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녁에 우리 동네 도서관 옥상에서 작은 야외음악회가 열리는 날이었어.
이제 두돌을 넘기고 나날이 말의 어휘수를 늘려가는 막내 딸아이와 큰딸을 데리고 같이 다녀왔지.
지대가 높은 언덕에 지어진 도서관 옥상이라 무대 뒤로 고층아파트나 빌딩들의 위협이 사라진 커다란 하늘이 오렌지빛 노을을 치마처럼 두루고 펼쳐있었어.
맨날 언덕길을 오르기 힘들다고 불평했었는데 지대 높은 언덕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구나 싶더라구.
노을빛이 푸르스름하게 색이 바랄 때쯤 음악회가 시작되었지.  동네 꼬마들도 많이 왔더라구.  분위기가 상상되지?  어수선하고, 정신없고, 여기저기서 조그맣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구의회의원, **당 뭔의원 등등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 예닐곱명이 내빈으로 참석해서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차례로 나와 인사를 했어.  내가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지?  인사가 끝날 때 박수도 제대로 안치고 구부정하게 앉아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음악회 시작하겠다고 사회자가 알리자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이 싹 나가버리더라.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암튼, 맨 앞줄 내빈석이 비자 동네 꼬마녀석들이 다투어 그 자리를 차지했지.  귀여운 녀석들..

음악회가 그리 훌륭했던 건 아니야. 뭐, 공짜에다가 비니처럼 어린 아이까지 입장을 허락해 주는 음악회니까 프로그램의 질을 떠나서 나는 일단 고마워할 따름이지.  비니는 신통하게도 음악회 내내 얌전히 잘 듣고 있더라. 남들이 박수칠 땐 열심히 따라 치면서 말이야. 난 비니 때문에 뒤에 비니 안고 서서 들을 각오를 했었거든.  비니가 얌전히 있어준 덕에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비교적 우아하게 음악을 경청할 수 있었어.  

주로 소품곡들이었어.  그 중에 'My Way'가 있었어. ***대학 교수라는 바리톤 가수가 나와서 불렀는데.... 기억나?  중학생이었을 때, 내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듣다가 울었던 거. 그 때 넌 왜 우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옆에 가만히 있어주었었지.  그리곤 며칠 뒤에 프랭크 시나트라의 LP판을 선물로 주었어.  그 뒤로 넌 내가 무슨 음악이나 노래가 좋다는 말도 안했는데도 가끔씩 불쑥 내게 카세트 테이프나 LP판들을 선물해 줬었지. 나나무스꾸리의  La Petit rose나  Sympathy나 Three Times a Lady, 파바로티의 카루소, 해바라기의 노래 같은 것들..   음악회에서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하늘의 푸른 빛은 점점 짙어져서 진한 남보라빛이 되었는데 잔잔한 현악4중주 연주 뒤로 남산타워의 불빛이 보이고, 그 위로 반짝이며 떠있는 인공위성의 불빛이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어.  난 요즘 거의 음악을 안들어.  아니지 음악을 안들은지 거의 몇 년이 되었을 거야.  차라리 서툴게라도 집에서 내가 혼자 피아노를 두드리거나, 아니면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경우지만 오늘처럼 작은 음악회에 참석하는 편이 더 좋아.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음악이 나를 마음대로 휘젓게 내버려두는 게 싫어서인 것 같아.  적어도 피아노를 칠 땐 내가 서툴면 서툰대로 음악을 내 의지대로 끌고 갈 수 있는데, 음반을 통해서 듣는 음악은 난 수동적이 되고 일방적으로 음악이 나를 끌고 가 감정을 마음대로 휘저어 놓는 느낌이 들거든.  음악회에선 연주자나 성악가들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라는 게 생생하게 드러나곤 하니까 거부감이 덜하는 것 같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성격이 이상하게 꼬이고 까칠해지는 것 같지?  그래서 예전에 네가 선물해준 음악들도 거의 듣질 않고 있어.  LP판들은 너에겐 미안하지만 필요하다는 다른 분께 오래전에 모두 드렸고.

요한 파헬벨의 캐논에 의한 변주곡을 연습하고 싶은데, 비니 때문에 거의 불가능해. 쉬운 첫 부분만 몇 번 쳐보다가 포기했어. 네가 옆에 있었으면 아마 깔깔거리고 재미있어 하겠지.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었는데, 네가 곁에 가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는 게 훨씬 재미있어질텐데 말이야.  보고싶다.

그냥 그렇고 그랬던 음악회에 다녀와서 네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유난스럽게 크게 다가와 허전해진 마음을 이렇게 달래본다.  언제 다시 올래?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오늘은 네가 떠나며 불렀던 노래 '갈 수 없는 나라'가 듣고 싶어진다.  두고두고 그 노래를 들으며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청승떨며 징징대는 거라면 질색을 하는 내가 네 앞에선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아. 

너 때문에 내 지난 날 어디 쯤이 아직도 환하게 빛나고 있어. 그 곳에 눈을 돌리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하게 데워지면서 굳어있던 마음도 노글노글해지는 것 같아. 그러니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지.  내 눈가의 잔주름이 너무 깊어지기 전에 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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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갈 수 없는 나라 좋아해요.
동물원 6집에 있는것 맞죠?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음악을 듣고, 친구를 생각하는 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잘 읽고 가요.

섬사이 2007-06-17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의 갈 수 없는 나라는 해바라기 2집에 들어있던 노래에요. "사랑없는 마음에 사랑을 주러 왔던 너.."하고 시작하는.

fallin 2007-06-1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예전 살던 곳으로 다시 이사를 와서... 친구생각이 간절했었는데..이 글을 보니 그 친구 생각이 나네요.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맘이 무뎌지는 거 같아요. 사소한 것에 까칠하게 구는 건 점점 더해가는데... 마음이 잘 뛰질 않는 거 같아요. 그때 그 어린 시절만큼은 말이죠. 자꾸 뛰게 해야겠어요.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고 느끼게끔~ 아! 나도 친구 보고싶다 ^^

섬사이 2007-06-17 13:57   좋아요 0 | URL
친구 생각마저도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무심히 끊겨 버릴 정도로 각박해진 저의 모습이 드러나버렸어요. 마음 속에 '추억재생공장'을 하나 차려보면 좀 나아질런지.. 서재 페이퍼에 '추억재생공장'이라는 제목을 단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볼까요? 그 안에서 추억을 곱씹다보면 마음이 예전처럼 말랑말랑해지려나.. 다 부질없죠? falliln님은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연락해보세요, fallin님의 그 친구분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