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시끄럽다 책읽는 가족 56
정은숙 지음, 남은미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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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나?  아파트 단지 앞 큰 길 건너에 있는 빌딩 1층에 해물 샤브샤브 뷔페가 새로 문을 열었었다.  그 후 한동안은, 막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면 아줌마들 서넛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 샤브샤브 집 맛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곤 했다.  다리 하나 건너면 화려한 강남이 펼쳐지는 동네라서 그런지, ‘근처에 아주 근사하고 맛있는 집 있어.’라고 이야기할 만한 음식점이 동네에 없었던 터라 아줌마들의 수다 재료로 삼기에 딱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막내를 데리고 시장 쪽 마트를 가려고 단지를 나서는데, 어디선가 장송곡이 들려왔다.  샤브샤브 집이 있던 건물 앞에 상복을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카세트로 장송곡을 틀어놓고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가로수 사이에 펼쳐 걸어 놓은 플래카드에는 ‘대통령은 뭐하나, 귀신은 뭐하나, OOO 사장 안 잡아가고’, ‘아들아 딸들아 이 원통함을 절대로 잊지 마라.’ 등등의 글귀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써 있었다.  아마 건물주가 세입자들을 등쳐먹은 모양이다.

우리 동네에도 몇 년 전부터 재개발 붐이 불었다.  나야 아파트에 살고 있고, 부동산 투기와는 한참 먼 사람이라 재개발이라고 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작년인가에 동네 주택의 평당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는 이야기를 동네 아줌마한테 듣고는 무척 놀랐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가게가 부동산인 걸 보면, 한 몫 챙기려는 투기꾼들의 전문적인 ‘작업’도 평당 가격을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내가 관심을 기울여 속속들이 살펴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동네도 시시때때로 들썩이고 소란스럽게 덜커덕거리며 부대끼는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는 시끄럽다>며 한 집 한 집 짚어가며 소란한 사연을 들려주는 이 책은, 그래서 겉으론 아무리 고상하고 우아한 척 해도 속으론 지지고 볶으며 사는 거라고, 뒤집어 탈탈 털어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살다보면 눈물에 젖을 때도 있고 그 눈물을 웃음바람에 말리는 날도 있다고,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지만 또 그게 인생의 묘미 아니겠냐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맛이 난다.  이 책 덕분에 장보러 나가는 길에서 우리 동네를 새롭게 ‘구경’하는 느낌으로 찬찬히 둘러보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마치 마을 수호신이라도 되어서 허허 웃으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느낌이랄까. 

동화이니만큼 아이들 시각에서 본 어른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개발이익을 노리는 엄마의 뜻에 따라 다 쓰러져가는 백조연립으로 이사한 진욱이의 눈에는 재건축을 둘러싸고 벌이는 어른들의 다툼이 도무지 불가해하고, 아파트 주인이 꿈이라는 엄마의 장래희망이 아무리 생각해도 시시하기만 하다.  낡고 허름한 백조연립 앞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촬영이 있던 날, 친구 수정이와 미나의 단역 출연 경쟁을 둘러싸고 벌이는 어른들의 수상한 행동과 들끓는 뒷담화가 수정이와 진욱이의 순수함과 좋은 대조를 보이는가 하면 동네 지하철역 옆에 새로 생긴 패밀리 레스토랑을 두고 아이들 사이에서 생겨난 상대적 빈곤감과 위화감을 극복하려는 호빈이의 눈물겨운 ‘스테이크 대작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반장 선거와 어른들의 통장선출을 놓고 ‘밑창 뜷린 신발’과 '떡 돌리기‘라는 창조성이 결여된 천편일률의 방법을 동원한 어른들의 잘못된 경쟁은 아이들에게는 그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반장 선거는 일종의 이벤트거리일 뿐인데 엄마들이 과도하게 오버하며 극성을 부리는 모습이 희극적이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우리 제과점의 단팥빵과 어려운 가정환경을 가진 단짝 친구네 붕어빵 사이의 매출과 수입증감의 희비의 쌍곡선 때문에 벌어지는 금옥이와 은재네 이야기는 마음이 짠해진다.  먹고 산다는 게 뭔지, 하며 저절로 한숨이 폭 새어나온다.  세탁소 집 아들 민석이가 세탁소만의 특권으로 오만한 모범생 희준이의 비밀을 알아냈을 때엔 ’거봐, 사람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거라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둘의 화해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아이들에게 이 책은 모험도 판타지도 어쩌면 희망이나 꿈조차도 보여주지 않는다.  평범한 보통 동네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의 복닥복닥한 이야기, 그래서 너무 익숙하고 친근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너무 살가워서일까?  장보러 나선 길에 마주치는 아이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쮸쮸바 하나씩을 입에 물고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꼭 이 책 속에 나오는 진욱이나 민석이, 호빈이, 수정이, 미나 같이 느껴진다.  그토록 우리와 참 가까운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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