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중3이다.  작년부터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생각을 해왔는데, 사실, 우리 아들은 공부로 성공할 수 있는 케이스는 아니다. 뭐, 고등학교에 가서 갑자기 개과천선을 하면 모를까...  그렇다고 성적이 아주 엉망인 것은 아니고, 어중간하다고 해야할까..  성적표를 보면 우,미가 더 많고, 가끔 수와 양이 끼어있는 정도다.  

어중간한 성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어중간하게 학교에 다니다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대학 어중간한 학과를 졸업해서 어중간하게 취업이라도 하게 되면 좀 낫지만, 그것도 안되면 참 큰일이겠다 싶었다.  아들의 꿈이 요리사라서 공부를 남들보다 경쟁력있게(?) 잘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십대의 마지막 시절, 그 3년을 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순 없을까, 그게 내 고민이었다.  기왕이면 졸업과 동시에 아득히 까마득히 지워져버릴 지식을 주입받느라 애쓰기 보다는 요리사가 될 아들이 몸도 쓰고 마음도 쓰고, 잘 생각하기를 배울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한 것 같았다.   

처음엔 산청 간디학교를 생각했다.  여름에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산청에 잠시 들러 학교를 둘러보려고 했는데, 어쩐일인지 아들이 싫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지가 싫다는 걸 내가 강제로 가자고 할 수도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다가 도서관 선생님에게 '산마을 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화도에 있어서 일단 산청보다 훨씬 가까워 좋았다.  아들이 따로 검정고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인가받은 특성화 대안학교라서 더욱 좋았다.  학교의 교육목표가 자연, 평화, 상생을 바탕으로 '사유하는 학교, 땀 흘리는 학교, 마음 나누는 학교'라는 것은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내가 바라던 바를 어쩌면 이렇게 쏙쏙 뽑아서 교육목표로 만들어 놓았는지!!!)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리 저리 구경을 하고 다니다가 10월 9일에 입학설명회가 열린다는 공지에 얼른 신청댓글을 달아놓았다.  

10월 9일, 남편, 아들, 그리고 막내 유빈이와 함께 강화도 산마을 고등학교에 다녀왔다.   

 

 

 

 

 

 

  

가장 먼저 야트막한 집들이 눈에 띄었다.  홈페이지를 보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가서 보니 푸른산 푸른 하늘 아래 야트막한 지붕의 집들이라...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학교 건물과는 참 달랐다.  인간관계가 수직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평등하게 어우러지는 관계라는 것,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게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걸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학교를 지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 건축 특성상 식당도 따로 집 한채, 교실도 따로따로 집 한채, 도서관도 따로 집 한 채, 교무실도 따로 집 한 채, 컴퓨터 실도 따로 집 한 채, 기숙사도 학년별 성별로 따로따로 집 한 채 씩을 가지고 있었다.    


 

 

 

 

 

  


 

 

 

 
 

 

 (위의 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도서관, 교실, 식당, 컴퓨터실이다. 물론 아이들 밥은 채식위주의 유기농 식단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집들 사이사이에 이어지고 있는 길들이 참 정겹고 예뻤다.

 

 

 

 

 

 

 

 

왼쪽 사진은 기숙사로 가는 길, 오른쪽 사진은 도서관 앞 모퉁이 화단이었던 것 같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자연과의 상생을 배울 수 있겠다고 느끼게 한 장소가 세 군데가 있었는데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학교에 들어서면 운동장 스텐드 지붕처럼 보이는 태양광 집열판들이었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학교에서 쓰고 남은 전기를 인천시에 판다고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3평씩 주어진다는 학교 텃밭.  텃밭 옆에는 삽이며 호미등이 즐비한 농기구 창고가 있었고, 작은 트랙터(맞는지 모르겠다)도 두어 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가을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유난했던 날씨 때문에 아이들의 농사도 신통치 않았던 걸까?  밭이 좀 볼품이 없었다.
 

 

나머지 하나는 학교를 떠나올 때쯤 화장실에 들렀을 때였다.  나무로 지어진 화장실 건물이 특이하다 싶긴 했는데 안에 내부도 나무.  나무로 사람이 앉을만한 높이로 정육면체모양의 틀을 짜서 좌변기의 윗틀만 얹어 놓은 모양의 재래식 화장실이다.  게다가 화장실에 앉았을 때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뚫어놓은 20센티미터짜리 자 크기 만큼의 창문. 하하하, 볼일 보면서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라는 배려란다.  그리고 화장실 한 쪽 구석 고무통에 쌀겨가 들어있는데, 볼일을 보고난 후 쌀겨를 바가지로 퍼서 넉넉히 뿌려주는 게 이 학교 화장실의 에티켓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 퇴비로 변한 우리의 신성한 자연물은 아이들의 생태농업에 쓰인단다.  신기하게도 화장실에선 냄새가 거의 없었다.   말로만 상생과 평화를 외치는 학교는 아니구나 하는 신뢰가 생겼다.
 

 

학교를 나서면서 아들에게 뭐가 제일 맘에 들었냐고 물었더니 기숙사가 가장 좋았단다. 우리가 들어간 기숙사 동은 1학년 남자아이들만 쓰고 있는 통나무 집이었던 것 같다. 한 방을 4명이 쓰고 세탁실에 장애인 전용 화장실, 한쪽에 책들이 즐비한 거실, 그리고 외국인이 왔을 때 묵어가는 방까지 갖췄고, 깔끔했다.

 

 

 

 

 

 

 

이 학교는 30년 전통의 일본 자유노모리학교와 교류하고 있고,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체코, 미국, 영국, 프랑스, 싱가폴, 중국, 이스라엘 등지에서 우퍼들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우퍼(WWOOFER)란 유기농업을 하는 농장에서 하루 4시간의 일을 해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여행자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학생들과 함께 일도 하고, 여행도 하고, 수업도 함께 듣는단다.  

이렇게 엄마, 아빠, 오빠가 학교를 설명회에 참석하고 학교를 둘러보는 동안, 막내는 뭘했을까?
 

 

 

 

 

 

아기 고양이들과 놀고, 이 학교 아이들이 10월 초에 있었던 축제에 지었다는 인디언 천막에 들어가서도 놀고.. ^^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화도 동막해수욕장 갯벌에서 오누이는 정답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들이 꼭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학생을 남녀 합쳐서 단 20명밖에 뽑질 않는다.  
게다가 학교 스텐드를 꽉 채워서 뒤에 서서 듣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많았다.  경쟁율이 너무 세다.  윽, 여기서도 '경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다니!!! 
어떻게 되든 입학원서는 내볼 생각이다. 정말 탐난다, 그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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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10-13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페이퍼입니다.
아이들을 공부와 입시의 지옥으로 내몰지 않고 이렇게 자연을 벗삼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모두의 로망일텐데 이런저런 핑계 현실의 직시 등으로 짓눌려 있던 마음이 눈녹듯 녹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쌩유 ^*^

섬사이 2010-10-20 23:38   좋아요 1 | URL
어제 아이의 입학원서를 우편으로 부쳤습니다. 입학정원에 비해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떨어지면 아이의 실망이 클 것 같아서요.
저런 학교가 '로망'이 아니라 '일반적'인 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점도 한동안 싱숭생숭했습니다. ^^

치유 2010-10-15 0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학교가 이래야 되는데 말이죠..아이들을 위한 학교말여요...

섬사이 2010-10-20 23:41   좋아요 1 | URL
아, 배꽃님.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와락, 안아드려요. ^^
'모든 학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교육이 펼쳐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다양함 속에서 차별받지 않는 교육이요.
너무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BRINY 2010-12-20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쟁이 없는 곳이 없네요. 공부에 뜻이 없으면 차라리 자유롭고 즐겁게 대안학교에서 학창생활을...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안이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