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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요즘은 연이어 소설을 읽었다.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소설만 연이어 읽어댄 데에는 현실도피라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일에도 지치고 사람에게도 지치고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에도 지쳐 있었다. 한동안 잠수를 타거나 아니면 모든 걸 두고 어딘가로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거나.. 했으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안될 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소설 속에 푹 빠져 버리는 거다.
의기소침 무기력해져 있는 내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제목은 떨어진 당을 보충해 주고 '원기회복! 활력충전!'을 보장하는 한 병의 드링크제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이 책은 태양이 시뻘겋게 작렬하는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은빛 비늘을 눈부시게 반짝이며 펄떡펄떡 튀어오르는 크고 힘센 물고기 같았다.
'백리향 냄새와 월계수 잎사귀 향, 고수 향, 끓는 우유 향, 마늘 향과 함께 파스타를 넣은 수프 냄새가 진동을 하는 가운데 부엌 식탁 위'에서 태어난 티타는 그녀의 탄생이 예고했던대로 요리에 마술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신비한 재주와 능력을 타고 났다. 책을 읽어가면서 티타는 우리가 억눌러온 아름다운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인간의 식욕과 성욕. 식사 예절이라든가 체면이라든가 하는 것들 때문에 우리가 가진 탐욕스러운 식욕을 우아하게 포장하고, 성욕 또한 사회적 제도와 도덕적 규범의 틀 안에서 감춰거나 어두운 음지로 숨는다. 티타도 요리는 '요리법'이라는 틀에, 성욕은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관습에 갇혀 있다.
한편 티타도 페드로에게 기다리라고, 자신을 멀리 데려가 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곳으로, 따라야만 하는 관습이 없는 곳으로, 어머니가 없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말은 목구멍에서 뒤엉켜서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사그라졌다. (65쪽)
티타는 이런 기분을 잘 알았다. 요리법에 나온 대로 따르지 않고 요리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티타는 마마 엘레나가 기필코 틀린 부분을 찾아내서 자기가 만든 음식을 칭찬하기는커녕 조리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호통을 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엌과.... 그리고 인생에서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법칙들을 깨고 싶은 유혹도 뿌리칠 수 없었다.
(208~209쪽)
티타의 어머니 마마 엘레나는 티타를 억누르는 감시자이자 억압자이다. 크고 강하다. 그런 어머니에게 억눌려진 티타는 마법적인 요리를 통해 해방을 꿈꾼다. 사람들은 티타가 만든 음식을 먹고 타오르는 성적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페드로가 로사우라와 결혼할 때에는 티타가 만든 음식이 신랑신부를 포함 하객들 전체의 구토를 유발하기도 했다.
싱싱한 성욕과 식욕은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티타가 페드로에게 받은 장미꽃으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온몸에서 장미향을 풍기며 알몸으로 벌판으로 달려나간다. 열에 들떠 장미향을 풍기며 달려오는 헤르트루디스를 혁명군 장교가 말에 태워 떠난다. 황당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을 책에서 얼마나 꿈같이 아름답게 그려놓았는지.
하지만 그 후에 창녀촌에서 살게 된 헤르트루디스를 타락한 비운의 주인공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더 마음에 들었다. 헤르트루디스는 책의 말미에서는 혁명군의 여대장으로 등장하여, 페드로와 존브라운 박사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티타에게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씩씩하고 밝고 건강한 인물로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페드로와 티타의 관능적이고 열렬한 사랑도 인상적이었지만 난 존 브라운 박사의 따뜻하고 편안한 사랑도 좋았다. 이건 분명 내가 나이 들고 늙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아무튼 브라운 박사는 지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마마 엘레나가 규범과 관습의 폭력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이해와 관용의 따뜻함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마엘레나와 존 브라운 박사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자주 이성을 '사회적 규범을 따른다'는 것과 혼동했던 것 같다. 마마 엘레나와 존 브라운 박사가 천지차이의 인물인 것처럼 '지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과 '사회적 규범과 관습'은 서로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브라운 박사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성냥을 만드는 과정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신 활동과 육체적 활동을 아무 문제 없이 별개로 분리할 수 있었다. 손놀림을 멈추거나 실수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가장 심오한 철학적 문제까지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티타에게 계속 얘기를 하면서도 성냥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23쪽)
어쩌면 그는 성냥 만드는 일을 멈추고 티타를 애무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가장 심오한 철학적 문제'같은 건 집어치우고 열렬한 사랑의 말을 쏟아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티타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랑을 이룰 확률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가 티타의 사랑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브라운 박사가 좋았다. 티타와 결혼할 수 없다고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찌질하다면 찌질하다고 할 수 있는 페드로 보다는. 하지만 티타는 젊고 관능적이고 아름답기 때문에 페드로를 선택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두 가지 욕구, 식욕과 성욕은 억누름을 강요받는 동시에 생명을 이루는 기본적인 욕구들이다. 조카에게 젖을 물리자 처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젖이 쏟아져 나온다거나, 또는 마마 엘레나의 망령을 물리치자 다시 생리가 시작되는 것 같은 장면들을 통해서 티타는 생명과 풍요의 여신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음식에 대해 까다롭고 잘 먹지도 않았던 로사우라가 뚱뚱하고 입냄새가 심한 인물로 묘사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티타는 밀이나 콩, 자주개자리의 씨앗은 자기 모습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바뀌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계속 싹을 틔운다고 생각했다. 이제 티타는 씨앗이나 곡물들이 새 삶을 주기 위해 자기 몸을 터트려 가며 껍질을 벌여 물을 깊이 빨아들이는 게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씨앗이나 곡물들은 자기 몸속에서 첫 번째 뿌리 끝이 삐죽 튀어나오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원래 모습이 망가져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새싹을 당당하게 세상에 보여주었다. 티타는 자신도 그런 단순한 씨앗이었더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자기 몸속에서 뭐가 자라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얘기할 필요가 없고, 사회적 비난을 감수한 채 부른 배를 안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씨앗에게는 이런 고민이 없었다. 특히 무서워해야 할 어머니도 없었고, 도덕적으로 비난할 사람들도 없었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티타에게도 어머니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마 엘레나가 내린 저주가 언제 어느 때 저승에서 떨어질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208쪽)
따지고 보면 섹스를 하고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야 무슨 잘못이 있으랴. 우리가 씨앗이 아닌 게 문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