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케플러는 우주의 조화를 지배하는 영원불변의 법칙을 좇고 있었다. 그건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뒤엉킨 덤불을 헤치며 전설의 사냥감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도 같았다.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냥꾼만이 목표물을 정확하게 겨냥할 기회를 얻는 법. 무기라고는 아직 불완전한 계산과 미완성의 공신뿐이고, 더군다나 가장 노릇과 책임, 빌어먹을 가정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종을 번갈아 울려대며 소리치고 날뛰는 광대들에게 에워싸여 있는데 어떻게 그런 기회를 노리단 말인가? 그러나 딱 한 번, 아주 잠깐이나마 그 전설의 새를 본 적이 있다. 기껏해야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그것을 보았단 말이다. 섬광 같은 그 짧은 순간을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126)

케플러는 내기를 위해서, 그리고 튀코의 자료를 빼내기 위해서 자신을 속인 셈이었다. 화성은 그렇게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똑똑한 학자들이 수없이 도전했음에도 화성은 수천 년간 비밀을 내주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대로 우주에서 행성이 태양이 아닌 지구의 위치에 따라 그 값이 결정되는 왕복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 행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행성이 일정한 속도로 완벽한 원을 그리며 돈다면, 궤도상에서 동일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달리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화성의 궤도를 규명하기에 앞서 이런 의문점을 비롯해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시치미를 뗀 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중요한 사실들을 손끝으로 더듬어 가며 매끈하고 복잡한 설계도를 재구성해야 하는 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221-222)

제 입장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주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저는 행성이나 별의 위상, 즉 행성끼리 이루는 각도와 그 배치와 인간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좋은 위상과 나쁜 위상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은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없습니다. 우주의 현상은 조화와 규칙성, 아름다움, 강렬함, 약함, 불규칙함, 이렇게 분류할 수 있을 뿐이지요. 별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자유의지를 없애는 것도 아니며 개인의 구체적인 운명을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특정한 성격과 기질을 불어넣을 뿐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별자리가 지닌 특성과 양상을,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오는 별빛의 특징을 그대로 받아서 무덤에 갈 때까지 지니게 됩니다. 이 특성이 그의 육체 형태와 몸가짐, 태도, 성향, 정서적 감응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생기 넘치고 친절하며 사교적인 반면, 또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고 나태하여 매사에 시큰둥한 특징을 보이는 겁니다. 아름답고 정확한 별자리일 때 태어났는지 광범위하고 볼품없는 모양일 때 태어났는지에 따라, 그리고 행성들의 색깔과 움직임에 따라 그런 특징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233-234)

대사님, 갈릴레오의 얇은 책이 간결하고 단순해 보인다는 이유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그의 저서 <별의 전령>은 아주 중요하고 훌륭한 책입니다. 몇 쪽만 훑어보아도 금세 알 수 있지요. 그러나 그가 주장하듯 그 안에 담긴 모든 내용이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황제께서도 예전에 작은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신 적이 있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비록 증거를 제공하진 못했지만 은하수가 무수히 많은 별의 무리일 거라고 추측한 바 있습니다. 행성에 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저는 그가 발견한 네 개의 새로운 행성이 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이 있다면 다른 행성에도 위성이 있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별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과 그것들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251)

나의 사랑하는 레기나야. 나는 삶이란 게 정해진 형체도 없이 끊임없이 변하는 물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주어진 용해된 유리 덩어리와도 같아서, 아주 조야한 도구조차도 없이 오직 맨손으로 만지고 다듬어 완벽한 모양으로 빚어 우리 안에 품어야 하는, 그런 물질 같다고나 할까. 그것이 우리가 이생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바깥세상의 혼돈을 내면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아니더구나. 삶이 우리를 품는 것이고, 우리가 커다란 유리구슬에서 지워 내야 할 흠집인 것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자기 일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걸 본다고들 하지. 사실 어찌 물에 빠져 죽는 사람만 그렇겠니? 어떤 방식으로 죽든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수많은 모습과 행동과 생각 속에 감춰져 있던 본질적인 모습을 인식하게 될 거야. 죽음은 완성을 위한 수단이지.


(278)

정신은 모든 수학적 개념과 형태를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경험적인 신호를 통해 이미 아는 것을 기억해 낼 뿐이지요. 수학적인 개념은 정신의 본질입니다. 정신은 한 지점으로부터의 등거리를 생각해낸 뒤, 다른 어떤 감각 인식이 없어도 그 점으로부터 원을 그립니다. 이렇게 설명해 보지요. 만약 정신이 신체의 눈을 쓰지 못한다면, 외부에 있는 사물을 상상하기 위해 눈이 필요하므로 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나름의 법칙을 지시할 것입니다. 정신 속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양()에 대한 인식이 눈의 존재 방식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정신의 존재 양태에 따라 눈의 존재 양태가 결정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기하학은 눈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미 우리의 정신 속에 존재하니까요.


(280)

나는 다시 한번 화성에 원 궤도를 적용해 연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화성 궤도는 양옆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위아래는 바깥으로 나가는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타원형 궤도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학자들이 천문학이라는 학문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고수해 온 원동운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찾아낸 증거는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모양의 궤도가 화성뿐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나머지 행성들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름이 끼치더군요. 미천한 내가 어떻게 우주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낸단 말입니까? 그리고 거기 들어갈 노력과 수고란! 주전원과 행성의 역행,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마구간을 싹 치우고 이제는 수레에 가득 실린 말똥, 즉 이 타원형 궤도만 남았습니다. 어찌나 악취가 지독한지! 그런데 이제 그 안에 들어가 구린내나는 말똥을 혼자 끌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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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수업 1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1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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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책 <강신주의 장자수업 1>을 읽었단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강신주 님을 좋아한단다. 아빠는 틀에 박혀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면서 지내는데, (그게 더 편한데) 강신주 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거든.. 아빠랑 생각이 많이 다르시지만, 아빠가 본받고 배우고 싶은 그런 분이지그래서 강신주 님의 책이 출간되면 관심 있게 눈 여겨 보는 편이란다. 그런데 이번에 쓰신 책이 장자라니…. 강신주 님이 장자에 대한 책은 그 전에도 쓰신 것으로 알지만, 다시 한번 장자에서 대해서 이야기하신 모양이구나.

장자는 아빠가 동양 철학자들 중에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이란다. 동아시아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공자이겠지만, 장자는 공자가 영향을 준 동아시아에 살고 이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사람이거든. 장자를 읽다 보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아빠도 장자처럼 생각하고 장자처럼 행동하고 싶게 만든단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곤란을 좀 겪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생각만 장자처럼 하는 것으로…^^ 그렇다고 아빠가 장자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야. 장자에 대한 책들을 여럿 읽어보긴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 심오한 철학을 아빠가 어떻게 이해하겠니. 아무튼 아빠가 좋아하는 강신주 님이 아빠가 좋아하는 장자에 대해서 책을 쓰셨다니, 당연히 읽어야겠지.

이 책은 EBS를 통해 강신주 님이 방송도 하신다고 하더구나. 어찌 보면 그 방송의 교재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TV가 없으니, 본 방송을 보긴 어렵지만, 유튜브에도 조금씩 소개가 되고 있더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강신주 님이 살이 많이 빠져서 걱정했는데, 방송하시는 모습을 보니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구나. <강신주의 장자수업>은 모두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은 1권을 먼저 이야기해줄게.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뿌듯하면서 무엇인가 가슴 속에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채워진 느낌을 다시 다른 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참 어렵더구나. 너희들에게 이 책을 제대로 이야기해주기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거야. 너희들이 좀더 크면 직접 한번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물론 바쁘시고 장자에 관심이 없으면 안 읽어도 상관 없고 말이야. 서두가 길어졌구나. 아빠가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 짧게 몇 가지만 이야기할게. 장자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관련된 책도 많고, 유튜브에 동영상도 많으니 보면 될 것 같구나.


1.

장자(壯者)는 장 선생님 정도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장자의 본명은 장주라고 하는구나.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 중에 송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송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힘이 약해서 무시당하고 깔보던 나라였다는구나. 그런 그의 국적이 사상을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장자>는 장자뿐만 아니라 장자를 따르던 이들이 약 300년간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장자가 직접 쓰거나 이야기한 내용도 있지만, 그런 장자를 따르고 공부한 이들이 쓴 내용도 있는 거야. 인터넷 좀 찾아보니 <장자>는 총 33 6 4606자로 되어 있다는 구나.  

<장자>는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마다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철학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가 이해한 바로는 장자 사상의 핵심은 쓸모 없음이란다.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단다. 어떤 사람이 능력도 좋다면, 그러니까 쓸모가 많다면 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나라는 그 사람을 등용하게 된단다. 그렇게 쓸모 있는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거나 때론 전쟁에 투입되지. 그렇다 보면 금방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별로 능력도 없이 쓸모가 없다면 국가는 신경도 쓰지 않을 테고, 조용하게 한 평생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쓸모 있는 인재가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야. 어렸을 때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단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단다. ? 장자가 살던 시대나 오늘날이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단다. 물론 쓸모가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어. 그게 자본주의 시스템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쓸모 있는 인간은 자신보다 국가가 원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했어. 그러면서 국가가 원하는 인간이 되지 말고,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했단다. 나아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단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이야기하는 부모님들이 찔릴 말이로구나.

쓸모 없음에 관한 이야기는 책 전반에 걸쳐 나온단다. 6장 거목 이야기도 쓸모 없음을 이해하는데 재미있는 우화가 나온단다. 잘 자란 나무는 재목이라고 해서 금방 누군가 베어간단다.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는 아무도 베어가질 않아서 엄청 클 때까지 자랄 수 있단다. , 쓸모 있는 것이 좋은가? 쓸모 없는 것이 좋은가? 장자와 강신주 님께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대충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장자가 쓸모 없음을 이야기하자 혜시라는 사람은 반박을 했단다. 쓸모 없는 커다란 박은 부서져서 버려진다고 말이야. 그러자 장자는 이에 반박을 한단다. 커다란 박은 박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배로 쓸모다 있다고 말이야. 사람들의 능력도 마찬가지란다. 어느 일에 있어서 내가 쓸모가 없을지라도 다른 일에서는 쓸모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보통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그런데 쓸모가 없어져도 그를 소중히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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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우리는 성적이 좋은 아이여서, 품이 덜 드는 아이여서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쓸모가 있는 아이, 동년배보다 쓸모가 더 큰 아이라는 것이 사랑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에 실패할 때, 취업에 실패할 때, 혹은 정리해고라도 당했을 때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무용으로 아이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아이는 죽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올 테니까요. 아무런 쓸모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아내도 무용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바람도 물도 그리고 새도 물고기도 무용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 병들도 나이 들어 쓸모는커녕 주변에 짐이 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 여러분을 쓸모로 평가하지 않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건, 바로 이것이 무용을 강조했던 장자의 진정한 속내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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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에 나오는 대표적인 우화라고 하면 빈 배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 빈 배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읽은, 오쇼 라즈니쉬가 장자에 대해 쓴 책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이야기인데 관념을 딱 깨어주는 이야기였단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고,

우리가 빈 배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 이야기는 이렇단다. 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는데 어디선가 떠 내려온 빈 배가 내 배에 부딪히게 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야. 하지만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 배가 내 배에 부딪힌다면 어쩌겠니. 당장 노발대발 큰 소리를 칠 거라는 거지두 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 자신을 빈 배처럼 만든다면 아무도 나에게 맞서지 않고, 나로 하여금 상처를 입지 않게 되겠지. , 쉽지는 않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이야기구나.

장자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이라고 하는 아주 큰 새에 관한 대붕 이야기란다. 붕은 원래 엄청나게 큰 물고기 이었어. 그런데, 엄청나게 큰 새 으로 변했어. 얼마나 크냐면 날개가 몇 천 리라고 했어. 그렇게 크다 보니 땅에서는 날개 짓을 못해서 날지를 못했어. 커다란 태풍이 와야만 그 바람을 이용해서 날 수 있었단다. 마침내 큰 태풍이 와서 붕은 날아올랐단다. 그렇게 하늘을 날면서 붕은 자유롭다고 생각했어. 오랜 기다림과 어려운 조건을 이겨낸 자유라고 할까. 바람이 없으면 날지 못하는 자유. 제한된 자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제한적 자유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 제한적 조건이 어려워서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마치 메추리처럼메추리는 날고 싶을 때 날고, 앉고 싶을 때 앉는단다. 현재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만 얻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유롭다고 하지. 태풍이 오면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피한단다. 대붕처럼 제한적이고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단다. 그리고 대붕은 바람이 있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이것은 두 존재 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해. 장자는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고민했던 철학자이고, 우화에도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와 있단다.

또 다른 에피소드 중에 바람 이야기가 있어. 구멍이 있는데 바람이 있다면 구멍이 소리를 나지 않는다는 거야. 피리 등 악기들 중에 구멍에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있는데 바람이 없다면 그 악기들은 아무런 소리를 못 낸다는 거야. 그렇게 관계에 엮여 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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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차라리 우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의 마음은 바람과 같으며, 나아가 바람과 같은 것이어야만 합니다. 구멍이 되어 바람을 맞아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구멍에 들어가 그 구멍에 어울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장자가 바람의 철학자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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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잘 듣는 것을 장자는 강조했단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더 나아가 기로 들으라고 했어. 아빠가 성격이 급해서 차분히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도 노력은 하려고 한다. 아빠도 잘 들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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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325)

음악을 듣는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습니다. 혹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거실의 불을 끄거나 빛을 약하게 조절합니다. 음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은 군주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는 복종의 행위와는 다릅니다. 눈을 감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상대방에 복종하겠다는 의지와 무관합니다. 음악이나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을 감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음이 상대방에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의지라면, 눈을 감는 것은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군주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응시하는 신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타자의 말이나 혹은 타자를 듣는다는 것은 지해에의 의지나 복종에의 의지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건 소통에의 의지니까요. 장자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고 말합니다. ‘’, ‘마음’, 혹은 보다 수천 배 중요한 것은 듣겠다는 그의 의지입니다. ‘듣겠다는 소통에의 의지가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고, 마음으로 듣는 것보다 기로 듣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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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리소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이 이야기도 참 인상 깊었거든. 장자의 핵심 철학인 쓸모 없음에 대한 주제도 포함되어 있고 말이야. 지리소라는 사람이 있었어. 지리소라는 외형은 꼽추로 제대로 설 수도 없는 몸으로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지리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지리소는 그 자신의 몸을 탓하지 않았어. 빨래와 바느질에 소질이 있어서 돈벌이에도 문제가 없었어. 자신이 다 가졌다고 생각했어. 장애를 가졌다 보니 나라에서 돈도 좀 주고 그랬대. 그런데 돈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이미 자신은 먹고 사는데 문제 없고 사는데도 문제 없으니까 말이야.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끌려가도 지리소는 꼽추라는 장애 때문에 피할 수 있었어. 진정 모든 것을 다 자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주어진 여건이 열악하지만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지리소를 보면서 아빠 자신을 반추해 보게 되더구나. 아빠 자신을 볼 때 갖고 있는 것보다 뭔가 부족한 것을 먼저 보고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모습 말이야. 지리소에게서 참 배울 점이 많구나.

….

그 밖에 아빠의 머리를 때리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2권의 이야기도 조만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장자>는 인류가 자랑하는 고전입니다.

책의 끝 문장: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다면, 열자는 이렇게 산 것입니다.


행성 충돌이나 극심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거나 압도적인 포획자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못을 스스로 조르는 자기 파괴적 동물입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진행되는 전쟁을 보세요. ‘우리는 같은 종이야’라는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늑대나 토끼가 보았다면 당혹스러울 일이고, 인간을 전염병균처럼 여기며 멀리 떠나려 할 겁니다. "인간들은 서로 거침없이 착취하려 하고 심지어 서로를 살육하니, 우리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지만 늑대와 토끼마저도 동족의 피를 묻힌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도망할 곳마저도 인간에 의해 이미 잠식되어버렸으니까요. - P18

사랑이 힘든 것은, 양쪽 다가 주인이고 양쪽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여서 그렇습니다. 자유와 자유가 만나는 팽팽한 긴장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상대방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떤 강요도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이야기도 성립되는 셈이죠. - P46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저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겁니다. 바퀴를 깎을 때 끌질이 느리면 끌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면 끌은 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입이 있어도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끌질하는 동안 몇몇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 P77

우리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앎을 추구하려는 자는 더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선을 행해도 명성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독맥적인 것 따르기를 기준으로 삼아라! 그러면 몸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삶을 온전하게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기를 수 있고, 주어진 수명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 <양생주> - P187

기원전 4000년경 인간은 말을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이후로 더 이상 다른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동료 인간을 가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인간 가축은 동물 가축과는 달리 말이 통하고 더 섬세한 작업에 투입할 수도 있으니까요. 거대 건축물로 상징되는 국가체제는 인간 가축화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20세기 전번에 민주주의를 자임했던 국가에서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유행처럼 사용했던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혹은 자국민들을 길들여 지배하려 할 때 반드시 병행해야만 하는 두 가지 방법을 비유한 거죠. 단순한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당근과 채찍은 가축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동료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 바로 상과 벌 혹은 사랑의 방법과 폭력의 방법이니까요.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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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31 0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축화, 고대 문명의 창작품이 지금도 이어지는 듯해요. 우매한 백성들을 선동질하는 사이비 정치인들 때문에 팬덤까지 형성되니 말입니다. 슬프요.ㅠㅠ

bookholic 2024-01-31 16:55   좋아요 0 | URL
그들의 가축이 되지 않겠습니다 !!!!
 














(70-71)

최익현 선생님께서 왜놈들이 주는 음식을 마다하시고 끝내 굶어서 돌아가신 것은 실로 큰 뜻을 이루신 것이고, 우리에게 높은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을 기약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합당한 것인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대마도에서 후일을 기약하는 것은 어찌 되었거나 살아서 조선땅으로 돌아오는 것일 테지만, 우리의 처지에서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꼭 산을 내려가 왜놈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산에서 목숨을 보존해 가며 후일을 기다리며 기회를 잡아 무장을 튼튼히 해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중대한 문제는 전과를 책하지 않겠다는 조정의 조칙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73-74)

지난번의 최익현의 처가가 그 고질병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황제인 고종도 고종이었고, 의병장이라는 최익현도 최익현이었다. 풍전등화인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나선 의병들에게 국왕이 해산명령을 내리는 것은 무엇이며, 그 이름 좋은 황칙을 받았다고 하여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며 일으킨 의병을 일순간에 해산시키고 포박당하는 의병장의 처사는 또 무엇인가. 그 결과 불쌍한 평민들만 왜놈들에게 무참히 살육당했다.

최익현은 <황칙>이라는 것의 진의를 면밀히 파악했어야 했다. 을사보호조약이 상감의 뜻이 아니었듯이 그 황칙이라는 것도 상감의 진의가 아닐 수 있었다. 그것이 만약 마지못해 작성된 것이었다면 최익현은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불충을 저지른 것이었다.


(107-108)

같은 날 <뉴욕 타임스> <조선민족은 아직도 살았다>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다. 그전에 이미 사건을 보도한 것은 물론이었다.

<스티븐슨를 저격한 것은 어느 정도 능력을 가진 조선인들 중에서 자기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의사표시였고, 자기 민족의 운명을 자기들 힘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형벌에 상관없이 그 젊은 청년들은 그들의 판단으로 치밀하고 용감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일본을 돕고 조선을 배신한 사람을 공격했다. 물론 그 행동은 그리 바람직하거나 현명한 처사는 못된다. 그러나 추상적으로 생각할 때 그 행동에는 상당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사설은 미국대통령 루스벨트가 <조선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서 손가락 하나 쳐들지 못하는 민족이다>라고 하면서 조선이 일본의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 것과는 정반대 논지였다.


(109)

평소보다 더 말이 없어진 방영근은 날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장인환, 전명훈…… 장인환은 누구고, 전명운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들은 보통사람들하고 어떻게 다를까. 특별나게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센 것일까. 글쎄, 씨름꾼이 아닌데 그럴 리가 있을까. 사람이 꼭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세다고 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 하나뿐인 목숨을 내걸고 죽기를 작정하고 나선 것이 아닌가. 죽기를 작정하자면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건 마음이 강단지지 않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마음이 얼마나 강단지기에 죽기를 작정하고 나서서 그런 장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들은 나이가 스물네다섯이다. 그러면 나와 같은 나이들이다. 그들도 고향에는 부모형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목숨을 내걸고 나섰다. 나는…… 나는 그럴 수 있는가…… 내가 만약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갈 수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112)

이승만은 7 16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하버드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을 만큼 잘하는 영어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애국자 둘을 살려내리라는 기대로 동포들은 이승만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리고 몇몇 유지들은 서로 다투어 이승만을 자기에들 집에서 묵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들의 성의를 냉정히 거절하고 비싼 호텔에 투숙하고 말았다.


(112-113)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승만이 8 25일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버린 것이다.

한인동포 여러분들께 매우 미안합니다. 그러나 재판일이 언제 될지도 모르고 또 나 역시 논문을 써야 되니 시간관계로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인이니까 살인관계 재판 통역은 원하지 않습니다. 살인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거역되는 죄악입니다.”

이승만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이승만의 행동이나 그 말은 동포들에게 크나큰 충격이 되었다. 그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졌고, 이승만은 실망과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피나는 돈만 축내고 갔구먼.”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말이었다.


(143)

그들은 두 달 동안에 벌어진 수많은 죽음의 끔찍스러움에 마음병이 들어 있었고, 의병의 기세가 불 꺼지듯 잦아들어 버린 것을 한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속마음으로 의지하고 믿은 건 의병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번에도 갑오년 때와 다를 것 없는 감정의 엇갈림을 겪고 있었다. 그때 가슴속에 품었던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 밀려든 것은 허망감이었다. 그 막막하고 두려운 허망감에서 그들은 헤어날 길이 없었다.


(165)

그들은 용맹스러웠다. 보잘것없는 무기로 신식무기를 갖춘 적들과 맞서 싸웠다.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어갔다. 누가 강제로 끌어낸 것도 아니었고, 싸움에 이긴다고 무슨 보장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우다가 죽어갔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사람대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하층민들이었다. 대대로 빼앗기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내걸고 나섰던 것이다. 그들의 지고한 마음과 뜨거운 용맹 앞에서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 비해 임금은 무엇이고, 대소 벼슬아치들은 또 무엇이었는가. 임금은 왜놈들에게 손발 묶인 허깨비였고, 모든 벼슬아치들은 왜놈들의 앞잡이요 매국노들이었다. 결국 나라의 참된 주인은 왜적과 맞서 싸우다 죽어간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뒤에서 도운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적과 싸우다가 수없이 죽어간 그들의 피는 이 땅의 산하를 적시었건만 나라는 구해지지 않고 합방의 위기는 목전에 닥쳐와 있었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204-205)

그러고 말일세, 나라가 망하는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상감이 짊어져야 할 책무가 더 큰 것인가, 아니면 신하고 백성이 짊어져야 할 책무가 더 큰 것인가.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신하들이 줄줄이 자결하고, 백성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도처에서 의병을 일으켰네. 그때 상감은 무엇을 했는가. 구중궁궐에서 비통 통분해했는가. 그것으로 상감의 책무가 다 되는 것인가? 또 그와 반대로 매국노 중신놈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의병해산령에 옥새를 찍어 윤허하는 것이 상감의 책임인가? 헤이그에 밀사를 보낸 것을 자네는 상감이 수행할 수 있는 최상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만, 그거야말로 한 나라 상감으로서 얼마나 비굴하고 무책임한 처사인가.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 놈들을 수만리 밖에 있는 딴 나라 사람들에게 물러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다니, 그런 답답한 노릇이 어디 또 있겠는가. 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그때 실기를 했으면 그다음 강제 양위를 당했을 때 상감은 만백성을 향해서 외쳤어야 하네. 백성들이여, 나와 더불어 왜적들과 싸우자 하고 말이네. 그리고 군대를 이끌고 앞장섰어야 했네. 그러면 왜놈들이 곧 죽이고 말았을 거라고? 죽이면 죽어야지. 그게 나라 뺏긴 상감이 책무를 다하는 길이네 상감이 해산령을 내려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의병으로 나서서 수만명씩 죽어가는 백성들인데 만약 상감이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왜놈들의 총칼에 죽었다면 백성들은 어찌 했겠나. 이 땅에 합방이란 없었네. 상감은 그 책무를 피한 덕에 지금 연명은 하고 있으나 진작에 죽은 목숨이고, 그 초라한 몸에 걸쳐진 것은 백성을 버려 나라를 망친 죄, 치정을 그르쳐 사직을 망친 죄가 있을 뿐이네. 어떤가!


(239)

사진결혼의 소문이 농장마다 퍼져나가면서 나이든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고, 잊을 수 없는 고향병을 더욱 도지게 했다. 그런데 여자들의 비자없는 입국은 조선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아니었다. 농장주들은 그 방법을 일본 중국 필리핀 사람들에게도 확대 실시하게 했던 것이다.

사진관의 문턱이 닳아질 지경이 되는 가운데 최초의 조선 신부감이 하와이에 도착하게 되었다. 국민회 회장 이대수가 시범을 보이듯 신부감을 맞아들인 것이다. 전라도 처녀 최사라가 일본배 지양환을 타고 호놀룰루 항구에 닿은 것은 1910 12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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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 통권 184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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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통권 184호를 읽었단다. 2023년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구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던 한 해였는데, 1년 여간 휴식기를 가졌던 녹색평론이 다시 돌아온 것도 아빠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었단다. 환경에 다시 생각하게 하고, 사회의 모순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아빠에게 여러 경각심을 심어주는 든든한 책이었는데, 1년 동안 없어서 아쉬웠거든. 이번 겨울호의 부제는 파국과 전환, 기로에 선 한국사회더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아직 2년도 안되어 희망이 사라져 보이는데,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나라를 얼마나 더 엉망으로 만드실지 걱정이구나.

이 책에서는 현정부의 정책을 보면, 환경과 기후에 관련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구나. 몇 달 전인가 일회용 용품과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를 다시 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그래서 플라스틱 대용으로 친환경 빨대를 만든 업체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소식도나라의 정책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그것도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쓰고 있으니, 국민들은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그리고 현정부의 정책 중에 농민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는 정책도 없다는구나. 농민의 남는 쌀을 구매해주는 것은 정부의 역할로, 그들이 또 힘을 얻어 다음 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동력을 얻는 것이란다. 앞으로 더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 되는 것은 기정 사실인데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는구나. 그러면서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를 세금으로 구매할 계획이라고 하네. 이 이야기를 회사 사람한테 했더니, 건설사로부터는 돈을 받고 농민들에게 돈을 받지 않아서 그럴 거라는 신빙성 있는 말씀을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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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그러나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높이려는 농정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 구매하는 데는 혈세를 10~20조 원 들이면서 농민 쌀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혹독하냐?”고 항의했다. 실제로, 전국 곳곳의 미분양 아파트는 6만 가구에 육박하고, 이것을 정부가 사들이면 47조 원대에 이르는 주택도시기금(주택채권, 청약저축, 세금전입 등으로 구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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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란다. 민주국가이면서 공화국가라는 의미란다. 그런데 민주와 공화는 상반된 개념이라고 하는구나. 민주는 시민의 평등을 중시하는 반면, 공화는 시민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구나. 이런 모순된 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후진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보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우리 나라의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또는 자기네(정당) 밥그릇 챙기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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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다. 민주와 공화의 개념을 합쳐놓은 것이다. 그런데 민주(民主, demokraita)와 공화(共和, res publica)는 기원과 담기는 내용이 서로 같지 않다. 기원에서, 전자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 후자는 로마의 공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내용에서는, 전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다소간 시민들 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귀족공화정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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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대의제를 따르고 있는데, 이 대의제의 기원은 그리고 아테네의 민주정이란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따르려면 정확하게 따르면 좋겠는데, 장점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단다. 아테네에서는 어떤 법안을 정할 때 시민들로 이루어진 민화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고 하는구나. 법안이라는 것이 시민들을 위한 법이니 시민들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민주정치에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가더구나. 현정부에서는 진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구나. 말 한마디에 아랫사람들이 벌벌 기는 그런 권력만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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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아리스토텔레스도 공동체의 선을 중시하였으나, 그 선은 국가의 획일적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덕성에 의해 실천되는 것이었다. 그는 개인의 타고난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경제적 소유 등에서 불평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불평등은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적으로서,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역할, 책무의 수행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불평등이 바로 정치권력의 지배, 피지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국가의 목적 실현을 위한 공동체적 기여에 비례해서 배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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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는 민주화 시민 운동을 60년 가까이 하신 정성헌 선생의 대담이 실려 있단다. 아빠는 모르는 분인데, 오랜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답게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면서 먹거리, 정치, 기후위기 등 다방면에 대한 의견을 주셨어. 이런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정부 인사는 없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정성헌 선생의 말씀 중에 학원과 공부에 치여 운동부족인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너희들도 생각나더구나. 아빠와 엄마의 책임이 크고 반성을 해야겠구나.

====================

(173-174)

맞아, 애들이 안 움직이잖아요. 어제 TV를 보니까 서울시내 애들 중 놀 데가 없는 애들이 80%가 넘어요. 먹고 뛰어노는 게 기본인데 하루에 필요한 활동량을 계산한 게 있어요. 13세까지는 일일 활둉량이 2만보 이상이래요. 그래야 건강한 몸이 된답니다. 19세까지는 1 8,000보고, 어른들은 7,000보 이상이면 괜찮대요. 그런데 기분 좋게 걸을 데가 마땅치 않아요. 난 조금만 살펴보면 생명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생활운동은 아주 쉽다고 봐요. 문제는 지나친 디지털화예요. 이런 연구결과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4만 회 이상 질문을 해야 뇌가 정상적으로 발육이 된다. 그런데 온갖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차단하고 있어요. 애들이 자극적으로 빠른 것에만 반응을 해서 즉자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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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이야기,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대책 없는 현정부의 반중 드라이브 이야기, 탄소 중립을 위한 방안 제시, 학생 인권과 갑질 학부보, 아동학대법으로 인해 선생님들의 인권은 보호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 친환경 에너지를 위한 그린 뉴딜 정책이 유행인데, 제대로 된 그린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단다.

이번 호에 실린 책 리뷰 중에 <순이 삼촌>으로 유명한 현기영 작가님의 신간 <제주도우다>라는 책이 소개되었단다. 아빠가 현기영 님의 책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번 신간은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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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어느 인터뷰에서 현기영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제주 4.3 3만의 피해 통계로 쓰지만, 문학은 3만의 개개 사건으로 보는 거다라고, 얼마나 엄청난 선언인가. 3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죽음이 제주 곳곳에서 3만 번 벌어진 것이라니.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신념을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하여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 개별적으로 자기역할을 수행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이창동 감독이 추천사에, “수많은 개인들의 삶과 목소리와 내면을 담아내는 섬세하고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표현하면서, “읽는 내내 숨이 뜨거워지면서 거장의 숨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적었는데,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다. 현기영은 최선을 다해 작품 속 인물들에게 독자성을 부여한다. 하나의 세계가 스러진 게 아니라, 3만 개의 세계가 그때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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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녹색평론에는 매 호마다 시 몇 편을 소개해준단다. 시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빠는 활자만 읽고 넘기는데, 이번호에 실린 시 중에 한 편은 좋았단다. 김해자 시인의 <30년 후, 소년 소녀에게>라는 시인데,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비판을 시로 지었는데, 머리 속에 잘 들어오더구나. 좀 긴데, 이 시 한 편만 읽으면 너희들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전체를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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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30년후, 소년 소녀에게


1.

2023 8 24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

엘니뇨, 미래의 소년들이여,

너희 선조들은 핵물질을 10배 희석한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 넣기 시작했다

30만 년 동안 당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라니냐, 아 냉철한 미래의 소녀들이여,

1 2,500톤을 방류하면 지하수가 125톤 들어온단다

지하수를 100배 희석하면 1 2,500,

하루에 2 5,000톤 오염수를 바다에 투척하기 시작했다

30년간 2 7,000톤이라니,


너희가 살아갈 바다를 천천히 죽여가기로 결심했다 어른들끼리,

훔쳤다 너희들이 먹고살 미래의 시간을

권력은 결정했다 집단자살의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2.

2011 3 11일 후쿠시마 원자로가 연쇄적으로 폭발한 이후

원전 저장탱크에는 137만 톤의 오염수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냥 가지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1,000개가 차면

1,000개의 탱크를 만들면 될 이었다


돈 때문이었다

지하에 묻으면 3조억

대기에 방류하면 3,000

바다에 방류하면 300억이 들기에

그들은 저희들까리 결정했다 가장 돈이 적게 드는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썩지 않는 죽음,

핵연료와 철근과 콘크리트 찌꺼기가 녹아 있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가장 싼 것은 가장 위험한 길이었다 돈과 권력을 융합한 그들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미래의 너희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저들의 말이 진실인가

아니다, 진실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과학과 지식과 통계수치를 아무리 들먹여도,

이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몰론 몰라도 선택할 수 있다, 당첨이 안되어도 복권을 살 수 있듯이

그러나 이 길의 결과는 모두에게 무조건 나쁜 것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3.

바다에 핵오염수를 방류함으로써 누가 이익을 보는가

도쿄전력이다 일본이다 몇 사람뿐이다

누가 손해를 보는지, 오 라니냐, 너는 알겠지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바다와 하늘과 바람이란 걸

아니지, 이익의 반대말은 손해가 아니라

바로 죽음이라는 걸


여기에 있는 우리의 죽음이 아니라

10 30 60 100년 후에 올

너희들의 목숨이란 걸

미래의 너희 부모가 지금 우리의 자식들인 것처럼

바다와 땅과 공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땅과 바다와 사람은 한몸으로 이어져 있기에


, 엘니뇨, 따뜻한 바닷물 같은 소년이여,

너희는 바다에서 헤엄치고 모래집을 지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나지 못할 30년 후 소녀들이여,

미안하다.

우리는 아직 이 죽음의 길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철회하라

지금이라도 멈춰라 죽음의 방류를

====================


PS,

책의 첫 문장: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라고 한다.

책의 끝 문장: 그 과정은 행위만 아니라 마음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인권과 자치권을 회복하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적, 법적 노력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냉소와 경멸로 일관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잡은 가자지구의 합법적 통치세력이었다.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토벌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식민정책 속에서 ‘하마스’ 전사들이 끊임없이 양성되고 있다. - P4

정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시민들이 폭넓게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개입을 허용하는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농업, 농촌, 식품산업 기본계획은 농정에 있어서 유일한 종합적 중기적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철저히 농림축산식품부의 집안일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이 연구용역의 형태로 기본적 틀을 만들었고 최종 단계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의견을 형식적으로 청취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자체 판단으로 만들어졌다. 계획의 수립 주체가 정부인 것은 법이 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다. 5년간 농정의 기본적 틀을 만드는 일에 농민, 농촌 주민, 소비자, 환경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의견을 표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였다. - P18

민주정치의 핵심은 민중주권이며, 그것은 민중에 의한 정책 결정권과 결정 절차로서의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 한국에서 민중주권을 현실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담론이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민중을 우매한 존재로 보고 민중이 직접 결정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며, 그래서 남달리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을 뽑아 권력을 대신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대의제 담론이다. 둘째, 민중은 날 것 그대로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거나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만 올바른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도 민중을 완결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지도자 혹은 어떤 다른 기제에 의해서 교도되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대의제와 같은 맥락에 있다. - P60

예술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이 사람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학도 없고,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과 문화가 타락하면서 인간이 대단히 왜소해졌어요. 뭔가 대중문화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문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111

그린뉴딜은 최근 수십 년래에 등장했던 어떤 제안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은 실업문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과 주거를 보장하고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면서 전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안에는 장애물이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은 자연과 인간 삶의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삶의 질을 고양하면서 동시에 화석연료를 비롯한 에너지원의 사용을 줄이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진보적인 그린뉴딜이라면 에너지 삭감, 즉 에너지 보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사용 총량을 줄이는 것은 인류가 존속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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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28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샀는데 다 읽지 못했어요. 이렇게 정리하시다니 훌륭합니다!!
좋은 글이 많아 사게 되더라고요.^^

bookholic 2024-01-28 21:51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녹색평론>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크 님의 글도 <녹색평론>에서 만나 보면 좋겠습니다^^
 
















(20)

역병에 걸렸다는 느낌은 무덤 저편에서 건너온 듯 그 무엇으로도 완화되지 않는 오한, 늪에 빠지는 듯한 열병, 몽둥이질을 당한 듯한 두통, 눈과 목이 타는 듯한 열기, 바로 눈앞에서 사신이 찾아온 듯 끔찍한 섬망으로 시작되었다. 감염자의 살갗은 청보라 빛을 띠며 점차 시커메지고 손발은 검은색으로 변했고, 숨을 못 쉴 정도로 기침이 터져 나오고 폐가 부글거리는 피거품으로 가득찬 채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숨이 막혔다. 제아무리 운 좋은 사람도 몇 시간 안 걸려 목숨을 잃었다.


(68-69)

모든 인간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거나 신이 보기에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사기란다, 카밀로. 나는 네가 그것을 믿지 않기를 바란다. 법도 하느님도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는 그게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억양의 미세한 차이,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쥐는 방식, 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수많은 사회 계층 중 어느 계층에 속하는 사람인지 단 1초 만에 알아챌 수 있다. 외국인은 거의 통달하지 못하는 재능이다. 이런 걸 강조해서 미안하다. 나는 네가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잔인한 계급 제도에 화를 내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세핀 테일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려면 이 얘기를 미리 말해줘야 한단다.


(179)

인생의 여정은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충격적인 일 하나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그 여정에서 일어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기억에 새겨진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나처럼 오래 산 존재 안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깃들어 있다. 내 가엾은 몸은 닳아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정신은 아직 흐트러지지 않았다. 잊지 모하는 것은 내게 있어 저주란다.


(316-317)

나는 딸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애가 살았을 때 해주지 않은 말을 마침내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너를 사랑했다고, 여러 해 동안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내 딸과 헤어질 수 있었고 안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애에게 키스하며 무심하고 소홀했던 내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내 딸로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었다. 내 마음과 아들의 마음속에 네가 언제나 살아 있을 거라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꿈속에서 나를 찾아와 달라고, 신호와 암호를 보내달라고, 거리의 모든 아름다운 아가씨의 화신으로 나타나 달라고, 가장 깊은 밤이면 영혼으로 나타나 주고 한낮에는 퍼져나가는 햇살로 나타나 달라고 부탁을 했다.


(345)

우리는 오늘날까지 30년 동안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고, 강제 수용소, 고문, 살인, 수많은 사람이 겪은 탄압이라는 최악의 과거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실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고 정보도 없었고 소문만 무성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독재가 나라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데 필요한 조치였다며 정당화하곤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독재가 있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였다. 우리는 미국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훌리안 브라보가 10년 전부터 경고한 대로 그들은 우리 대륙에 좌파 사상을 허용하지 않고자 했다. 러시아인들 또한 자기 통제권 안에 있는 나라들에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423)

1980년대 말에는 세계도 우리나라도 우리의 삶도 많이 변화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28년 동안 독일을 갈라놓는 장벽을 하룻밤에 망치로 부수는 베를린 사람들의 행복감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소비에트 사이의 냉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어떤 나라는 평화를 희망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항상 어딘가에는 전쟁이 존재한다. 몇 가지 슬픈 예외를 제외하고, 오래 고통을 겪어온 온 우리 대륙은 최근에 와서 과거의 족벌, 혁명, 게릴라, 군사쿠데타, 폭정, 암살, 고문, 대량 학살의 역병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했다.


(427)

그 즈음에는 내 인생도 바뀌어 여정의 또 다른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구에 따르면 길은 없다, 길은 걷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나의 경우 길을 걷는다기보다 오히려 좁고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종종 덤불 속으로 사라지는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가는 기분이었다. 도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물질적 구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70대를 맞이했다.


(469)

살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그 둘 사이에는 기억을 떠올려야 할 시간이 있다. 나는 이 며칠간 침묵 속에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물질적인 문제보다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한 이 유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세세한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나는 손으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 지 몇 년 되었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어릴 적 미스 테일러에게 배운 우아한 글쓰체도 잃어버렸다. 그러나 관절염도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걸 막지는 못한다. 컴퓨터는 마비되다시피 한 내 몸에서 가장 유용한 수족이다. 카밀로 너는 나를 놀리고 있지. 내가 죽어가는 백 세 노인 중에 기도보다 컴퓨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단 한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476-477)

한 세기를 살다 보니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백 년은 어디로 갔을까?

너에게 고해성사를 할 수가 없구나, 카밀로. 너는 내 손자지만 네가 원한다면 내 죄를 사해 줄 수 있겠지. 그러면 에텔비나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다. 죄 없는 영혼들은 우주 공간을 가볍게 떠다니며 별 가루로 변한다.

안녕, 카밀로, 니에베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하늘이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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