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나의 미오 힘찬문고 29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김서정 옮김 / 우리교육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나 외로움이 깊으면 '머나먼 나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 

고아소년 보쎄는 에들라 아주머니와 식스텐 아저씨에게 입양되어 자라고 있지만 사랑받지는 못한다.  고약하고 심술궂은 양부모에게 무시당하고 천대당하며 지내는 보쎄에게는 친구라곤 벤카라는 이웃집 아이 하나 뿐이며 동네의 다른 아이들과는 어울려 놀지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아픔을 겪는 아이다.  양조장 말 칼레푼트가 보쎄에게 위로가 될 뿐이다. 

그런 보쎄가  '머나먼 나라'로 떠났다.  보쎄는 사실 미오라는 머나먼 나라의 왕자였고, 미오의 아빠인 머나먼 나라의 임금님은 보쎄가 늘 그리워 상상하던 그 모습 그대로의 아빠였다.  머나먼 나라에서 사귄 새친구 윰윰은 벤카를 닮았고 하늘을 나는 말 미라미스는 양조장말 칼레푼트와 눈빛이 닮아있다. 

그래서 차갑고 외로운 우플란츠 거리와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인 머나먼 나라는 서로 대비되면서도 묘하게 얽혀지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기사 카토를 무찌르기 위해 떠나는 길, 짙은 어둠의 길과 숲에서 미오는 "이렇게 조그맣고 외로운 기분은 안들텐데."라는 말을 반복한다.  미오가 보쎄로 살며 우플란츠 거리에서 느꼈던 그 감정일 터였다. 

외로움을 잘 아는 미오는 기사 카토의 눈빛을 읽는다.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그 눈 안에서 묘한 것을 보았다.  기사 카토는 자기의 돌 심장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기사 카토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기사 카토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고약하고 심술궂은 양부모가 보쎄와 사랑을 나누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차가운 돌심장을 갖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양부모는 자신들의 고약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자책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들의 돌심장을 없애준다면 양부모도 기사카토처럼 한마리 새가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행복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지도 모를 일이다. 

보쎄는 외로움이 깊은 아이다.  친구 벤카의 아빠를 닮은 누군가가 와서 "미오, 나의 미오"라고 불러주며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기다리는 작고 외로운 아이다.  머나먼 나라에거 윰윰말고도 또래 친구들이 많았듯이 우플란츠 거리에서도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려 뛰어놀아보고 싶은 아이, 칼레푼트처럼 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내 것이 되어 소중한 정을 나눠주고 싶은 무언가가 필요한 아이..  받고 싶은 정도 많고, 주고 싶은 정도 많은데,  정작 그럴 수 없어 외롭고 외로운 작은 아이.

보쎄가 머나먼 나라에서 다시 테그너 공원의 쓸쓸한 벤치로 돌아오지 않기를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조마조마해 하며 바랬었는지 모른다.  그 행복한 머나먼 나라에서 미오로 오래오래 살아가기를 말이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부분 굵고 커다란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에들라 아주머니는 잘못 알고 있는 거다.  그래, 진짜로 착각하는 거다.  테그너 공원의 나무 의자에는 보쎄가 앉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으니까.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어, 하고 나는 말한다. "

아니다, 그래도 아닐거다.  그 머나먼 나라가 외로운 아이 보쎄가 저녁무렵 쓸쓸한 테그너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서 집집마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정겨운 불빛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상상의 세계속으로 빠져 들었던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너무나 슬픈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상상에서 돌아온 보쎄가 행복한 미오 때문에 더 외로워질까봐 걱정해야 한다. 

결말 부분이 여운으로 남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보쎄 때문에 공연히 내 아이들을 "미오, 나의 미오"하며 보쎄를 안아주는 기분으로 끌어안아 버리고 말았다.  내 마음 속의 보쎄가 어이 없다는 듯 나를 보고 웃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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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0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감동이에요. 아스트리드의 동화를 모두 좋아하지만.
어린이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때의 기억이 떠올라요. 그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가가 린드그렌이었지요. 아이적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노령까지도
어쩜 그리도 신나고 통쾌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적어낼 수 있었을까요.

섬사이 2007-04-06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이들의 상처와 외로움을 밝고 아름다운 문체로 엮어내는 린드그렌의 재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해요. 린드그렌의 이야기 속에선 어둠은 어둠대로 밝음은 밝음대로 그 나름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읽고 나면 쉽게 잊혀지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