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100번 작은 곰자리 12
무라카미 시코 지음, 우지영 옮김, 오시마 다에코 그림 / 책읽는곰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아이를 재우려다 보면 잠이 안 온다며 투정을 부릴 때가 있어요. 불을 켜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바스락거리며 부산을 떨기도 하고, 무슨 상상을 하는지 혼자서 속닥거리기도 하다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잠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부끄럼쟁이라서 불을 끄고 누워서 자는 척 눈을 감고 조용히 있어야 찾아오는 거야. 자꾸 움직이고 떠들고 불을 환하게 켜두면 ‘아이고, 부끄러워서 유빈이한테는 못 가겠네!’하고 가버리거든. 그러니까 쉿,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봐. 그러면 잠이 유빈이한테 놀러 와서는 재미있는 꿈나라로 데려갈 거야. 엄마는 빨리 잠이 오게 가만히 있어야지!”하고 말해요. 빨리 아이를 재우려는 저의 급한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이지요.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아이 마음은 헤아려 주지도 않고 어떻게든 재우려고만 했으니까요.

잠 안자고 놀고 있는 하나라는 여자 아이를 재운다는 내용만 본다면 베드타임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장가’같은 분위기의 그림책은 아닙니다. 그런 그림책들과는 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 집 지붕 위에 뜬 동그란 달이 되어서 아이와 엄마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림도 밝고 이야기도 경쾌합니다. ‘조용, 조용’한 정적인 분위기의 베드타임 스토리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동생이 먼저 잠이 들어 엄마를 혼자 독차지할 기회를 얻은 이 그림책 속 하나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빨리 들어가 자라는 잔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게 말처럼 쉽고 간단하지는 않잖아요. 늘 엄마의 욕심이라든가 ‘바른 생활 습관 형성’이라든가 ‘교육적 효과’라고 하는 것들의 틀에 매여서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게 되기 일쑤니까요. 그림책 속 엄마는 저랑은 다르게 사려심이 많은 엄마인가 봅니다. 하나가 내는 수수께끼 게임에 기꺼이 동참하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하나가 낸 수수께끼, ‘하나가 자기 전에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하나도 엄마도 모두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어느새 ‘나도 아이에게 이렇게 사랑스런 엄마가 되어야 할 텐데..’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예요.

하나는 정답을 맞히지 못하고 포기해버린 엄마의 품으로 뛰어들며  엄마에게 ‘사랑해’ 라고 100번 말하기 벌을 내려요. 엄마는 “뭐어, 백 번이나.”하고 놀라는 척하지만 하나를 품에 안고 ‘사랑해’라고 속삭이는 엄마의 표정은 행복합니다. 엄마의 달콤한 속삭임을 들으며 하나는 서서히 잠이 듭니다. 엄마가 백 번의 고백을 마쳤을 땐, 이미 하나는 꿈나라로 떠난 뒤였어요. 엄마는 하나가 이미 잠들었다는 걸 알고도 사랑한다는 백 번의 속삭임을 멈추지 않은 거죠.

다섯 살인 제 딸 유빈이는 제가 읽어주는 이 책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엄마, 엄마도 나 꼭 껴안고 사랑해 100번 해줘.”하며 졸랐습니다. 저도 이 책에서 보고 배운 게 있어서 “뭐어, 유빈이도 사랑해 100번 듣고 싶어? 그렇게 많이?”하며 놀라는 척했어요. 살짝 한숨도 쉬면서요. 그리고 정말로 사랑해 100번을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유빈이는 잠들지는 않더군요.)

유빈이가 좋아한 건 또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은 ‘사랑해, 백 번.’이 아니라 ‘내일도 실컷 놀자.’입니다. 유빈이는 이 마지막 문장을 듣고는 ‘실~~컷~~?’하면서 좋아서 입이 벌어지더군요. 아마 다음날 이 책 속의 엄마와 하나는 함께 신나고 즐거운 시간들을 ‘실컷’ 즐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더 많이 사랑했겠지요.

저도 제 아이들과 날마다 더 많이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이 그림책이 가르쳐주는 ‘엄마와 아이가 더 다정해지는 비법’-헤아려주기, 안아주기,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실컷 놀아주기-를 잘 기억하며 살아야겠네요. 잘 될까요? 부디 잘 되어야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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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10-0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유빈이의 말이 넘 귀여워요..꼭 껴안고 사랑해 백번...ㅋㅋ 유빈이처럼 귀여운 딸이면 하루종일이라도 해줄수 있는뎅~~!

아이에게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는게 어려운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하기가 쉽지 않게 되더라구요.
하는짓들은 애기면서 한번 안으면 품에 안겨 지지도 않고요..^^_

님은 이쁜 유빈이가 있어 늘 실현가능할거에요..

섬사이 2009-10-08 20:03   좋아요 0 | URL
예, 늦둥이 딸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아요.
유빈이 덕분에 웃을 일도 많구요.
셋째 아이라서 그런지, 제가 즐기는 면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