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뚝! 징검다리 동화 4
헤르만 슐츠 글.그림, 이미화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여름 방학을 보내기 위해 할머니 댁 농장이 있는 ‘작은 둥지’를 찾은 소녀 레오니는 ‘변화’를 감지합니다.  지푸라기 하나 흐트러져 있지 않고 닭똥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말끔한 닭장에서 횃대 위에 조용하게 나란히 앉아 있는 닭들, 일렬종대로 줄을 서서 걸어가는 젖소들, 잡초를 뽑는 거위들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요.  레오니는 탐정이 되어 이 모든 것의 원인이 할머니 농장에 새로 들어온 개, 롤란트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롤란트는 레오니가 오던 날 사라져서는 좀처럼 레오니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에 용감하고 지혜로운 레오니는 늑대 빌리와 여우 프레디,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개 아시아의 도움을 받으며 롤란트를 찾아내고 맙니다. 

저는 ‘질서’를 교육받으며 자랐습니다. ‘질서는 편한 것, 아름다운 것.... ’하는 표어를 들으며 자랐고, ‘질서’는 선진문화시민의 척도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죠. 사실, 질서는 사회를 유지해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약속이며 지켜야할 규범이라는 사실에 반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질서가 어느 정도로 우리를 통제하느냐, 하는 거겠지요.  ‘질서 유지’라는 명목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와 이에 저항하려는 움직임 사이의 갈등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책에서처럼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늘 일방적으로 ‘질서’를 찬양하는 교육을 받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질서라는 게 반드시 꼭 좋은 걸까?’라고 묻는 이런 책이 더 필요해지는 건 아닐까요. 아이들의 균형감을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겁니다.  농장의 동물들을 위협하고 협박하고 사건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질서정연한 세계’를 구축하려고 했던 롤란트 경사는 100% 나쁜 놈이라고 규정짓기가 쉬운데 이 책은 그렇게 흘러가지를 않습니다.  롤란트는 쫓아내야 할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과 인격의 성숙이 필요한 인물에 불과합니다.  롤란트를 도와주는 늑대 빌리와 여우 프레디도 권모술수에 능하고 어딘지 야비한 구석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친구간의 의리도 지킬 줄 알고, 가족을 소중하게 챙기며,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미워할 수 없게 만듭니다. 

어쩌면 세상은 더 가혹하고, 어쩌면 세상엔 정말 구제불능의 악질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 책이 보여주는 희망적인 메시지에 마음이 끌립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 것을 다시 되돌리는, 변화와 회복에 대한 희망이 즐겁습니다.  아이들에게 질서를 ‘경계’하고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과 희망에 마음을 열어두라고 말하는 이 책이 유쾌합니다.  현실은 더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을, 그리고 레오니처럼 ‘짠~’하고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때로는 몸으로 부딪치고 행동으로 말하며 자유와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아픈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언젠가 아이들도 차차 배우게 되겠지만 말이죠.

정말, 지금 우리에게 레오니 같은 협상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통의 중심을 맡고, 윈윈 전략을 계획하고 추진해나갈 수 있는 레오니 같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우리 앞에 쌓여있는 이 엄청나게 골치 아프고 답답한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 텐데요. 이 책이 왜 그 유명한 독일 발도로프 학교의 추천도서가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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