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그게 바로 보통 씨와

과학자가 행동하는 방식에 존재하는

한 가지 본질적인 차이점이야.

보통 씨는 자기가 이 좋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언제나 감에만 의지하려 할 거야.

하지만 말이야,

모든 은 반드시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해.


(91)

명심할 것! 진보는

전통은 존중하되

맹목적으로

100퍼센트 따르지는 않을 때

이루어진다!


(139-140)

따라서 현대 수학의 한 가지 경향은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생각을

명확하게 밝혀

그로 인해 야기된

편견과 거짓 생각을 제거하는 것 같아.

명심할 것! 작위적인 추론에

근거가 있는지를 밝히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자!


(171)

아주 괴상하고

완전히 분해되어 있는

현대적인 무엇을

찾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면 안 돼.

아주 깊숙이 자리 잡은

편견은 기이한 새로움보다

훨씬 나쁠 수 있으니까.


(183)

2 더하기 2

어떤 대수 문제이냐에 따라

4가 될 수도 있고

4가 아닐 수도 있어.

대수나 기하학은

모두

사람이 만든 거야.

그러니까

무엇보다 뛰어난

절대적인 건 없는 거야.

그리고 절대 진리를

표상하는 것도 없는 거야.

하지만

그중에 전부가, 혹은 많은 것들이

엄청나게 유용하기는 해.

절대 진리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어쩌면 영원히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몰라.


(186)

그러니까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사용해

가장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내야지

자신이 절대 진리를 안다고

으스대면 절대 안 되는 거야.


(216-218)

현대는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1) 사람은 자신이 아주 창조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어.

훨씬 대담해진 사람은

자신이 머물던 활동영역을 벗어나

훨씬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나게 됐지.

(2) 당연히 이전보다

무수히 많은 다양성이

생겨났어.

(3)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사람은 뭔가 아주 이상한 것들을

발견했어.

그리고 낯선 것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지.

(4) 사람은 추상적인 것들에

점점 더 흥미를 느끼게 됐어.


(229)

다른 사람 의견에

동의는 할 수 있지만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해.

다양한 관점을

비교해보지 않으면

불변자라는 말은

할 수조차 없어.

고립주의와 편협함을

우습게 만들고,

가장 중요한 본질을 형성하는

불변자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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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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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을 읽었단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들은 대체로 재미가 있었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작품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단다. 인터넷 서점을 들러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202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카지노 베이비>를 읽었단다. 지은이는 강성봉이라는 분인데, 이번 <카지노 베이비>가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잡지 기자로 일하시면서 글쓰기의 내공을 기르신 것 같구나. 그리고 어렸을 때 잠시 살았던 곳을 모티브라고 한 것 보니, 정선에서 사셨던 것 같구나. <카지노 베이비>라는 소설 속에서 카지노가 있는 마을의 이름을 '지음'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하였지만,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정선을 떠오르게 될 거란다.

탄광 산업이 저물고 더 이상 그 마을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강원랜드를 유치해서 명백을 이어가게 된 정선. 아빠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면 그것을 반대했을지 찬성했을지 쉽게 결정을 못하겠더구나. 반대쪽으로 좀 기울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아빠도 오래 전에 친구들과 정선 인근에 있는 산에 갔다가 강원랜드에 가 본적이 있어. 정식 사업으로 하는 곳이긴 한데, 카지노가 아닌 도박판 특유의 찌든 냄새가 났던 기억이 있단다. 아빠는 일행과 함께 그곳이 어떤 곳인가? 하고 잠깐 들렀던 곳이고 도박의 확률을 믿지 않는지라, 그 이후에는 가 보질 않았단다. 그런 강원랜드와 주변 마을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바로 <카지노 베이비>라는 소설이란다. 지은이 강성봉 님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쁘지 않았단다.


1.

지음이라는 곳은 예전에는 탄광으로 유명했던 도시이지만, 지금은 카지노로 유명한 곳이란다. 책의 앞 부분에 지음이라는 마을의 구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림으로 설명해주고 시작했단다. 서쪽에는 카지노인 랜드와 리조트가 있고, 지장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지상산에 절이 있어서 이 서쪽을 웨스트 부다스라고 불렀단다. 동쪽에는 지음 읍내가 있고, 교회, 도서관, 시장 등이 있었는데 교회가 있어서 이 동쪽을 이스트 지저스라고 했어. 그리고 웨스트 부다스와 이스트 지저스가 겹치는 중간 지역이 있는데, 이 곳에는 전당포와 모텔 등 숙박시설들이 모여 있어서 슬립 시티라고 불렀단다.

...

오래 전에 갓난 아이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갔던 어떤 남자가 있었단다. 그 남자는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고, 아이는 전당포에서 자라게 되었고, 어느덧 열 살이 되었어. 그 아이의 이름은 동하늘, 성은 동이고 이름은 하늘이었어. 전당포의 사장 할머니와 딸은 하늘을 잘 보살펴 키웠단다. 돈에 찌든 이들만 보다가 어린 갓난 아이를 보았으니 얼마나 귀엽고 예뻤겠니. 하늘은 전당포 사장할머니를 할머니로 부르고, 사장할머니를 엄마로 불렀어. 그리고 사장할머니의 아들도 한 명 있는데, 동하는 삼촌이라고 불렀어.

할머니는 오래 전에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외지에서 지음에 왔다고 했대. 할아버지는 탄광 일을 했고.. 당시 탄광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였대. 그런데 탄광 산업이 내리막에 들어섰고, 결국 폐광까지 하게 되었대. 아무런 정부는 대책 없이 폐광하게 되자, 지음 탄광에 다니던 사람들은 시위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경찰차에 치인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후유증으로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그 이후 할머니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어. 처음에는 다방을 차렸어. 당시 88 서울 올림픽이 열릴 즈음이라서, 올림픽 다방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수입이 괜찮았단다. 그리고 랜드가 들어서고 나서는 전당포를 차렸는데, 당시 2002 월드컵이 열릴 즈음이라서, 월드컵 전당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전당포도 수입이 괜찮았단다. 할머니는 지음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챙기셨어. 쪽박 공원이라는 곳에 잇단 자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굿이라도 해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할머니였단다.

엄마는 예전에는 랜드에 있는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돈을 받고 손님의 아기들도 봐주곤 했는데, 그 일로 잘리고 지금은 공공근로자 자격으로 지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단다. 삼촌은 마지막 광부로 일했던 사람인데, 카지노가 생기고 나서 카지노에 출입을 했지. 그랬다가 돈을 잔뜩 잃고 지금은 백수로 지내고 있었어.

...

할머니가 운영하는 월드컵 전당포 앞에는 용사장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스피드 전당포가 있었어. 용사장은 홀아비에 아들만 셋이 있다고 하는구나. 월드컵 전당포는 아주 오래된 전당포인데 반해 앞집 스피드 전당포는 새로 건물을 올려 최신식으로 운영하는 전당포란다.


2.

하늘은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 울긋불긋한 환상을 보기도 하고, 낯선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어. 그곳이 랜드에 있는 카지노인지 무척 궁금했단다. 할머니나 엄마한테 카지노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 안 해줄 것 같고, 가끔 들르는 스피드 전당포의 용사장님한테 부탁을 했어. 그때 용사장님과 친구들이 전당포 2층에서 불법 도박을 하고 있었는데, 하늘의 부탁을 흥미롭게 생각했어. 카지노는 하늘처럼 어린 아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거든. 용사장님과 친구들은 하늘이가 카지노에 들어갈 수 있네, 없네를 두고 내기를 했단다. 그래서 용사장님과 친구들은 하늘을 데리고 카지노의 비밀 통로를 통해 카지노 안으로 데리고 갔단다. 하늘이는 그곳에 환상에서 보던 그곳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갑자기 랜드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 발생했단다.

옛날 탄광에 세운 건물이라 그런 것인지 인근 골프장 개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싱크홀이 생겨서 건물은 그래도 땅속으로 무너져 내렸단다. 그때 하늘이도 실종되었어. 그날부터 할머니는 하늘이를 찾느라 잠도 자지 않고 여기저기 찾아 다니셨단다. 다행히 하늘이는 죽지는 않고 다치기만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할머니도 하늘이를 찾느라 고생하다가 병이 나서 같이 입원을 했단다.  할머니의 병은 생각보다 큰 병이었어. 숨기고 있던 치매도 더 심해졌어. 그리고 얼마 못 가서 할머니는 돌아가셨단다.

전당포의 사장이자 이 집의 기둥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아직 철 든 삼촌과 엄마가 할머니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랜드 건물이 무너져서 카지노도 못하니 전당포도 당분간 수입이 없을 텐데.. 그런데 할머니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떠나셨단다. 자신이 치매 걸린 걸 알았을 때부터 준비를 하신 것 같아. 부동산을 통해 이자를 받아서 생활비를 쓸 수 있게 했고, 하늘이가 호적에 올라가 있지 않아 학교를 못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도 다 조치를 해서 하늘이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이상하게 생겨 쓸모 없어 보이는 땅도 하나 사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제 2 랜드 부지였던 것이란다. 소위 말하는 알박이용 땅으로 랜드 공사가 시작되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땅이었단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하늘 나라로 가셨던 것이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열 살 하늘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전당포 사장 할머니가 주인공인 듯싶더구나. 지음이라는 마을의 발전과 쇠락을 함께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여기까지가 <베이비 카지노>의 이야기란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인 카지노 인근에 살면서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살아가긴 하지만, 가장 인간미를 보이는 주인공들의 역설적인 삶을 재미있게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지음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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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인도 우화집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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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류시화 님을 좋아한단다. 류시화 님의 글들도 좋아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계신 것 같아 좋아하지. 류시화 님은 오래 전부터 인도 여행을 자주 하셨어. 인도라고 하면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여 그로 인한 사회 문제가 많은 나라, 여러 종교들이 시작한 나라, 노상 강도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여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 영어를 모국어로 채택한 이후 소프트웨어로 IT 강국이 된 나라 등으로 아빠는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 내용들이 참 연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르게 이야기하면 여러 다양성이 있는 나라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위에서 이야기한 것은 아빠가 생각하고 있는 인도의 이미지를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아빠가 잘못 알고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어. 인도라는 나라를 가본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한 이미지 외에 명상의 나라이자 지혜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류시화 님의 책들을 통해서 알게 된 인도의 이미지란다. 류시화 님은 인도 여행을 자주 하시고 기행문도 여럿 쓰시고, 인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자주 소개해 주었단다. 아빠가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인도의 또 다른 이미지를 하나 만들게 된 것이지. 이번에 읽은 류시화 님의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라는 책도 인도 관련된 책이란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우화, 신화 등을 모은 책이란다. 책이 좀 두꺼운데 인도의 우화가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 긴 생각을 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고 재미있어서 너희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너희들이 공부하는 시간이 늘면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말이야. 류시화 님은 이 책의 지은이는 자신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셨어. 자신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엮었을 뿐이라고 말이야. 류시화 님 덕분에 좋은 이야기들을 만나고, 그로 인해 힐링도 하고 깊은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단다.


1.

읽을 때는 몰랐는데, 책 소개를 다시 보니 이 책에 10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심심할 때 책을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짤막한 이야기를 하나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책에서 실린 이야기 몇 편을 소개해 볼게. 자신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아이를 혼내는 선생님. 그 아이는 자신이 배운 산스크리트어의 책의 첫 문장만 알고 있다고 했고, 어쩌면 두 번째 문장도 배운 것 같다고 했어. 공부한 양이 적다고 더 혼내시는 선생님. 그런데 그 아이가 배웠다고 하는 문장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단다. 무조건 많이 아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야. 지혜로운 삶의 진리 한두 개만 알아도 나쁘지 않아.

======================

(26)

그때 구루의 시선이 소년이 배웠다고 말한 첫 번째 문장에 꽂혔다. 인도의 초급 교과서는 고양이같은 단어들로 시작하지 않는다. 인생의 조언으로 시작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책의 알파벳 뒤에는 다음과 같은 첫 문장이 적혀 있었다.

화내지 말라. 결과 흥분하지 말라. 이성을 잃지 말라.’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이것이었다.

진실을 말하라.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누군가를 이기려는 욕망을 갖게 되는 순간 그 재능으로는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는 글도 좋았단다. 경쟁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그런데 그것이 쉽지는 않더구나.

======================

(56)

그대에게는 뛰어는 음악적 소질이 있는데, 단 한 가지가 문제다. 누군가를 이기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훌륭한 음악성과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대의 가슴은 음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욕망은 그대를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이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탄센과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탄센에게는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그가 계속 이기는 이유이다.”

======================

어느 골프장에 원숭이가 들어와서 말썽인 적이 있단다. 원숭이가 골프공을 집어 던지거나 공을 들고 도망가기도 했어. 골프장에서는 원숭이를 내쫓으려고 온갖 방법을 사용했지만 소용이 없었지. 그리고 누군가 내놓은 해결책으로 그 골프장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구나. 그 해결책은 원숭이를 골프의 룰에 포함시키는 것이었어. 친 공을 원숭이가 잡아서 다른 곳에 던지면 그 곳에서 다음 공을 치고, 원숭이가 공을 집어 홀에 넣으면 홀인원이 될 수도 있고 말이야. 그 골프장에서는 예외적인 상황이 생겨서 골프에 더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지. 마치 우리 삶처럼 말이야. 우리 삶이 우리 생각한대로만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 원숭이가 있는 골프장처럼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그걸 취소하고 다시 할 수도 없는 게 우리 인생이잖니. 이 원숭이 골프장 우화를 통해서 그런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겠구나.

======================

(205-206)

삶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진행될 의무가 없다. 기차가 지연되고, 차는 진창길에서 고장 나며, 면접 일정은 틀어지고, 멋진 계획은 엉망이 된다. 잘나가고 있던 중에 갑자기 원숭이가 튀어나와 공을 홀컵에서 멀리 던져 버리고 그동안의 노력이 무효화된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하고,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며, 운명을 탓한다. 자신이 이 경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먹는다.

======================

….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간혹 회피해보려고 하는 적이 있단다. 아빠도 일생생활이나 회사생활에서 그런 적이 있어. 그런데 결국에는 더 큰 문제가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문제를 회피하지 말자고 하면서, 또 어려운 문제에 닥치면 회피할 생각부터 하곤 했단다. 그런 아빠에게 경종을 울리는 문구가 하나 있어 적어본단다.

======================

(285)

문제에 맞서기보다 회피했을 때 문제는 더 커지고 단단해져 우리를 위협한다. 자갈과 모래 정도의 문제를 바위의 크기로 스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

,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이야기 몇 개를 소개하는 것으로 맺을게. 아빠가 가끔씩 이 책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고 바쁜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도록 해볼게. 장담은 못하지만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었다.

책의 끝 문장: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작가이지만, 과녁을 맞히는 소년의 일화를 포함해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 속에서 주제를 재발견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그대는 그대의 이야기이다. 그대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진리를 그대의 이야기에 담아야 한다. 그대의 진리를 곧바로 주장하면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고집 세고 에고가 강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대의 진리에 그대만의 이야기로 옷을 입혀라. 그때 그 진리는 설득력을 지닐 것이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먼저 삶을 경험해야 한다. 이야기는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P13

"나는 특별한 진리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목발을 집어던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대들도 나처럼 목발을 내려놓으면 된다. 나에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다." - P86

차이는 각 개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 각자가 다른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일어난다. 이것은 또한 각 개인이 어떤 성품인가에 달려 있다. 선한 사람은 그가 만나는 사람의 선한 자질을 보려 하고,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악한 면만 본다. 이것은 각 개인의 타고난 자질이다. - P252

문제로부터 영원한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들을 신중하게 다뤄야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잠들지 못해서는 안 된다. 낙타를 자신에게 묶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도 낙타에게 묶인 것이다. 문제들에 맞닥뜨리면서도 깊이 휴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타들이 앉아 있든 서 있든 방해 받지 않고, 기나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유목민들처럼. 여행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앞에 놓인 길이 아니라 신발 속 모래이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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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7)

내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서 고래 특유의 강한 생명력이 지닌 진귀한 가치, 두꺼운 벽과 널찍한 내면이 지닌 진귀한 가치를 알 수 있다. , 인간들이여! 고래를 칭송하며 본받을지니! 그대들도 얼음물에서 온기를 유지하라. 그대들도 세상에 살되 그곳의 일부가 되지 마라. 적도에서는 서늘하게 지내고 극지에서는 피를 돌게 하라. 성베드로 성당의 커다란 돔 지붕처럼, 그리고 커다란 고래처럼, 오 인간들이여! 사계절 어느 때건 그대만의 체온을 유지하라.

하지만 이런 미덕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쉽고 또 부질없는가! 세상에 성베드로 성당처럼 돔을 얹은 건축물이 얼마나 되며, 고래만큼 큰 생물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78-79)

일단 구 머리의 일반적인 차이는 첫눈에 확연히 느껴진다. 확실히 둘 다 엄청나게 크지만, 향유고래는 수학적인 대칭이 분명한 반면, 안타깝게도 참고래에게서는 그걸 찾아볼 수 없다. 향유고래의 머리를 보면 전체적으로 위엄이 넘친다는 점에서 향유고래의 어마어마한 우월함을 무심코 인정하게 된다. 이번 경우에도 오랜 연륜과 풍부한 경험을 나타내는 정수리의 희고 검은 점들 때문에 위엄이 한결 고조된다. 간단히 말해, 향유고래는 고래잡이들 사이에서 <회색 머리 고래>로 통하는 바로 그 고래다.


(88)

저기 있는 향유고래의 표정이 보이나? 이마의 긴 주름이 조금 지워진 듯할 뿐, 죽을 때의 표정 그대로다. 놈의 넓은 이마에는 죽음을 바라보는 무심한 사유에서 유래된 대초원 같은 평온함이 깃든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머리의 표정을 살펴보라. 공교롭게도 뱃전에 짓눌려 턱을 단단히 감싸게 된 저 놀라운 아랫입술을 보라. 머리 전체가 죽음을 바라보는 엄청난 실천적 결의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 내가 보기에 참고래는 스토아 철학자였고, 향유고래는 플라톤주의자였다가 말년에 스피노자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141-142)

고래는 주기적으로 꽉 차게 한 시간이나 그 이상씩(심해에 있을 땐) 단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은 채,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공기를 한 숨도 들이마시지 않고 체계적으로 살아간다. 기억하겠지만 고래에게는 아가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고래의 갈비뼈 사이, 그리고 척추 양쪽에는 국숫발 같은 관이 크레타 섬의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고래가 수면에 나왔다가 잠수할 때면 산소가 공급된 혈액이 이 관에 가득 찬다. 그렇기 때문에 물 없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가 보조 밥통 네 개에 나중에 마실 여분의 물을 채우듯, 고래는 천 길 물속에서 한 시간 이상 버틸 수 있는 여분의 생명력을 몸에 비축하는 것이다.


(181)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는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모든 인간의 생각과 사상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들이 지닌 신앙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겉만 번지르르하게 남의 말을 주워섬기는 사람들에게 철학자의 생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커다란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그대 또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265)

내가 엄밀히 계산하고 스코스비 선장이 측정한 것을 어느 정도 참고한 바에 따르면, 몸길이가 18미터인 초대형 그린란드고래는 무게가 70톤이고, 내 엄밀한 계산에 따르면, 초대형 향유고래는 몸길이가 25~27미터 사이며 몸통 둘레는 12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데, 이런 고래라면 무게가 적어도 90톤은 나갈 것이다. 열세 명 정도의 몸무게를 더했을 때 1톤이 된다고 본다면 이 고래 한 마리가 11백 명이 사는 마을의 주민을 전부 합쳐 놓은 것보다 훨씬 무겁다는 얘기다.


(270)

고래에 대한 생각을 적는 것만으로도 나는 녹초가 되고, 모든 학문을 총망라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태어날 고래와 인간과 마스토돈의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지상에 세워졌던 제국의 흥망성쇠와 우주 전체 및 그 저변까지 전부 포함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없는 방대함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크고 분방한 주제의 덕분이란 이러하며, 이렇게 엄청난 것이다. 우리도 그 크기만큼 확대된다. 위대한 책을 쓰려면 위대한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벼룩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은 많겠지만, 벼룩을 다뤄서는 결코 위대한 불후의 명작이 나올 수 없다.


(300)

발끈해서 호기를 부리면서도 말은 듣는군. 대단히 신중한 용기였어!” 스타벅이 나갔을 때 에이해브가 중얼거렸다. “녀석은 뭐라고 했지? 에이해브더러 에이해브를 경계하라고? 새겨들을 말이군!” 그러더니 무심코 구식 소총을 지팡이 삼아 이마에 주름을 잔뜩 잡은 채 작은 선실을 오락가락했지만, 잠시 후 이마의 깊은 주름을 펴고는 소총을 총걸이에 다시 걸고 갑판으로 나갔다.


(324-325)

, 풀이 무성한 오솔길이여! , 영혼 속에 펼쳐진 끝없는 상춘의 풍경이여. 비록 지상의 삶은 지독한 가뭄에 바싹 마른 지 오래지만, 그대 안에서 사람들은 이른 아침 클로버 밭의 어린 망아지마냥 뒹굴고, 무상한 찰나 동안 영원한 생명의 차가운 이슬이 몸을 적시는 것을 느낄 터다. 신이여, 이 평온함의 축복이 오래 지속되게 하시옵소서. 하지만 뒤엉키고 뒤엉킨 삶의 가닥들은 씨실과 날실로 짜이고, 평온은 폭풍을 만나며, 폭풍은 반드시 평온을 가로지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 꾸준한 전진 같은 건 우리네 삶에 없다. 우리는 정해진 단계를 점진적으로 밟아 가다가 마지막에야 한 번 쉬는 게 아니다. , 아무것도 모르던 유아기, 무작정 맹신하는 소년기, 청년기의 의심(모두에게 공통된 운명), 이어서 회의를 거치고 불신의 단계를 지나 마침내 <만약에>를 곰곰이 따져 보는 성년기에 머무는 게 아니다. 일단 이 과정을 다 지나면 우리는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해서 유아기와 소년기와 <만약에>를 영원히 돌고 돈다. 우리가 더는 닻을 올리지 않을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지칠 대로 지친 자들이 끝내 싫증 내지 않을 세계는 어느 황홀한 창공을 떠도는가? 버려진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 숨었는가? 우리의 영혼은 아이를 낳다가 고아로 암기고 죽은 미혼모 같고, 생부의 비밀은 어미와 함께 무덤에 묻혔으니, 그걸 알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436)

지금껏 바람을 정복한 자가 있었던가? 언제나 싸움에서 제일 마지막에 제일 통렬한 공격을 날리는 것은 바람이니, 바람에게 창을 겨누고 달려가 봐야 그냥 통과할 뿐이다. ! 비겁한 바람은 벌거벗은 사람을 때리면서도 반격은 한 대도 맞지 않는다. 심지어 에이해브라도 그보다는 용감하고 그보다 더 고결하다. 바람에게도 몸뚱이가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을 가장 짜증 나고 분노하게 하는 것들은 전부 하나 같이 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물질로서는 몸이 없어도 작인으로서는 실체가 있다. 거기에 가장 특별하고, 가장 교활하며, 아아, 가장 사악한 차이가 있으니!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아니 아예 맹세하지만, 바람은 더없이 거룩하고 우아한 기운을 지녔다.


(450-451)

나는 태양에 등을 돌린다. 어찌된 일인가, 타슈테고! 망치 소리를 들려 다오. , 불굴의 세 첨탑이여. 부러지지 않는 용골이여. 오직 신만이 빼앗을 수 있는 선체여. 굳건한 갑판과 당당한 키, 북극성을 가리키는 뱃머리, 죽음의 순간에도 거룩한 배여! 나를 두고 비명에 가야 하는가? 못난 난파선의 선장에게 허락되는 마지막 자긍심마저 나는 가질 수 없단 말이가? ,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 이 순간 나는 인생 최고의 슬픔 속에 내 인생 최고의 위대함이 들어 있음을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삶에 내내 몰아치던 세찬 물결이여, 가장 먼 곳에서 달려와 나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파도를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를 향해 돌진하고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 한복판에서라도 너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 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 내 마지막 숨을 너에게 뱉어 주마. 모든 관과 관 받침대를 한 웅덩이에 가라앉혀라! 어느 것도 내 것일 수 없으니. 빌어먹을 고래여, 내 갈가리 찢길지언정 네 몸에 묶여서라도 너를 추격하리라! 그러니, 창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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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3-04-22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인생 책 중의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 같은 멋진 말들이 많아서 좋더군요.

bookholic 2023-04-22 23:38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밑줄 그을 내용이 많았어요...
저는 박균호 님의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읽기 수업>라는 책에서 ‘스타벅스’가 <모비 딕>의 일등항해서 ‘스타벅’에서 따온 것이란 것으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 중 하나랍니다 ㅎㅎ
즐거운 일요일 되시고요~~~
 














(42)

그 동기들 중에 으뜸은 엄청나게 커다란 고래라는 압도적인 존재 자체였다. 경이롭고 신비한 그 괴물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런가 하면 고래가 섬만 한 덩치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사납고 먼 바다, 형용할 수 없는 고래의 위협, 거기에 파타고니아 인근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목격담의 경이로움이 더해지면서 소망을 부추겼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이 유혹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머나먼 것들을 향한 끝없는 갈망에 시달린다. 금단의 바다를 항해하고 야만의 해안에 오르고 싶다. 나는 좋은 걸 외면하지 않으면서 공포에 민감하고, 그러면서도 상대가 허락만 해준다면 그들과 정겹게 어우러질 수 있는데, 자신이 사는 세상의 모든 거주민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85-86)

그래, 고래잡이는 죽음을 불사하는 일이야. 입술 한 번 달싹할 틈 없는 순간적인 혼란 속에서 사람들을 영원에 던져 넣지. 하지만 그다음엔? 내가 보기에 우리가 생사의 문제를 대단히 잘못 생각해 온 듯하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승에서 그림자라고 부르는 게 실은 나의 실체인 듯하다. 또 영적인 것을 보는 우리는 물속에서 태양을 보며 탁한 물을 더없이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굴조개와 흡사하다. 내 생각엔 몸뚱이는 더 나은 실체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몸뚱이 따윈 누구라도 가져가라지. 가져가라니까. 이건 내가 아니라고. 그러니 낸터컷을 위해 만세삼창을 부르자. 그리고 배나 몸뚱이에는 언제 구멍이 뚫리더라도 상관없어. 내 영혼은 제우스가 온다 해도 뚫을 수 없을 테니까.


(110)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친구끼리 흉금을 털어놓기에 침대만 한 곳은 없다. 부부는 침대에서 서로에게 영혼의 밑바닥까지 보여 주고, 나이 든 부부는 동이 트도록 침대에 누워 옛날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와 퀴퀘그도 그렇게 편하고 사랑스러운 한 쌍이 되어 마음의 밀월을 즐겼다.


(191-192)

폭풍우에 뒤집혀 바람이 불어 가는 해안을 따라 하릴없이 떠밀리는 배처럼 그에겐 그게 어울린다고만 해두자. 항구는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항구는 자비롭다. 항구에는 안전과 안락, 난로, 저녁 식사, 따뜻한 담요, 친구, 우리 인간에게 다정한 모든 것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돌풍 속에서는 항구가, 육지가, 배에서 가장 긴박한 위험이 된다.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 달아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뭍에 닿았다간, 용골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충격에 몸서리칠 것이다. 그리하여 배는 돛을 모두 펼치고 온힘을 다해 해안에서 멀어지려 한다. 그러면서 배는 고향으로 불어가려는 바람에 맞서 싸우고, 파도가 휘몰아치는 망망대해로 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피난처를 찾겠다며 필사적으로 위험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유일한 친구가 가장 가혹한 원수라니!


(197)

남반구의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문명사회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 고래잡이들이었다. 처음에 네덜란드 사람이 우연히 발견한 뒤에도 다른 배들은 그곳을 미개한 질병의 온상으로 여겨 오래도록 멀리했지만, 포경선만은 그곳에 다가갔다. 지금의 막강한 식민지를 낳은 진정한 어머니는 포경선인 것이다. 게다가 식민 정책을 추진하던 초창기에, 기아에 시달리는 정착민들이 천우신조로 인근에 닻을 내린 포경선에서 호의로 나눠 준 건빵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폴리네시아의 무수한 섬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선교사와 상인들에게 길을 터주고 더 나아가 초창기 선교사들을 첫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 포경선에 경의를 표한다. 이중으로 문을 걸어 잠근 일본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날이 온다면, 그 공로는 전적으로 포경선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포경선이 바야흐로 그 문지방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203)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가 지금껏 침착하게 맞섰던 수많은 위기의 잔상이 아직도 어른거리는 것 같다. 인생 대부분을, 말로 채운 무기력한 책이 아니라 몸으로 이야기하는 팬터마임으로 살아온, 착실하고 충실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렇게 옹골진 냉철함과 불굴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다른 특징들에 영향을 미치고, 몇몇 경우에는 그 특징들을 전부 뒤엎어 버리는 것 같은 어떤 자질을 지녔다. 그는 뱃사람치고는 드물게 양심적이고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가진 탓에, 거친 바다 위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다가 미신에 심하게 경도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미신은, 어떤 사회의 경우 어찌된 까닭인지 무지가 아니라 오히려 지성에서 샘솟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외부의 징후와 내면의 예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다 그런 것들로 인해 강철 같은 그의 영혼이 무릎을 꿇는 일이 있더라도,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멀리 곶에 두고 온 젊은 아내와 아이의 단란한 추억이었는데, 무뚝뚝한 천성을 떨치고 정직한 사람에게 잠재된 영향력을 발휘하며, 포경업을 하다 보면 처하게 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모하게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걸 자제할 수 있는 것도 그 추억 때문이었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태우지 않는다.> 스타벅의 이 말은 가장 분명하고 유용한 용기란 직면한 위험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 나오며,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동료라는 뜻인 것 같았다.


(237)

1(2절판), 1(향유고래) – 옛날 영국에서 트럼파고래, 피제터고래, 모루머리고래 등의 이름으로 막연히 알려졌던 이 고래를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카샬로, 독일에서는 포트피슈라고 부르며, 거창한 학명으로는 마크로케팔루스다. 향유고래가 지구상에 거주하는 가장 큰 생명체이며, 우리가 마추치는 고래들 중에 가장 위압적이고 위풍당당한 풍채를 자랑하고, 상품 가치도 가장 뛰어나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귀한 경뇌유를 얻을 수 있는 동물은 오직 향유고래뿐이다. 향유고래의 여러 특징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른 곳에서 다룰 테니 여기서는 주로 이름만 언급하기로 하자. 언어학적으로 따지면 어처구니없는 이름이다. 몇 세기 전만 하더라도 향유고래는 실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경뇌유도 어쩌다 해변으로 밀려온 고래에게서 우연히 얻곤 했는데, 당시에는 경뇌유가 영국에서 그린란드고래, 또는 참고래로 알려진 고래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경뇌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 spermaceti의 첫 음절 – sperm – 탓에 그린란드고래가 흥분했을 때 분비하는 체액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한 그 시절에는 경뇌유가 대단히 귀했기 때문에, 불을 밝히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고 연고나 의약품으로만 썼다.


(279)

다시 말할 테니 잘 듣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고.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종이로 만든 가면에 불과해. 하지만 어떤 행동이든, 살아가는 행위라는 의심할 나위 없는 그런 행동일 경우에도,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뭔가가 허무맹랑한 가면 뒤에서 이목구비를 내미는 법이거든. 일격을 가하려면 가면 뒤에서 뚫어야 해! 죄수가 벽을 뚫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나? 나한테는 이 흰 고래가 나를 바싹 에워싸는 벽이라네. 가끔은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해. 놈은 나를 제 손아귀에 넣고 못살게 굴어. 나는 놈에게서 포악한 힘을, 그 속에 불끈거리는 불가사의한 악의를 느낀다네. 내가 증오하는 건 무엇보다 불가사의한 그것이야. 흰 고래가 앞잡이든 주범이든, 나는 놈을 상대로 내 원한을 풀 거야.


(289)

, 인생이여! 이럴 때면 영혼은 지쳐 쓰러지고 지식에 매달린다. 교양 없고 못 배운 자들이 먹을 것을 탐하듯이 매달리게 된다. , 인생이여! 이럴 때면 그대 안에 도사린 공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다! 이제 공포는 털어 냈다! 나는 내면에 숨 쉬는 부드럽고 인간적인 감정으로 너, 냉혹하고 실체 없는 미래와 싸울 것이다. 오 은혜로운 기운들이여, 부디 저를 저버리지 마시고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


(308-309)

그리고 지금은 현실로 확인됐지만 위력이 전설로만 전해지던 시절에는 실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는데, 올라센과 포벨손 같은 몇몇 박물학자는 향유고래가 바다의 모든 생물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사나워서 인간의 피에 늘 굶주려 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퀴비에 시절에도 이런 생각이다 이와 비슷한 인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박물지>에서 향유고래가 나타나면 모든 물고기가 (심지어 상어까지도) <더없이 생생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급하게 도망치다가 바위에 세게 부딪혀 그 자리에서 죽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했다. 포경업계의 일반적인 경험이 이런 기록을 바로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거기에 담긴 극명한 공포, 심지어 피에 굶주렸다는 포벨슨의 주장과 미신적인 믿음은 포경업이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 고래잡이들의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330-331)

은하수의 하얀 심연을 볼 때 우주의 무심한 공허와 광막함을 어렴풋이 보여 주면서 절멸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의 등을 찌르는 건 그 색의 무한함일까? 아니면, 흰색은 본질적으로 색이라기보다 가시적인 색의 부재인 동시에 모든 색이 응집된 상태는 아닐까? 광활한 설경이 무심하게 텅 비었으면서도 의미로 가득 찬 건 이런 이유 때문일까? 색이 없으면서 모든 색이 함축된 무신론처럼 우리를 위축되게 하는 걸까? 그리고 자연 철학자들의 여타 이론들을 살펴보면 지상의 다른 모든 색, 장엄하거나 사랑스러운 광채를 발하는 모든 책, 이를테면 하늘과 숲을 달콤하게 물들이는 저녁놀이나 금박을 입힌 벨벳 같은 나비의 날개, 젊은 처녀들의 나비 같은 뺨, 이 모든 것이 전부 교묘한 속임수이며 실제로 물질이 내재된 게 아니라 외부에서 겉에 드리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344-345)

흰 고래 이야기의 전말, 그중에서도 특히 비참한 최후가 어느 모로 보나 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쇄의 형태로 분명히 인식시키기 위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한두 가지 이야기를 더 언급하기에 지금보다 적당한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진실이면서도 허구만큼이나 충분한 증거를 요구받는 건 맥 빠지는 일인데, 이것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육지 사람들 대부분은 더없이 명백하고도 뚜렷한 세상의 경이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에, 포경업의 역사적인 사실과 그 밖의 명백한 사실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모비 딕을 한낱 괴물의 우화로 웃어넘기거나 심지어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비유담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377)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야릇하고 복잡한 현상에는 우주 전체를 엄청난 장남으로 여기게 되는 묘한 순간이나 상황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 당하는 거라고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한다. 그렇지만 의기소침할 것도 없고 반박할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모든 사건, 모든 신조, 모든 믿음, 그리고 신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단단한 것을, 표면이 얼마나 껄끄럽든 개의치 않고 꿀꺽 삼켜 버린다. 마치 강력한 소화력을 지닌 타조가 총알이건 부싯돌이건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450)

바다의 교활함을 생각해 보라. 바다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들은 물밑으로 잠행하며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더없이 아름다운 푸른빛 아래 음흉하게 숨어 있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수많은 종류의 상어들이 날렵하고 멋스러운 자태를 지닌 것처럼, 가장 무자비한 종족이 악마 같은 광채와 아름다움을 지닌 걸 생각해 보라. 서로 먹고 먹히는 바다의 보편적인 습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 라. 모든 생명체가 서로를 먹이로 삼으며 태초에 시작된 이 영원한 전쟁을 지금도 계속한다.


(460)

인간이란 누구나 포경 밧줄에 싸인 채 살아가는 것을. 모든 인간은 목에 올가미를 건 채 태어나는 것을. 그러나 조용하고 교묘하게 상존하는 삶의 위험을 깨닫는 건 느닷없이 갑작스레 죽음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뿐이다. 당신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더라도 작살이 아닌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저녁의 난롯가에서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공포를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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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3-04-20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모비딕 시작하셨군요!

bookholic 2023-04-21 08:15   좋아요 1 | URL
사실은 얼마 전에 끝났는데요.^^
제가 게을러서 이제서야 ㅎㅎ
파이버 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TGIF~~

페크pek0501 2023-04-21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너무 길어서 읽기를 망설이고 있는데 강추인가요?

bookholic 2023-04-21 22:32   좋아요 1 | URL
소문대로 쉽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온갖 고래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와서 이게 소설인지 자연과학 책인지... ㅎㅎ
(우영우가 계속 떠오르기도 하고요^^)
어려울 거라고 겁먹고 시작했는데, 그래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강추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