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끝내는 메타버스 수업
정철환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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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구상에 번성한 모든 생명체의 기원은 38억 년 전으로, 깊은 바닷속이었어요. 다양한 생명체는 매우 오랜 기간 바닷속에서 등장하고 진화했지요. 그런데 식물이 육지로 진출한 것은 4억 년 전이고, 동물은 3억 년 전에 불과해요. 컴퓨터는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에 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고, ‘인터넷 세상’이 열린 것은 30년 전부터이지요. - ‘본문’ 중에서




지금까지 36년간 IT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저자 정철환은 우리나라 IT 산업의 발전을 직접 경험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한국 최초의 PC 회사에서의 근무 경험과 국내 최대 IT 기업에서의 정보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진행 등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또 벤처 열풍이 휘몰아칠 때는 많은 벤처기업들과 협업을 하기도 했으며 한양대학교 디지털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시절엔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했다.


그는 컴퓨터 하드웨어의 발전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우리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가는 즉 ‘메타버스’ 라는 신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컴퓨터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준비해오던 기술 분야였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일상화되지 않았지만 지금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할 수 없는 정도가 되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란 기술은 날로 진화하여 메타버스의 미래를 확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특히, 향후 미래세대가 될 현재의 10대라면 메타버스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책은 총 9개 파트에 걸쳐 32가지의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현존하는 메타버스 기업들의 사례와 ‘던전 앤 드래곤’을 위시한 여러 게임과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레디 플레이어 원' 등의 영화에 등장하는 예시들을 통해 메타버스의 실체를 소개한다.


게임 기술의 변천사


0단계~ 텍스트 기반의 모험과 ‘게임 세계’

1단계~ 초기 그래픽 아케이드 및 콘솔 게임

2단계~ 그래픽 어드벤처/RPG 게임

3단계~ 3D 렌더링 MMORPG 및 가상 세계


☞렌더링rendering: 2차원의 화상畵像에 광원, 위치, 색상 등 외부 정보를 고려한 사실감을 불어넣어서 3차원 화상을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스 용어


콜로설 동굴 모험, 조크, 던전 앤 드래곤과 같은 텍스트 모험 게임은 어쩌면 가장 강력할 수도 있는 그래픽 엔진을 사용했다. 바로 인간의 상상력이다. 이들 게임에는 인간의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세계를 시각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광대한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늘날의 비디오 게임 세대는 텍스트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비디오 게임 산업의 일부 순수주의자들은 그래픽 표현이 발전하고 사실적인 표현까지 가능해지면서 ‘모든 비디오 게임이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래픽 기술을 이용한 렌더링은 아무리 실제와 유사하다고 해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생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상과 현실을 잇는 공간 컴퓨팅



우리가 공간 컴퓨팅 기반의 증강현실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시각적으로 보이는 비주얼 컴퓨팅을 통해 새로운 의상 디자인부터 거리의 상점 정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우리 눈에 보이는 정보를 시각화해서 제공받을 것이다.


6가지 핵심 기술

광학 장비 및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제어 메카니즘(음성과 손)

센서 및 매핑

컴퓨팅 아키텍처(예, 새로운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의사결정 시스템)


이 기술을 ‘보이지 않는 컴퓨팅(Invisible Computing)’ 또는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이라고 부른다. 이 기술은 시각, 음성, 손의 움직임, 심지어 신체 영역까지 컴퓨터를 위한 컨트롤러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웹 세상


웹 1.0 시대엔 웹브라우저를 이용해 URL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웹 서버에 접속했다. 초창기에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었다.




웹 2.0 세상에선 정보 관리가 중요한 임무였다. 이때 문제는 데이터 소유권 논란이다. 즉 실제 사용자에겐 소유권이 없고, IT 기업이 독차지하고 있다. 해당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이에 한 기업이 독차지할 수 없는 보안과 정보 저장 및 공유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블록체인’과 관련 기술이다.


웹 3.0에서 자주 언급되는 기술 중 하나가 ‘IPFS’이다. IPFS는 분산형 파일 시스템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인터넷으로 공유하기 위한 프로토콜이다. 데이터를 하나 또는 소수의 컴퓨터 시스템에 모아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는 수많은 컴퓨터들을 연결하여 만든 거대한 네트워크 공유 체계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산·복제·보관·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메타버스 초기 주도 기업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는 이더리움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 개발된 메타버스이다. 디센트럴랜드에서 발생하는 트랜잭션들은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원장에 기록되고 관리된다. 제한된 사용 영역을 가진 비트코인의 블록체인과는 달리, 이더리움의 블록체인은 다양한 응용 시스템이 플랫폼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이를 통해 이더리움에서는 스마트 계약, 디앱, 토큰 등을 구현할 수 있는 범용 블록체인 프로그램 환경을 제공한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통해 가상 세계 자산의 소유권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가상 경제


메타버스 세계에서 가상경제 금액 규모는 일반적으로 2가지 거래에서 파생된다. 하나는 거래할 때 구매자와 판매자가 지불하는 거래 수수료 수익이나 제품 또는 서비스 판매를 통한 거래액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가상 세계에서 토지나 건물을 소유한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에게 임대해주고 사용료를 받는 경우이다.


가상경제에서도 현실과 동일하게 소득세 성격의 비용을 부과하는 일을 검토해볼 만하다. 소득에는 토지 소유자가 얻은 임대료, 게임 내에서 청구되는 대출 이자, 거주자가 만든 제품 판매와 같은 유형이 포함될 수 있다.


새로운 디지털 자산


최근에는 NFT가 떠오르고 있다. NFT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는 가상의 토큰을 뜻한다. 이 용어가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돈이 된다’라는 소문 때문이다. 물론 ‘잔뜩 낀 거품’이지만 말이다. 아마도 최근 물의를 빚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국회의원도 자신의 돈으로 여기에 투자했다면 이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NFT가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수억 원에 거래되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으니 관심을 가질 만하다. 게다가 암호화폐 초기 시절에 투자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NFT가 암호화폐의 뒤를 잇는 ‘대박 기회’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NFT란 무엇이고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메타버스 시대에서 NFT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디지털 자산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가치가 있는 재화 중에서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가장 잘 알여진 것이 바로 암호화폐이다. 이밖에도 디지털 아트, 게임 아이템과 게임 자산, 가상 부동산 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은 어떻게 관리되고 보장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소유한 디지털 자산이 원본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 자신 소유의 원본을 복사 유포한다면 어떻게 원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NFT의 탄생이다.


NFT가 풀어야 할 숙제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반의 조성

디지털 자산의 영구적인 보존

NFT 아이템 구입자의 법적 권리 해석


디지털 변혁기의 승자 조건


근본적인 디지털 변혁기에 경쟁자의 플랫폼에 의존하는 기업은 새로운 시대를 지배할 패권을 가질 수 없다.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패권은 애플과 구글의 스마트폰에 의해 무너졌다.


따라서 새로운 헤드셋과 스마트 렌즈, B2M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신규 경쟁자가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다면, 미래 새로운 패러다임 시대를 주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는 국내의 선도 IT 기업에도 적용되는 사항이다.





메타버스 세상은 과연 올까?


메타버스 세상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게 될 시기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같은 메타버스의 일부 요소는 임미 잘 정리되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따라서 메타버스기 도래하는 세상은 어떤 특정 시점이라기보다 점진적인 과정일 것으로 추측된다.


#과학 #청소년과학 #메타버스 #증강현실 #가상현실 #메타버스수업 #정철환 #믹스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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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투자자 - 벤저민 그레이엄 직접 쓴 마지막 개정판, 개정4판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이건 옮김, 신진오 감수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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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이야기 - 자연에게 배운, 영원히 지켜내야 할 것들
이본 쉬나드 지음, 추선영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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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만든 재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기업 파타고니아는 지구에서 가장 멋진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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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이야기 - 자연에게 배운, 영원히 지켜내야 할 것들
이본 쉬나드 지음, 추선영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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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스포츠든 비즈니스든 규칙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다. 심지어 규칙을 깨뜨리는 일이 규칙에 순응하는 일보다 훨신 더 쉽다. 그리고 결국 거기에서 더 나은 이야기가 탄생한다고 믿는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이본 쉬나드는 전설적인 등반가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파타고니아 인코퍼레이티드의 설립자 겸 소유자다.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의 대부로 유명하던 그는 1957년 암벽 등반 장비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회사 ‘쉬나드 이큅먼트’를 설립하면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쉬나드가 설립한 회사는 1970년에 미국에서 암벽등반용품 업계 1위에 올랐다. 그는 어느 날 암벽등반 중 암벽 곳곳에 생긴 하켄 흔적을 보고 비록 큰 수익을 안겨주는 장비일지라도 바위, 즉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등반장비를 새로이 고안했다. 이후 회사의 사업 방향을 아웃도어 의류로 전환하면서 현재의 파타고니아를 설립했다.


장비의 품질관리


열여섯 살 때는 와이오밍주로 건너가 윈드리버산맥 최고봉인 개닛피크에 올랐다. 그 뒤로 등반, 카약, 민물낚시에 매진했다. 1년에 200일을 침낭에서 잠을 청하던 시절이었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는 텐트도 사라지지 않았다. 별을 보면서 잠이 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볼더나 낮게 드리운 알파인전나무 가지 아래에서 잠을 청했다. 며칠이 걸리는 암벽을 등반할 때는 해먹에 매달려 자야 했는데, 그것만큼 흥미진진한 경험은 또 없을 것이다.


등반에 대한 열정 덕분에 대장장이로 일하면서 돈을 벌게 되었다. 피톤, 피켈 같은 등반 장비를 만들어 판매했던 것이다. 사업을 할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등반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나와 나의 파트너인 톰 프로스트(Tom Frost)의 머릿속에는 기존 장비를 개선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디자인 원칙은 비행사 겸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어야 완벽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어야 완벽한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었으므로 장비의 품질관리가 항상 최우선이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모든 기술 진보에는 단점이 따른다.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라고는 더 많은 인간이 지구에 살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모든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따라서 자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국의 원주민인 이로쿼이(Iroqouis)부족은 7세대 뒤를 내다보면서 계획을 세운다. 따라서 마지막 남은 노숙림을 베어 없애거나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토사가 쌓이고 말 댐을 지어 강을 파괴하는 재앙 같은 계획을 세울 리 만무하다. 이처럼 미래를 내다보면서 수립하는 계획이 올바른 계획이라고 생각한다면 재생불가능한 자원에 의존해서 소비재를 만드는 회사 역시 ‘옳은 일’을 해야 한다.


파타고니아, 화강암 벽 등반 루트 개척


1968년 더그 톰킨스가 파타고니아에 가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은 아웃도어 용품 샵을 운영하면서 슬리핑백과 텐트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었다. 추가로 세 명을 더 섭외해서 다섯 명이 함께 등반에 나서기로 했다. 저자와 더그는 가장 많은 등반 경험 보유자였고, 저자는 등반대의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했다.


길을 떠난 지 넉 달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피츠로이에 도착하려면 아직 두 달을 더 가야 했다. 당시 피츠로이 정상에 오른 이는 두 명뿐이었다. 첫 성공자는 프랑스인 등반가 리오넬 테레이였는데, 다시 등반하고 싶지 않은 곳으로 피츠로이를 꼽았다.




준비한 텐트가 파타고니아의 강풍을 견딜 수 없기에 꼬박 31일을 설동雪洞을 파서 지냈다. 춥고 배고픈 날들이 이어지다가 마침네 날씨가 풀렸다. 이때를 틈타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호흡이 척척 맞는 다섯 명은 해가 저물 무렵 정상에 도착했다. 더그의 아내 수지가 손수 만들어준 현수막을 펼쳐들고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더그는 인격이 형성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면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진다고 했다. 무언가에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돌보고 보호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빙벽등반 장비 개발


더 나은 장비를 개발하면 힘을 덜 들이면서 더 수월하게 빙벽을 등반할 수 있게 된다. 장비를 탓할 시간에 등반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기술 발전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등반도 예외는 아니다.


장비를 디자인하고 개선하는 사람으로서 진보를 추구하는 인간의 태도가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도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 곧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1975년, 케냐산 다이아몬드 쿨루아르를 초등하는 이본

(가후변화로 이젠 사라진 환경이다)


등반이라는 활동 자체는 주도성, 과감함, 균형 유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기술적 해결책의 활용과 대척점에 서 있다. 그래서 새로운 빙벽 등반 장비를 개발할 때면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되 장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데 신경 썼다.


유년기의 경험


이본은 강해형江海形 무지개송어 낚시를 가장 좋아한다. 잡기에 까다로운 어종은 아니지만 그 수가 매우 적다. 그래서 수많은 캐스팅을 반복해야 하기에 이 어종 낚시꾼은 다른 낚시꾼에 비해 강인한 편이다. 한두 마리라도 잡는 날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강해형 무지개송어 낚시에 푹 빠진 낚시꾼들 역시 자신들이 숭배하는 이 물고기를 닮아간다. 산이 산을 선택한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깨달음을 느낀 이본은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게 된 딸에게 아래의 편지를 보냈다.




사람은 유전적 기질을 타고나고 유년기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들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큰 변화는 열정을 쏟는 활동에 깊이 관여하게 된 이후에 찾아온단다. 매사냥, 강해형 무지개송어 낚시, 서핑, 그 밖의 모든 기예들이 네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


클레어, 이 말을 너에게 해주고 싶었단다.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은 강에서 2년쯤 자란 어린 강해형 무지개송어가 바다로 나아가는 것과 같지. 모험이 시작되는 거란다!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증명한 바 있어. 서핑과 탠덤 서핑을 몇 시간 만에 배운 적도 있었고 예술이나 디자인에도 소질을 보였지. 너의 강한 신체와 정신에는 한계가 없단다.


리스판서블 경제


파타고니아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다. 회사의 전 임직원들은 리스판서블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회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지난 1990년대에 과도한 고속 성장을 경험한 후 이젠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파타고니아는 만족할 줄 모르는 소비주의를 동력으로 삼지 않는 경제를 추구한다. 또한 환경에 해를 입히는 실천을 중단하고 그러한 활동을 새롭고 더 효율적인 실천으로 대체하거나 여전히 원활하게 작동하는 과거의 실천으로 대체하는 경제를 추구한다. 생산하는 소비재의 규모를 확대하지 않는 경제, 마구 버린 뒤 모른 체하지 않는 경제를 추구한다.


파타고니아는 이와 같은 경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야말로 모든 기업이 그와 같은 경제에 대해 검토하고 행동에 나설 때라는 것이다. 이래서 포천은 “지구에서 가장 멋진 기업”이라고 칭송했다.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이야기 #파타고니아50주년 #이본쉬나드 #ESG #지구 #환경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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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필드 2023-05-24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때는 서핑을 읽었었는데
그책은 기업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었어요 그에 비해 이책은 두께도 두껍고 이본 쉬나드에 관해
상세한 내용들이 많겠군요

그레이스 2023-05-31 0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산악등정의 역사에 관해 몇권 읽었는데, 이 리뷰 보니 이 책과 함께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조금 수상한 비타민C의 역사 - 아주 작은 영양소가 촉발한 미스터리하고 아슬아슬한 500년
스티븐 M. 사가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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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전, 비타민을 둘러싼 문제는 얼마나 추가로 섭취할 것인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수백만 명이 비타민 부족으로 사망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타민 부족이 전염병만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의학이 성취한 가장 큰 성과로 예방접종과 항생제가 종종 언급되지만, 비타민의 발견과 그에 따른 식단 개선도 그 못지않게 공중 보건에 영향을 미쳤다. - ‘들어가며’ 중에서




우리는 비타민이 풍부한 다양한 음식을 즐긴다. 그 결과 인간이 과거 한때 흔히 겪은 괴혈병, 각기병, 펠라그라, 구루병 등이 이젠 낯설게 들리는 질병들이다. 그래서 어릴 적 학교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던 이런 질병에 대해 현대의 의사들도 책에서만 접하며 실제 치료를 경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에 우리들은 과거의 역사 속으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최초의 인간은 조상 격인 유인원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속에 비타민 C를 체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물려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를 충당하려면 외부에서 얻은 음식에 의존해야만 했다. 수많은 식물이 이런 비타민을 많이 지니고 있었기에 수렵과 채취 내지는 농경 생활을 하던 당시 인간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인류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을 떠나 유럽과 아시아 등지로 이주하면서 항시적으로 이를 섭취하는 게 어렵게 되었다. 특히, 추운 날씨의 북쪽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겐 신선한 과일과 채소 없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지내야 했기에 비타민 C의 결핍 현상이 필연적으로 생김에 따라 괴혈병 환자들이 흔했던 것이다.


사실 이 병은 고대와 중세에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15세기 말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의 첫 인도 항해 일지에 처음 등장했었다. 즉 이들은 아프리카 동쪽 해안을 항해하던 6개월 이상 신선한 과일과 채소들을 공급받지 못해서 팔다리와 잇몸이 부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결국 허약 상태에 빠진 대부분의 선원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탐험가 다가마는 치료법을 발견했다. 아프리카 해안에서 자라는 오렌지 나무에서 오렌지를 채취해 이를 열심히 섭취한 끝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우연히 얻은 이런 지식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대항해시대에는 이같은 괴혈병이 폭풍과 전투보다 더 위험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또한 해상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발생하고 있었는데, 당시 유럽인 수백만 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진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을까? 그 시대의 관료(왕의 신하)나 의사들이 비타민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또 질병에 대한 개념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탐험가 다가마가 우연히 발견한 치료법에도 불구하고 영양결핍으로 인해 괴혈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무려 400년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마침내 20세기 초에 괴혈병의 실체가 밝혀지고, 화학자들은 괴혈병 치료에 필요한 영양소를 구하려고 연구에 돌입했다. 1930년대 초 과학자들은 괴혈병 치료 물질인 아스코르브산(항괴혈병이란 뜻)을 규명했으며, 이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었다. 이후 교통과 농업의 발전과 함께 전세계에 신선한 농산물이 보급될 수 있었고, 더불어 음식과 음료에 아스코르브산이 방부제오 첨가됨에 따라 선진국에선 이 괴혈병이 거의 사라졌다.


책은 해적의 바다, 욕망의 과학자, 비타민 비즈니스 등 3부에 걸쳐서 총 12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저자 스티븐 M. 사가는 비타민 C에 숨겨진 이상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를 파고 든다. 책엔 

3년 9개월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환한 배에는 겨우 188명만이 살아 있었다. 대부분 비타민 C 결핍으로 인한 괴혈병으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앤슨은 영국 해군 본부의 특명을 받고 있었다. 선전포고를 발동한 스페인의 보물선 갈레온을 나포하라는 것이었다. 센추리언호는 포모사(대만의 옛 이름)에 도착, 마침내 금은보화를 실은 무역선 마닐라 갈레온을 나포했으며 생존자들은 1743년 6월 영국에 도착했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 괴혈병이었다. 앤슨과 생존한 선원들은 마닐라 갈레온에서 약탈한 어마어마한 보물을 센추리언호에 가득 싣고 돌아와 부자가 되었다.


제임스 린드의 연구


‘영국 해군 보건위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린드(1716~

1794년)는 1748년 해군에서 퇴역한 후 개인 진료소를 개업했다. 그는 괴혈병을 주제로 첫 논문을 쓰고 이를 1753년 발표, 당시 해군 장관인 조지 앤슨에게 이 논문을 헌정했다.


그는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지중해와 영국 해협을 항해하는 동안 괴혈병 환자 수백 명을 목격했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장면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가 목격한 선원들은 대체로 구강에 문제가 생겼고 뚜렷한 특징을 보였기에 잇몸 병변이 생겨야만 괴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구강위생이 양호하거나 잇몸 염증이 없거나 치아가 없는 사람에겐 구강에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린드는 괴혈병 환자의 근육에 출혈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출혈 부위의 색은 시간에 따라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부러진 뼈의 양쪽 끝이 서로 맞부딪히는 증상을 섬뜩하게 묘사했다. “몇몇 환자가 움직일 때는 뼈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들의 시체를 칼로 가르자 골단(긴 뼈의 말단)이 뼈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발견되었다. 두 골단이 서로 맞부딪히며 그러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67쪽)




린드의 논문은 질병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첫 시도로 널리 인정받는다. 그는 계몽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이 직접 관찰하고 실험란 결과를 토대로 내세웠다. 말하자면 그의 임상실험은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제공한 획기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그의 놈눈 바표에도 불구하고 해군 본부는 방침을 변경치 않았고 선원들에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비타민 C는 무엇인가


첫 번째 발견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과학에선 더 그러하다. 20세기 초는 과학자가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하면 빛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첫 번째 시기였다. 인기 있는 주제인 비타민은 공개적인 경쟁의 장이었다. 비타민을 정제하고 화학 특성을 규정하는 첫 번째 인물이 되면 학문적 명성과 대중의 인정을 동시에 얻었다. 이에 커다란 야망과 자부심을 지닌 과학자들을 비타민 연구로 끌어들였다.


1920년대 과학계는 생명 활동에 꼭 필요한 물질이 결핍되면 괴혈병이 발생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비타민은 각기병과 괴혈병을 예방하는 물질이었다. 이들의 화학적 특성은 대강 이해되었고 분자구조는 알려지지 않았다.


1933년 비타민 C가 아스코르브산으로 확인되고 화학적 특성 이 규명된 이후, 과학자들은 생명 활동에서 비타민 C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왔다. 1937년 영국의 유기 화학자 월터 하스(1883~1950년)는 아스코르브산 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아스코르브산은 산소가 20%를 차지하는 대기에서 동물이 살 수 있게 해준다. 생물은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세포는 산소를 이용해 세포 대사, 근육 수축, 신경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산소는 위험할 수 있다. 다양한 부작용을 나타내는데, 예컨대 혈관 벽에 지방의 축적을 촉진하거나 뉴런을 약화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산화는 노화 과정의 일부이다.


비타민 역사의 의미


비타민 C 역사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현실에 대한 선입견이 우리의 사고를 구속하여 증거를 객관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괴혈병을 이해하는 데 400년이나 늦어진 사례가 이를 설명하는 셈이다.


1936년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영양부는 비타민 발견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질병에서 비롯한 증거는 식품 성분과 그 기능에 대한 개념으로 빠르게 이어졌지만, 사고에 비정상적인 편견이 있었다. 영양결핍 질환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또 다른 교훈은 과학이 답을 밝혔음에도 우리가 이에 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과학적 증거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 이를 거부가지 한다. 건강에 나쁘다는 음식을 끊지 못하고 코로나 재난 시기에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게 좋은 사례이다. 본인의 생각이나 행동 변화에 격렬히 저항하지만 결국엔 과학이 밝힌 진실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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