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최태성) 신정왕후가 수렴청정한 게 4년 정도인데, 교과서에 나오는 흥성대원군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가 바로 그 4년이거든요. 수렴청정 기간에 신정왕후가 내놓았던 정책들을 보면 경복궁 중건, 과제의 폐단 시정, 서얼의 허통(許通) 등이 있습니다. 효명세자가 시행하려고 했던 개혁들을 다 실행에 옮기는 거죠. 다시 말해 세도정치 이후에 추진된 개혁을 흥선대원군의 개혁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 출발점이 효명세자에게 있다는 얘기입니다.


(110)

(주진오) 확실히 흥선대원군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어요. 흥선대원군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세도정치의 여러 가지 폐해를 정리하고 왕실 중심의 국가 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거든요. 고종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신병주) 흥선대원군에게 그런 공은 분명히 있지만, 외교적으로 대응하는 문제라든가 국제 정세를 보는 시각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있죠. 반면에 명성황후는 상당히 국제적 안목도 있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두 사람이 가지는 긍정적인 면이 잘 조화를 이루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면 가장 좋았을 텐데, 결국 서로 화합하지 못함으로써 근대사 부정적으로 흘러간 것은 매우 아쉬운 측면이죠.


(137)

(박은숙) 갑신정변이라는 계획에 고종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급진 개화파가 반청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고종으로서는 청나라의 개입을 막으면 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서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진행되는 걸 보니까 왕권과 왕실 제정을 제약하고 입헌군주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오히려 왕권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위기를 느끼면서 당연히 뒤도 안 돌아보고 태도를 바꾼 것이죠.


(184)

(신영우) 동학은 갑오년에 패배하고 난 뒤에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에서 탄압받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탄압받았고요. 광복 이후에는 교과서에서 반란으로 규정해서 오랫동안 매도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큰 원인으로 보면 일본 사람들이 교묘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양반 지주층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동학농민군을 과거에 나쁜 짓을 했던 사람들로 매도한 경향이 있었죠. 그런 인식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다가 100주년이 될 때 명예를 회복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야 비로소 특별법에 의해서 명예회복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259)

(그날) 근데 고종의 밀명을 받았던 헐버트라는 사람이 왠지 익숙하기는 한데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거든요.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신병주) 고종에게 크게 신뢰받았던 대표적인 미국인입니다. 1905년에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전에도 대한제국의 위급한 상황을 미국에 전하고자 상당히 애썼던 인물이죠. 헐버트의 삶이 대단히 극적이었던 게, 이후 40여 년간 사라진 비자금의 행방을 계속 찾으려고 합니다. 해방 이후인 1949년에도 방한해서 비자금을 꼭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안타깝게도 1949년의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러 왔다가 8 5일에 사망했어요. 지금은 본인이 원했던 대로 대한민국에 묻혀 있죠.


(267)

(신병주) 큰 한이라는 뜻이지요.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에서 역사가 시작되는데, 고조선에서 남하한 이주민 일부가 한을 세웠다고 국사책에 나옵니다. 마한, 진한, 변한인데, 당시의 역사 인식을 보면 삼한을 통합한 나라가 고려라는 인식이 아주 굳건히 지속됩니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신할 새로운 국호를 찾다 보니까 역사적으로 조선 다음에는 한이라는 국호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거죠. 그래서 삼한을 계승한다는 의식을 이어받아서 그 한 중에서도 더 큰 한, 즉 대한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는데, 황제의 나라라서 대한제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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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곡 소오강호 7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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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소오강호 일곱 번째 이야기구나. 전에 <소오강호> 2부도 있어서 그것도 읽어야 하나?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알라딘 서재 친구 분께서 <소오강호> 2부는 김용이 쓴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셨단다. 그래서 그건 패스하려고그것 말고도 읽을 책들이 많이 쌓여 있어서 말이야. , 그럼 바로 소오강호 7권의 이야기를 해볼게.

….

7권의 시작은 오악검파들이 하나의 파로 합치자고 숭산파들이 마련한 행사장에서 이야기를 시작된다. 그 행사는 그야말로 형식적인 것이고, 숭산파 좌랭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어.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도곡육선이었단다. 도곡육선 기억나지? 영호충과 친분이 있던 여섯 형제들. 머리는 나쁘고, 힘은 엄청 세서 그들에게 잘못 걸리면 사지가 찢어져 죽을 수도 있잖아. 그런 도곡육선이 서로 만담을 나누듯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좌랭선이 장문인이 되는 것을 방해했단다. 도곡육선들이 하는 말들이 너무 논리 정연해서 좌랭선은 반박을 할 수가 없었어. 도곡육선이 그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닌데알고 보니 영영이 그들에게만 들리게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도곡육선은 영영이 알려준 대로 이야기를 한 것뿐이야.

그래서 장문인은 좌랭선 단독 추천이 아니라 오악검파의 각 파 대표들이 나와서 무공을 겨루어 최종 승자가 장문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어. 그런데, 악영산이 뛰어나와 이야기하기를, 오악검파의 장문인이 될 사람이니, 다섯 개 파의 검술을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장문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지. 그러면서 악영산은 자신이 화산파의 대표로 싸우겠다고 했어. 악영산은 각파의 검술로 형산, 태산파를 차례로 이겼어. 이것을 보고 있던 영호충은 놀랬단다. 악영산이 언제 저런 검술들을 익혔나 놀랬고, 그 검술들은 자신이 화산파에 있을 때 벌을 받았던 사과애라는 낭떠러지에 있는 비밀 동굴의 벽에 새겨져 있는 검술이라서 또 놀랬단다. 그러니까 악영산은 그 비밀 동굴 안에서 검술을 익혔던 거야. 이제 악영산과 항산파의 영호충의 검술 대결이 있었어. 영호충은 일부러 악영산에게 져주었단다. 악영산이 이기면 악영산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사부였던 악불군이 장문이이 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오악검파가 하나로 합쳐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악영산과 결투에서 영호충은 중상을 입게 되었어. 악영산의 다음 상대는 좌랭선이었는데, 이 대결에서 악영산은 지고 말았단다. 그런데 악영산은 화산파의 장문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악불군이 남아 있었어. 악불군은 앞서부터 계속 좌랭선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좌랭선에게 장문인 자리를 물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진지하게 대결을 요청했단다. 악불군의 무공실력은 영호충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많이 달라졌단다. 실력이 올라간 것뿐만 아니라, 마교의 동방불패가 사용했던 사악한 기술을 이용했어. 그 사악한 기술로 좌랭선의 눈을 멀게 했단다. 그래서 최종 승리는 악불군이 되었고,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었단다. 이런 반칙과 비열한 방법으로 장문인이 된 악불군을 지켜보던 영호충은 더 이상 스승님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단다.


1.

오악파의 행사가 끝이 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단다. 영영은 중상 입은 영호충을 보살피면서 항산으로 향했단다. 가는 길에 여창해와 그의 청성파 무리들을 만났는데, 얼마 후 임평지와 악영산이 와서 청성파 무리들을 모두 죽였단다. 1권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임평지의 부모를 죽이고 집안을 망하게 한 이들이 청성파 사람들이었잖아. 그때는 무공이 약해서 복수를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예전의 임평지가 아니었어. 그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부모님의 원수를 갚았단다. 그런데 임평지가 쓴 무공은 다름 아닌 동방불패가 사용하던 무공과 같았단다. 도대체 임평지도 그렇고, 악불군도 그렇고.. .그들은 무엇을 연마한 걸까?

얼마 후 목고봉도 그곳을 찾아왔는데, 목고봉 또한 임평지의 원수였단다. 목고봉도 죽임으로써 부모님의 원수를 모두 갚았단다. 그런데 상대방의 무공 또한 만만치 않았단다. 비록 그들은 싸움에 졌지만, 임평지를 공격하여서, 임평지는 눈을 멀게 되었단다. 악영산은 부상당해 앞을 보지 않게 된 임평지를 데리고 길을 떠났단다. 임평지의 상태를 보아하니, 임평지와 악영산은 누군가에게 공격이라도 받으면 죽는 것은 한 순간이 될 수 있었어. 영영과 영호충은 임평지와 악영산이 걱정되어 몰래 그들 뒤를 따라갔단다. 영영이 중상을 입은 영호충과 함께 있다 보니 기동력이 떨어져서 그를 잠시 안전한 곳에 두고 임평지와 악영산을 계속 뒤따라갔단다. 그리고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듣게 듣고 임평지와 악불군의 무공 실력이 는 이유를 알게 되었단다.

악불군이 영호충에 몸에 숨겨두었던 <벽사검보>를 훔쳐냈고, 그것을 몰래 익혔던 거야. 그런데 이 <벽사검보>의 비법은 남성성을 잃어야지 무공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거야. 그래서 무공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 악불군은 거세를 하였단다. 그러면서 목소리도 변하게 되었어. 이것을 모두 지켜보던 악부인은 남편을 설득했어. 결국 악불군은 그 <벽사검보>를 버렸지. 그걸 임평지가 주웠고, 그래서 임평지도 <벽사검보>를 익히게 된 거야. 그런데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악불군의 빅픽쳐였다는 거야. 임평지 집안에서 가지고 있는 <벽사검보>를 얻기 위해 자신의 딸 악영산을 임평지에 접근시켰던 것이고, 임평지를 화산파 제자로 받아들였던 것이란다. 임평지 또한 악영산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고, 악영산을 이용해서 <벽사검보>의 무공을 쌓으려고 했던 것이란다. 악영산만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진심으로 임평지를 사랑했던 것이란다. 이렇게 악한 짓을 한 악불군과 임평지 모두 정교라는 것이지. 말뿐이고 허세만 가득한 정교의 모습을 그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구나.


2.

임평지와 악영산은 가는 길에 노덕약을 만났어. 노덕약 기억나니? 화산파의 제자 중에 한 명이었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노덕약은 숭산파였어. 스파이로 화산파에 잠입해 있었던 거야. 노덕약은 숭산파 좌랭선의 부하였던 거지. 원래 오악파의 장문인은 좌랭선이 차지해야 하는데, 그걸 악불군이 차지했으니 좌랭선이 얼마나 분노에 차 있겠니. 그래서 임평지에게 제안을 했어. 힘을 합쳐서 악불군을 없애버리자고임평지는 알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옆에 있던 악영산을 죽였단다. 그렇게 불쌍하고 순진하던 악영산이 죽어 말았단다. 계속 영호충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영호충은 뒤늦게 악영산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고 악영산의 시신을 데리고 가다가 실신하게 되었단다. 깨어 보니 영영이 영호충을 또 보살피고 있었어. 영영이 악영산을 묻어주었다고 했어.

….

얼마 후 악불군을 만났는데, 악불군은 영호충을 마구 공격하였단다. 이제 악불군은 최고의 빌런이 되어 있었어. 결국 악불군은 영호충에게 패하여 정신까지 잃게 되었단다. 그 사이에 영호충은 악불군을 꽁꽁 묶어 두고 혈도를 찍어 꼼짝 못하게 했단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악부인은 영호충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말릴 틈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단다. 얼마나 남편에게 실망을 했으면어쩌면 악영산이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구나.

7권의 마지막 부분은 오랫동안 숨어 지내던 의림의 어머니가 등장한단다. 의림의 어머니도 또한 무공이 뛰어난 자인데,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늘 의림의 주변에 있었어. 분장을 해서 아무도 못 알아보게 하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귀머거리 할머니인 것처럼 말이야. 그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남편, 그러니까 불계화상이 다른 여자에 관심을 두었다는 이유로 복수하기 위함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건 귀머거리 할머니의 착각이었지. 불계화상이 그렇게 호탕하고 자유연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편단심이었는데 말이야. 아무도 그 귀머거리 할머니의 정체를 알지 못했는데, 영호충이 알아봤지. 당신이 의림의 어머니죠?

그렇게 7권의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아빠가 오늘은 줄여서 이야기한다고 노력을 좀 하긴 했는데아무튼 마지막 한 권도 빨리 이야기해줄게. 아빠의 머릿속에서 점점 사라지기 전에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좌랭선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초조하였다.

책의 끝 문장: …… 넌 어떻게…… 어떻게 알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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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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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과학 교양 서적을 가끔 찾아본다고 했잖아. 너희들이 점점 자라다 보니, 과학 교양 서적을 읽은 내용을 너희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더 찾아보게 된 것 같아. 특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은 더욱 말이야. 과학 교양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가 쉽지 않거든. 얼마 전에 몇 달 동안 계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과학 관련 책이 하나 있었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에 관한 책인가 보다 했어. 자세한 책 소개를 읽어보지 않고 샀단다.(읽고 나서 보니 참 잘한 것 같구나.) 지은이는 룰루 밀러라는 사람으로 과학 전문기자라고 하는구나. 첫 부분을 읽다 보니 과학 교양 서적이라기 보다는 과학 에세이라고 해야 더 많을 것 같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자신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어. 자신의 삶이 무료하고 침체되어 있는 것 같고 우울한 생활돌파구도 없어 보이고 그런 생활들.. 그러다가 그는 한 위대한 분류학자를 알게 되었단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분류학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던 분류생물학자. 지은이 룰루 밀러는 그를 우상으로 삼기로 하고, 그를 통해서 삶의 전환을 이룰 수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지은이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책들과 자료들을 섭렵하게 되었단다.


1.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851년에 태어나 1931년에 삶을 마감했단다. 그 시절 치고는 장수한 편에 속하는구나. 데이비드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인가를 분류해서 공통점을 가진 것끼리 나누는 것을 좋아했단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 식물들도 자기 나름대로 분류해 보았어. 대학교 때 자연사수업코스라는 것이 있었는데, 데이비드는 그것을 신청했어. 그가 평상시 존경하던 루이 아가시 교수가 진행을 한다고 했거든. 그 코스는 페니키스라는 섬에서 진행을 했단다. 공부보다 놀러 왔다고 생각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데이비드는 처음부터 열정적이었어.

=======================

(41)

그러나 눈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감각기관이어서 사람에 따라 똑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바로 그 똑 같은 뜨거운 땅이 데이비드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개, 해면동물, 해초들로 반짝거리며 환영의 손짓을 보냈다. 학생들이 안면을 트고, 서로 추파를 던지고, 길게 늘어선 침대 중 자기 자리를 고르는 동안, 데이비드는 슬그머니 해변으로 내려가 평생 처음으로 소금기 밴 바닷물에 손가락을 담갔다. 까맣고 부드러운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 이어서 녹색을 띤 돌을 집어 들었다가 하는 사이, 그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평생 그를 따라다닐 다급한 마음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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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열정은 루이 아가시 교수의 눈에 들었고, 데이비드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물고기 분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단다.

그 코스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데이비드는 물고기 분류를 했어. 그는 물고기 분류학 분야에서 유명해지면서 정부의 프로젝트 제안도 들어왔어. 이름 없는 물고기들에게 이름을 짓고 분류해달라는 것이었어. 그는 이름이 없던 미국의 민물고기들 80여 종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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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건 그렇고, 데이비드는 다윈이 신을 없애버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추구는 여전히 고귀한 일이라 여겼다. 그는 자연의 사다리의 형태, 그러니까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지위가 정해져 있는지를 드러내줄 가장 높은 청사진에 대한 추적을 계속 이어갔다. 다만 이제는 그 질서를 만드는 것이 신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믿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그 청사진은 여전히 가장 결정적이고 많은 것을 알려줄 비밀들을 품고 있을 터였다. 데이비드는 물고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의 진짜 창조 이야기, 인간을 만드는 데 어떤 생명의 실험들이 필요한지를 알아내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가 하는 일은 다른 생물들의 우연한 실수와 성공들 속에 쓰여 있는, 잠재적으로 인류가 더욱더 진보하도록 도와줄 실마리들을 찾는 것이었다. 이는 키를 잡고 있는 창조주의 존재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가시의 사명과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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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는 페니키스 섬에서 알게 된 수전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가 했는데, 수전이 폐렴에 걸려 일찍 죽고 말았단다. 데이비드는 제시라는 여자와 재혼했는데, 제시와 데이비드의 아이들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대.

지은이가 데이비드 조던 스타를 삶의 모델로 삼기에 좋은 에피소드가 두 개 있었단다. 그의 연구소에 불이 나서, 수 년 동안 자신의 모아두었던 샘플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사고가 났었어.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단다. 그런데 그것은 약과였어. 나중에 그거 더 유명해졌던 1905년 대지진이 일어나서, 30년 간 모아주었던 물고기 샘플과 그 샘플에 이름들이 다 떨어진 거야.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의 이름이 다 사라지고 만 거야. 이정도 피해를 입었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포기할 텐데, 데이비드는 다시 하나하나 이름표를 매핑시켰단다. 그러면서 다음에 지진이 나도 이름표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는 물고기에 이름표를 실로 꼬매 놓는 식으로 다시 정리했다고 하는구나. 정말 대단한 노력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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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33)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 지진과 화재가 준 교훈이다. 그가 지은 집은 무너지기 쉬운 카드로 지은 집이지만, 그는 집 밖에서 서 있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위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도시가 되는 것이다. 도시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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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달리 주변 사람들, 가족이나 동료 연구원들의 안타까운 죽음들이 많았어. 그래도 꿋꿋하게 자신의 연구를 계속 하였단다. 그런 그의 일관된 열정은 본 받을 만 했지.


2.

그가 분류학으로 유명한 학자가 되자, 시골의 어떤 부자가 대학교를 만들었다면서 그 대학교의 학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어. 그 학교가 그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였단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금은 명문이 된 스탠퍼드의 대학교 초대 학장이었던 거야. 한 길만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을 받게 되는 거구나. 스탠퍼드 대학교를 세운 사람은 스탠퍼드 부부였는데, 그 중 부인인 제인 스탠퍼드와 데이비드는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는구나. 그들 사이는 남편이 죽고 나서 더 안 좋아졌어. 데이비드를 지지하던 남편이 죽고 나자, 제인은 어떻게 하면 데이비드를 쫓아낼까 생각했단다. 그래서 스파이까지 두면서 그의 비리를 찾아내려고 했어. 그러던 중 제인이 하와이 여행에 갔다가 급사하게 된단다. 데이비드에게 행운이었을까?

지은이는 제인의 죽음에 의문점들이 있어서 조사를 해보았어. 제인은 하와이 여행 전에도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단다. 독이 든 음식을 먹고 말이야. 제인은 맛이 이상한 음식을 뱉어내고 그 위기를 모면했단다. 그런데 하와이에서는 그러지 못했어. 제인의 시신에서는 독으로 죽었다는 증거들이 여럿 있었단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를 살해한 것이지.

제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데이비드는 만사를 뒤로 하고 하와이로 향했단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알고 지내는 의사와 함께 갔는데, 그 의사는 제인이 자연사했다고 발표했고, 언론에도 그렇게 내보냈단다. 다른 의사들의 생각은 달랐지만, 사람들은 신문에 발표된 것만 보았지나중에 데이비드가 죽고 나서도 한참 뒤인 2000년대 초반 데이비드가 제인을 죽였다는 내용으로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 내용으로 보면 증거와 정황이 너무 명백해서 제인은 데이비드의 사주를 받은 이가 죽였다는 것이 맞는 것 같았어.

지은이가 데이비드를 계속 조사하다 보니, 우생학이라는 학문을 계속 만나게 되었단다. 데이비드가 우생학 신봉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런데, 우생학은 무척 잔인하고 나쁜 학문이었단다. 우생학은 열등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후손을 갖지 못하게 하여 미래에는 유전적으로 좋은 사람들만 살아남게 한다는 학문이었어. 다윈의 사촌 골턴이라는 사람이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그는 자연선택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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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우생학은 1883년 유명한 박식가이자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만든 단어이다. <종의 기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골턴은 사촌의 책을 읽고 깊은 영감을 받아, 그 책을 내 정신 발달 과정의 신기원이라고 불렀다. 지구에서 생물의 배열을 결정하는 자연선택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자마자, 그는 인류의 지배자 인종을 선별할 수 있도록 그 힘을 조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요컨대 가난, 범죄, 문맹, “정신박약”, 방탕함 등 그가 피와 관련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특징들을 교배함으로써 말이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살시키는 이 기술을 우생학이라고 불렀다. “좋은출생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그리고 그는 자기-다윈의 사촌인!-말을 들어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얼핏 과학적으로 들리는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계획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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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도 그런 우생학을 신봉했던 거야. 그러면서 우생학을 신봉하는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행동도 하였단다. 열등함도 그들이 판단하여 사람들을 납치하여 감금하기도 했단다. 그들이 판단한 열등한 사람들에게는 유색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들은 사람들을 감금하고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불임수술을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단다. 지은이는 당시 피해를 받은 여성들을 찾아가 그들의 사연도 책에 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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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스턴은 한 연구팀과 함께 수년간 그 기록들을 분석했고, “부적합자란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 범주 안에서 살아갔는지에 관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스턴의 글에서 알 수 있듯 부적합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판단된 젊은 여자들, 멕시코와 이탈리아, 일본 이민자의 아들과 딸들그리고 성적인 전형에서 벗어난 남녀들이었다. 다른 연구들은 과도하게 치우친 비율로 많은 유색인 여성들이 불임화의 표적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정부는 1970년대 초에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2500명 이상을 강제로 불임화했음을 인정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우생학위원회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수백 명의 흑인 여성들을 찾아내 불임화했다. 그리고 당혹스럽게도 1933년과 1968년 사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여성 중 약 3분의 1이 미국 정부에 의해 불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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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이런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어. 자신이 롤모델로 삼으려고 했던 이의 충격적인 사실. 열정을 가진 분류생물학자인 줄만 알았던 그가 알고 보니 사람들을 죽이고 온갖 만행을 저지른 사람이었다니그건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같은 충격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이런 반전이 숨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지. 책의 전반부에 느꼈던 감정이 후반부에는 다 사라지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분노의 감정만….


3.

지은이는 어떻게 하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앙갚음을 할까 생각했어. 그러던 와중에 데이비드가 평생 연구했고 그의 업적의 전부인 물고기라는 것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연구 주장을 보게 되었어. 그러니까, 물고기를 너무 퉁쳐서 같은 무리로 했다는 거야. 마치 산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을 하나로 분류했다는 거야. 어류로 분류된 많은 것들이 하나로 묶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주장이었는데, 지은이가 알아보니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많았고, 그 근거들이 명확해서 최근에는 학계에서는 어류가 없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했어.

지은이는 그래, 이거야.. 하고 깨달았단다. 지은이는 이걸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자며 이 책의 후반부에는 어류로 분류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까 어류란 없다는 근거와 설명을 해주고 있단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당신이 평생 쌓았던 업적과 그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 잘못된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그렇게 그가 죽은 다음에라도 그의 업적을 없애는 것만이 그가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생각했던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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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 만약 당신이 아직도 물고기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을 과학적으로 타당한 한 집단에 몰아넣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바늘이 있는 폐어들과 실러캔스를 당신 생각에 그들이 당연히 소속된 곳인 물속에 송어와 금붕어와 함께 밀어 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범주를 어류라고 부를 수도 있다! ,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공통 조상을 지닌 모든 후손이 함께 포함될 수 있도록 몇몇 다른 생물들도 어류라는 집단에 집어넣어야 한다.

물가에 걸터앉아 있는 개구리들은 어떨까? 그 개구리들도 발로 차서 같은 물속에 집어넣어라.

저 하늘 높이 나는 새들은? 그 새들도 물에 빠뜨려라.

소들은? 물론 소들도 들어간다.

당신의 엄마는? 당연히 어류다.

어떤가? 그럴듯한가? 그렇지 않다면,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낸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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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책은 한 사람의 열정과 업적을 쫓다가 그 사람을 고발하는 내용의 대반전으로 끝이 났단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스탠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에 있던, 데이비드 조던 스타의 이름을 따서 지었던 건물들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는구나. 뒤늦게나마 적절한 조치구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이구나. 그리고 어류라는 것이 분류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내용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 우리가 오랫동안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옳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류가, 물고기가 없었다니

독특한 이야기의 구성이 신선했던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남은 추석 연휴 재미있게 잘 보내자~~


PS:

책의 첫 문장: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책의 끝 문장: 가장 희망적이었던 순간에조차, 나의 하찮은 뇌는 그녀만큼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를 꿈에도 결코 상상해내지 못할 거라고.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 정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천상의 에테르적 차원에 머물면서 인간이 발견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 P93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 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 P226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거짓이다. 그건 너무 음울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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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9-11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bookholic 2022-09-12 10:13   좋아요 0 | URL
저도 고맙습니다~^^

종이달 2022-09-11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뚜버기님 안녕하세요.

종이달 2022-09-11 2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님 안녕하세요.

돌아온탕아 2022-09-12 0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

bookholic 2022-09-12 10:15   좋아요 1 | URL
돌아온탕아님의 취향에도 맞는 책이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26-27)

(고성훈) <정감록>에도 일종의 암호가 나오는데요. 파자(破字)라고 합니다. 글자를 풀어서 획으로 나눠 쓰거든요. 이를테면 이망정흥(李亡鄭興)’으로 쓰지 않고 목자(木子)가 망하고 전읍(奠邑)이 흥한다로 씁니다. 임진왜란을 예로 들면 임진왜란의 키워드 중 하나가 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직접 ()’로 쓰지 않고 여인(女人)이 벼()를 이고 있다.”로 씁니다. 또한 병자호란이 한겨울인 12월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눈 설() 자가 곧 병자호란을 상징하는데, 눈 설 자를 쓰지 않고 비 우()자 아래 산()이 옆으로 누웠다고 해서 우하횡산(雨下橫山)’ 같은 식으로 쓰는 게 일종의 파자법이거든요. 암호라고 할 수 있죠.


(44)

(신병주) 무신란 이후에 영조가 직접 전교를 내립니다. 반란의 원인은 결국 조정에서 당쟁만을 일삼아서 재능 있는 인재들이 등용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계속 기근이 일어나 백성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구제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당쟁만을 일삼는다는 점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해 주는 게 없으니까 백성들이 조정이 있는 것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반란군에 편입된 것이라고 하고요. 그러니 결국 반란을 일으켰던 주모자와 반란에 가담했던 백성들의 죄가 아니라 조정이 잘못한 거라고 합니다.


(46)

(신병주) 좌청룔,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고 들어 보셨죠? 푸른색이 상징하는 것은 동쪽으로, 동인을 상징하는 게 미나리입니다. 우백호라는 건 서쪽을 말하는데 백호니까 흰색인 청포묵이 서인을 뜻하죠. 그다음에 남쪽은 붉은 봉황을 뜻하니까 붉은색 소고기가 남인을 가리키고요. 또한 북쪽은 검은 거북이어서 검은색인 김이 북인입니다. 이런 식으로 동인, 서인, 남인, 북인으로 인식되는 붕당에 상징색을 부여하고 이 음식들을 고루 섞어 먹으면 붕당 간의 화합이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은 거죠.


(60)

(신병주) 어사는 공식적으로 왕의 가까운 신하로서 왕명을 받아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러 파견을 나가는 사신에 해당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임무에 따라서 진휼을 감독하는 어사는 감진어사라고 했고, 별도로 파견하는 어사는 별견 어사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 관리들의 부정이나 비리를 색출해야 할 때는 비밀리에 작업을 수행해야 해하니까 암행이라는 말을 썼죠.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도 암행어사였기 때문에 신분을 위장해야 하는 거지꼴로 나타나는 바람에 장모를 깜짝 놀라게 해 주는 대목이 나오죠.


(81)

(신병주) <실록>의 기록을 보면 두 사람의 성격이 대단히 닮았어요. 영조가 박문수를 지적하면서 나도 고집이 세지만 넌 진짜 고집이 세다.”라고 이야기하고 너는 성격이 진짜 불같다.”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영조 본인도 약간 그런 기질이 있다 보니까 서로 통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박문수가 왕 앞에서 싸우니까 다른 신하들이 박문수를 무식하다고 나무라는데 영조가 다 나라를 위하는 말이다. 무식하면 공부 좀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박문수를 옹호해 주는 말까지 합니다.


(120)

(신병주)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라는 인물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아주 중요한 열쇠를 쥔 인물이었던 거죠. 여러 자료를 보면 영빈 이씨는 상당히 원칙이 분명하고 경우가 바르던, 아주 이성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때 파국을 막을 방법은 사도세자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영조도 후에 종사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평가하잖아요. 영빈 이씨 본인도 엄청나게 괴로웠겠죠. 그래서인지 기록을 보면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의 삼년상이 끝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다가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147)

(김문식) 문학 하시는 분과 예술 하시는 분들은 문체반정을 놓고 대단히 비판적으로 보시는데, 정조가 개방적인 군주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허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치적인 입지가 있는 거고, 기본적으로는 왕위를 보존해야 하는 속성이 있죠. 또한 문체반정의 목적이 노론 세력을 약화하려는 데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당시에 정조가 금지하려 했던 패관 소품체를 쓰는 사람들이 대개 노론 계통이었거든요. 참고로 패관 소품체는 대단히 짤막하면서도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문체입니다. 정조는 그런 문체로 쓴 글들이 나왔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도 간파한 것 같아요. 계속 유행한다면 체제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본 거죠. 상당한 정치적 고려 끝에 취한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169-170)

(그날) 포도대장뿐만 아니라 대신들도 말렸다고 합니다. “서민이 상언하는 것은 매우 외람되고 난잡한 행동입니다. 상언과 격쟁을 받지 마소서.” 그러니까 정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들어러. 저 말할 것 없는 자들이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달려와 하소연하기를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하소연하듯이 하니 그렇게 만든 자가 잘못이지, 저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애민 군주의 진정성이 수백 년의 시공간을 넘어서 가슴에 감동을 안깁니다. 정말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지 않습니까?”


(192)

(그날)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어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텐데, 정조는 매우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는 몹시 나쁜 경험을 한단 말이죠. 근데 그 상처가 치유의 과정 없이 가슴에 남아서 오래도록 정조를 괴롭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힐링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정조야말로 힐링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너무 포용하는 정책들을 펼친 게 문제일지도 몰라요. 피바람을 몰고 오는 복수를 했으면 울화가 해소됐을 거예요. 화병이 안 생겼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자기 아버지를 죽게 한 사람들과 20년간 함께 나라 살림을 걱정했어요. 철천지원수랑 같은 공간에서 매일매일 20년을 만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종기가 안 생기기고 못 배기죠. 게다가 역사를 보면 독살 사례들이 있으니까 의심하는 거고요.


(210-211)

(김문수) , 그런 한계는 있습니다. 물론 민의 성장을 지도층이 받아들여 맞추면서 개혁이 계속 이루어졌으면 좋았겠죠. 우리가 조선 시대에 기대한 건 그런 개혁인데, 정조는 민의 성장으로 나타난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정책을 펴기는 했습니다. 다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버지로 말미암아 생긴 트라우마가 정조의 발목을 크게 잡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릴 때부터 죄인의 아들이라는 의식이 있었고, 자신이 왕이 되었는데도 아버지를 쉽게 복권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아버지를 복권해야겠다는, 상당히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서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진행해 가는 것이 정조로서는 상당히 부담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장애와 정치 세력 정치를 자기 마음대로 추진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247)

(김문식) 정조는 자신이 강력하게 일을 추진할 때 자기를 도울 수 있는 확실한 세력을 아들인 순조의 혼인을 통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조순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려고 결심했을 거고요. 근데 정조가 예상 밖으로 일찍 사망한 게 하나의 패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왕들의 건강이 안 좋았던 것이 또 다른 패착이었죠. 세자가 되어서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잖아요. 근데 계속해서 왕이 이른 시점에 사망해 버리고, 덕분에 후임자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왕이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다가 결국은 후손마저 끊기죠. 그래서 철종을 데려오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의 책임은 아닌 것 같아요. 안 좋은 조건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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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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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천선란 님의 신간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고, 아빠는 바로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장바구니에 넣었단다. 이제 믿고 보는 작가가 된 천선란 작가. 이번에는 단편집이구나. 아빠가 원래 단편을 즐겨 않았는데, 최근에는 단편도 단편 나름 재미가 있더구나. 이번 천선란 님의 <노랜드>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단다.

늘 그렇듯 사람 향기 풀풀 나는 SF 소설들이었어. SF 소설을 쓰려면, 새로운 세계관이나 새로운 과학 규칙을 생각해 내야 할 것 같은데, 이번 10편도 제각각 새로운 세계관이 펼쳐졌단다. 마치 10개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단다. 아빠가 천선란 님의 책은 두어 권 안 읽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찾아서 읽어야겠구나. Jiny는 천선란 님의 <나인>도 재미있게 읽었으니, 이번 <노랜드>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구나. 한번 읽어보렴. 아빠의 편지에는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 있으니 책을 먼저 읽고, 다음에 이 독서 편지를 읽기를


1.

자 그럼 10편의 선물에 대해 각각 짧게 이야기할게.

<흰 눈 푸른 달>. 크람푸스라는 외계인의 침략이 있었고, 인류는 그들을 막기 위해 늑대 유전자를 이식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고 4년 동안 전쟁 끝에 승리를 하고 외계인을 쫓아냈단다. 전쟁은 끝나고 늑대 유전자를 이식한 늑대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없애야 할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겠는데그럼 다른 모든 사람을 늑대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격리하기로 했단다. 그러다가 적대 관계에 있는 다른 우주의 행성을 먼저 쳐들어가기로 했다는구나.

명월도 그런 늑대 인간 중에 한 명이었어. 격리 생활을 하면서 훈련을 했어. 우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인이나 가족들의 면회가 있었는데, 명월은 친구인 강설이 면회를 왔어. 크람푸스가 쳐들어왔을 때, 강설의 언니는 크람푸스의 공격으로 죽고, 강설 마저 크람푸스의 공격으로 죽을 뻔했는데, 그때 명월이 나타나서 구해준 인연으로 친구가 되었단다. 강설과 명월의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하지만 찐한 우정이 그려지는 소설이란다.

<바키타> 바키타라는 외계종족이 지구로 쳐들어왔는데, 이 종족은 특이하게도 인류의 골칫덩어리 일회용품 쓰레기를 먹고 몸집을 키우는 종족이었단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바키타와 공존하면서 다시 일회용품을 맘놓고 쓰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바키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공구조물도 먹고, 인간을 지배하고 사육하려고 했단다. 바키타들이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인간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간 인간들그들과 공존하다가 그들의 가축 신세가 된 사람들. 하지만 스스로 문명 인간이라고 불렀어. 그들을 떠나 숲 속으로 숨어 들어가 살다가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다가 육식에 유리한 턱을 갖게 진화한 숲 속의 인간들.. 끝이 어떻게 되었더라

<푸른 점> 제목만 들어도 칼 세이건의 글에서 소설 제목을 따 온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우주에 나가서 지구를 보면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인다고 했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게 되는 인류그 중 한 우주선을 이끄는 시에라 박 함장. 토성의 고리 근처의 웜홀을 앞두고 우주선 외부 작업을 하다가 푸른 점이 아닌 먼지에 뒤덮인 지구를 보게 되었단다. AI인 러스가 진실을 알려주었어. 지구가 옐로스톤의 화산으로 멸망했다고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인류를 구출하러 지구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시에라. 하지만 러스는 가능성이 없다고 했어. 그리고 지구가 멸망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했단다. 웜홀을 지나기 직전, 우주선에 있는 사람들은 지구의 마지막 모습, 아름답고 창백하게 빛나는 푸른 점을 보게 된단다. 그들은 그것이 지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홀로그램 상의 푸른 점이었단다.

….

<옥수수밭과 형> 푸코는 열한 살이고 자폐아의 천재였단다. 그런데 푸코를 아주 잘 보살펴 주었던 형이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며칠 뒤 옥수수밭에서 형을 다시 만났어. 그것도 건강한 진짜 형이었어. 이상한 것은 그 전에 있었나 긴가민가한 발목에 새겨진 9라는 숫자. 또 얼마 뒤, 부모님은 발목에 13이라고 써 있는 형을 데리고 와서 같이 지낼 거라고 했어. 옥수수 밭에서 만난 9번 형은 13번 형을 없애고 자신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단다. 그런데 며칠 뒤 이번에는 발목에 2번이 새겨진 형을 옥수수밭에서 또 만났단다. 처음에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은 진짜 형이었을까? 그 형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지 발목에 숫자가 써 있었던 건 아닐까? 형이 도대체 몇 명인 거야? 혹시 푸코의 발목에도 숫자가 써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 > 주인공은 해리성 인격 장애를 겪었단다. 몸은 하나인데, 영혼이 둘이었어.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약물을 먹고 그렇게 되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선천적으로 영혼이 둘이었단다. 둘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로 서로 부르기로 했어. 재는 엄청난 천재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제는 무척 평범한 사람이었어. 가끔 어쩔 수 없이 재처럼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들킬 뻔한 적도 많았어. 둘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메모로 의사 소통을 했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시간에서 잠에서 깨어난 제. 그러니까 그 시간은 재가 일어나 활동할 시간인데 제가 깨어난 거야. 재와 제에게는 동생 선이 있었단다. 그런데 선에 제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어. 재는 연구를 거듭하여 제를 죽이고 몸을 온전히 자기 혼자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했어. 선이 제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선은 재보다 제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선은 재가 알아낸 그 방법을 제에게 알려준 거야. 제는 이제 재를 없애고 온전히 자신이 몸을 다 차지할 수 있었어. 과연 제의 선택은? 이 소설이 아빠는 가장 마음에 들었단다. 대단한 상상력이시네, 이러면서 읽었어.

<이름 없는 몸> 한 고립된 마을이 있었어. 한쪽은 독암산이라는 산으로 막혀 있고, 나머지 3면은 바다로 둘러 쌓여 있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여서 먹고 인육도 먹는 것 같았어.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노리는 사람들도 많았어. 주인공 를 임신했던 엄마는 임신을 안 한 척하고 를 몰래 낳고, 몰래 키우고 해서 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었단다. 나중에 엄마가 죽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고 하러 그 마을에 다시 찾았는데, 그곳은 좀비들의 마을이 되어 있었단다. , 혹시 좀비 장편 소설의 프리퀄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전에 흡혈귀를 소재로 한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쓰시기도 했는데, 이젠 좀비 소설도 쓰시다니.. 영역 확장이 반갑더구나

<에게> 죽고 나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이들의 아주 짧은 소설이었단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우리도 예전에 갔었던 강화도 전등사가 배경이란다. 어렸을 때부터 전등사에서 자란 효원. 지구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 되어서 우주선들이 인류를 다른 행성으로 실어 날랐는데, 효원의 부모님과 같은 효종 스님은 몸도 불편하고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우주선을 타지 않기로 했단다. 마음씨 착한 효원도 효종 스님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지 않겠다고 했어. 둘만 있는 절에 한 새가 날아왔는데, 자세히 보니 몇 년 전에 치료해준 새였어. 그 새가 다시 왔다는 소식을 효종 스님도 기뻐하실 것 같아서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잠을 달게 주무시고 계셔서 이야기하지 못했어. 그런데 그 다음날 효종 스님은 일어나지 못하시고 열반에 드셨단다. 얼마 후 다른 스님이 헬기를 타고 오셨단다. 어떤 새가 염주를 물고 찾아왔다고그래서 마음에 걸려 다시 절을 찾아왔다고효원은 다시 헬기를 타고 같이 떠났단다. 동화 같은 이야기로구나.

<두 세계> 황유라와 황유진은 쌍둥이였단다. 유진은 늘 이 행성에 잘못 왔다고 이야기했는데,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단다. 유라는 노랜드라고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가상현실과 종이 책을 융합한 책을 만드는 일종의 출판사로 볼 수 있어. 그런데 어느날 크래킹 사고가 발생해서, <아락스>라는 책의 결론이 바뀌었다는 거야. <아락스>라는 책의 주인공은 아락스인데, 그 아락스가 소설 속에서 사라졌다고 했어. 확인해 보니 AI였던 아락스는 능력을 발휘하여 현실 세계의 사람의 영혼으로 이식한 거야. 그러니까 가상 현실을 떠나 현실 세계로 온 거지. 유라는 아락스가 이식한 신규영이라는 사람, 아니 아락스를 만났단다. 신규영이라는 사람의 몸에 들어 앉은 이락스. 신규영은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보니, 아락스는 그 또한 지금 세계의 밖으로 갔다고 했단다. 우리는 이 세상이 다 인줄 알고 살지만, 우리 세상을 들여다 보는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규영은 그 세계로 갔다는 거야.. .. 그럴 법 하구나. 유라는 혹시 유진도 자살한 것이 아닌, 밖의 세계로 간 것은 아닌가, 생각했단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이인은 외계인 침입에 맞서 싸웠던 군인이야. 포르투갈 해변에서 싸웠어. 100여 일 동안 이어지던 전쟁은 끝이 나고 외계인은 물러갔어. 그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다. 전쟁이 끝나고 다들 자기 나라로 갔는데, 이인은 그냥 포르투갈에 남았어. 어느날 해변도로를 운전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중상을 입었어. 마침 붕대가 있어 응급조치를 했지만, 절벽은 너무 높아 오를 수 없었고, 외부인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고, 먹을 것도 없었어.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어. 며칠 뒤 그곳에서 지구에 남아 있던 외계인을 만났어. 그 외계인은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어. 자신의 존재를 비밀로 해주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어. 이인의 친구의 꿈에 이인의 모습을 나타나게 해주었어. 그래서 이인의 친구를 그곳으로 왔고, 이인은 구출되었단다.

….

읽은 지 워낙 오래 되었고, 급하게 이야기한다고 앞뒤 줄거리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거야. 이상하다고 하지 말고 스포일러 예방 차원이라고 생각하렴.^^ 너희들에게 독서 편지를 쓰다 보니, 다시 한번 소설의 스토리들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단다. 그럼, 천선란 님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며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안내 받은 장소에는 사람이 많았다.

책의 끝 문장: 이인은 이제 그 사람이 보이는 대신 언제 어디서나 딱-- 청아하게 퍼지는 새소리를 들었다.


우주는 공(空)이다. 존재에는 실재가 없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실재하지 않기에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그것을 기적이라 부를 뿐이다. - P296

세계와 자신의 불합치. 어떻게든 이 행성에서 살아갈 이유를 만드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끊임없이 이 행성의 출구를 찾는 존재. 합일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안. 이해 받을 수 없다는 외로움이 굳어져 만든 마음의 외벽. 동시에 이 세상에 입장해 꼬박 스물네 해를 넘긴 후에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세상과 이 애의 관계였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애에게도 길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애의 우물은 왜 생겨난 것일까. 유라는 고민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그 애조차 찾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애초에 유라가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 P333

"저는 언제나 더 넓은 세계를 갈망했습니다. 그 욕망만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머물고 있는 세계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제 욕망은 오로지 그 세계만을 꿈꿨습니다. 제 바람은 언제나 바깥에서 불어왔습니다. 아무리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간다 한들 그 세계에 발붙이고 있는 한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저는 언제나 괴로웠습니다. 당신은 제 고통을 모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 그 세계보다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갈 수 없는 그 고통 말입니다. 제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저는 욕망을 좇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은 세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제 그 욕망이 그 세계를 벗어나 더 큰 세계를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가 오롯이 저에게 고통만 준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 P351

삶과 죽음의 경계는 슬픔의 척도 같았다. 얼마만큼 슬프고 괴로운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삶에서 죽음으로 기꺼이 넘나들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거짓된 고통, 거짓된 슬픔 혹은 크지 않은 고통, 크지 않은 슬픔이 되었다. 고통과 슬픔, 좌절과 모멸, 증오와 살의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누간가 살라고 말했다. 죽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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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07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선란 작가는 아직 못읽어봤는데 이 글 읽으니 읽어봐야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한국문학에서 sf소재의 글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거 같은데 소재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좋은거 같아요.

bookholic 2022-09-08 00:14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젊은 SF 작가들을 응원합니다 ㅎㅎ
그리고 바람돌이 님도 저랑 취향이 비슷하길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