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알라딘에 서재를 트기 시작한지 한 달 반정도가 된 것 같다.  최근의 일인데도 내가 왜 갑자기 책을 사는 용도로만 이용했던 사이트에 서재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비니가 태어나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나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인지도 몰랐다. 

나 자신이 꼭 비누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씩 조금씩 닳고 닳아서 어느틈엔가는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머릿 속으로는 나 자신을 달랬다.  비누같으면 어떠랴.. 닳고 닳아가면서 내 아이들 우리 가족 잘 돌보면 그것도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 아니냐..

이사를 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집 안에 갇혀있었다.  집을 벗어나면 길이라는 길은 모두 낯선 길이었고, 도로를 다니는 버스 노선도 하나 아는 것이 없었다.  아기를 데리고 나설 곳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다니.. 그것도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냥 아무라도 라는 마음으로. 

그래서였을 거다.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누군가가 들려주는 사람의 말이 그립다면 책을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업고 재우면서, 새벽에 압력밥솥에 김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씽크대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허겁지겁 책을 읽는다.  누군가 내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듣기 좋았다.  그 이야기가 그대로 그냥 사라지게 하기 싫어서, 내 정신없는 일상에 묻혀 그냥 잊혀지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서재를 만들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난 쫓기듯이 서재에 글을 올린다.  늘 부족함을 느낀다.  책을 읽고 내 안에서 그 이야기가 숙성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를 갖지 못한다.  느낌이 온전히 스며들기도 전에 서둘러 내뱉어 놓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나만의 서재니까 괜찮을 거라고,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볼품없는 서재를 누가 아는 척이라도 할라구.. 내가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서재들을 들락날락거려도 아무도 모를걸..

그런데 초라한 내 서재에도 누군가 찾아오는 흔적이 보인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수치로 보이니 대단한 수치는 아니더라도 내겐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내 서재 옆에 또 다른 이의 서재가 있다.  벽 너머로 소곤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제 내가 비누같다는 생각은 그만두었다.  정신없는 내 하루하루의 생활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것은 아니다.  그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정겨워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항상 소모되기만 하고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갈증은 사라졌다.

부디 이 서재를 찾아오는 분들이 서재의 허접함을 너무 실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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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2-11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누가 실망을 해요.. 기분좋은것을요..
님의 글을 보며 공감할수 있어 참 좋아요..몇번 고개 끄덕이며 나도 이러는데 하다가 ....전 이마을 서재가 참 좋아요. 아늑하고 내 안방에 푹 쑤셔박혀 있는듯한 편안함도 좋구요..늘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만남으로 더욱 즐거우시길.

섬사이 2006-12-1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