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SNS에서 우연히 이 책의 소개를 읽고 알게 된 소설, 박형서의 <당신의 노후>를 읽었단다. 소설 제목이 독특하구나. 당신의 노후.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노후를 곧바로 떠오르게 하는 제목. 아빠도 이제 서서히 노후를 생각할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노후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하는데걱정만 하고

지은이 박형서라는 분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소설을 읽고 나서는 지은이의 이름을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독특한 제목 만큼 독특한 소재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섬뜩한 이야기초고령 사회를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아빠도 노후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NO인 것 같더구나. 그렇다면 실제로 초고령 시대, 아니 초초고령 시대라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실제로 <당신의 노후> 소설 속에 일들이 일어날 수도부디, 미래를 예언한 소설이 아니길


1.

주인공 장길도. 나이 칠십. 그의 아내는 나이 칠십구 세 한수련이라는 분이야. 수련은 폐가 안 좋아서 요양원에 지내고 있었어. 장길도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일했고, 지금은 적지만 퇴직연금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우울했어. 80대 이상의 노인이 전국의 40%를 차지했어. 노인들이 여전히 적은 임금으로 사회활동을 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일자리가 있는 젊은이들은 수입의 50%가 국가 세금으로 사라졌어. 정치권에서는 40%를 차지하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의 투표권을 무시할 수 없었어. 그렇다 보니 희생하는 것은 젊은이들이었고, 젊은이들은 80세 이상 노인들의 선거권을 없애자는 시위를 했어. 지금도 세대 간의 차이가 사회 문제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였단다.


2.

이런 초고령 사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노인들의 자살이 늘어나는 것이었어. 그리고 노인들의 사소한 사고로 죽은 일들이 끊이질 않았어. 젊었을 때 그런 사소한 사고를 당했을 때는 별일 아니었지만,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질 못한 이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 그런데 있잖니, 그것이 그냥 자살이 아니고, 그냥 사고사가 아닐 수도 있었어.

주인공 장길도가 퇴직하기 전, 국민연금공단의 TF팀에서 일을 했는데, 그들의 임무는 엄청난 국가 기밀 업무였단다. 고령 연금수령자, 일명 적색리스트를 제거하는 일고령 연금수령자들 리스트에 오르면, TF팀에서 작전을 짜서 적색리스트에 오른 사람이 자살한 것처럼 꾸미거나, 사고로 죽은 것처럼 꾸미는 거야. 그렇게 함으로써 연금으로 빠져나가는 국가 세금을 줄이려는 것이 바로 국민연금공단 TF팀의 업무였단다. 대단하면서도 무서운 조직이구나.

장길도의 아내 수련은 자신이 요양원에 있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남편 몰래 국민연금 가입을 했고, 이제 연금을 수령하게 되었다고 기쁜 마음에 길도에게 이야기했어. 길도에게는 그것이 기쁜 일이 아니었어. 길도가 금액을 보니, 적색리스트에 오르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단다. 큰 일 났지. 그의 유일한 행복이자 사랑인 수련이 적색리스트에 오르다니..  국민연금공단의 TF팀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작전을 펴려는 것이겠지.

그들의 의도로 뻔히 알고 있는 길도는 먼저 손을 쓸 수 밖에 없었어. 동료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잖아. 길도는 반대로 국민연금공단의 TF팀원들을 제거해 나갔단다. , 소설은 갑자기 스릴러 소설로 변하게 되는구나. 하지만 길도 혼자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어. 새파랗게 젊은, 그래서 길도도 모르는 이사가 찾아와 길도를 제압했단다. 그리고 요양원에 있다는 수련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단다.

, 결국 이렇게 싸움에서 지는 것인가. 그런데 그 새파랗게 젊은 이사는 그들이 수련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했어. 건강공단의 짓이라고 했어. , 이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인가. 수련은 폐가 안 좋아서 30년 가까지 병 치료를 받았거든.. 그 이야기는 건강공단의 건강보험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지. 건강공단에도 국민연금공단처럼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있었던 거야. 길도도 모르고 있던 비밀 조직. 그들에게 수련이 당한 거야. 이제 길도는 모든 것을 포기했단다. 국민연금공단의 젊은 이사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그렇게 아내 수련을 다시 만나러 갔단다.

백 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이었지만, 이것 저것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었단다. 초고령 사회를 준비하지 못한 국가는 결국 이런 무서운 임무를 수행해서라도 국가를 유지하려고 할까.

코로나 바이러스. 나이가 많을수록 치사율이 높단다. 고령 사회로 들어선 몇몇 국가의 철없는 젊은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노인들의 수를 줄일 수 있는 기회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단다. 사람으로써 너무 잔인한 생각이 아닌가 싶더구나. 초고령 시대는 먼 미래가 아니고 현재이고 앞으로 더 심해질 거야.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사회에 진출하게 될 때, 초고령 사회는 더 심해져 있을 테고기후 위기로 환경이 더 안 좋아져 있을 테고기성 세대를 얼마나 원망할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맞이하여 각 국가 지도부들이 깊이 반성을 하고, 경제의 방향키를 생태와 환경 쪽으로 틀어주었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충남 공주의 강 씨(77, )는 중학생 시절에 담배를 훔친 적이 있다.

책의 끝 문장 : 아들 데리러 갈 시간이 지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4)

한 가지 명기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재능이란 예술의 세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세계에는 헤아릴 수 없도록 수많은 직종들이 있습니다. 그 직종들은 전부 다 우리 인간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다양한 직종들에 어울리는 온갖 재능들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 다채로운 재능의 향연이 우리 인간사회의 약동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그 여러 재능들도 성공적 열매를 맺으려면 소설 쓰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가 더 보태져야 합니다.


(39)

군부독재는 강화되고, 그에 따라 분단은 고착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야기되는 현실의 모순과 시대적 갈등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작품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황 변화에 대해 순수문학 쪽에서 참여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고발문학은 문학성이 빈약하고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공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수십 년에 걸친 순수, 참여 논쟁입니다. 그 와중에 저는 작가가 되었고, 첫 작품집 <황토>의 작가의 말에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내가 해득할 수 있는 역사, 내가 처한 사회와 상황, 그리고 그 속의 삶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34년이 지나 태백산맥문학관 벽면에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새겼습니다. 이것이 저의 변함없는 문학관입니다.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은 시대착오적인 유치함입니다. 이제 그런 소모적인 논쟁 아닌 논쟁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오직 좋은 소설, 감동적인 작품이 있을 뿐입니다.


(80)

작가란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야 하고, 불의에 저항하면서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세계적으로 정의되고, 동의되어 왔습니다. 그건 바로 작가란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양쪽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함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지 않느냐고요? 그건 그들의 사정이죠.


(130)

그 인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찍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 고전적 정의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불변입니다.

한 작가의 능력은 그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개성적이고 전형적인 인물들을 창조했느냐로 판가름난다.’


(133)

작가란 무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 그 가슴을 감동으로 채워야 하는 예술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업보를 지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학대하듯 스스로를 닦달하며 평생 긴장하고 최선을 다한 노력을 바치지 않고서는 그 업보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걸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을까요?


(139)

제가 어느 땐가 이런 메모를 남겨둔 게 있습니다.

인생이란 때때로 더듬거리고 멈칫거리고 두리번거리고 비틀거리고 허둥거리며 홀로 걸어가는 길이다


(175)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해가며 달려가는 노정이다.’

인생이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인생이란 극본도, 연출도, 출연도 자기 혼자 도맡아 하는,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다.’


(214-5)

이러한 객관적인 결론이 나오기 훨씬 전에, <태백산맥> 1분가 출간되고 나서 저는 얼굴 모르는 사람들의 전화를 줄줄이 받아야 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를 사람 대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책을 읽고 난 제 얘기를 들으시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얼마나 우셨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총살당하고 처음으로 사람 대접받은 것이니까요.”


(234)

그 또렷또렷한 글씨 한 자, 한 자에서 필사자들이 바친 정성과 노고가 얼마나 진하고 컸는지를 절절히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성과 노고 앞에서 저는 그저 감사하고, 감동하고,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글 쓰기 잘했다는 큰 보람과 함께 삶의 가장 큰 행복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이 베풀어주는 사랑과 신뢰 중에 이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100번 읽는 것보다 더 크고 더 깊은 애정이 한 번의 필사이기 때문입니다.


(298)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백악관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들을 초청해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인사를 했습니다. 펄 벅 여사는 한국이 무대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케네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한국은 영 골치 아픈 나라인데, 내 생각에는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냥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통제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펄 벅 여사는 충격으로 말을 잠시 잊었다가 이내 정색을 하고 공박했습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건 마치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그때로 돌아가라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354)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제아무리 발전한 나라에서도 유토피아란 없습니다. 유토피아란 미래 희망을 위해 만들어진 환상적 언어이지 현실적 실현성을 갖는 언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만족이 없이 끝없이 팽창되는 것이기에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현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2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안재성이라는 작가가 있단다. 좌파 작가라고 해야 할까?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좌파 인물에 대한 책들을 많이 쓰셨어. 아빠는 안재성님이 쓰신 책 중에는 <경성 트로이카><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읽어봤어. <경성 트로이카>는 읽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책을 통해서 학창시절 역사책에서 나오지 않았던 많은 좌파 독립운동가들을 알게 되었단다. 일제 시대 여러 가지 사상들이 출현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 들어 공산주의 운동을 하면서 그와 함께 독립 운동을 하는 이들이 많았어. 후에 해방이 되고 우리나라 남북으로 나뉘고 전쟁이 일어나고,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공산주의는 우리나라에 금기시되었단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공산주의자들도 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이지. 하지만, 일제 시대 그들은 뜨거운 피가 끓던 우리나라 젊은이였고, 나라를 되찾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하셨고, 목숨도 잃으셨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경성 트로이카>에 나왔고, 그 책에 나온 이들에 대해 몇 사람에 대해서는 지은이 안재성님께서 평전으로 좀더 자세히 쓰셨단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이현상이었어.


1.

이현상의 젊은 시절 얼굴을 보면, 강렬한 눈빛을 통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더구나. 그는 늘 웃음이 적고, 원칙에 충실한 그런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의 얼굴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단다.

==========================

(193)

좌익 내부의 정적들조차 김삼룡이나 이주하는 말이 통하지만 이현상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평했다. 먼저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상대방을 설득하다가 안 되면 감정이라도 분출시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현상은 끝까지 묵묵히 듣기만 할 뿐, 끝내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원칙을 관철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정적들이 조선공산당 중앙을 비판할 때 공식적으로 이현상의 이름을 거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현상의 원칙이란 것이 상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지도할 때 보여준 그의 융통성과 현실주의적인 감각이 이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

(205)

그러나 이현상은 도무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를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하급 간부들은 이현상의 심중이 무엇인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짧게 표현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은유나 비유는 사용하지 않았고, 입에서 내뱉은 말과 다른 생각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지 않았고, 정치적 암투를 위해 사람을 모함하거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거짓 호의를 베푸는 일이라곤 없었다. 근본적으로 복잡한 생각이나 정치적 욕심이 없는 담백한 사람이라고 보면 좋았다. 따라서 동료들이나 하급자들은 그가 회의 시간 내내 듣고만 있어도 무슨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다가 한마디 하면 그것이 바로 그의 생각이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악랄하고 인간미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은 아니란다. 그는 생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중요시하고 존중했단다. 전투 중에 적의 생명을 어쩔 수 없이 앗아간 경우는 있지만, 생포된 포로에 대해서는 죽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며칠 동안 교양을 한 다음에 다시 돌려보냈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의 포로 원칙은 바꾸지 않았대.

==========================

(360)

미군이라고 해서 마구 죽이지는 않았다. 미군도 일단 포로로 잡으면 죽이지 않고 며칠 동안 데리고 다니며 교양을 한 다음 살려 보냈다. 이 고지식한 공산주의자는 미워해야 할 것은 제국주의이며 제국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다 같은 피해자라는 교리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쫓기는 처지라 포로를 감시하는 일도 쉽지 않아 쏘아버리자고 주장하는 대원도 있었으나 이현상은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살려준 미군들이 유격대의 위치를 파악해 보고하는 바람에 포격을 당하는 일도 생겼지만 이후로도 포로 수칙을 바꾸지는 않았다.

==========================


2.

그럼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짧게 이야기해줄게.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짧게 이야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아빠가 밀린 독서편지를 따라잡을 때까지는 짧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는 1925 9 27일 충청도 금산군 군북면이라는 동네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당시 면장이었고, 나중에는 형들도 면장을 했대. 일제시대 면장을 하면 보통 친일을 하는 나쁜 이들로 생각할 텐데, 그들은 면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내놓고 세금도 대신 내주는 착한 사람들이었대. 고는 고창보고를 다니다가 서울 중앙고보로 전학을 갔고 그곳에서 6.10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는 구나. 나중에 오늘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조전공산당 청년단체인 고려공산청년연맹에 가입을 해서, 본격적인 공산주의 운동과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어. 이런 활동으로 징역을 갔다 왔고, 김삼룡 이재유 등과 함께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경성 트로이카를 조직해서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이끌었단다. 하지만 이 일로 또 징역을 가는 등 해방할 때까지 모두 합해 10년 넘게 징역살이를 했다는구나.

광복 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깃발을 들었지만, 광복 직후에는 여러 사상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현상도 남조선로동당이라는 정상을 만들어 박헌영과 함께 이끌었단다. 하지만 미군정이 공산주의 정당을 불법으로 정했고, 그래서 박헌영과 함께 북한으로 갔단다. 하지만 그쪽도 이현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김일성이 권력을 잡아갔지. 이현상이 생각하기에 남조선노동당이 정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는 다시 남한으로 와서 비밀리에 남조선노동당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이 터졌어. 지금은 역사적으로 여순사건이 정의로운 민중항쟁이라고 평가되지만, 당시에는 나라에서 반란으로 정의 내렸단다. (여순 사건은 아빠가 얼마 전에 이야기해준 김용옥님의 <우린 아무도 몰랐다> 독서 편지를 참고해 주시고…) 이현상은 이것이 너무 성급하게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했어.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지. 하지만 그들을 버릴 수는 없어서 그는 여순사건의 주동자들로부터 지휘권을 인수받아 그들을 이끌게 되었단다. 무장유격전의 시작이었지.

지리산 산중에 자리를 잡으면서 남조선노동당의 비밀 조직을 이끌었어. 이승만 정부는 이현상이 이끄는 빨치산들을 없애기 위해 군경토벌대를 보내 대대적인 공세를 끊임없이 벌였고, 이현상의 병력도 공세 때마다 큰 타격을 입어 시간이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었단다. 더 이상 지리산에서 임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이현상은 남아 있는 부대원을 이끌고 북으로 가기 했단다. 그때가 1950 6월이었는데, 이현상은 북에서 남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

북상 도중 전쟁 소식을 들었단다. 북한이 일으킨 이 전쟁은 삽시간에 남한 전역을 점령하면서 낙동강 유역까지 전선을 끌어내렸단다. 이현상은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과 함께 전쟁에 참여를 했고, 이현상이 이끄는 부대는 낙동강은 넘어 미군의 군수물자를 파괴하는 등 성과를 냈어. 하지만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등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후퇴하게 되었어. 그 해 이승엽과 재회를 하게 되었고 남한 유격대 총지휘권을 받게 되었고, 이현상은 다시 산중에서 게릴라를 하게 되었고, 그는 그의 부대를 남부군이라고 이름 지었단다. 그렇게 남부군이 탄생했지.

전쟁이 일진일퇴를 보이다가 장기전으로 들어섰어. 전쟁에 지친 미국과 북한은 휴전 협정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미 이현상과 남부군은 북으로부터 고립되기 시작되었단다. 가끔 북에서 지령이 내려오긴 했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했던가, 이현상과 남부군에 대한 지원은 점점 줄어들었어. 그에 반해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이현상을 없애려고 온힘을 기울였단다. 이승만은 이현상의 토벌 없이 지리산의 안정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정도였어.

뿐만 아니라 먹는 것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겨울에는 지리산의 모진 추위와도 싸워야 했어.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면서 남부군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단다. 길고 지루했던 휴전 협정이 1953 7 27일 체결되었고, 이젠 남과 북은 서로 오갈 수 없는 철조망이 세워지게 되었어. 거기에 북한에서는 전쟁의 책임을 남조선로동당의 지도부에 돌렸고, 그로 인해 이승엽은 미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을 당했고, 박헌영도 구속되었어. 이현상에게는 희망이 없었지. 이현상은 결국 경찰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뜨거운 피를 가진 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 그는 나라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뚜렷한 주장을 가지고 계속 선택을 했고 그 선택으로 그의 삶을 만들어갔단다. 하지만, 그의 선택과 그가 속한 나라의 선택이 달라지면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된 것 같구나.

이현상 그는 진정한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에게 이익이 없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면 그는 행동을 했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분노하고, 목숨까지 걸었으니까 말이야. 결코 선택하기 쉽지 않은 삶을 그는 선택을 했고, 뜨겁게 불살랐던 같구나.

==========================

(70-71)

역사는 자신의 존재에 의거하지 않은 지식인 출신 혁명가들의 나약함과 우유부단에 관한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과 함께, 출신성분이 혁명가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기초 자료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 반대의 경우도 무수히 보여준다. 자기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타인에 대한 애정과 정의감만으로 기득권을 버리고 변혁운동에 뛰어들어 아낌없이 죽어간 사례들이다. 자신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분개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은 생존의 본능이지만, 타인의 고통에 분노하고 목숨까지 걸어 싸우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인이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지식인이거나 노동자이거나 아무 상관없이, 타인데 대해 얼마나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성품의 문제였다. 드물지만, 이런 이타적인 인간형들은 진정한 혁명가로서의 자질과 존경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이현상도 그런 유형의 하나였던 것이다.

==========================


PS:

책의 첫 문장 : 한국전쟁이 끝난 지 두 달 후인 1953 9 18일 오전 11시경 지리산 주 능선 반야봉 남쪽 빗점계곡에서 한 사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책의 끝 문장 : 김대중 대통령 방문 당시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을 안내한 여성은 이현상의 막내딸 이상진이었다.


세속적인 욕심에 무심한 것은 역사를 바꿔온 대부분의 혁명가들이 가진 근본적인 성품이기도 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경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파악하는 역사가들은 혁명가들의 삶에도 이를 적용하고 싶어하여 세계의 혁명사를 당파 싸움으로 대치시키는 데 몰두한다. 그들은 혁명가들의 마음속에 희생과 용기, 이타주의의 고귀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혁명이 시대적으로 주류가 되었을 때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앞 다투어 뛰어든 투기꾼들의 행태가 그들의 분석에 근거가 되고 합리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은 역사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시간 순서대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 사이사이에 인간의 욕망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끼워넣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3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0)

박열은 내가 내민 쪽지를 받아들고 중얼중얼 읽었다.

첫째, 동지로서 함께 살 것.

둘째, 내가 여성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제거할 것.

셋째, 둘 중 하나가 사상적으로 타락하여 권력자와 악수하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둘 것.


(229)
요구사항은 모두 네 가지였다.

첫째, 공판정에서는 일절 죄인 대우를 하지 않아야 하며 피고라고 부르지도 말 것

둘째, 공판정에서 조선 예복 착용을 허락할 것

셋째, 자리도 재판장과 동일한 좌석을 마련할 것

넷째, 공판 전에 자기의 선언문 낭독을 허락할 것.

다섯째, 만일 이상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입을 닫고 일절 신문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결심한다.


(233)

가네코도 당당한 응답으로 재판정을 흔들었다.

피고는 국가에 해가 되는 사상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어떠한가?”

방금 그 질문은 상당히 모욕적이다. 내가 무적자로 태어나 어려서 친척들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국가와 대척점에 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학대한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면 나도 고분고분하게 순응하는 머저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사회에 어째서 대적하는가?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는가?”

국가와 개인은 어떤 계기가 있지 않아도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는 힘으로 개인을 억누르고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서 순응하도록 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234)

박열은 미리 약속한대로 자기 선언문을 낭독했다.

국가는 개인의 신체와 생명과 자유를 끝없이 침해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강도들 중에 대강도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편에 선 재판관이 공정한 판결을 할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 법정에 선 것은 재판을 받자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선언하기 위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2)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의 것이란 말이다!”

나는 독도와 울릉도가 나의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조선의 것이라 말했다. 우리를 끌고 왔던 어부가 몽둥이로 나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꾸미려면 언제나 폭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한 차례 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섬이며, 그 섬의 바다는 조선의 바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본인의 매는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쏟아졌다.


(103)

갑작스럽게 나는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 앞에서 기죽고 싶지는 않았다. 조선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조선인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모든 걸 빼앗긴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전국을 뒤져 가져온 산삼을 그렇게 헐값에 넘기진 않았을 터였다. 초량 왜관에 머무는 일본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날카로웠다. 그들에 대한 선입견에 휩싸여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194)

조선은 몇몇의 나라가 아니라 다수 백성의 나라여야 했다. 나라는 내게 목숨까지 버리라 말하면서도 사방이 막힌 이 순간에는 나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마저 새카맣게 타버려 흐를 줄 몰랐다. 나는 버려졌다. 그 점은 억울하지 않았다. 나라가 내게 기대한 일이 없으며, 나 역시 나라에게 기대할 일이 없으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살아남아도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사실이었다.


(285)

우리가 가는 건 우리의 섬이고 우리의 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은 울릉도나 독도를 소유했던 번이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울진에 속해 있었지만, 저들은 근래에 와서 지들의 번에 속해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요. 게다가 독도든, 울릉도든 우리와 달리 일본 백성들이 거주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일본의 지난 쇼군 시절에 요나고 사람들이 울릉도에 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도해 허가를 해준 일을 두고 자신들의 섬이라 우기고 있는 겁니다. 도해 허가를 내주었다는 사실도 웃긴 일이지만, 그런 사실을 파악했으면 강하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그리 못했지요.”


(335)

*1693 9월 초, 안용복과 박어둔은 돗토리 번에서 나가사키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당시 안용복과 박어둔을 납치한 내용은 오야 집안의 문서인 <죽도 도해 유래기 발서공, 이하 발서공>과 한자로는 백기로 적는 호키주의 일을 기록한 <이본 백기지>에도 실려 있다. <발서공>에는 안용복이 에도에 갔고,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에도 막부가 안용복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 안용복에게 무엇인가를 줘서 조선으로 귀국시켰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서계로 추측된다. 두 사람이 나가사키로 후송되었을 때 쓰시마 번 사람들이 두 사람을 맞이했는데, 이때 선물과 서계를 모두 강탈당했으며 이를 쓰시마 번에서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해석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다.


(369)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부개자와 진탕에 비하여 그 일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영특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상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형벌을 내리고 뒤에는 귀양을 보내어 꺾어버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르도와 독도가 비록 척박하다고 하나, 쓰시마도 또한 한 조각의 농토가 없는 곳으로서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내려오면서 우환거리가 되고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한 번 빼앗긴다면 이는 또 하나의 쓰시마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오는 앙화를 어찌 말하겠는가? 안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뿐이 아니었다. 고금에 장순왕의 화원노졸(花園老卒)을 호걸이라고 칭송하나, 그가 이룩한 일은 대상 거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국가의 큰 계책에는 도움이 없었던 것이다. 안용복과 같은 자는 국가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항오에서 발탁하여 장수급으로 등용하고 그 뜻을 행하게 했다면, 그 이룩한 바가 어찌 이에 그쳤겠는가? – 이익의 <성호사설>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