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백일 무렵부터 다니던 냉면집이 있다. 수육 6000원 냉면 4000원의 착한 가격에 주인아저씨 인심도 좋다. 우리가족은 그 집 김치를 특히나 좋아하는데, 가끔은 다섯 접시를 해치우는 엽기적 행각을 마다하지 않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래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넉넉히 챙겨주신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혹시 모자랄까봐 냉면 사리까지 따로 챙겨주실 때도 있다. 물론 공짜다. 냉면과 수육 맛도 좋지만 아저씨 인심과 편안하고 푸근한 분위기가 좋아서 어느새 15년 단골이 되었다.
서울에 둥지를 튼 지 만 3년이 지났다. 우리 가족의 불만사항 중 하나가 맛있는 냉면집이 없다는 거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맛도 좋고 인심도 넉넉한 냉면집이 없다는 거다. 옆지기가 맛있다는 냉면집을 데려가기도 했다. 오늘도 옆지기는 저녁에 냉면을 먹으러 가자면서 충무로의 우래옥이라는 곳을 데려갔다. 냉면 한 그릇에 9000원. 아이구, 단골 냉면집에 가면 두 그릇 값이다. 분위기는 좀 고급스럽다만 고급스러운 만큼 왜 이리 까칠한 게냐. 우리가 앉은 저쪽으로 중견 탤런트 ㅅ씨가 앉아 일행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 그래, 꽤 유명한 냉면집인가 보구나... 그런데 영 내 스타일은 아니다.
우래옥에서는 면을 먹으면 음식값도 선불이다. 그런데 비싼 고기를 먹으면 다 먹고 난 다음에 내도된단다. 이건 또 뭔 말도 안 되는 규칙인지. 냉면 먹는데 김치 한 조각도 반찬으로 나오질 않는다. 달랑, 젓가락과 냉면만 식탁 위에 가져다 놓는다. 까칠한데다 썰렁하기까지. 냉면 육수는 진하고 그래,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난 이런 분위기 정~~~말 싫다. 난 가끔 서울의 이런 까칠한 면에 정이 떨어지곤 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만 그런가? 맛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그런데 우리 단골 냉면집은 맛도 정말 좋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먹는 음식이 난 더 좋다. 남편 말로는 그 집이 점심 때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먹어야 하는 집이라는데, 치, 나 같으면 그런 집에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 게다가 줄까지 서서..
옆지기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묻는다.
"어땠어?"
"뭐, 냉면 맛은 나쁘지 않은데, 난 전에 갔던 필동면옥이 이 집보단 좋은 것 같아."
(사실 필동면옥도 그리 다정한 분위기는 아니다)
옆에 있던 명보가 한 마디 거든다.
"난 무조건 황해모밀이야." (우리 단골 냉면집 이름이 '황해모밀냉면'이다.)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
"강남에 유명한 냉면집이 또 있는데, 다음에는 거기로 가볼까?"
"아~~~니, 싫~~~~어!!!"
내가 너무 촌스러운 걸까? 내가 품위유지나 우아함과는 좀 거리가 멀긴 하다. 이 나이 먹도록 결혼식이나 장례식 자리가 아니면 청바지와 티셔츠로 다 떼우는 내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냉면 하나로도 우아함을 강요하는 그런 식당이 나랑은 맞지 않는 건지도.. 김치를 젓가락으로 북북 찢어서 내아이 입에 들어갈 수육 고기 위나 냉면 면발 위에 얹어 주지도 못하게 하는 그 따위 식당, 쳇! 일인분에 4만원하는 꽃등심을 먹느냐, 아니냐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지는 그 따위 식당, 정말 기분 나쁘다. 그런 식당에서 내 돈 내고(돈은 옆지기가 냈지만 아무튼!!)냉면 팔아줬다는 게 억울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