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머니
이시다 이라 지음, 오유리 옮김 / 토파즈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당혹감이란..  제목부터가 ‘빅 머니’다. 거기에 표지에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매서운 눈빛으로 앞을 노려보는 젊은 남자의 옆얼굴이 푸른 색채로 그려져 있다.  책 자체에서 흐르는 남성적 경향의 분위기는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서게 만들었다. 
난 학교에 다닐 때도 경제과목에 약했었다. 뭐, 둔하디 둔한 내 두뇌 탓도 있겠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막내 특유의 어리숙함도 한 몫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수요니 공급이니 하는 것도 골치 아팠고, 인플레이션이 어떻고 디플레이션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도무지 말끔하게 정리되어 와 닿지를 않았을 정도다.  그러니 당연히 주식투자는 먼 나라 이야기였고, 그 흔하다는 펀드통장 하나 만들어 볼 생각도 못해봤다. 

이런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는 건 참으로 기특하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비록 내가 경제지식이 종잇장처럼 얄팍하고 주식이니 세계경제동향에 대한 정보에 귀를 닫고 산다고 해도 커다란 사회적 분위기-정치,경제,문화를 아우르는- 속에서 그 흐름을 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 책 안에서 랜덤워크니, 신용거래니, 위탁보증금이니 하는 감잡을 수 없는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닌데다가 이 책이 단순히 ‘빅 머니’를 향한 무모한 남성들의 한탕주의를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절대로 ‘숫자들이 노래하고 그래프가 춤을 추는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작가는 시라토의 입을 통해 말한다.  “이 미친 시대에 제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마켓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시장의 우산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서민처럼 행동하는 것도, 선량한 척 하는 동작도, 무지한 움직임도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p.10)고.  이 말에 동감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는 것도 그리 무해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사람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IMF의 파도를 타야했고, 명문대를 나오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병에 걸린 아들을 둔 이웃 할머니의 넋두리를 들어야 했으며, 경제관련 뉴스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적용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불경기를 걱정하는 목소리에 불안감을 느끼기는 하니까 ‘마켓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작가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돈’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해보게 된다.  “투자자가 취급하는 유리처럼 맑은 돈과, 마켓의 ‘마’자도 모르는 얼치기가 피와 땀으로 마련한 돈. 그 어느 쪽의 돈이나 똑같은 가치로 갖고 있다.”(p.207)라는 글 앞에 한참을 망연자실했다.  난 지금까지 돈은 ‘성실과 근면’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피와 땀이 어린 돈이야말로 신성하고 소중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작가는 피와 땀으로 마련한 돈이 얼치기의 돈이란다.  물론, 이 말은 소설 속에서 사채업자에게 지불해야할 이자를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팔아야 하는 홈리스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소설 여기저기에서 반복된다.

소설 속 고즈카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대가 변했어.  이제부터는 청운의 로망도,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잘 살자는 공동성장도 기대할 수 없어.  메이지의 걸출한 인물은커녕 쇼와의 근면한 위인조차 새 시대의 모델이 되지 못할 걸세.”(p.304)

근면과 성실, 검소와 절약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필요한 걸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냉철하고 현실적이다.  “일본인들은 돈을 뒤가 구린 것, 더러운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돈 가지고 돈 버는 일은 땀 흘리지 않고 득을 보는, 나쁜 일이라고 본다고.  이제는 그런 단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지 않을까?”(p.302)라며 슬쩍 운을 떼더니만 “나는 젊은 세대의 몇 퍼센트가 단순히 고객의 돈을 맡아 수탁거래하는 데 그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서 마켓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길”(p.305)바란다면서 앞으로는 ‘칼과 대포, 전함이 아니라 통화와 주식, 채권을 취급하는 것으로’ ‘시장이라는 새로운 프런티어’의 ‘예측불허의 파도를 넘어 이 나라의 부를 키워나갈 한 사람의 자유로운 병사가 되면 되는 거야.’라고 충고한다. 

‘돈’에 대한 나의 고리타분하고 경색된 생각이 조금 더 넓게 확장되고 유연해지는데 도움이 되는 충고였다.  천박한 자본주의 속에서 살면서 혼자서 고고한 척 해봤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격을 가진 게 바로 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과 경제의 그 시퍼런 칼날의 예리함이야 IMF를 통해 충분히 겪어보지 않았나.. 그러고도 아직 그 칼날의 위험 앞에 대책 없이 무딘 안전불감증을 자랑할 배짱이 남아있다면 비정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돈’에 대한 현실감각만을 소설 속에 드러냈다면 이 책은 작가적 사유가 없는, 독자의 말초적 흥미만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작가는 ‘무엇을 위해서’라는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시장을 지배하는 자가 곧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각 뒤에 ‘인간’에 대한 끈끈한 애정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고즈카 노인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마쓰바 은행의 몰락을 보고자 한 것도 젊은 시절 연모했던 하타나 데루코라는 여인을 위해서였다. ‘장사 아이템에 시답잖은 정 따위는 들이지 않는 게 좋“(p.211)다던 고즈카 노인도 결국엔 자기의 모든 것을 ’사랑‘을 위해 올인했던 것이다.

또한 성실과 근면, 피와 땀을 경시하는 듯하지만 시라토에게 고즈카 노인은 ’훈련하고 공부하고 깨우치기‘를 요구하고 있다.  절대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마켓의 영역도 성실과 근면한 삶의 자세 없이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며 그 영역 안에서도 피 흘리고 땀을 쥐는 노력 없이 성과를 일구어내기란 쉽지 않으리라는 경고다.  씨를 뿌리면 거둘 수 있는 정직한 땅과 자연의 법칙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살벌하고 무서울 것이며 내 피와 땀에 대한 보상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잔인함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말이 담고 있는 행복한 성공과 참혹한 실패의 양면이 마켓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나는 여전히 마켓의 언저리도 서성이질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세계 동향을 살피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내가 가진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의 쓰임새와 목적성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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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돌아오셨군요. 반가워서 달려왔어요. 역시 너무나 멋진 리뷰입니다.
저도 경제에 대해 잘 모르고 숫자관념도 부족해요. 이재에 밝지 못하구요.
요즘 주위에 인터넷주식으로 짭잘한 사람도 있더군요. 그런 건 그닥 감동되지 않았는데
고즈카의 말들을 읽어보니 저의 시야와 이해도 그런점에서 좀 넓혀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문득 어제본 영화 리턴이 생각났어요. 완전 다른 의미지만)
일요일아침이에요^^

섬사이 2007-08-21 00:29   좋아요 0 | URL
예, 잘 다녀왔어요. 그리고 저도 워낙 숫자에 약해서 사실 이 책을 읽고도 뭐가 뭔지 모를 부분들이 있어요. ^^

장난스런kiss 2007-08-19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흥분되는 맘이 느껴집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당~

섬사이 2007-08-21 00:31   좋아요 0 | URL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사실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심스럽기도 해요. 워낙 경제에 대해 무지한 터라.. 장난스런 키스님이 읽으시고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을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어요. ^^;;

알맹이 2007-08-2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셨네요! 이시다 이라, 왠지 이름이 맘에 안 들어서 절대 안 읽고 있는 일본 작가인데요 ^^

섬사이 2007-08-21 00: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요즘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읽으면서 뭐가 찜찜한 기분이 들곤 해요. 사실 우리나라 작가가 오쿠타 히데오나 온다리쿠 등등의 일본작가들의 작품 같은 글을 쓴다면 이만큼 호평을 받고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읽힐 수 있을까, 어쩐지 우리가 너무 우리 작가들에게 엄숙함과 진지함, 근엄함,, 뭐 이런 것들을 강요해 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문단의 분위기도 좀더 자유스러워져야 할 것 같고 또 저를 포함한 우리 독자들도 우리 작가들을 향한 잣대를 좀 유연하게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쏟아지는 일본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이것 또한 문화 종속이나 사대주의에 그림자가 아닐까 하는 노파심도 생겨나던걸요. 그래서인지 이제 일본작가의 작품은 당분간 그만 읽고 싶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