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서울시청 앞 광장. 겨울방학에 들어선 막내와 막내의 친구를 데리고 스케이트를 타러 다녀왔다. 재작년 겨울에 막내랑 막내 친구들이 다함께 스케이트 강습을 받으면서 서울시청광장 스케이트장과 안면(?)을 텄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1시간에 1000원이라는 착한 이용료와 스케이트와 헬맷까지 무료대여 해주는 친절함, 그리고 매점과 카페를 갖춘 세심함이 무척 매력적이라서 막내가 가자고 조르면 안된다고 거절하기가 어렵다.  

 

올해는 스케이트가 새 것으로 교체되어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를 신기며 더욱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참 좋았고. 게다가 아이들이 그새 또 훌쩍 자라서 이제 지켜보거나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동안 나는 스케이트장이 보이도록 전면 유리로 만들어진 카페에 들어가 카푸치노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스케이트 장 카페에서 읽은 책은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였다.

 

 

  

 

 

 

 

 

 

 

 

 

 

 

 

내가 읽은 이승우의 첫 책이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이승우라는 소설가에 대한 칭찬글을  읽은 기억이 있어서 도서관 서가의 책들을 둘러보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주저하지 않고 빌려왔다. 소설은 침울하고 무겁고 칼칼하고 쓸쓸했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일상을, 그리고 그 일상의 무심한 몸짓과 언어에 담긴 마음을, 참 예리하게 잡아내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뜻밖의 일이 불쑥 끼어들어 삶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해버리곤 한다. 끼어든 것들이 삶을 이룬다. 아니, 애초에 삶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찍 끼어드느냐 늦게 끼어드느냐 하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끼어드는 것이 없으면 삶도 없다.

(18쪽)

 

나는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 어떤 말을 해도 하나마나한 말이 되고 마는 상황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니, 어떤 말을 해도 하나마나한 말이 되고 마는 상황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마나한 말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24쪽)

 

이 책에 들어있는 첫 단편 <오래된 일기>에서 만난 문장들이다. 어찌보면 말장난스럽기도 한 이 문장들에게 나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서 내 일상을 휘젓고 흔들어 놓는 바람에 짜증이 나거나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결국엔 그런 것들이 성장시키기도 하고 곤두박질치게 하면서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꼭 필요한' 말보다 '하나마나 한' 말을 더 많이 하고 산다. 썰렁한 농담, 예의상의 인사치레, 영혼없는 맞장구, 혹은 과잉반응의 말들. 하지만 그런 말들이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불필요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부분 상황이 그런 말들을 요구했으니까.  한마디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고, 내 삶이지만, 내 삶도 세상만큼이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어내서 하루씩 삶을 연명하는 거랍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내놓아야 하는 거지요. 그것이 인생이에요. 떼어낼 것이 없어지면 삶도 멈추는 거겠지요. (91쪽)

 

내 맘대로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 하고 피식 웃었다. 내 삶이지만 살기 위해 떼어놓아야 하는 삶이 있는 거다. 그래서 내 삶을 통째로 다 내 맘대로 쓸 수가 없다. 때론 내가 쓸 수 있는 삶에 비해, 떼어놓아야 할 몫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삶을 어디에, 누구에게 떼어놓았을까,

 

인생이 얼마나 통속인지 보라고, 아무리 외로운 척해도 통속을 넘어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니까. (126쪽)

 

이 사람의 소설에 끌리는 이유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쓴 이야기에는 외로운 사람의 쓸쓸한 삶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이 작가는 '척'하지 말란다. 그래봤자 통속이고 신파라고, 그런데 그말이 더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프고, 그래서 또 더 통속같고 신파같고.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소주잔 기울여주지 않고는 못베길 것 같은 심정이 되고 만다. 비록 나처럼 술 한 잔 못 마시는 사람이라고 해도.

요즘은 소설에 마음이 끌린다. 알기 위한 책 읽기에는 좀 시들해졌고, 느낌 있는 책들에 대한 욕심이 커진 것 같다. 한동안은 좋은 소설들을 찾아 읽고 싶다.

 

일요일에는 막내랑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스무디가 먹고 싶다는 막내를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이디야에 들어갔다. 막내는 딸기요거트플랫치노를, 나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요즘 커피는 하루 한 두 잔 정도로 줄였는데, 또 뭔가 마시고 싶을 땐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집에서는 우유를 끓이고 어쩌고 하기 귀찮아서 끓는 물 조금에 홍차 티백을 진하게 우리고, 꿀을 좀 넣고, 그냥 우유를 부어 마신다. 카페에서 밀크티를 주문하면 진짜 홍차를 우려내서 만들어주지 않고 밀크티 파우더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달고,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그래서 이디야에서 밀크티를 주문하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티백이, 들어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옆 '8월'이라는, 작지만 예쁜 카페에서 끓여주는 밀크티(여기는 티백 말고 홍차잎을 용기에 담아 우려준다)  다음으로, 파우더를 쓰지 않는 밀크티를 주는 카페는 이디야가 두번째다.  뭐, 카페를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니까 좀 더 잘 찾아보면 몇 군데 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탐탐과 커피빈, 카페베네 그리고 공차는 파우더 밀크티였던 걸로 기억한다.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밀크티의 유혹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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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12-3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마셨던 밀크티는 대부분 다 파우더~~~.ㅠㅠ 너무 달죠~~~.
차잎으로 우려내 만든 밀크티 먹고 싶네요~~~. 티백도 말고~~~.^^

2015-01-01 0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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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1 2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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