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낙하 미래그림책 52
데이비드 위스너 지음, 이지유 해설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을 좋아했지만, 그림 자체보다는 ‘그림을 엮어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데이비드 위스너의 그림책들을 전부 읽어보지는 못했다.  <1999년 6월 29일>이나 <허리케인>은 그 내용이 무척 궁금했는데도 건망증이 심한 나는 도서관에 가서 그의 책을 깜박 잊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읽은 그의 책은 <이상한 화요일>, <시간 상자>, 그리고 이번에 읽은 <자유 낙하>까지 딱 세 권 뿐이다. 

읽으려고 그의 그림책을 펼치면, 기기묘묘한 환상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더구나 한 마디의 설명글도 허락지 않은 그의 그림책을 보고 있자면(<1999년 6월 29일>이나 <아기돼지 세 마리>엔 짧은 글이 한 줄씩 들어 있는 것도 같지만) 아주 세심하게 그림을 읽어달라는 은근한 압박이 느껴져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게다가 워낙 그림책의 내용이 스펙터클한데다가 그림책 판형을 보자면 일반적인 그림책 사이즈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져 마치 아이맥스 영화라도 관람하는 듯한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구석구석 그림을 관찰하고, 머리 속에서 그림책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아!”하고 감탄하기까지 하려면, 읽는 사람의 꽤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 입장에서 글자가 없다고 읽는 수고를 덜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게 얼마나 크고 중대한 착각이었는지 깨닫고 당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유 낙하>는 <시간 상자>보다 좀 더 읽기가 어려웠다. 그건 이 책이 <시간 상자>보다 더 복잡한 장치들을 갖고 있는데다 스토리도 소년의 뒤숭숭한(?) 꿈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꿈이란 것이 원래 뒤죽박죽 일관성도 없고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꿈꾸는 사람 맘대로’ 차원의 세계니까 말이다. (하긴 꿈도 내 맘대로 꿔지지는 않더라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규칙과 법칙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세계가 바로 꿈의 세계라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기도 하다.  소년의 꿈을 따라가는 일이 즐거웠던 것도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소년의 꿈에 참여함으로써 나도 그 자유를 함께 나눠가질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첫 장면에서 소년은 침대 머리맡에 스탠드 불을 켜 놓은 채로 커다란 책을 읽다가 펼친 그대로 가슴에 올려놓고 잠들어 있다.  소년이 덮고 있는 이불은 굵은 단색 체크무늬인데, 이 이불의 무늬는 그림책에서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넓은 초원, 서양 장기판, 그리고 지도의 위도와 경도선이 교차하며 만드는 사각형들로 확장되기도 한다. 

침대 옆 창문으로 커튼이 휘날릴 정도의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소년이 잠들기 전까지 읽었던 책이 지도책이었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드러난다.  지도책의 한 페이지가 뜯겨져 펄럭이며 날아가고, 소년의 이불은 어느새 널따란 초원으로 이어진다.  저 지도가 소년을 어떤 세계로 안내할까? 

책의 내용에 대해선 여기서 멈추는 게 나을 것 같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내가 보고 상상한 이야기들을 무려 세 페이지에 걸쳐 세세히 적었었는데 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글자 없는 그림책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서 뚝 끊어내고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글자 없는 그림책의 묘미는 독자마다 상상의 가지들을 다양하게 뻗어갈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단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림들을 읽는다면 소년의 꿈에 즐겁게 동참할 수 있을 거라는 것뿐이다.  <시간상자>처럼 이야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드러나진 않지만 대신에 다양한 재미와 씹어 읽는 맛은 <자유 낙하>가 더 큰 것 같다.  용을 흘끔 곁눈질하는 소년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긴장감, 아직도 뭔가 할 말이 더 남은 것 같은 아쉬움을 가득 담은 채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는 하얀 고니들의 눈빛, 성곽과 이어진 용의 몸과 숲 속 나무처럼 서 있는 책들, 바위계곡의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길이 도시 건물로 변하는 것, 잠에서 깨어난 소년 주변의 일상의 사물들에서 발견하는 꿈의 질료들까지. 

이 책을 낱장으로 뜯어 길게 이어 붙여서 띠벽지처럼 만든 다음 아이 방 벽에다 붙여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마 무척 멋있을 거고, 아이는 날마다 그림들을 보면서 상상의 이야기를 퍼 올릴 게다.  책값이 아까워서, 또 오랫동안 소장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이 책을 띠벽지로 만드는 과감한 행동까지는 못하더라도 아이에게 자주자주 펴보게 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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