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전, 비타민을 둘러싼 문제는 얼마나 추가로 섭취할 것인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수백만 명이 비타민 부족으로 사망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타민 부족이 전염병만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의학이 성취한 가장 큰 성과로 예방접종과 항생제가 종종 언급되지만, 비타민의 발견과 그에 따른 식단 개선도 그 못지않게 공중 보건에 영향을 미쳤다. - ‘들어가며’ 중에서
우리는 비타민이 풍부한 다양한 음식을 즐긴다. 그 결과 인간이 과거 한때 흔히 겪은 괴혈병, 각기병, 펠라그라, 구루병 등이 이젠 낯설게 들리는 질병들이다. 그래서 어릴 적 학교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던 이런 질병에 대해 현대의 의사들도 책에서만 접하며 실제 치료를 경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에 우리들은 과거의 역사 속으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최초의 인간은 조상 격인 유인원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속에 비타민 C를 체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물려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를 충당하려면 외부에서 얻은 음식에 의존해야만 했다. 수많은 식물이 이런 비타민을 많이 지니고 있었기에 수렵과 채취 내지는 농경 생활을 하던 당시 인간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인류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을 떠나 유럽과 아시아 등지로 이주하면서 항시적으로 이를 섭취하는 게 어렵게 되었다. 특히, 추운 날씨의 북쪽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겐 신선한 과일과 채소 없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지내야 했기에 비타민 C의 결핍 현상이 필연적으로 생김에 따라 괴혈병 환자들이 흔했던 것이다.
사실 이 병은 고대와 중세에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15세기 말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의 첫 인도 항해 일지에 처음 등장했었다. 즉 이들은 아프리카 동쪽 해안을 항해하던 6개월 이상 신선한 과일과 채소들을 공급받지 못해서 팔다리와 잇몸이 부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결국 허약 상태에 빠진 대부분의 선원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탐험가 다가마는 치료법을 발견했다. 아프리카 해안에서 자라는 오렌지 나무에서 오렌지를 채취해 이를 열심히 섭취한 끝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우연히 얻은 이런 지식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대항해시대에는 이같은 괴혈병이 폭풍과 전투보다 더 위험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또한 해상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발생하고 있었는데, 당시 유럽인 수백만 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진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을까? 그 시대의 관료(왕의 신하)나 의사들이 비타민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또 질병에 대한 개념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탐험가 다가마가 우연히 발견한 치료법에도 불구하고 영양결핍으로 인해 괴혈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무려 400년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마침내 20세기 초에 괴혈병의 실체가 밝혀지고, 화학자들은 괴혈병 치료에 필요한 영양소를 구하려고 연구에 돌입했다. 1930년대 초 과학자들은 괴혈병 치료 물질인 아스코르브산(항괴혈병이란 뜻)을 규명했으며, 이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었다. 이후 교통과 농업의 발전과 함께 전세계에 신선한 농산물이 보급될 수 있었고, 더불어 음식과 음료에 아스코르브산이 방부제오 첨가됨에 따라 선진국에선 이 괴혈병이 거의 사라졌다.
책은 해적의 바다, 욕망의 과학자, 비타민 비즈니스 등 3부에 걸쳐서 총 12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저자 스티븐 M. 사가는 비타민 C에 숨겨진 이상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를 파고 든다. 책엔
3년 9개월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환한 배에는 겨우 188명만이 살아 있었다. 대부분 비타민 C 결핍으로 인한 괴혈병으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앤슨은 영국 해군 본부의 특명을 받고 있었다. 선전포고를 발동한 스페인의 보물선 갈레온을 나포하라는 것이었다. 센추리언호는 포모사(대만의 옛 이름)에 도착, 마침내 금은보화를 실은 무역선 마닐라 갈레온을 나포했으며 생존자들은 1743년 6월 영국에 도착했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 괴혈병이었다. 앤슨과 생존한 선원들은 마닐라 갈레온에서 약탈한 어마어마한 보물을 센추리언호에 가득 싣고 돌아와 부자가 되었다.
제임스 린드의 연구
‘영국 해군 보건위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린드(1716~
1794년)는 1748년 해군에서 퇴역한 후 개인 진료소를 개업했다. 그는 괴혈병을 주제로 첫 논문을 쓰고 이를 1753년 발표, 당시 해군 장관인 조지 앤슨에게 이 논문을 헌정했다.
그는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지중해와 영국 해협을 항해하는 동안 괴혈병 환자 수백 명을 목격했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장면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가 목격한 선원들은 대체로 구강에 문제가 생겼고 뚜렷한 특징을 보였기에 잇몸 병변이 생겨야만 괴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구강위생이 양호하거나 잇몸 염증이 없거나 치아가 없는 사람에겐 구강에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린드는 괴혈병 환자의 근육에 출혈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출혈 부위의 색은 시간에 따라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부러진 뼈의 양쪽 끝이 서로 맞부딪히는 증상을 섬뜩하게 묘사했다. “몇몇 환자가 움직일 때는 뼈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들의 시체를 칼로 가르자 골단(긴 뼈의 말단)이 뼈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발견되었다. 두 골단이 서로 맞부딪히며 그러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67쪽)
린드의 논문은 질병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첫 시도로 널리 인정받는다. 그는 계몽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이 직접 관찰하고 실험란 결과를 토대로 내세웠다. 말하자면 그의 임상실험은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제공한 획기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그의 놈눈 바표에도 불구하고 해군 본부는 방침을 변경치 않았고 선원들에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비타민 C는 무엇인가
첫 번째 발견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과학에선 더 그러하다. 20세기 초는 과학자가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하면 빛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첫 번째 시기였다. 인기 있는 주제인 비타민은 공개적인 경쟁의 장이었다. 비타민을 정제하고 화학 특성을 규정하는 첫 번째 인물이 되면 학문적 명성과 대중의 인정을 동시에 얻었다. 이에 커다란 야망과 자부심을 지닌 과학자들을 비타민 연구로 끌어들였다.
1920년대 과학계는 생명 활동에 꼭 필요한 물질이 결핍되면 괴혈병이 발생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비타민은 각기병과 괴혈병을 예방하는 물질이었다. 이들의 화학적 특성은 대강 이해되었고 분자구조는 알려지지 않았다.
1933년 비타민 C가 아스코르브산으로 확인되고 화학적 특성 이 규명된 이후, 과학자들은 생명 활동에서 비타민 C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왔다. 1937년 영국의 유기 화학자 월터 하스(1883~1950년)는 아스코르브산 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아스코르브산은 산소가 20%를 차지하는 대기에서 동물이 살 수 있게 해준다. 생물은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세포는 산소를 이용해 세포 대사, 근육 수축, 신경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산소는 위험할 수 있다. 다양한 부작용을 나타내는데, 예컨대 혈관 벽에 지방의 축적을 촉진하거나 뉴런을 약화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산화는 노화 과정의 일부이다.
비타민 역사의 의미
비타민 C 역사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현실에 대한 선입견이 우리의 사고를 구속하여 증거를 객관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괴혈병을 이해하는 데 400년이나 늦어진 사례가 이를 설명하는 셈이다.
1936년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영양부는 비타민 발견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질병에서 비롯한 증거는 식품 성분과 그 기능에 대한 개념으로 빠르게 이어졌지만, 사고에 비정상적인 편견이 있었다. 영양결핍 질환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또 다른 교훈은 과학이 답을 밝혔음에도 우리가 이에 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과학적 증거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 이를 거부가지 한다. 건강에 나쁘다는 음식을 끊지 못하고 코로나 재난 시기에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게 좋은 사례이다. 본인의 생각이나 행동 변화에 격렬히 저항하지만 결국엔 과학이 밝힌 진실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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