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중세에는, 하나의 건물이 완전한 경우에는, 땅속에도 바깥과 거의 같은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 노트르담처럼 말뚝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면, 궁궐이나 요새나 성당은 으레 이중의 토대가 있게 마련이다. 대성당에는, 밤낮으로 파이프오르간과 종소리가 울리고 불빛으로 넘쳐흐르는 지상의 홀 아래에, 낮고 캄캄하고 신비롭고 빛 없고 소리 없는, 말하자면 또 하나의 지하 대성당이 있었다. 궁궐이나 성에는, 감옥이 있었고, 때로는 분묘가 있었으며, 또 때로는 그 두 가지가 다 있었단다.


(171)

신부는 숨이 막혀 또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계속했다.

벌써 반쯤 홀린 나는 무엇엔가 매달려서 추락을 막으려고 해봤어. 나는 사탄이 이미 내 앞에 파놓은 함정을 생각했어. 내 눈 아래 있던 여자는 하늘이 아니면 지옥에서밖에 올 수 없는 그런 초인적인 미인이었어. 거기에 있는 것은 약간의 우리 흙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내면에서 여자의 넋의 가물거리는 빛으로 희미하게 밝혀진 하잘것없는 처녀가 아니었어. 그것은 천사였어! 그러나 암흑의 천사, 불꽃의 천사였어. 광명의 천사는 아니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 옆에서 염소 한 마리가, 마술사의 야연의 짐승 한 마리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어. 한낮의 태양은 그 염소의 뿔을 새빨갛게 만들어주고 있었어. 그때 나는 악마의 함정을 보는 듯했고, 당신이 지옥에서 왔다는 것을, 당신이 지옥에서 온 것은 오직 내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어. 나는 그렇게만 믿었어.”


(225)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면서, 자연이 거기에 얼마나 널따란 자리를 정열에게 준비해 놓았는지 보았을 때, 그는 한결 더 고통스럽게 비웃었다. 그는 자기 마음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모든 증오를, 자신의 모든 악의를 휘저어 보고,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와 같은 냉철한 눈으로 그 증오는, 그 악의는 부패한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간의 모든 미덕의 원천인 이 사랑은 신부의 가슴 곳에서는 끔찍한 것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와 같이 생긴 인간은 신부가 됨으로써 악마가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는 소름 끼치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자신의 숙명적인 정열, 결국 한 여자에게는 교수대를, 한 남자에게는 지옥을 가져다주어 그 여자는 사형수가 되고 자기는 영벌 받는 사나이가 되는 결과밖에 초래하지 못한 그 부식적이고 유독하고 증오에 넘친, 빙탄 같은 사랑의 가장 끔찍한 면을 생각하고는 다시 창백해졌다.


(432-433)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 이건 정말 사실이오. 그래. 내 가슴을 태우고 있는 이 불이 바깥으론 조금도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 아가씨, 밤이고 낮이고, 정말 밤이고 낮이고 내 가슴은 타고 있는데, 그래 조금도 가엾지 않소? 이건 밤이고 낮이고 꺼질 줄 모르는 사랑이란 말이오. 고통이란 말이오. ! 나는 너무도 괴로워하고 있어. 가련한 소녀여! 이건 동정을 살 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어. 당신도 보다시피 이렇게 나는 당신에게 가만가만 얘기하고 있잖소? 난 당신이 나에 대한 그 공포심을 버리게 되길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몰라. 요컨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남자의 잘못은 아니잖소? ! 세상에 이럴 수가! 아니 그래, 당신은 영원히 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건가? 나를 언제까지나 미워하겠다는 건가! 그래 모든 것은 끝장났단 말인가! 바로 그런 까닭에 나 자신이 성미가 고약해지고 스스로 악독해진 거야. 당신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아! 내가 우리 두 사람의 저승의 경계에 서서 떨면서 당신에게 얘기하는 동안에도, 당신은 아마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뭣보다도 그 장교 얘기는 내게 하지 마오! 아니 그래! 내가 당신의 무릎 아래 몸을 던지고, 당신의 발이 아니라(당신은 그걸 원치 않을 테니까) 당신의 발 아래 있는 흙에 입을 맞추고, 어린애처럼 흐느껴 울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에게 말하기 위해, 내 가슴에서 말이 아니라 내 염통과 오장육부를 뽑아낸다 하더라도 모두가 헛일이란 말인가. 모두가!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다정하고 너그러운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이 세상에 다시없는 유순한 빛으로 당신은 반짝이고 있고, 아리따움과 상냥함과 자비로움과 사랑스러움이 온몸에 가득 차 있소. 그런데, , 슬프도다! 당신은 오직 나에게만은 심술궂기만 하오! ! 무슨 얄궂은 숙명일까?”


(466)

여러분은 저를 가엾게 여겨주실 거예요. , 나리들? 이집트 계집들이 제 딸을 훔쳐 갔어요. 그년들은 십오 년이나 그 애를 감추고 있었어요. 저는 그 애가 죽은 줄로만 믿고 있었어요. 상상을 좀 해보세요. 좋은 친구 양반들, 제가 그 애를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걸 말이에요. 저는 십오 년간을 여기서, 이 지하실에서, 겨울에 불도 없이 지냈어요. 그건 참 힘든 일이에요. 이 조그맣고 가련한 사랑스러운 신짝! 제가 하도 울부짖었더니 하느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오늘 밤, 하느님은 제 딸을 돌려주셨어요. 하느님의 기적이지요. 제 딸은 죽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어 재를 제게서 뺏어 가지 않겠지요. 저는 확신해요. 그것도 저라면, 아무 말 않겠어요. 하지만 제 딸은 열여섯 살짜리 어린애라고요! 햇빛 볼 시간을 그 아이에게 남겨주세요! 저 애가 여러분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예요? 전혀 아무 짓도 한 게 없어요. 저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 여러분이 알아주신다면, 제겐 저 애밖에 없다는 걸, 저는 늙었다는 걸, 성모마리아께서 제게 보내주신 축복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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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4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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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이사벨 아옌데의 <운명의 딸 2>를 이야기해줄게. 1권에서는 주인공 엘리사가 사랑을 찾아 칠레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장면까지 이야기했잖아. 장거리를 배 타고 그것도 짐칸에 타고 가는 것은 무척 힘들었단다. 뿐만 아니라 엘리사는 임신까지 해서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배에 타자마자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어.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병이 나서 쓰러지고 말았어. 동양의술과 서양의술을 모두 갖고 있는 타오가 없었더라면 배에서 죽었을지도 몰라.

안타깝게도 결국 임신했던 아이는 유산하고 말았단다. 대부분의 시간을 정신을 잃은 채로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엘리사. 이곳에 온 목적, 사랑하는 호아킨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어. 그것보다 일단 몸부터 회복해야 했단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기 어려웠어. 그래서 타오는 엘리사를 남장시키고 자신의 동생인 척 하라고 했단다. 타오는 뛰어난 의술이 소문이 나면서 돈을 버는데 어려움이 없었단다. 이번에도 타오는 엘리사를 도와주어 엘리사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했단다.

호아킨이 사크라멘토로 갔다는 소문을 들었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엘리사는 남장을 하고 혼자서 호아킨을 찾으려고 길을 나섰단다. 아무리 남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험난한 길일 텐데, 정말 사랑의 힘이 이리도 큰 것인지엘리사의 무모한 젊음인지

 

1.

한편, 엘리사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로즈는 난리가 났단다. 직접 낳은 딸은 아니지만, 로즈에게 엘리사는 살아가는 이유였는데, 사라졌으니 얼마나 허망하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런데 있잖니, 엘리사는 사실 존의 사생아였단다. 존이 풋내기 사랑으로 실수로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 아이의 엄마가 무작정 아이를 주고 갔다고 했어. 그 아이가 바로 엘리사였던 거야. 존과 로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제레미는 이번에 알게 되었단다. 제레미가 아무래도 큰 형이고 존이 혼날까 봐 이야기를 못했던 거야. 그래도 엘리사에게는 이야기를 해주지. 그렇다면 가족에 더 사랑을 가졌을 것이고, 캘리포니아로 무작정 떠나는 것도 좀 망설이지 않았을까?

로즈가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단다. 존은 제이컵과 연락을 하며 지냈어. 제이컵 기억 나지? 1권에서 로즈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해서 영국으로 돌아간 사람. 제이컵이 지금은 미국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어. 기자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들 소식을 더 들을 수 있으니 엘리사의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어.

엘리사는 홀로 남장을 하고 호아킨을 무... 찾아 나섰단다. 호아킨을 찾는다는 소문을 냈지만 고를 아는 이를 만나는 것 조차 어려웠어. 엘리사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별의 별일을 다 했단다. 칠레의 노동자들에게 편지를 대신 써 주기도 하고, 요리를 하고 그랬어. 그러다가 무시무시한 조와 악당 바발루가 운영하는 극단에 들어가게 되었단다. 우연히 엘리사가 피아노를 쳤는데 그 실력을 알아봤던 거지. 예전에 힘들게 신부 수업 때 배운 것들을 이곳에서 잘 써먹는구나. 심지어 타오에게서 넘겨 배운 간단한 치료 같은 것도 했어. 그래서 엘리사는 극단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극단 사람들은 엘리사를 예쁘장한 남자 아이로 알았어. 엘리사는 주기적으로 타오에게 편지를 썼단다.

그런데 어느날 멕시코 사람인 잭이 찾아왔어. 손가락이 썩어가는 병을 갖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을 두면 점점 더 커져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어. 썩은 손가락을 잘라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 하지만 그곳에 의사가 있어, 병원이 있어, 아무것도 없었지. 엘리사가 나섰단다. 잭에게 술을 잔뜩 먹이고 사람들이 잭을 꽉 붙잡고 엘리사가 단칼에 잭의 썩은 손가락을 잘라냈어.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잭은 회복하고 엘리사를 비롯한 극단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했단다.

그런데 이 잭이 성은 다르지만 호아킨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했어. 그런데 자신이 알기로는 호아킨은 멕시코계라고 했어. 엘리사는 호아킨이 국적을 숨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어. 조그마한 희망이 생겨났단다. 호아킨을 만날 수 있다는


2.

시간이 갈수록 잭이 이야기했던 호아킨이 악당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 방화와 도적질을 일삼는 악당의 우두머리라고 했어. 엘리사가 알고 있는 호아킨을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소문에 들려오는 외모가 호야킨과 비슷했어. 호아킨이 유명해지는 데는 신문도 한몫 했단다. 제이컵은 호아킨이라는 인물에 흥미를 갖고, 신문을 통해서 그를 영웅시 했단다. 캘리포니아의 로빈후드이라고도 하고, 멕시코의 영웅이라고도 했어. 제이컵은 호아킨을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어. 그런데 호아킨의 행적을 아는 이가 드무니 제이컵은 무작정 길을 떠났단다.

….

어느날 타오가 엘리사를 찾아왔단다. 떠나보니 알았던 것이지, 자신이 엘리사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엘리사를 찾아오는 길에 타오는 사창가에 팔려왔다가 병에 들어 앓고 있는 중국인 여자들을 알게 되었어. 타오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어 치료를 해주었단다. 하지만 자신 혼자 역부족했어. 진료가 늦어서 죽은 이들도 있었단다. 이 일은 엘리사를 만나 이후로도 계속 했단다. 엘리사를 다시 만난 타오. 엘리사도 무척 반가워했단다. 타오는 엘리사에게 약간은 장난스럽게 에둘러서 청혼을 했단다. 1년 안에 호아킨을 못 찾으면 자신과 결혼하자고 말이야

한편 엘리사를 찾던 존은 우연히 엘리사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어떤 여자를 만났어. 추궁해서 물어보자 그 여자는 배에서 엘리사를 도와주었던 여자였어. 그래서 고맙다고 엘리사가 자신의 물건을 준 것이었지. 그 여자는 엘리사가 살아 있다면 그 물건을 빼앗아 갈까 봐 엘리사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존은 크게 좌절했단다.

엘리사는 호아킨을 찾으려는 기자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수소문 끝에 그 기자를 찾아가보니 깜짝 놀랐단다. 어렸을 때 자신의 집에 드나들었던 제이컵이었던 거야. 엘리사는 자신이 알아 본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호아킨을 찾는데 도움 되는 답변은 듣지 못하고 헤어졌단다. 제이컵도 이 낯익은 이에 누구인지 뒤늦게 기억해냈단다. 헤어지고 나서야 말이야. 바로 존이 찾고 있던 엘리사였던 거야. 그래서 존과 로즈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단다. 죽은 줄만 알았던 엘리사가 살아 있다고? 로즈와 존은 다시 살아갈 희망이 생겼을 거야.

….

엘리사가 집 떠나온 지 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호아킨을 만나지 못했어. 엘리사도 이제 철이 들었는지, 이제서야 4년만에 로즈에게 편지를 썼단다. 자신의 사진도 함께 보냈어. 그리고 타오의 마음도 받아주었단다. 사실 그 동안 엘리사도 타오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텄던 거야. 엘리사가 로즈와 다시 연락하고 타오와 함께 하니, 오랫동안 탈선했던 기차가 다시 자신의 궤도로 돌아온 것 같구나.

현상금이 천 달러까지 붙었던 호아킨이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어. 엘리사는 타오와 함께 효수된 호아킨을 보러 갔어. 그 사람이 맞냐는 타오의 질문에 엘리사는 나는 이제 자유롭다는 의미심장 말을 남기고 소설을 끝이 났단다. 해피 엔딩이긴 하지만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하게 끝이 났구나.  엘리사와 로즈는 다시 만났겠지? 엘리사와 타오는 행복하게 잘 살겠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단다. 이사벨 아옌데의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세피아빛 초상>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엘리사와 타오가 또 등장한다고 하니 말이야. 이 책도 집에 있으니 언젠가는 읽겠지. 아빠가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읽고 뒷이야기도 해줄게.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들은 재미도 있으면서 역사 상식도 알려주고, 매력 있는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구나. 그의 작품들을 더 찾아 나서야겠다.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엘리사는 토굴과도 같은 창고 안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엘리사가 타오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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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아직 오늘날에도 장엄하고 숭고한 건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늙어가면서도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최초의 돌을 놓은 샤를마뉴와 최후의 돌을 놓은 필리프오귀스트에 대한 경의를 저버리고, 세월과 인간들이 동시에 이 존경할 만한 건축물에 가한 무수한 풍화와 훼손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고 분개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209)

대개 어느 나라에서나, 특히 프랑스에서는, 중세의 경이로운 예술이 그렇게 취급되어 왔던 것이다. 그 파괴에서 세 가지 상해를 구별할 수 있는데, 그 세 가지 모두가 저마다 다른 깊이로 상처를 입히고 있으니, 우선, 세월은 눈에 띄지 않게 여기저기 표면에 구멍을 내고 도처에 녹이 슬게 해놓았고, 다음으로 정치적, 종교적 혁명은 그 자체의 성격상 맹목이요 분노인지라, 소란스럽게 그것에 달려 들어, 조각물과 세공품의 풍부한 복장을 찢고, 원화창들을 도려내고, 아라비아식 장식과 작은 상()들의 목걸이들을 부서뜨리고, 자기들의 주교관을 위해 혹은 자기들의 왕관을 위해, 조상들을 뽑아내 버렸으며, 끝으로, 갈수록 기괴망측해지고 어리석어진 유행이었으니, 건축양식의 필연적인 타락 과정에서, 르네상스의 무정부주의적인 화려한 탈선 이래로 갖가지 유행이 바뀌었다. 유행은 혁명보다도 더 많은 해독을 끼쳤다. 유행은 뿌리째 뽑아내고, 예술의 뼈대를 침식하고, 형식에서나 상징에서, 논리에서나 미()에서, 건물을 베고 자르고 무너뜨리고 죽여놓았다. 그런 뒤에 유행은 고쳐 만들었는데, 세월이나 혁명은 적어도 그런 야심은 없었던 것이다.


(229-230)

그 꼭대기에 숨을 헐떡거리면서 도착하는 구경꾼에게 그것은 맨 먼저 눈부신 지붕과 굴뚝과 거리와 다리와 광장과 종루 들이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깎아지른 듯한 합각머리, 뾰족한 지붕, 성벽 모퉁이에 매달린 소탑, 11세기의 피라미드식 석조 건물, 15세기의 판암 오벨리스트, 아성의 꾸밈없는 둥근 탑, 성당의 장식 네모탑, 큰 것, 작은 것, 육중한 것, 경쾌한 것 등등. 눈길은 오랫동안 그 미궁 속에 깊이깊이 잠겨 드는데, 거기에는 저마다 제 나름의 독창성과 동기와 특성과 아름다움이 없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전면에 물감 칠과 조각을 하고, 바깥으로 뼈대가 불거지고, 문이 반궁륭이고, 위층들이 앞으로 불쑥 나온, 작디작은 가옥에서부터 당시에는 탑이 즐비했던 장엄한 루브르 궁에 이르기까지, 예술에서 오지 않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256)

그런데 현재의 파리는 아무런 공통성도 없다. 그것은 여러 시대의 견본들의 집합체인데,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져버렸다. 수도는 가옥들로만 커져가고 있거니와, 무슨 가옥들이 그 모양인가! 파리는 이대로 가다가는 오십 년마다 새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파리의 건축물의 역사적 의의는 날마다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기념적인 대건축물들은 더욱더 드물어져가고, 집들 속에 잠겨서 차츰 삼켜져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선조는 돌의 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자손은 회반죽의 파리를 갖게 될 것이다.


(262)

보통, 낮에 파리에서 풍겨 나오는 소음은 도시가 이야기하는 것이요, 밤에는 도시가 숨을 쉬는 것인데, 지금 여기서는 도시가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종탑들의 총 합주에 귀를 기울이고, 오십만 인구의 중얼거림을, 강물의 영원한 하소연을, 바람의 끊임없는 숨결을,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상자처럼 지평선 언덕에 흩어져 있는 네 숲에서 멀리 들려오는 장중한 사중창을 그 모든 것 위에 퍼뜨리고, 마치 반음 속에서처럼, 중앙의 종소리가 가진 너무도 거칠고 날카로운 모든 것을 거기에서 부드럽게 하고, 그리고 말하라, 이 세상에서 이 종소리와 인경 소리보다도, 이 음악의 도가니보다도, 300척 높이의 돌 피리 속에서 한꺼번에 노래하는 이 수만의 청동 목속리보다도, 이제 하나의 오케스트라에 불과한 이 도시보다도, 폭풍 같은 소리를 내는 이 교향악보다도, 더 풍부하고, 더 즐겁고, 더 금빛이고, 더 눈부신 것을 그대는 알고 있는지를.


(324)

그 반면 연금술은 가지가지의 발견을 하였소. 다음과 같은 결과들에 나리는 이의를 내세우시렵니까? 1000년 동안 땅 아래 갇혀 있던 얼음은 바위 수정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납은 모든 금속들의 선조입니다. (왜냐하면 금은 금속이 아니고 빛이니까요.) 납은 각각 200년의 기간만 있으면 차례차례로 납의 상태에서 적비소(赤砒素)의 상태로, 적비소에서 주석으로, 주석에서 은으로 옮아 갑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나 <작은 열쇠>를 믿고, 충만한 선을 믿고, 별들을 믿는다는 것은, 옛중국 사람들과 더불어, 꾀꼬리가 두더지로 변하고, 밀알이 잉어과의 물고기로 변한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란 말입니다!”


(332-333)

내 판단으로는, 그 사상에는 두 가지 면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 신부로서의 사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요인, 인쇄물이 대한 성직의 공포였다. 그것은 구텐베르크의 빛나는 인쇄기에 대한 성직자의 두려움과 경탄이었다. 그것은 인쇄된 말에 놀라는 강단과 수사본이요, 구두의 말과 필기의 말이었다. 천사 레지옹이 600만의 날개를 펴는 것을 보는 참새의 당황과도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해방된 인류가 웅성거리는 소리를 벌써 듣고, 미래에 지성이 신상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여론이 믿음의 자리를 빼앗고, 세계가 로마를 뒤흔드는 것을 보는 예언자의 외침이었다. 인쇄기에 의해 발산된 인류의 사상이 신정(神政)의 그릇에서 증발하는 것을 보는 철학자의 예언. 청동의 파성추를 살펴보고 탑이 무너지리라고 말하는 군인의 공포. 그것은 하나의 힘이 바야흐로 다른 힘을 이어받으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인쇄기가 성당을 죽이리라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337)

모든 문명은 신정(神政)으로 시작되고 민주주의로 끝난다. 통일성에 뒤이어 오는 이 자유의 법칙은 건축술에 쓰여 있다. 왜냐하면, 이 점은 강조해 두거니와, 벽돌 공사가, 신전을 건축하고 신화와 성직의 상징체계를 표현하고 그 돌의 책장들에 율법의 신비로운 일람표들을 상형문자로 옮겨 쓰는 데만 효력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인류 사회에는, 신성한 상징이 자유사상 아래 닳아 없어지고 인간이 성직자를 피하고 철학과 제도들의 부속물이 종교의 얼굴을 갉아먹는 시기가 오게 되므로, 건축술은 인간 정신의 이 새로운 상태를 재현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책장들은 표면은 가득 차 있되 이면은 텅 비어 있을 것이고, 그 작품은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그 책은 불완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342)

이렇게, 구텐베르크에 이르기까지, 건축술은 주요한 문자요 보편적인 문자이다. 동양에서 시작되고 그리스 로마의 고대에 의해 계속된 이 화강암 책은, 중세가 그 마지막 페이지를 썼다. 게다가 우리가 앞서 중세에서 관찰한 특권계급의 건축술의 뒤를 이은 이 민중의 건축술이라는 현상은, 인류의 지성에서, 역사상의 다른 위대한 시대들과 유사한 모든 운동과 함께 재현된다. 그리하여 여기서 모두 설명하자면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할지도 모를 하나의 법칙을 간추려서 서술어 본다면, 원시 시대의 요람인 저 고대의 동양에는 인도의 건축술 다음에 아라비아 건축술의 풍만한 어머니인 페니키아의 건축술이 왔고, 고대에는 이집트 건축술(에트루리아 양식과 키를롭스 건축술들은 이집트 건축술의 변종에 불과하다) 다음에 그리스식 건축술이 왔고(로마 양식은 그리스식의 연장에 불과하되, 카르타고식 둥근 지붕을 이고 있는 점만이 다르다), 근대에서는 로마네스크 건축술 다음에 고딕 건축술이 왔다.


(347)

그러므로 인쇄술이 발명된 때부터 얼마나 건축술이 시나브로 여위어가고 오그라져가고 발가벗겨져 가는지 보라. 물은 줄어들고 진()은 밭아 들고 시대와 국민의 생각은 건축술에서 물러가는 것을 사람들은 얼마나 절감하고 있는가! 냉각은 15세기에는 거의 지각할 수 없다. 인쇄술은 아직 너무도 허약하여, 고작 해봤자 강력한 건축술의 잉여생명력을 우려먹는다. 그러나 16세기부터는 건축술의 병이 눈에 보이고, 건축술은 이미 절대적으로 사회를 더 이상 표현하지 못하고, 비참하게도 고전 예술이 되고, 갈리아의 건축술, 유럽의 건축술, 토착의 건축술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술이 되고, 진정하고 근대적인 건축술에서 의()고대적 건축술이 된다. 이러한 쇠퇴를 사람들은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화려한 쇠퇴다. 왜냐하면 고딕의 낡은 천재가, 마인츠의 거대한 인쇄소 뒤로 저물어가는 이 태양이, 아직 얼마 동안은 그 마지막 햇살로 라틴의 홍예와 코린트의 원주들로 이루어진 그 모든 잡동사니의 건축물 더미를 비춰주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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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3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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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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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을 안겨주지 않는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을 읽었단다. 몇 달 전에 읽은 <영혼의 집>과 앞으로 읽을 계획이 있는 <세피아빛 초상>과 함께 3부작으로 부르는 <운명의 딸>을 읽었단다. <운명의 딸> 2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오늘은 1권을 먼저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지금까지 읽은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은 모두 그의 조국 칠레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운명의 딸>은 그 전에 읽은 책들보다 좀 더 먼 칠레의 역사를 이야기를 주고 있단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정착을 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 칠레도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와 정착을 했고, 그 중에 무역항인 발파라이소라는 곳에 사람들이 정착했는데 그 곳에서 소설의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서부 지역에 골드 러쉬로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는데, 칠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북아메리카 서부 지역의 금광 소식이 전해지면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캘리포니아도 이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된단다. ,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1.

주인공 엘리사는 갓난아기였을 때 버려졌는데, 소머스 집안에서 자라나게 된단다. 소머스 집안에는 삼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영국 출신으로 1830년 말경 칠레 발파라이소에 와서 정착을 했단다. 첫째 제레미 소머스는 칠레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둘째 존 소머스는 선장으로 일했어. 주로 배를 탔지만, 가끔씩 발파라이소의 있는 집에 왔단다. 그리소 셋째는 로즈 소머스였어. 먼저 영국에 살던 로즈의 식구들이 칠레로 오겐 된 사연을 이야기해줄게.

로즈의 아버지는 부자였는데 책 사 모으는데 정신이 팔려 재산을 탕진할 정도였대. (아빠도 좀 찔리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니까…^^) 이후 로즈의 아버지는 서점과 인쇄소를 하셨는데, 서점과 인쇄소에 관심 있는 자식은 로즈뿐이었어. 아무래도 아빠를 이해해 주는 것은 딸이 낫지.

얼마 안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장남인 제레미는 아버지의 서점과 인쇄소를 청산했단다. 로즈가 많이 아쉬워했을 것 같구나. 17살이던 로즈는 뛰어난 미모로 인기가 많았는데, 연애나 결혼은 뒷전, 성악에만 관심이 많았어. 그러다가 성악가 칼 브렛츠너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칼은 바람둥이에 애가 둘이나 있나 유부남이었어. 그것도 모르고 로즈는 칼과 밀애를 나누고 그랬는데, 어느 날 밀애의 현장에 제레미가 와서 칼의 실체를 이야기를 하면서 로즈를 데리고 왔어. 로즈는 충격을 받고 칼과 헤어졌어. 로즈는 사랑의 상처를 딛고 이전처럼 생활했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무척 힘들었을 거야. 첫사랑의 깊은 상처 때문인지 로즈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아. 칠레에 와서도 청혼을 받지만 결혼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거든. 제레미도 로즈의 상처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어.

얼마 후 무역회사를 다니던 제레미가 칠레로 발령을 받고 칠레로 오게 된 것이란다. 그 때 가족들이 모두 칠레로 오겐 된 거야. 1830년 겨울 즈음이었어. 그리고 엘리사가 소머스에 집에 오게 된 것은 1832 3 15일이었으니, 그들이 칠레에 온지 일년 반 정도 되던 시점이었어. 엘리사를 주로 보살펴 주는 로즈였어. 로즈도 이제 스무 살이었단다. 스무 살의 처녀가 아기를 보살피고 있으니 안 좋은 소문도 돌았지만, 로즈는 정성스레 엘리사를 보살폈고, 유모인 마마 프레시아가 큰 도움을 주었단다. 엘리사는 소머스 집안에서 자라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어. 로즈와 마마 프레시아가 사랑을 다해 보살펴 주었거든. 엘리사가 크면서 로즈는 엘리사를 엄격한 영국식으로 가르쳤단다.

….

제이컵 토드라는 사람이 있는데, 영국에서 친구들과 술 먹다가 우발적으로 내기를 하나 했어. 칠레에 가서 성경책을 파는 내기였어. 칠레는 대부분 천주교였는데, 개신교의 성경을 팔아야 하는 내기였단다. 그 내기 때문에 제이컵은 선교사인 척 하면서 칠레에 왔단다. 제이컵은 제레미를 알게 되어 소머스 집안에서 여는 수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제이컵은 로즈를 보고 첫눈에 반했단다. 계속해서 로즈에게 청혼을 했지만 결혼에 얽매이고 싶지 않던 로즈는 거절했단다. 비록 로즈와 사귀지는 못했지만 제이컵은 소머스 집안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단다. 제이컵은 발파라이소에서 생활하면서 이곳 사회의 부조리를 알게 되고, 혁명의 목소리를 내고 그랬어. 아무래도 경찰에 체포될 것 같다는 생각에 존 스머스는 그를 설득해서 영국으로 돌아가게 했단다.


2.

로즈는 엘리사를 엄격한 영국식 교육으로 가르쳤다고 했잖아. 그 일환으로 신부수업도 받았어. 그리고 로즈는 엘리자의 짝도 직접 정해주려고 적당한 사람을 물색했단다. 그 중에 눈에 들어온 이가 해군장교 마이클 스튜어드라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마이클에게 잘해주고 엘리사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등 노력을 했어. 그런데 마이클은 로즈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고 마이클도 로즈를 사랑하게 되어 로즈에게 고백하면서 키스을 했단다. 로즈는 깜짝 놀라서 마이클의 고백을 거절하고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단다.

그런 와중에 엘리사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이가 있었으니, 가난한 청년 호아킨 안디에타란 사람이었단다. 호아킨은 제레미 소머스가 운영하는 회사에 말단 직원으로 일 때문에 소머스 집안에 오게 되었고, 엘리사가 그런 호아킨을 보고 사랑에 빠진 거야. 이렇듯 사랑이라는 것은 누군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다.

엘리사와 호아킨은 풋사랑이지만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엘리사도 호아킨이 로즈가 원하는 남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몰래 만났어. 그런데 호아킨에게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돈도 중요했단다. 호아킨이 홀어머니를 모시는 가난한 청년이었거든. 그래서 금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캘리포니아에 가기로 했어. 몇 년 동안 큰 돈을 벌어 돌아오면 엘리사에게 정식으로 청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호아킨은 캘리포니아로 떠났단다.

호아킨이 캘리포니아로 떠나고 나서 엘리사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단다. 큰 일이구나. 로즈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할 테고, 엘리사는 유모 마마 프레시아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어. 유모는 온갖 방법으로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어. 엘리사는 캘리포니아로 호아킨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어. 사랑이 뭔지…. 엘리사를 정성스럽게 보살펴 키워준 로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하지만, 로즈의 사랑도 좀 생각해 주지. 엘리사는 마마 프레시아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마는 자신이 막는다고 엘리사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도와주기로 했단다. 그리고 배를 타는 것은 얼마 전에 존 소머스의 소개로 알게 된 배의 요리사인 중국인 청년 타오 치엔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그렇게 마마와 타오 치엔의 도움으로 엘리사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배의 화물칸에 몰래 타게 되었단다.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인데, 타오 치엔도 주요 인물이니까 그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 주어겠다.

타오 치엔은 중국 광저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 그의 아버지는 넷째 아들인 타오를 노예로 팔았는데 타오는 우연히 늙은 한의사의 눈에 띄어 그의 제자가 되었단다. 그래서 한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한의사가 되었어. 몇 년 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그곳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했어. 홍콩에서 떠돌이 의사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서양인 의사 홉스를 만나 서양의 의술도 배우게 되었어. 홍콩에서 린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까지 했는데, 첫 아이를 임신한 린이 난산 끝이 사산하고 말았단다. 이 후유증으로 린도 얼마 못 가 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그 충격으로 타오는 폐인 생활을 했어. 그러다가 강제로 선원이 되어 배를 타게 되었는데, 해본 적도 없는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어. 배에서 아픈 사람들을 진료해주면서 그가 의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요리사 일 말고 의사 일도 함께 했단다. 그러다가 존 소머스 선장을 알게 되어 존 소머스의 배를 타게 되었고 칠레까지 왔던 것이란다. 엘리사가 사랑을 찾아 캘리포니아에 간다고 했을 때, 린과 자신의 사랑이 생각났을까? 그래서 도와주겠다고 했을까? 타오는 엘리사를 화물칸 상자에 숨겨주었고, 때마다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 캘리포니아로 향했단다. 엘리사는 캘리포니아 잘 도착해서 사랑하는 호아킨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이야기는 2권에서….

, 그럼 오늘은 이만할게.


PS,

책의 첫 문장: 누구든지 한 가지씩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다.

책의 끝 문장: 존 소머스 선장과 타오 치엔은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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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명시의 말에 늦잠을 자던 알료샤가 슬그머니 목을 빼고 바라보았다. 세 여자의 대화 속에 레닌이나 스탈린이란 단어만 나오면 잔뜩 긴장하던 알료샤였다. 하지만 고리키라는 이름이 나오면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세 여자가 고리키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했다. 알료사뿐만이 아니었다. 혁명 소설가 고리키에 대한 러시아인의 특별한 사랑은 석류 알갱이처럼 붉고 투명한 연어알절임과 당근 빛깔이 나는 묽은 야채수프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것 같았다. 세 여자가 열차 식당칸에서 고리키 이야기를 하자 주변의 러시아인들도 알아듣고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역시 레닌의 나라였다. 관공서 어디를 가도 1년 전에 사망한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150-151)

내가 보기엔 당신네 공산당도 오십보백보요. 나는 사서삼경도 못 읽는 촌부이지만 당신네들이 자유시에서 조선인 독립군을 수천 명이나 학살했다는 얘기를 들었소. 당신네들은 이번에 중국인 지주들을 때려죽이자는데, 아니 지금 우리가 못사는 게 정녕 그 사람들 때문이란 말이오? 오히려 반대가 아니오? 그 사람들 아니면 우리는 벌써 첫해에 굶어 죽었을 거요. 일본 놈들을 물리치자는 말까지는 알아듣겠지만 그 이상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소이다. 나는 자기네가 권력을 잡으면 다 될 것같이 떠드는 사람들 하나도 못 믿겠소이다. 어느 놈 할 것 없이 백성의 고통을 팔아서 권세를 누리려는 것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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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3-11-07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어요. 글귀가 인상적이네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bookholic 2023-11-07 20:54   좋아요 0 | URL
네.. 잘 모르고 있던 분을 새로 알게 된 점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