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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초원 순난앵 ㅣ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0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마리트 퇴른크비스트 그림, 김상열 옮김 / 마루벌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린드그렌의 글들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표적인 인물 "삐삐"처럼 활달하고 밝은 성격이다. 마디타도 그랬고 라스무스도 그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늘 밝음을 유지하는 씩씩함에 읽는 사람까지 마음 든든해지는 그런 아이들..
그런데 <남쪽의 초원 순난앵>에 나오는 두 아이 마티아스와 안나는 금방이라도 바스라져버릴 것 처럼 작고 슬프다. 온통 시커멓고 어두운 잿빛 그림 속에 두 남매의 눈은 퀭해보이다 못해 마치 생명이 다 꺼져버린 듯이 빛을 모두 잃어버린 그런 눈이다. 거기다가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죽음까지 걱정해야 하는 극단적인 처지에 놓여 있다. 희망하는 거라곤 오직 '올 겨울까지 견뎌내고 학교에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것 뿐이다.
한겨울 몇주간 동안만 열리는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지만 (이부분에서 잠시 눈내린 겨울 배경으로 그림이 환해지긴 한다) 추위에 발톱이 갈라지고 코끝이 빨개지는 온몸을 파고드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가며 간 학교는 두 아이에게 즐거운 곳이 되지 못했다. 차라리 봄이 오기전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 앞에 빨간 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모든 희망도 꿈도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조여오는 걸 느꼈다. 마티아스와 안나가 느끼는 절망감이 너무 캄캄하고 막막하게 느껴졌다.
빨간 새를 따라 가다가 찾게된 순난앵의 따뜻한 봄의 세계. 행복하고 배부르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인자한 눈빛과 손길로 아이들을 모두 감싸주는 곳이다. 마티아스와 안나도 빨간 옷을 입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다. 순난앵은 아이들의 이상향이며 천국이다. '순난앵'의 이름이 마티아스와 안나의 살던 고향마을과 이름이 똑같다는 것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죽음을 걱정했던 두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시절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을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학교가 마지막으로 열린 날. 다른 부잣집 아이들이 놀려도 두 아이는 웃을 수 있을 만큼, 상처받지 않을 만큼 순난앵에서 느낀 행복의 크기가 마티아스와 안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농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순난앵에 들른 마티아스와 안나는 한 번 닫히면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는 순난앵의 문을 닫아버린다.
린드그렌의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둡고 슬픈 이야기라 좀 벙벙했었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그대로 남겨둔 채 얻은 결말이라서 그럴까. 순난앵에서만 행복한 두 아이가 슬프다는 느낌이 더 진하다. 삐삐랑 마디타랑 라스무스랑 에밀까지 전부 총 출동해서 친구하라고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앞쪽 속표지에는 커다란 눈보라치는 숲을 걸어가고 있는 작디 작은 잿빛 두 아이가 그려있고, 뒷쪽 속표지에은 똑같은 숲이 온통 연둣빛 봄의 숲이 되어 빨간 옷을 입은 두 아이가 활기차게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있다. 앞표지에는 순난앵의 열리진 문으로 들어오는 두 아이와 그 아이들을 반기는 듯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다른 아이들이 서있는 그림이고, 뒷표지에는 순난앵의 문이 사라진 담벼락이 그려져 있다. 이야기 전체를 참 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