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의 것이란 말이다!”

나는 독도와 울릉도가 나의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조선의 것이라 말했다. 우리를 끌고 왔던 어부가 몽둥이로 나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꾸미려면 언제나 폭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한 차례 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섬이며, 그 섬의 바다는 조선의 바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본인의 매는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쏟아졌다.


(103)

갑작스럽게 나는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 앞에서 기죽고 싶지는 않았다. 조선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조선인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모든 걸 빼앗긴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전국을 뒤져 가져온 산삼을 그렇게 헐값에 넘기진 않았을 터였다. 초량 왜관에 머무는 일본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날카로웠다. 그들에 대한 선입견에 휩싸여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194)

조선은 몇몇의 나라가 아니라 다수 백성의 나라여야 했다. 나라는 내게 목숨까지 버리라 말하면서도 사방이 막힌 이 순간에는 나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마저 새카맣게 타버려 흐를 줄 몰랐다. 나는 버려졌다. 그 점은 억울하지 않았다. 나라가 내게 기대한 일이 없으며, 나 역시 나라에게 기대할 일이 없으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살아남아도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사실이었다.


(285)

우리가 가는 건 우리의 섬이고 우리의 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은 울릉도나 독도를 소유했던 번이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울진에 속해 있었지만, 저들은 근래에 와서 지들의 번에 속해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요. 게다가 독도든, 울릉도든 우리와 달리 일본 백성들이 거주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일본의 지난 쇼군 시절에 요나고 사람들이 울릉도에 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도해 허가를 해준 일을 두고 자신들의 섬이라 우기고 있는 겁니다. 도해 허가를 내주었다는 사실도 웃긴 일이지만, 그런 사실을 파악했으면 강하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그리 못했지요.”


(335)

*1693 9월 초, 안용복과 박어둔은 돗토리 번에서 나가사키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당시 안용복과 박어둔을 납치한 내용은 오야 집안의 문서인 <죽도 도해 유래기 발서공, 이하 발서공>과 한자로는 백기로 적는 호키주의 일을 기록한 <이본 백기지>에도 실려 있다. <발서공>에는 안용복이 에도에 갔고,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에도 막부가 안용복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 안용복에게 무엇인가를 줘서 조선으로 귀국시켰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서계로 추측된다. 두 사람이 나가사키로 후송되었을 때 쓰시마 번 사람들이 두 사람을 맞이했는데, 이때 선물과 서계를 모두 강탈당했으며 이를 쓰시마 번에서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해석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다.


(369)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부개자와 진탕에 비하여 그 일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영특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상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형벌을 내리고 뒤에는 귀양을 보내어 꺾어버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르도와 독도가 비록 척박하다고 하나, 쓰시마도 또한 한 조각의 농토가 없는 곳으로서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내려오면서 우환거리가 되고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한 번 빼앗긴다면 이는 또 하나의 쓰시마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오는 앙화를 어찌 말하겠는가? 안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뿐이 아니었다. 고금에 장순왕의 화원노졸(花園老卒)을 호걸이라고 칭송하나, 그가 이룩한 일은 대상 거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국가의 큰 계책에는 도움이 없었던 것이다. 안용복과 같은 자는 국가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항오에서 발탁하여 장수급으로 등용하고 그 뜻을 행하게 했다면, 그 이룩한 바가 어찌 이에 그쳤겠는가? – 이익의 <성호사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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