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별 때때롱 (양장) 개똥이네 책방 1
권정생 지음, 정승희 그림 / 보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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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이 영면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기신 동화가 바로 ‘랑랑별 때때롱’이다.  병드신 몸으로 집필하시기가 무척 힘드셨을 텐데, 이 책 어디에도 선생님의 고통은 스며있지 않다.  맑고 순수하고 따뜻하고 천진한 아이들의 고운 마음만 한가득 부려놓으셨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파온다. 

소리 내서 말하면 입안에서 방울 소리라도 울려 퍼질 듯한 어감을 가진 제목, ‘랑랑별 때때롱’. 지구별 농촌에서 살고 있는 새달이와 마달이는 어느 여름날 밤에 랑랑별에 살고 있는 때때롱과 매매롱을 만나게 된다.  만난다고는 했지만 사실 처음엔 목소리만 듣고 이야기와 쪽지, 사진만 오가는 사이다.  티격태격 작은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지만 어느 새 정들고 서로가 궁금해지는 친구가 된다.  그러다가 새달이와 마달이는 결국엔 랑랑별에 놀러갈 수 있게 되는데, 랑랑별은 자연과 어울리고 밥상에 반찬 세 가지만 놓으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아이들은 모두 고루고루 먹고 열심히 일하고 뛰어놀고 공부는 학교에서만 해도 되는(p.120) 아름다운 별이다.  권정생 선생님이 이상향으로 생각한 곳이 바로 랑랑별인 것 같고 어쩐지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을 랑랑별에 가면 만나뵐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기 때문인지 책  곳곳에서 어린이와 어린이가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염려가 드러난다. 
“맞아요, 일은요, 사람이 땀 흘리며 열심히 해야 해요.”(p.186)라든가,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살아야 한다.“(p.180), "그래, 그게 정상이야. 열 살이면 아무것도 모른 채 즐겁게 뛰어놀며 살아야 한다고 돌아가신 고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그러셨거든.  그 할아버지는 맞춤 인간이니, 로봇이니, 과학이 너무 앞서 가는 걸 반대하셨어.  사람은 순리대로 태어나서 자라야 한다고.”(p149)와 같은 말씀은 사람의 편의대로 어린이의 삶은 물론이고 자연과 세상을 억지로 부자연스럽게 변형시키려는 인간의 오만을 꾸짖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그림자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정승희 님의 그림은 동화의 맛을 더욱 끌어올려 준다.  하지만 읽으면서 좀 염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요즘 아이들에게, 특히 도시에 사는 많은 아이들의 공감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눈부시게 발달해가는 과학문명에 대한 경계심, ‘훌륭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 어른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한 본성이 이야기 속에 드러나 있지만 새달이와 마달이의 사는 모습이 우리 아이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 좀 아쉽다. 

마지막 동화를 남기면서 권정생 선생님은 책 머리말에 동물 복제에 대한 반대 글을 남기셨는데 그 반대의 이유가 권정생 선생님답고 명쾌하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장 근본을 맑게 들여다보시는 분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동화가 “그다지 잘 쓴 동화 같지는 않”아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까지 하셨다.  그런데 솔직히 사과하셔야 할 만큼 재미가 없지는 않다.  특히 뒤쪽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흥미로워지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뿍 묻어나서 읽는 동안 아주 포근했다.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사랑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인지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동화를 쓰신 분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하고.  좀 억지스러운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그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아이들이라면 말투가 좀 어색하다든가 하는 문제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는데, 바로 여기 이 책 속에 권정생 님의 어린이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녹아있으니 말이다. 새삼 그 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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