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바다 앞에 섰을 때,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퍼붓는 눈송이쯤, 뭔가 달콤한 추억거리를 만들기 좋은 근사한 배경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차가운 바람이 한적한 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우리의 어깨와 등에 눈송이를 실어날랐다. 어두운 겨울 저녁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나트륨 가로등의 노란빛 속에서 꿈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뭔가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씩 이야기가 끊어지고 잠깐의 침묵이 흐를 때도 있었다. 우리 사이에 이야기가 있든 침묵이 있든 그건 별로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이, 이별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다시는,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영원히 갈라놓을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날 춤추듯 내리던 그 많은 눈송이들은 마지막 축제 같은 것이었다.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어둡고 한적하고 폭설이 내리는 길을 눈사람이 되어 걸어가는 우리를 안쓰럽게 여기고 버스기사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버스를 세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버스를 타지 말고 더 걸으며 눈을 맞았어야 했다. 버스기사의 호의와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했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어렸다. 어리석게도 버스에 올랐고 우리는 마지막을,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시간을 더 단축시켜버린 것이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도 알 수 없었다. 굳어버린 얼굴로,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우리는 우리일 수 없었다. 그 길에서 버스에 올라타던 그 순간, 우리는 더이상 같은 길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