OECD 회의에서 “미국은 원유 생산 능력의 100%를 가동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생산 능력을 100% 가동하게 된 상황, 즉 잉여 생산 능력이 소멸된 상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전까지는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 미국의 주요 유전에서 언제든지 생산을 늘려 공급 공백을 방지할 수 있었다. 

생산 능력이 100% 가동되는 상황이라면 시장의 수급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없어진다. 수에즈 위기 때 미국이 중동의 원유 공급 중단을 크게 위협 요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자국의 여유로운 원유 생산 능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잉여 생산 능력이 사라지면서 공급 중단은 이제 공급 공백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석유는 이전보다 귀한 자원이 되었고, 아랍 국가들이 이를 무기로 서구를 압박할 경우 치명적인 에너지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다. 결국 아랍은 생산물의 분배 문제에 도전하게 되었다. 마침내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는 미국 석유기업 옥시덴탈을 위협해 석유 수익 반분半分 원칙을 깨뜨렸다. 즉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옥시덴탈을 국유화하겠다고 압박을 가하며 자국의 몫을 기존 50%에서 55%까지 인상하는데 성공했다. 이리하여 1970년대 석유 질서의 주도권이 메이저 석유기업에서 중동 산유국으로 이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석유, 시장을 열다

1979년은 석유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 사건들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4월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킨 이란 혁명, 11월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건, 11월 극렬 이슬람 무장세력의 사우디 메카 대사원 점거,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는 석유 시장의 심리를 크게 자극,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특히, 12월에 시작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미국의 중동 내 입지 약화를 우려하게 만들어 소련군에 대항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세력을 키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잘못된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셈이다. 1989년 소련의 철군 이후 아프간 공산주의 정부는 4년을 더 버티다가 무너지고 1996년 반미 성향의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했다.   

중동 지역 내 정세 불안에 의한 당시의 유가 상승은 1차적으로 구매자의 공포 때문이었지만 산유국의 탐욕 또한 크게 작용했다. 제4차 중동전쟁(1974~1974년)에 따른 1차 오일쇼크 이후 유가 결정 권한은 OPEC에 있었다. OPEC 회원국들은 유가를 인상하더라도 글로벌 석유 수요가 감소하지 않으므로 뒤로 담합한 이들은 공식 판매가를 계속 인상했다. 

1980년 OPEC 장기전략위원회는 유가를 지속적으로 올려 5년 내 배럴당 60달러로 만드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란 혁명 직전 유가가 13달러 수준이었음과 비교해 볼 때 60달러는 엄청난 욕심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다. 석유가 경제 무기임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아무튼 시장 수요란 실제 소비를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공포와 탐욕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종종 주식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석유, 오늘을 결정하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빈 라덴 세력이 주도한 미 무역센터 빌딩 테러 사태를 흔히 '문명의 충돌'이라고 표현한다. 새뮤얼 헌팅턴의 저서 <문명의 충돌>(1996년)에는 '국가 간 전쟁의 원인은 이념이 아니라 전통, 문화, 종교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빈 라덴의 테러 이후 책은 더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은 문명의 충돌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서구와 다른 문화권인 일본은 서구에 대한 증오는커녕 근대 이후 '脫아시아 入유럽'을 외치며 서구화를 추진했다. 한국의 경우도 반미 정서가 있기는 했지만 서구 문화인 기독교를 적극 수용했으며 서구를 선진국으로 통칭하며 반감보다는 동경하고, 오히려 한국을 침탈했던 중국이나 일본에 더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제국주의 시절부터 이어진 침탈의 역사에 대한 이슬람의 증오 또한 우리와 닮은 듯 보인다. 

미국 주택 가격의 급락으로 인해 촉발되었던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의 위기로 확산되었다. 이는 기축통화인 달러 등 국제통화에 기반한 '금융 세계화'에 원인이 있었다. 금융 세계화는 미국에게 유리한 부의 축적 환경을 만들어 '역외의 부'인 석유를 최소 비용으로 도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간 친미 기조였던 중동의 맹주 사우디의 행보는 점점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최근 발생한 베네수엘라 사태로 중국은 석유 자원 확보에 심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글로벌 제조업의 공장 역할을 자처하는 중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인데, 그간 밀월 관계를 유지했던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 통로가 미국에 의해 원천 봉쇄되고 말았다. 중국은 운송 거리가 긴 단점에도 불구하고 남미산 원유 확보에 공을 들였다. 특히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 중국 석유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신속한 군사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사건 이면엔 중국 견제라는 의도가 있었던 셈이다. 

석유, 전쟁을 지배하다 

국제유가는 2001년부터 중국의 수요 증가와 함께 장기간 상승 기조를 이어갔다. 누군가의 수요 증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수익을 발생시킨다. 이것이 엄연한 경제 논리이다. 중국이 사우디에 적극 접근하려는 의도 또한 더 안정적으로 싸게 원유를 확보하고 싶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은 이를 방패로 삼아 적극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장기간 전쟁을 유지하는 배경엔 석유와 가스 자원의 급격한 가격 상승에 있다. 

지난 중동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 등이 위협의 수단이었다. 에너지 수송로의 차단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의도 또한 이와 맞닿아 있다. 미국의 막강한 해군 함대가 중동 인근 해역에 주둔하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안전한 수송로 확보는 중대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푸틴이 재임한 이후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 원유 생산량은 세계 3위, 가스 생산량은 세계 2위이다. 특히 가스는 전 세계 생산량 중 17%라는 비중을 차지할 정도이다. 이에 안전한 가스 수출로 확보는 러시아의 중요한 이슈다.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방법은 2가지로 하나는 지하와 해저에 설치한 파이프를 통해 운송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특수 화물선인 LNG선에 실어 수송하는 것이다. 수출하려는 러시아는 LNG 전용 선박의 확보가, 수입하려는 나라는 LNG 인수 터미널이라는 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양 당사자 모두 큰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연결되는 대형 가스관을 확보하는 게 절실했다. 왜냐하면 가스의 주 수요처가 유럽이었기에 말이다. 기존에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슬로바키아, 체코, 독일 등으로 연결되는 '브라트스트보' 가스관을 주로 이용했는데 외국의 영토를 지나야 하는 위협요인이 있었다. 또 우크라이나에 꼬박꼬박 통행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푸틴은 최대 수입국인 독일과 협상에 나서 해저 가스관 건설을 통한 공급을 제안했다.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할수록 자칫 유럽 안보의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에 장고長考를 거듭했던 독일은 슈뢰더가 퇴임 직전 이 건설에 합의했다. 뒤이어 취임한 메르켈도 취임 중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건설을 지속했다.


(사진, 노르트스트림)  

석유의 시대를 끝내는 법

파리기후 협약 이후 세계 각국은 2050(또는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각국은 5년마다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해 발표했다. 또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이 이어졌고, 미국 또한 대규모 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이 집행되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후 위기는 사기'임을 천명하며 파리기후 협약에서 탈퇴했다.   

안타깝게도 탄소를 감축하고 석유와 가스 소비를 줄이지 못했다. 2015년 이후에도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을 제외하고, 석유와 가스 소비는 매년 증가했다. 심지어 석탄 소비도 줄지 않았다. 세계 탄소 배출량도 매년 증가했다. 2015년 이후 세계 각국 에너지 부문의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에 대해 정부와 대중의 더 깊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석유는 여전히 강력한 경제 무기이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석유의 힘으로 굴기했고,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가장 앞선 국가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최대 산유국에 다시 복귀했고 이는 미국 우선주의의 배경이 됐다. 여전히 석유와 가스는 경제를 결정하는 요인이고,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이며, 상대국의 힘을 제한하는 무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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