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고 싶은 비밀 신나는 책읽기 5
황선미 지음, 김유대 그림 / 창비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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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는 그저 걸었어요.  내 마음 알아줄 단 한사람이 필요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요.  다들 너무나 바쁜 걸요.  손등에 손톱자국이 패일 정도로 양손을 모아 깍지 끼고는 견딜 수 있다고 이를 앙 물었죠.  친구들 만나면 공연히 앙탈을 부리고, 아무나 붙잡고 어리광 부리고 싶었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어요.  내 마음이 쑥대밭인 걸 눈치 채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조금쯤 복수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제발 좀 눈치 채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누군가 날 안고 쓰다듬으며 위로해주기를요.

‘들키고 싶은 비밀’을 가진 은결이도 그랬나 봐요.  가족 속에서 은결이는 왜 그렇게 작은 걸까요.  저래가지고서야 아무도 알아줄 수 없을 텐데요.  더구나 형 한결이는 게임에만 빠져 있고, 엄마는 맞벌이 하느라 바쁘고, 아빠는 치주염 때문에 너무 아파하는 중이잖아요.  발을 다쳤을 때는 참지 말고 아파 죽겠다고 엄살떨면서 데굴데굴 구르기라도 했어야죠.  엄마가 야단을 쳤을 땐, 엄마가 날 너무 외롭게 해서 그런 거라고 받아쳤어야죠.  엄마가 ‘우리 아기’라고 불러줬을 때 더, 더 많이 그렇게 불러달라고 매달려 조르면 더 좋았잖아요.

알아요.  그렇게 마음이 휘청거릴 땐, 스스로를 추슬러 남들만큼만 버티고 있기에도 안간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거.  아빠가 앓고 있는 치주염처럼, 치아 하나 지탱하기에도 쩔쩔매는 아빠의 잇몸처럼요.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번엔 은별이 속에 나도 들어가고, 남편도 들어가고, 우리 집 세 아이도 보여요.  서로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저 자기 일에 바쁜, 일을 잘 마무리 하고 나면 아무 생각 없이 ‘오늘 하루도 잘 살았구나.’하고 성급하게 만족하는,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는 일엔 너무 무심하고 인색한 우리 속에서 누군가 은별이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언제나 희망이 남아서 걱정스러운 우리를 일으켜 세우네요. ‘이빨보다 깊은 뿌리’라는 제목을 단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가족 사이에 깊이 흐르고 있는 사랑을 일깨워줘요.   아빠가 잇몸 수술을 받으러 가던 날, 은결이는 욕실 세면대에서 아빠의 빠진 이빨을 보게 되죠.  보이지 않게 ‘잇몸에 박혔던 부분이 두 배나 되게’ 긴 이빨 뿌리.  치주염으로 퉁퉁 붓고 곪은 잇몸 속에서도 그렇게 긴 뿌리를 박고 있었던 참 희한한 모양의 이빨. 

그런가 봐요.  나이가 이만큼 들고 보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거 말이에요.  병원에서 발을 치료받은 은결이를 업고 무거워 죽겠다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땀으로 옷을 적시며 집으로 걸어가는 엄마를 보세요. 잇몸 수술을 받으러 간 겁쟁이 아빠에게 겁먹지 말라고 말해주러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은결이와 한결이 형제를 보세요.  계곡 따라 졸졸졸 흐르는 맑은 냇물같은 사랑도 필요하겠죠.  목마를 때마다 언제라도 떠서 마실 수 있는 그런 사랑이요.  하지만요, 그 냇물이 바짝 말라서 물 한 방울 없는 것처럼 보일 때, 땅 속으로 훨씬 더 크게 흐르고 있을 지하수 같은 사랑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은결이는 이제 달라지겠죠.  전보다는 덜 외로워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엄마, 아빠, 그리고 한결이 형이 전과 똑같이 자기를 무심하게 대한다고 해도 그 속엔 보이는 것보다 두 배는 더 긴 사랑의 뿌리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조금만 힘을 내서 노력하면 맑고 시원한 지하수 같은 사랑이 펑펑 뿜어져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요.

어쩌면 내 마음은 내가 헛헛하다고 느꼈던 게 민망할 정도로, 사실은 튼튼하고 단단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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