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72호 - 2020년 5월~6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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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단다.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 최근에 생겼던 다른 바이러스들처럼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다섯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세 등등하구나. 조금만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와 놀라온 속도로 전염시키고 있는데, 아직도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다. 이젠 누구나 쉽게 코로나 이후 시대는 이전의 시대와는 다르다고 이야기를 한단다.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많은 꼭지를 두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야기했단다. 녹색평론뿐만 아니라 많은 매체들이 코로나 이후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시대가 결코 절망스러운 모습만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구나. 자본주의 병폐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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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가고 막대한 불편과 불안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 이제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생태계 위기에 대한 수많은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절대 멈추지 않았던 개발과 소비가 현저하게 줄었고, 최소화된 삶의 규모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에 따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퀴가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이 바퀴가 멈추거나 느려져도 세상은 돌아가는구나. 그렇다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었던 이 거대한 바퀴를 멈추고 다른 작은 바퀴들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코로나19 사태를 개인적 일상뿐 아니라 문명사적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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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소비와 산업 활동이 둔화되면서, 자연이 되살아나는 모습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단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코로나 이후 시대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지구온난화는 비록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 자연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볼 수 있었단다. 암울한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바라는 작은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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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최근의 언론보도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뉴스의 하나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소비와 산업 활동이 일시적이나마 정지 내지는 둔화되자, 화석연료 사용량이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 대기가 청명해지고, 소음이 잦아들고, 자연 만물이 모처럼 생기를 되찾았다는 소식이다. 이는 종래의 생활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확연한 증표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 더 이상 생태계에 훼손을 끼쳐서 결과적으로 인간생존의 기초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함이 없이 인간다운 생존, 생활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우리들 대다수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신화, 즉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발을 통한 끝 없는 성장(혹은 진보)의 추구하는 관념과 깨끗이 결별하는 게 진짜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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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토끼 천상문>이라는 책의 지은이 김남일님이 얼마 전부터 녹색평론에 연재를 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이번 호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라는 책을 소개해주었단다. <네메시스>라는 책도 전염병에 관한 책이라서 말이야.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란 책은 아빠가 사두고 읽지 않은 책 중에 있어서 녹색평론을 덮고 바로 읽어보았단다. <네메시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 책의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해줄게..

….

그런데 이 코로나는 과연 언제 어떻게 끝날까. 퇴근길에 아직은 걸을만한 날씨라서, 집에 걸어오곤 하는데, 마스크는 정말 답답하더구나. 다들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이 마스크를 벗어 던질 시간이 올 지 알았는데, 이젠 못 올 것 같구나. 여행을 가고 싶어도 어쩌면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큰 용기를 가지고 길을 나서야 하는 것 같아. 다음 녹색평론을 읽을 때쯤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지라도 조금이라도 진전을 보였으면 좋겠구나. 세계가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대는 어쩌면 세계3차대전을 겪고 있는 것일 수도….


1.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 6.25 한국전쟁이 70주년이 되었단다. 하지만 남북 관계는 여전히 좋질 않단다. 2년 전만 해도 평화의 무드가 한반도을 뒤덮었으나, 최근에는 다시 상황이 악화되어 언제 다시 남북이 한 책상에 앉게 될지 모르겠구나. 2020년은 이것저것 다 안 되는 한 해인가 보구나. 

아빠가 어렸을 때는 6.25사변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에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더구나.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6.25 70주년 특집으로 몇 꼭지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6.25를 바라보았단다. 전쟁으로 만들어진 미국이라는 나라에게 한국전쟁은 또 하나의 일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라가 만들어진 이후 크고 작은 전쟁과 함께 했고, 그런 전쟁을 통해 나라는 부강해졌고, 세계 패권국가가 되었으니, 한국전쟁이 발생했을 때는 한쪽에서는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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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미국은 전쟁으로 만들어진 나라다. 독립전쟁(1776~1783)을 통해 근대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설립했고, 멕시코전쟁(1846~1848)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했다. 또한 식민지시대 이래 19세기 말까지 지속적으로 인디언전쟁을 벌였다. 스페인전쟁(1898)을 통해 북미대륙을 넘어 동아시아로 진출했고, 1차대전 참전(1917)으로 세계 최대의 채권국가이자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미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역사를 지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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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거치고 나서 우리나라는 크게 변했단다. 변했을 수밖에 없겠지.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으니 말이야. 그 중에 6.25를 거치면서 대표 종교로 거듭난 개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개신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좋지 못한 글일 수도 있지만, 아빠는 그저 책에서 읽은 사실을 이야기뿐이란다. 한국전쟁 당시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3%도 안 된다고 했어. 하지만 한국전쟁 중에 개신교는 반공주의를 이용하고, 정치권력에 깊이 개입하면서 많은 이익을 챙기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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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물론 한국 개신교는 가톨릭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종단이다. 그만큼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읽기를 시도하는지에 따라 다른 해석들이 도출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한국의 시민사회가 개신교에 대해 확인하고자 하는 몇 가지 문제적 요소들, 가령 극우 반공주의 성향이 강하고, 교세에 비해 너무 막대한 사회적 자원을 과점하고 있으며, 정치권력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점 등을 알고자 할 때, 한국전쟁이라는 시공간적 사건에서 한국 개신교의 형성을 살피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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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의 인물이 바로 한경직이라는 인물이란다. 한경직이라는 인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오늘날 극우 세력의 선봉을 걸으면서 온갖 민폐를 끼치고 있는 전광훈 목사가 자신을 한경직에 비유했다는 내용을 보고, 한경직이라는 사람은 안 봐도 뻔하는 생각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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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일등 공신인 전광훈 목사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경직과 비유했던 것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해방 정국의 한경직도 압도적으로 좌편향의 사회였던 남한을 극우파 사회로 바꾸었고 기어이는 극우적인 남한 단독 정부 설립에 누구보다도 큰 기여를 했지만, 그에겐 너무 과격한 목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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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개신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단다. 밤에 도심에 셀 수 없는 십자가가 그걸 대신 대변하고 있단다. 그런데 최근에 개신교는 위기를 맞은 듯 보인단다.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신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개신교의 이미지는 많이 안 좋아졌단다. 전광훈 목사 같은 이가 수구우익단체를 이끄는 일이나, 코로나 시대 다들 조심하는데, 정부지침에 따르지 않는 교회들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는 집단 감염. 그것을 집단 이기주의로 욕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여론의 시선이 무척 차갑고 매섭단다. 다들 힘들게 거리 두기를 하면서 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밀집지역에서 교회활동으로 인한 끊이지 않는 감염들. 다른 종교단체는 집단감염이 없으니, 더욱 그들의 행동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단다. 개신교는 기독교도가 아닌 이들의 시선을 살펴보고, 반성을 하는 기회를 스스로 가졌으면 좋겠구나.

….

그밖에 한국전쟁을 페미니즘의 시작에서 살펴보았고, 한국전쟁을 다루는 문학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북한문학에서는 어떻게 전쟁을 다루는지에 대한 특별 기사를 실었단다. 한국전쟁 70주년에 맞게 잘 준비한 글들이었어.


2.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적폐는 언론이란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들이 적폐의 온상이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그들의 행태를 보면 마지막 발악을 보는 것 같단다. 예전에 그들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가 변하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구나. 아빠도 그들의 기사는 스포츠 기사도 보지 않는단다.

이번 녹색평론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분의 글이 실렸단다. 역사학자 한홍구. <조선*동아 100년 저물어가는 언론권력>이라는 속 시원한 제목으로 속 시원한 글을 써주셨단다. 최근에 신간 소식이 뜸했는데, 이렇게 녹색평론에서 글을 읽게 되어 반가웠단다. 조선, 동아 일보의 언론 같지 않은 행보는 오래되었지만, 완전히 망가진 것은 1987 6월 항쟁 이후라고 하는구나. 그때부터 권력에 빌붙어 아무를 떨더니, 권력까지 쥐어 잡고 아무도 그들을 건들 수 없게 되었단다. 그들 스스로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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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많이 망가지는 했어도 1987 6월항쟁까지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언론은 언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그 자체가 권력으로 부상하면서 괴물이 되어갔다. 민주화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군부와 안기부 등 정보기관이 뒤로 물러나고, 그 빈자리를 민간이 메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민주화로 인해 가장 득을 본 것은 최루탄을 마시며 민주화를 외쳤던 민주시민들도, 체포와 고문과 투옥을 무릅쓰고 투쟁한 민주화운동가들도 아니었다. 군부와 정보기관 대신 이 나라의 알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재벌과 검찰 등 관료집단과 보수 언론이었다. 특히 1991 5월의 분신 정국당시 수구세력의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하여 위기를 돌파할 때 검찰과 조선일보는 새로 얻은 힘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청와대는 여전히 힘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은 5년짜리 계약직 공무원에 불과했다. ‘민주화 5년 단임과 문민화에 머물러 있는 한, 진짜 권력은 그것을 죽을 때까지 손에 쥐고 있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벌 총수와 언론사 사주들의 것이었다. 5년 임기의 새 대통령을 뽑기 직전인 1992 11, 방일영의 고희연에서 사원 대표인 스포츠조선 신동호가 낮의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분이 계셨지만, 밤의 대통령은 오로지 회장님 한 분이라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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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조선, 동아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단다. 그들을 오랫동안 미워했던 이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모르겠구나. 힘을 잃은 언론의 권력.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신들의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들의 미래는 어둡다는 것에 행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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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대한민국이 또다른 100년을 맞이하는 이 순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사라져야 할 존재로 지탄을 받기 시작한 것도 족히 20년은 넘었다. 어설픈 세무조사나 우리 안에서만 진행된 안티조선운동은 어쩌면 조선일보를 온갖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 지형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한때 노년층을 붙잡아두던 <TV조선>도 트로트 열풍을 선도하며 돈이나 벌 뿐,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유튜브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가짜뉴스 생산의 원조였던 조선일보는 훨씬 독하고 막강한 수구 유튜브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가 지배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도래는 비단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 수구 언론뿐 아니라, 그와 대척점에 선 진보적인 레거시 미디어’(전통 매체)들에도 엄청난 과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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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인데 벌써 무척 덥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온난화도 없애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같구나. 그렇다고 지구온난화로 빨리 더워진 날씨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애지도 못하고..

너희들도 얼마 전부터 학교를 가기 시작했는데, 마스크를 쓰고 따가운 햇볕 아래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구나. 학교에서도 마스크를 제대로 벗지 못하고어느날 갑자기, 우리 주변에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인데 몰랐던 무언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천적임이 밝혀져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쉽게 없애는 기적이 생기길….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책의 끝 문장 : 이후로 면에 산다는 것’, ‘오지 마을에 산다는 것등이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국지적으로, 때로는 대륙 전체에 걸친 역병의 창궐과 그 후유증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 혹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 P2

자연은 무심해 보인다. 도도해 보이기도 한다. 세상 꼭대기에 서서 무소불위의 존재처럼 날뛰던 인간들이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세계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공안, 여느 때처럼 봄은 오고 꽃이 피고 새순이 올라온다. 길가의 고양이는 봄볕을 즐기며 한가하게 졸고 있다. 인간만 자기가 만들어 놓은 아수라장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누구를 탓하랴. 지금이라도 자연을 존중하고 따르면, 자연은 우리를 다시 품을 것이다. 무시하고 거부하면, 더 심하게 내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자리가 비게 되면, 인간에게 쫓겨났던 동물과 식물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인적이 뜸해진 도심을 찾았던 퓨마와 여우와 야생 염소는 바로 그 전조가 아닐까. - P30

민중의 입장에서 정당한 전쟁은 없다. 오로지 피할 수 없는 전쟁에 대응하는 민중의 숭고한 희생이 있을 뿐이다. 오직 지배체제만이 정당한 전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내밀한 관점을 이해하더라도 20세기 냉전체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다각적 이해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 중국, 구소련의 관계 속에서 전쟁 발발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동아시아적 차원과 세계적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문제는 현재적 과제이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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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l1004 2020-06-20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혹시 블로그는 안하시나요? 글이 너무 좋아 계속 읽고 싶네요!

bookholic 2020-06-21 20: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칭찬 고맙습니다~~~ 저는 알라딘 서재에서 노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풀잎관 3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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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풀잎관 3권을 이야기해줄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까. 그동안 로마의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던 이의 무서운 변신. 그 옛날 우연히 들은 예언에 대한 집착. 바로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이야기란다. 그가 이런 비참한 말로로 인해 역사 속 위인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럼, 그 이야기를 해줄게.


1.

2권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로마와 이탈리아가 결국 전쟁을 벌인 것이었잖아. 이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이탈리아의 패배로 끝이 났단다. 이탈리아를 이끌었던 실로와 무틸루스도 죽었단다.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단다. 로마는 이 전쟁의 승리로 얻은 것은 없었고, 무척 많은 것을 잃었단다. 술피키우스 같은 이는 이 전쟁은 크게 잘못되었다면서 뉘우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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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6)

이제 원로원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로마 원로원은 사라져야 할 때다. 하고 술피키우스는 결심했다. 오래된 세도가문이 더 이상 존속해선 안 된다. 부와 권력이 집중된 소수가 이탈리아인에게 가했던 실로 무시무시한 부당행위가 또다시 자행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잘못된 사람들이다, 하고 술피키우스는 생각했다. 우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로원은 사라져야 한다. 로마를 인민의 손에 넘겨야 한다. 우리는 인민의 손에 주권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인민은 우리의 저당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최하층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민. 로마에서 최대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제일 적은 권력을 누리는 2, 3, 4계급. 진정 부유하고 힘있는 1계급 기사들은 모든 면에서 원로원과 차이가 없다. 그러니 1계급 기사들 역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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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 로마와 이탈리아의 내전을 내심 기쁜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아시아 속주의 폰토스 왕 미트리다테스 왕이었단다. 그런 미트리다테스 왕의 불 같은 성격에 불을 붙인 이가 있었어. 아시아 속주에 집정관 대행으로 아퀼리우스라는 사람이 왔는데, 황금만 탈취하고 온갖 못된 짓을 했거든. 결국 폭발한 미트리타테스 왕은 아시아 속주에 상주하고 있는 로마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단다. 그리고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던 로마인과 이탈리아인들을 참혹하게 죽였는데, 그 수가 십 수만 명이라고 했어.

국내에서는 로마와 이탈리아가 서로 싸우고 있었는데, 아시아에서는 그들을 하나로 보고 모두 죽여버렸으니로마가 얼마나 옳지 못한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겠지? 미트리다테스 왕은 이 승리로 여세를 몰아 로마로 진출하려고 에게 해로 진출했지만, 해전에서는 약했는지 패배하여 일단 후퇴를 하였단다. 그리고 아시아 속주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여 대부분을 차지했어.


2.

이런 아시아 속주의 소식은 로마에도 전달되었어. 예전에도 아시아 속주의 골치거리를 술라가 해결한 적 있잖아. 이번에도 술라가 대표로 뽑혔어. 하지만 술라는 돈이 없다며 출정을 망설였단다. 이탈리아와 전쟁을 해서 재정이 바닥이 난 거야. 이런 재정 상태에서 섣불리 원정을 가면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이었어. 하지만, 마리우스는 이를 강하게 비판했단다. 그러면서 술라가 가지 못한다면 자신이 아시아 속주를 가겠다고 했어. 그러나 원로원은 젊은 술라를 선택했어. 술라는 원로원의 선택이므로 전쟁을 준비하고 동방으로 길을 나섰단다.

그런데 마리우스와 한편이었던 호민관 술피키우스는 평민회의 합법적인 방법으로 술라의 총사령관 직위를 박탈시켰단다. 그리고 마리우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어. , 어려운 시국에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는 로마. 술라는 동방으로 향하던 중 총사령관직에서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술라는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그리고 그의 부대원들은 모두 그를 지지하고 있었지.

술라는 어려운 결정을 했단다. 로마의 군대를 데리고 로마로 향하는 것이었어. 로마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잘못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의 목숨도 남아나지 않을 결정이었어. 술라는 부대원들에게 명령했어. 로마로 진군하되, 로마인들을 약탈하지 말라. 무력시위이자 쿠데타였어. 로마에는 제대로 된 수비대는 없었어. 마리우스가 급하게 노예들을 중심으로 군대를 만들고 술라의 부대에 맞섰지만, 오합지졸 군대로 술라의 정예부대를 막을 수는 없었어. 마리우스는 도망을 갈 수 밖에 없었단다.

로마에 입성한 술라는 원로원을 장안하고, 법을 바꿔서 평민회와 호민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 버렸어. 그리고 원로원의 권한을 높였고, 부족한 원로원 의원을 충원했고, 백인조회라는 것을 창설해서 자신의 부하들 중심으로 조직했단다. 그리고 다음 집정관으로 자신의 측근인 나이우스 옥타비우스를 선출하게 만들었단다. 술라가 그렇게 원로원을 장악했지만, 그를 모두가 지지한 것은 아니었나 봐. 차석 집정관으로는 술라의 반대진영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가 되었거든. 술라는 자신을 총사령관의 자리에서 쫓아낸 술피키우스와 마리우스를 대반역죄로 판결했어. 술피키우스는 잡혀와 처형당했고, 마리우스는 어디론가 도망을 가서 잡지 못했단다. 이렇게 로마를 정리하고 나서, 그는 다시 동방 원정을 떠났단다. 킨나라는 작은 불씨를 남겨 두고 말이야.


3.

마리우스는 아들과 측근 몇몇만 데리고 로마를 떠나 도망신세가 되었어. 그를 쫓는 군인들에게 잡혀 처형에 위험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지역의 백성들의 도움으로 위를 탈출하기도 했단다. 로마 백성들에게 아직 그는 영웅이었어. 그러나 속주들은 그를 받아들이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어. 마리우스는 이해했지. 아프리카 지역의 누미디아의 왕이 받아주었지만, 마리우스의 아들이 왕의 첩과 눈이 맞는 바람에 다시 쫓겨났단다. 그러다가 아프리카의 조그만 섬에서 그들을 받아주었단다. 받아준 정도가 아니라 대환영이었어. 그 섬에는 마리우스에 옛날에 해방시켜준 옛 노예 군사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거든. 그들에게 마리우스는 영웅이고, 마리우스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내놓고 싸울 수 있는 이들이었어.

한편, 로마에서는 차석 집정관 킨나와 수석 집정관 옥타비우스 사이에 알력 다툼이 있었어. 옥타비우스는 킨나의 지지세력을 참살시키는 일이 벌어졌어. 그리고 신성모독이라는 누명을 씌워 킨니와 여섯명의 호민관을 추방시켰단다. 킨나는 로마에서 추방당해 이탈리아 지역에 머물면서 반격을 준비했단다. 군대를 준비해서 로마로 진군할 예정이었어. 술라의 부대가 로마를 진군한 사례가 있으니, 두 번째는 어렵지 않았지.

그리고 세 번째는 더 쉬웠을 거야. 무슨 말이냐고? 마리우스도 노예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하고 있었거든. 킨나와 마리우스는 연락이 되어 같이 로마를 진군하기로 했어. 하지만, 킨나의 부하 중에는 마리우스와 동행을 경고한 이가 있었어. 마리우스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마리우스가 아니라고 했어. 자신의 탐욕과 권력 욕심에 사로잡힌 늙은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그 옛날 들은 예언, 즉 집정관을 일곱 번 한다는 것에 집착을 하고 있다고 말이야.


….

4.

마리우스는 노예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입성했어. 그들의 부대를 대항할 이들이 없었어. 그렇게 로마를 차지한 마리우스는 차석 집정관이 되었단다. 그에게 수석이든 차석이든 상관 없었어. 그저 일곱 번째 집정관이 되면 되는 거니까 말이야. 당시 수석 집정관은 킨나가 되었어. 하지만 차석 집정관이 된 마리우스는 거의 황제처럼 행동했단다. 그것도 폭군처럼 말이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 그의 로마 부대는 로마인들을 야만족 다루듯이 약탈을 했어. 그리고 반대파는 가차없이 죽여버렸단다. 그 이전 수석집정관이었던 옥타비우스도 마리우스에게 죽음을 당했어. 그의 내면 깊숙이 이런 폭군이 숨어 있었는데, 그걸 참고 있었던 것일까. 돌변한 그의 모습에 그 어떤 조언도 할 수 없었어. 그런데 그는 화를 내다가 다시 한번 쓰러졌단다. 다시 찾아온 뇌졸증.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어. 일곱 번째 집정관은 그렇게 6일만에 끝났단다. 비록 6일이었지만, 6일은 평생 오랫동안 쌓아왔던 명예와 명성을 쓰러뜨리는데 충분한 6일이었단다.

이렇게 풀잎관 3권이 끝이 났단다. <마스터즈 오브 로마> 2부도 끝이 났고 말이야. 풀잎관 3권을 읽은 약 열흘간 아빠는 고대 로마를 여행한 기분이었단다. 마리우스와 술라의 숨소리를 듣는 느낌이었어. 7 부 중에 2부가 끝이 났구나. 또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워지면 또 읽고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 술라는 로마를 통치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을 아예 간과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저도 알아요, 루키우스 데쿠미우스, 저도 알아요!”


"트리부스 수는 지금의 서른다섯 개가 적당하고, 더 늘어나서는 안 됩니다!" 술피키우스가 외쳤다. "또 트리부스회와 평민회에서 시민 수가 고작 3,4천 명인 몇몇 크리부스가, 시민 수가 10만 명이 넘는 에스퀼리누스 트리부스나 수부라 트리부스와 투표권이 동등한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처럼 로마의 통치 제도는 모든 면에서 저 전지전능한 원로원과 1계급을 보호하려는 목적에 따라 설계되었습니다! 원로원 의원이나 기사가 에스퀼리누스 트리부스나 수부라 트리부스에 속합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들은 라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로밀리우스 트리부스를 프리페르눔, 부키, 비비니움 출신 사람들이 공유하게 합시다. 그들의 파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로밀리우스 트리우스를 에스퀼리누스 언덕과 수부라 지구 출신 해방노예들이 공유하게 합시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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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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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오늘은 풀잎관 2권을 이야기해줄게. 2권은 더 두껍구나. 풀잎관의 등장인물들의 주무대는 로마 원로원이란다. 대의 민주주의를 그 옛날부터 실천하고 있던 로마 원로원. 그 원로원 의원들이 상대방을 비방하고 거짓 선동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국회를 보는 것 같구나. 그래도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상대방이 옳은 소리를 할 때는 이야기도 들어주고 지지하곤 하는데, 우리나라 국회에는 거짓말을 일삼고 무조건 반대를 하는 무리들이 있단다.

이번 달에 새로 시작하는 국회에는 전보다 그 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30%이상 자리를 잡고 있단다. 그들보다 훨씬 훌륭하고 국민들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원외에 많이 있는데 아쉽구나. 아빠가 지지하는 정당은 비록 원외정당이고, 지난 선거 때 사표가 될까 염려로 그들에게 표를 주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선거법에 다시 깔끔하게 개정이 되어, 이런 이들이 국회에서 일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구나. 바로 2권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줄게. 1권에 나왔던 사람들은 따로 설명을 안해도 되지?


1.

드루수스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게 하려는 방법을 찾았어. 호민관이 되어 법률을 입안하면 가능할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했단다. 그는 이미 법무관 이력도 있고 여러 경험을 쌓았으니, 집정관 후보로 나와도 손색이 없었지만, 호민관에 입후보하고 선출이 되었단다. 그는 법을 제안하기 전에 원로원에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명연설을 펼쳤단다. 이 연설을 통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정책에 많은 지지자가 생겼단다.

동방에서 돌아온 술라. 3년 뒤 집정관을 목표로 여러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단다. 술라의 가장 큰 단점. 비주류. 술라는 상대 진영의 사람들과 대척을 지면서 인지도를 쌓았어. 상대 진영과 확실하게 선을 그어서 고발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는 오히려 고발인을 찾아가 협박을 하고 고발인의 약점을 밝혀내서 고발을 취소하게 만들었어. 그런데 그에게 괴로운 일이 하나 발생한단다. 바로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만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아들의 죽음은 술라에게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주었단다. 그에게 거의 유일하게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이였거든. 한동안 나랏일에 참석할 상황이 아니었지.

드루수스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한걸음씩 나아갔어. 곧바로 이탈리아인들의 시민권 부여를 입안하는 것이 아니고, 로마를 위한 법들을 만들었어. 그러면서, 자신의 편을 늘려나갔지. 드루수스를 지지하는 원로원 의원들은 마리우스, 스카우루스, 스카이볼라, 안토니우스, 그리고 술라까지유력한 의원들이 대부분 그를 지지했어. 그리고 그가 내놓은 법들은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시민들도 그에 대한 호감도도 높이 올라갔어. 이렇게 이미지를 좋게 만든 그는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어야 하는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법을 상정하였단다. 신선한 충격이었어.

그가 그 동안 좋은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이탈리아인에게 시민권을 주는 것은 많은 이들의 반감을 주었단다. 현직 두 집정관들 모두 반대를 했고, 드루수스가 던진 화두로 원로원 의원들은 둘로 갈라져 치열한 공방을 벌였단다. 어떤 의원은 이탈리아인들이 두루수스의 피호민이 되기로 했다면서, 그의 법안을 평가절하하기도 했어. 결국 드루수스의 이 법안은 무효가 되었고, 그 동안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단다. 드루수스는 이 법안이 결코 이탈리아인들만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는 이탈리아인들이 로마에 불만을 품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법이 그 전쟁을 막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했어. 비록 원로원의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드루수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한가지 더 방법이 있었거든. 평민회에서 그 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어. 하지만, 그는 법안 투표 하루 전에 그만 괴한에게 암살을 당했단다. 그의 죽음으로 이탈리아의 시민권 부여는 물 건너갔고, 그들 앞에는 전쟁만이 기다리고 있었어.


2.

이탈리아는 더 이상 차별을 참지 못했어. 실로, 마틸루스는 이탈리아의 8개 부족을 모아서, ‘이탈리아를 공식 국가로 선언했고, 수도는 이탈리카로 이름을 정했어. 그리고 로마와 일전을 준비했단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어떤 부족에 찾아온 로마의 전직 법무관이 왕 노릇을 하였는데, 이를 분노한 이탈리아인들이 그를 죽인 사건이 있었어. 비록 우발적인 사고였지만, 이제 로마와 이탈리아는 피할 수 없었어. 로마 원로원은 이탈리아의 전쟁 준비 소식을 듣고 당황했어.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이라는 것처럼 말이야. 그들을 하나로 중심 잡아줄 사람도 없었어. 술라는 원로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이탈리아와 전쟁에 대한 대비책을 내놓았는데, 모두들 공감했단다. 이 연설로 술라는 이미지가 상승했지.

술라가 내놓은 계획에 따라 전현직 집정관들이 각기 나누어서, 이탈리아의 각 부족들과 전쟁을 벌였단다. 미라우스도 전직 집정관 자격으로 전쟁을 참여했어. 그의 상관은 현직 집정관인 루틸리우스 루푸스 이었어.(1권에서 이야기한 마리우스의 친구 아님, 동명이인) 마리우스는 아직 훈련이 부족하다며 더 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루푸스는 그의 의견을 무시했어. 급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준비되지 않은 인력으로 공격했단다, 대패하고 자신도 죽고 말았단다. 상관이 사라지자 마리우스는 남아 있는 군대를 정비해서, 승리를 했단다.

1권에서 나왔던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이었던 카이피오 기억나지? 이탈리아 사람 실로는 카이피오가 황금에 약한 것을 알고, 그들 가짜 황금으로 꼬셔내어 죽였단다. 기억나니? 이탈리아인 실로와 로마인 드루수스는 우정을 쌓고 있었다고.. 드루수스를 죽인 배후에는 카이피오가 있다고 실로는 생각했어. 그래서 카이피오를 죽이면서 드루수스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단다.

드루수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드루스스 마저 죽고 난 이후 많은 조카들을 보살피던 드루수스의 엄마도 죽고 말았어. 아이들은 이제 누가 보살펴주나. 드루수스의 남동생 마메르쿠스가 있었지만, 그의 아내가 극구 반대하여 마메르쿠스가 원로원의 어른 스카우루스에게 도움을 청해서 아이들은 카이피오의 먼 친척에 돈을 준다는 조건으로 보살펴 주기로 했단다. 드루수스는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음을 당했고 아이들은 불쌍하게 되었구나. 과연 정의를 쫓아 살아야 하나? 의문이 드는구나.

로마와 이탈리아의 전쟁. 술라는 자신의 총사령관 율리키아 카이사르와 의견 충돌이 잦았어. 그러자 율리키아는 술라를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보내버렸단다. 술라는 자신보다 무능한 자가 총사령관을 하고 있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많이 났어.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 참아야 했지.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결국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단다. 산발적인 전투에서 로마가 거둔 첫 번째 승리였어. 그러나 뇌졸증이 또 찾아봤어. 벌써 두 번째. 술라가 급히 마리우스를 로마로 데리고 왔어. 때는 겨울로 들어서고 있었단다. 전쟁은 다소 소강상태가 되었지. 로마는 다시 선거철이었어. 로마와 이탈리아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아시아 속주 지역에 폰투스 왕 미트리다테스가 다시 세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어. 로마는 혼란의 시기를 겪는 것 같았단다.


3.

이 즈음 로마의 또다른 유명한 한 사람이 등장하게 된단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2. 우리가 보통 키케로라고 부르는 사람이지. 그의 나이는 현재 열일곱 살로 어리니까 키케로 2세로 부를게. 전쟁이 몰아치다 보니 키케로 2세도 열일곱 살의 나이에 군입대를 하게 되었단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가 지휘하는 군대에 소속되었는데, 키케로는 몸도 왜소하고 운동 감각도 떨어지는 등 군인 체질이 아니었단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미 키케로는 뛰어난 문장력을 보이는 등 똑똑했단다. 그리고 폼페이우스의 아들 폼페이우스 2세와 만나게 되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분을 쌓게 된단다. 이 폼페이우스2세는 나중에 로마의 유명한 군인이 된단다. 폼페이우스2세의 아버지 폼페이우스는 잔인하고, 전쟁에서 상대에서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었단다. 그런 이에게 연약해 보이는 키케로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지. 그런데 정보력과 전술적인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뇌졸증으로 로마로 돌아온 마리우스는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어. 어린 카이사르2세가 수발을 도와주고 있었어. 카이사르2세는 마리우스의 조카가 되니까 말이야. 카이사르2세는 마리우스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그러면서 카이사르2세는 마리우스로부터 군사학에 대해 배우게 돼. 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카이사르 2세가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잖니. 어렸을 때부터 너무 똑똑해서 카이사르2세의 엄마가 티 나지 않고 평범하게 키우려고 있는데, 바늘을 옷 안에 숨길 수가 없었지.

마리우스의 아들도 전쟁에 참가했는데, 그 아들이 전쟁터에서 집정관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어. 그냥 로마에 앉아있기에는 큰 사건이었지. 마리우스는 카이사르 2세와 데쿠미우스와 함께 아들이 있은 곳으로 갔단다. 아들이 집정관을 죽였다는 것을 본 증인은 한 명이었어. 마리우스의 아들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증인 또한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어. 데쿠미우스는 몰래 사고사처럼 꾸며 유일한 증인을 죽였단다. 분명 마리우스가 뒤에서 조정했겠지. 이 사건은 유일한 증인이 죽으면서 일단락되었단다. 마리우스가 정의에 따라 행동을 하던 합리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사람을 죽이다니

….


4.

술라는 이탈리아와 전쟁에 다시 투입되어 폼페이, 놀라 등에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로마가 이탈리아와 전쟁을 하고는 있지만, 향후에는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어. 그래서 다른 야만인과의 전쟁과 달리 적군의 희생을 최소로 하려는 장군들도 있었어. 하지만 술라는 짤 없었단다. 패배한 이탈리아인들을 몰살시켰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부하들의 사기를 무척 올라갔지. 술라의 부하들은 그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전쟁터에서 직접 뽑은 풀로 풀잎관을 만들어 술라에서 선사했단다. 그렇게 술라는 풀잎관이 되었단다.

술라는 전쟁에서 이기고 로마에 돌아와서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단다. 그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 술라는 전쟁의 승리자로 로마에서 많은 인기가 있었어. 당연히 수석 집정관으로 당선이 되었지. 집정관 취임 행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축하해 주었어. 그런데 그때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관심은 뇌졸증에서 회복한 마리우스에게 향했어. 여전히 로마 시민들에게 최고의 영웅은 마리우스였던 거야. 이런 광경을 본 술라는 마리우스에 앙심을 품게 되고 시기심에 불타 오르게 된단다.

집정관이 된 술라는 집정관에 어울리는 부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부인 아일라아에게 갑작스런 이혼을 선언하고, 얼마 전에 급사한 스카우루스의 미망인 달마티카와 재혼을 했단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1권에서 유부녀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달마티가가 술라에게 대쉬를 했었잖아. 술라도 그때 이미 달마티카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성공을 위해 떨쳐냈던 것인데, 이제 집정관이 되었으니, 그러니까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으니, 사랑에 있어서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

풀잎관 2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게. 생략하면서 대충대충 이야기한 것 같은데, 꽤 길어졌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동방에 가 있던 동안, 마리우스와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는 리키니우스 무키우스법 특별 법정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법률을 제정하는 데 성공했다.

책의 끝 문장 : 이제는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었다.


"이제야 이야기가 재밌어지는데!" 키케로의 얼굴은 생기가 돌면서 밝아졌다. "법률과 법률 제정. 내가 좋아하는 분이야!"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군. 내가 보기에 법은 그저 골칫거리야. 법이란 항상 특출한 재능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특출한 인물을 겨냥하거든. 특히 어린 나이에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 말이야."
"인간은 법체계 없이 살 수 없어!"
"특출한 사람이라면 가능해."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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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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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콜린 매컬로의 대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작 중 제2 <풀잎관>을 읽었단다. 풀잎관은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은 제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작년에 1 <로마의 일인자>를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때 너희들에게 쓴 독서편지를 다시 읽고 나서 풀잎관 1권을 펼쳤단다. 고대 로마의 사람들의 이름들이 비슷비슷하고, 동명이인도 많고, 특히 가족들은 같은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참 헛갈리더구나. 한 사람의 지칭할 때도 여러 이름으로 불러서, 처음에는 참 헛갈렸단다. 책이 시작하기 전에 주요등장인물을 정리해서 적어준 것도 읽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 같아.

2부의 제목 풀잎관은 로마 최고의 군사 훈장이란다. 전장의 풀로 즉석에서 만들어서 주는데, 이 관을 받은 사람은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된다고 했어. 과연 이 풀잎관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1 <로마의 일인자>를 읽은 이들은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거야. 어린 율릴라가 술라에게 풀잎관을 만들어 주는 장면이 복선처럼 나온 적이 있었거든.

1.

이야기를 하기 전에 복잡한 주요등장인물들의 가계를 정리해 보자꾸나. 가계도를 그림으로 그리면 좀 좋겠지만, 그냥 말로 해줄게. 1부의 주인공이었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앞으로 간단히 마리우스라고 할게)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아내는 율리아이고, 그들에게는 아들 가이우스 마리우스 2세가 있었단다. 율리아의 여동생 율릴라가 있었는데, 1부에서 자살을 했었지. 율릴라의 남편이 바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앞으로 간단히 술라라고 할게). 술리와 율릴라 사이에 아들 술라2세와 딸 코르넬리아 술라가 있었단다. 술라는 율릴라가 죽고 나서 아일리아라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이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사이도 별로 좋지 않았어.

율리와와 율릴라의 오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간단히 카이사르라고 할게). 카이사르의 아내는 아우렐리아인데 이 아우렐리아는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의 조카야. 루푸스와 마리우스는 서로 동갑내기 친구였단다. 카이사르와 아우렐리아 사이에는 큰딸 큰 율리아, 둘째 딸 작은 율리아, 그리고 아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가 있었단다. 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란다. <풀잎관>에서는 아직 어린 아이로 나온단다. 일단 이 정도 주요등장인물을 이야기하고 나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또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면 그때 그 집안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예언자가 일곱 번의 집정관을 맡게 된다고 들은 마리우스. 그러나 여섯 번을 하고 뇌졸증을 앓게 되어 일선에서 물러났단다. 병세나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의 나이 이미 예순으로 당시로는 적지 않은 나이였단다. 마리우스가 총사령관일 때 그 밑에서 보좌했던 술라. 그들의 사이는 이제 그리 좋지 않았단다. 술라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었어. 1부에서도 보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죽였잖아. 여자 문제도 스캔들에 엮이면 성공에 방해가 될까 봐 조심했는데, 그의 잘생긴 얼굴로 인해 본의 아니게 엮이게 되기도 했단다. 원로원의 최고참 중에 한명인 스카우루스의 젊은 아내 달마티카가 노골적으로 대쉬를 하는 바람에 이미지에 타격을 받기도 했단다.

한편, 로마에는 똥돼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가 해외에 추방되었다가 아들의 도움으로 로마로 돌아왔단다. 마리우스는 뇌졸증에서 완치되어 아시아 속주 지역을 살펴보려고 길을 떠났단다. 아내와 아들도 데리고 갔어. 대충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단다.

2.

술라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는 내심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마리우스도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업적을 쌓기 위해 히스파니아 원정에 떠날 준비도 했단다. 또한 그의 성공에 방해가 될만한 사람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로마로 돌아온 똥돼지 메텔루스. 그는 은밀히 메텔루스를 독살시켰단다. 메텔루스가 죽기 전에 술라가 함께 있었지만, 메텔루스를 살리기 위해서 얘를 쓰던 술라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어. 심지어 메텔루스의 아들도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 술라에게 더 신뢰를 했어. 물론 술라의 야심을 아는 이들 중 몇몇은 그를 의심하기도 했단다.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시아에도 속주를 두었는데, 그곳의 움직임이 수상했단다. 특히 흑해 주변의 폰토스가 젊은 왕 미트리다테스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었어. 미트리다테스는 야심이 많고 능력도 있지만 잔인하기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였단다. 흑해 주변의 지역을 하나둘 차지하면서 세력을 확장했고, 로마와 맞대결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이웃나라 아르메니아 젊은 왕과 동조해서 로마에 대항하려고 했어. 마친 아시아 속주에 도착한 마리우스의 그의 속마음을 알고 그에게 만나 경고를 했단다. 미트리다테스도 이에 지지 않고 강경한 대응을 했어. 둘의 만남은 살벌함 그 자체였단다. 아시아 속주의 나라 중에는 로마에 의지하려는 나라들도 있었어. 비키니아의 경우 미트리다테스와 대립을 하지만 그들에 비해 역량이 부족하여 로마에 도움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마리우스가 와서 그들의 지원을 약속했어.

3.

1부에 나왔던 인물들 중에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가 있었어. 그들은 상대방의 여동생과 결혼을 했어. 카이피오는 드루수스의 여동생 세르빌리아와 결혼을 했고, 드루수스는 카이피오의 여동생 리비아와 결혼을 했지. 카이피오는 온갖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가 숨긴 황금을 어떻게 가져올까 고민을 했어. 아버지가 숨긴 황금 때문에 집안이 파산 나고, 카이피오와 리비아는 드루수스의 집안에 얹혀 살고 있었잖아. 카이피오와 리비아 사이는 좋지 않았고, 드루수스와 세르빌리아 사이는 좋았단다. 드루수스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하면 돼.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고, 당시 로마인과 차별 받는 이탈리아인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었어. 이탈리아인 실로와 각별한 친분을 쌓고 있었단다. 이탈리아인들이 로마에 복속하려다가 잘 안되어 분리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알았기에, 드루수스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것을 추진하고 있었어.

카이피오는 아버지가 숨긴 황금을 처리하려고 해외에 간다고 했어. 카이피오의 아내는 무척 기뻐했어. 카이피오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카이피오가 떠나고, 리비아는 오빠 드루수스에게 분가하겠다고 했어. 그래서 딸 둘을 데리고 오빠 집 근처로 독립했단다. 부족함이 많았지만, 리비아는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어. 그리고 카토라는 애인도 생기고 임신도 했단다. 카토의 아이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카이피오의 아이라고 속였어. 행복한 생활은 원래 금방 지나가는 것이란다. 카이피오가 외국에 다녀오기로 한 일년 반은 순식간에 지나갔어. 예고도 없이 드루수스의 집에 돌아온 카이피오. 리비아가 없는 것으로 보고 화를 냈어. 어쩔 수 없이 리비아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드루수스의 집에 돌아왔어. 카이피오는 자신이 없는 사이 자신의 아들이 생긴 것을 알았어.(머리카락 색깔이 이상해서 조금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리비아는 다시 불행의 시작이었어. 카이피오는 그 이전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되어 이제는 폭행까지 했단다. 리비아는 거의 매일 카이피오의 폭행을 참아내야 했어. 어느날 드루수스는 카이피오가 리비아를 때린다는 사실을 알고, 카이피오에게 화를 내고,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 그러자 카이피오의 첫째 딸, 아직 열 살도 안된 세르빌리아는 엄마가 바람 핀 사실을 이야기했어. 딸 세르빌리아는 엄마 리비아를 무척 싫어하고 아빠인 카이피오를 좋아했거든. 세르빌리아는 어린 남동생도 아빠의 아들이 아니라 카토의 아들이라고 소리질렀어. 카이피오는 격분하여 바로 뛰쳐나갔고, 이혼장을 보내왔단다. 카이피오의 딸 세르빌리아는 아버지에게 가고 싶다고 울었지만, 카이피오는 아무도 받아주질 않았지. 리비아의 입장에서 보면 잘 된 일이지. 드루수스는 동생 리비아에게 그동안 몰랐고,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어. 그리고 리비아에게 그동안 있던 이야기를 듣고, 카토와 재혼하도록 도와주었어.

카토는 리비아와 함께 드루수스의 집에서 생활했단다. 드루수스와 아내 세르빌리아가 사이가 좋지만 아이가 그동안 없었는데, 그들 사이에도 드디어 아이가 생겼어. 그러나 아이를 낳다가 그만 세르빌리아가 죽고 말았단다. 아이는 낳지도 못하고 말이야. 드루수스는 큰 슬픔에 빠지고 말았어.

4.

이탈리아인들이 가짜로 로마 시민 행세를 하다가 들통이 난 사건이 일어났어. 이를 두고 원로원에서 혈전이 벌어졌단다. 그들에게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스카우루스와 카이피오 등이 있고, 그들에게 선처를 해야 한다는 마리우스와 드루수스 등이 있었어. 결국 많은 지지로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한다면서, 리키니우스 무키우스 법이 통과되었어. 이탈리아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드루수스는 이제 전쟁은 불가피하고 생각했어. 그는 이탈리아 절친 실로와 무틸루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피하라고 했어. 그리고 전쟁을 막아보겠다고 법을 원상태로 돌리겠다고 했어. 그들에게도 전쟁은 막아달라고 했어. 그러나 실로와 무틸루스에게 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였지.

리비아와 카토 사이에서는 아들이 또 태어났어. 그런데 산후 몸조리를 하면서 리비아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어. 거기다가 딸 세르빌리아는 엄마에게 죽으라고 저주의 말을 퍼부었어. 어린 딸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드루수스는 리비아가 걱정이 되어 어린 시절 이후 의절했던 엄마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를 찾아가 도움을 부탁했어. 코르넬리아는 드루수르를 따라와 리비아를 만나 화해를 했어. 하지만 드루수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비아는 죽고 말았단다. 아내에 이어 여동생마저 죽고 만 거야. 집에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은데 말이야. 결국 코르넬리아가 드루수스의 집에 머물면서 아이들을 보살피기로 했단다.

5.

한편, 술라는 히스파니아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법무관이 되었어. 법무관은 그의 목표인 집정관이 되기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었어. 그는 2년 뒤 집정관이 되는 목표를 잡았어.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데, 그 인지도를 쌓기 위해서는 속주의 총독으로 가는 것이었지. 그런데 유력한 지역의 총독 자리는 이미 자리가 꽉 찼어. 이때 폰타스의 왕 미트리다테스가 전쟁을 일으켰어. 미트리다테스를 막을 사람이 필요한데 술라가 제격이었지. 술라는 아시아 속주 중 하나인 킬리키아 총독으로 부임했어. 아들 술라2세도 같이 데리고 갔어. 술라가 무자비한 사람이었지만 아들 술라2세에게는 그야말로 극진했단다. 아들바보였지. 아들을 잘 가르치고 이런저런 경험을 쌓게 하고 싶었던 거야.

술라는 미트리다테스 왕과 만나 담판을 지었어. 협박과 경고를 적당히 섞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미트리다테스 왕은 전쟁을 멈추고 폰토스로 돌아갔단다. 술라는 말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야. 술라는 로마로 곧장 돌아오지 않고, 티그리스 강 유역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왕들과 종족들을 만나 경고했어. 그가 떠난 뒤에 또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을 걱정해서 교통정리를 하려는 것이었지. 아시아 속주의 어지러운 상황은 일단 정리가 되었어. 그러면서 술라는 황금을 많이 얻어서 나중에 집정관 선거에 필요한 자금도 많이 확보를 했어. 1권의 이야기는 이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구나. 정말 정신 없이 줄거리를 썼는데도 편지가 많이 길어졌구나.

….

지금은 이탈리아라는 나라 이름이지만, 옛날에는 오랫동안 로마라는 나라 이름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리고 로마와 이탈리아는 별개의 민족이었던 것이고 말이야. 어떤 사연이 있는지 나중에 이탈리아 역사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지난 열다섯 달 동안 일어난 일 중에 가능 재미난 건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경기대회에서 선보인 코끼리였지.”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말했다.

책의 끝 문장 : 거기 사는 오랜 벗을 만나서 로마 소식을 계속 전해주겠다고 약속해야 하거든.


"꼭 그래야 한다면 후회해요. 하지만 그것이 오늘이나 내일을 물들이게 하지는 마세요." 아우렐리아의 말투는 신비롭다기보다 현실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과거는 당신을 영원히 괴롭힐 거예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그리고 예전에도 몇 번 말했듯이 당신은 앞으로도 먼길을 달려야 해요. 경주는 이제 겨우 시작이에요." - P419

강한 애착이 없을 경우-대개 그렇지만-연애란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방식일 뿐이야. 사람들은 늘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단다. 연애는 그 가치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걸,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는 그런 식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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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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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을 읽었단다. 9권과 10권은 서울을 이야기하고 있어. 서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현대화된 도시이지만, 그런 현대화가 되기 전에 600년동안 옛조선의 수도였으니, 그 당시의 문화유물들이 많이 있단다. 그래서 할 이야기도 많을 테고 말이야. 유홍준님은 돌고 돌아 바야흐로 서울로 돌아왔다고 하시는구나. 예전에 6권에서 <경복궁>을 이야기해주시도 했는데, 이번 9권에서는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등 모두 서울의 문화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궁에 서려 있는 옛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단다. 창경궁은 대학교 때도 가보고, 너희들과도 한번 가본 기억이 있는데, 종묘와 창덕궁은 앞길을 지나가기만 하고 간 기억이 없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너희들과 함께 가보고 싶은데,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시기이니나중에 가보자꾸나. 유홍준님께서 이야기하기를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겨울이 좋다고 하니, 단풍이 예쁘게 든 늦가을에 한번 가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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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4)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청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뒷산 너머에 있는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면 종묘의 단풍은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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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대 국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곳이란다. 종묘가 종로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종묘 근처에 그렇게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는 줄 몰랐단다. 그리고 좌우로 길쭉한 고풍스러운 건물은 조선의 600년 역사를 다 담고 있는 진중함이 사진으로도 느껴지더구나. 지은이 유홍준님은 이 종묘를,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 중국의 천단과 맞먹는 문화유산이라고 했어.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종묘를 잘 이해하길 바라셨어.

어떤 외국의 건축가는 종묘만을 보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왔다고도 하는구나. 이렇게 종묘예찬을 늘어놓으니, 아빠도 너희들과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코로나19가 우리를 잡는구나. 종묘가 유네스코 유형 유산으로 등재될 때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도 함께 유네스코 무형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각각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는데, 종묘제례는 국가무형문화재 1호라고 하는구나.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50호이고 말이야. 이 책을 읽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하는 장면을 유튜브로 잠깐 봤는데, 실재가 아니라서 확 와 닿지는 않더구나.

종묘에는 조선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증축을 하곤 했는데, 마지막 증축이 헌종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증축이 마치 조선의 마지막을 예상한 것처럼 딱 맞아떨어졌다고 하는구나. , 좀더 지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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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흥미로운 것은 헌종 대의 증축이 마치 왕조의 마지막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의 종말과 함께 정전과 영녕전의 신실이 모두 채워지고 더 이상의 빈 공간이 없어졌다. 정전의 마지막 신실인 제19실에는 순종을 모셨고, 영녕전의 마지막 칸에는 영친왕을 모시면서 16개 신실이 다 찼다. 그러고는 더 모실 신위도 빈 신실도 없었으니 왕조의 종말은 거의 운명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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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의 궁궐이라고 하면, 경복궁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단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가장 먼저 만든 궁궐이 경복궁이니 말이야. 하지만, 조선의 왕들이 가장 많이 생활한 궁궐은 태종이 만든 창덕궁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 태조가 경복궁을 만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왕궁을 만들었냐고? 아빠가 전에 다른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 건국 이후 왕이 되려고 하는 태조의 아들 이방원(태종)이 형제들을 죽이는 등 난리가 일어나고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다가 다시 한양으로 옮기는 등 혼란을 겪으면서, 태종은 아버지와도 사이가 안 좋아지고 경복궁은 자신이 죽인 정도전이 지은 궁궐이기도 해서 경복궁으로 돌아오는 것은 찜찜했을 거야. 그래서 창덕궁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경복궁은 난리와 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 있는 경우도 많고 해서,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에서 더 많이 지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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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돌이켜보건대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태조 4(1395)이고 창덕궁이 창건된 것은 태종 5(1405)이었다. 조선 개국 후 1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두 궁궐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비극의 소산이었지만 결국 우리 문화유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당시 이 엄청난 두 차례의 대역사(大役事)에 동원되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던 조상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희생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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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유홍준님은 창덕궁뿐만 아니라 창덕궁 후원도 하나의 챕터로 뽑아 이야기해주었단다. 창덕궁도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 수 느낄 수 있는데, 젊었을 때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사진만 봐도 한옥의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보이더구나. 저런 집에서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은이는 창덕궁의 여러 전각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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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건축의 눈이 밝지 않은 분이라도 여기서 바라보면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멋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이 정무를 보는 선정전은 엄숙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희정당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왕세자의 공간인 성정각은 밝고 안온해 보인다. 전통 한옥의 모든 것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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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늘 봐오던 건축물이라 무덤덤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건축물들이 색다르게 보이나 보구나. 소위 국뽕이 될만한, 외국 건축가가 평가한 우리나라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자꾸나. 자부심이 절로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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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이에 대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 건축가협회장 로랑 살로몽(파리 벨빌 건축학교 교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전통 건축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이고 풍경이다.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전통 건축은 미학적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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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다른 책에서 우리나라 정원이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 다른 점을 읽은 적이 있단다. 우리나라 정원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자연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어. 창덕궁 후원 곳곳을 설명하면서 사진도 함께 실었는데, 그 사진들을 보니 정말 자연과 잘 어울려서, 그것에 만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단다. 창덕궁 후원도 꼭 가보고 싶구나. 유홍준님이 가이드한대로 코스를 잡아서 구경을 해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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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서양인은 한결같이 인간적 체취를 말한다. 가는 곳마다 지금도 사람이 살면서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을 경험하고 온 분들은 한국의 미학이 따로 있음을 창덕궁 후원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다며 이곳 하나를 본 것만으로 이번 방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이런 창덕궁 후원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은 진정 서울 사람의 복이자 큰 자산이다.

후원의 관람 코스는 낙선재 옆 출입구에서 시작하여 부용정, 애련정, 존덕정, 옥류천, 연경당을 두로 관람하고 규장각 위쪽 산길로 해서 출구로 돌아나가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즐거운 산책이 된다. 나의 창덕궁 후원답사기는 앞으로 찾아올 분들을 위해 이 코스대로 따라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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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낙선재를 곳이 있다고 하는구나. 낙선재의 주인공은 헌종이라고 하는데, 헌종은 조선의 24대 왕이지만 단명하고 짧은 왕위 생활로 존재가 미미한 왕이란다. 헌종의 주요 업적이 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아빠도 할 말이 없단다. 그 헌종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1827년에 태어나 아버지 효명세자가 일찍 죽어서 순조에 이어 여덟 살에 왕위에 올랐어. 열다섯 살에 친정을 하게 되었지만, 당시는 세도정치가 득세하던 시절이었대. 왕이지만 왕이 힘을 쓸 수 없던 왕이었더구나. 그 헌종이 지시하여 지은 건물이 창덕궁 안의 낙선재라고 하는구나. 그곳에서 헌정은 많은 글을 쓰고 문인들과 어울렸대.. 헌종은 추사 김정희의 열렬팬으로 김정희와 어울렸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낙선재에서 헌종과 문인들이 함께 어울리고 봤던 많은 책들이 발견되었대. 헌종이 23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떤 왕이 되었을까. 낙선재는 해방 후 왕족의 후손들이 지내며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대.

3.

창덕궁 후원에 존덕정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하는구나. 인조 때 만들어진 이 정자는 이후 많은 왕들이 시와 문장을 남기면서 풍류를 즐긴 곳이래. 그 왕들 중에 정조가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는 제목을 쓴 글이 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 역대 왕 중에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왕이 정조잖아. 그런 정조께서 쓰신 글이라서 천천히 읽어보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감동이 철철 넘치더구나. 우리나라 각계 여러 곳에서 리더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글이었단다. 겸손하면서 이해심이 많은 리더가 되고 싶다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글이었단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라는 말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이 글을 읽다 보면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어. 아빠가 좋은 글을 읽으면 컴퓨터로 직접 치면서 발췌해 두곤 하는데 이 문장은 긴 문장이지만, 다 적어보았단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펜으로 필사를 한번 해보고 싶은 명장이구나. 이 발췌글 때문에 오늘 독서편지가 길어도 이해해주렴. 이런 글들은 너무 좋아서 꼭 실어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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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301)

나는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우친 바 있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숫자는 1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의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1만 개면 달 역시 1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로 하나뿐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다른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겹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가슴에 찔리는 바가 있었다. 윗사람에게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었던가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 모두를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말한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의 시험해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이어서 정조는 신하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말했다.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희석하지 않은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주고 대범하게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나의 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면(1798) 12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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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정조가 있다면 오늘날은 노무현 대통령이 있단다. 여러 사람들이 정조와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할 만큼 비슷한 점도 많았단다. 두 분 모두 진보 성향으로 당대를 개혁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끝을 보지 못하신 분들로 어떤 이들은 실패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들이 개혁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사회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해. 혹시 지은이 유홍준님도 정조의 이야기를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님이 떠오르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님과 일화를 실었단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머 감각을 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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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어디까지가 권력기관입니까?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말을 끊는 것은 예가 아니었지만 노 대통령은 나를 불경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체 없이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그리고 언론기관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화 와서 받았는데 기분 나쁘면 다 권력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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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때는 창경원이라고 불렀어.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침입하고 나서 우리의 궁궐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어 창경원으로 불렀다고 했어. 나쁜침략을 해도 예의는 지켜야지문화유산을 그렇게 훼손을 하다니.. 1980년대 창경원에 있던 동물들을 과천으로 옮겨 서울대공원을 만들고, 창경원은 다시 창경궁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창경궁은 그럼 언제 만들었고,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서 지냈는가? 세종이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었으며, 그 이후 여러 대비들이 많이 지내셨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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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32)

세종은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창덕궁 곁에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다. 그뒤 성종은 무려 세 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인 세조 비(정희왕후 윤씨), 작은어머니인 예종 계비(안순왕후 한씨), 생어머니인 덕종 비(소혜왕후 한씨) 등이다.

이에 성종은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창경궁이라 했다. 창경궁은 빛나는 경사라는 뜻이며 궁의 둘레가 4,325척이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장을 맞대고 있어 둘을 합쳐서 동궐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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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 <킹덤> 시즌 2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단다. 아빠도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시즌1과 시즌2를 연속해서 다 보았단다. 사람들이 왜 극찬을 하는지 알겠더구나. 아빠가 갑자기 왜 드라마 이야기를 하냐고? 그 드라마가 조선의 궁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보니, 궁궐이 많이 나오는데, 이 책을 얼마 전에 봐서 그런지 이 책에 본 사진들이 많이 나와서 반갑더구나. 창덕궁의 인정전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이 나왔고, 아빠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좋게 생각했던 정자 관람정과 그 옆에 있는 연못이 나와서 반가웠단다. 그 아름다운 연못에 몰래 죽인 시체들을 숨겨 놓는다는 설정이 섬뜩했지만 말이야.

보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님의 어록처럼,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을 보니 더 아름답게 보이더구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2권도 봐야겠구나. 그 책에는 또 서울의 어떤 곳으로 우리를 초대할까.

PS:

책의 첫 문장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돌고 돌아 바야흐로 서울로 들어왔다.

책의 끝 문장 : 신세대들이 구세대의 이런 독백을 과연 이해해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된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길례는 조상과 대자연에 복을 기원하는 종요, 사직, 선농(先農), 선잠(先蠶), 기우(祈雨), 산천(山川)에 지내는 제례다. 가례는 기쁨의 의식으로 명절 의식, 왕비 책봉, 왕자와 공주의 혼례, 원로대신에 베푸는 양로잔치인 기로연(耆老宴) 등이며 흉례는 장례의식으로 국장(國葬)을 비롯한 상례(喪禮)다. 빈례는 외교 의식으로 중국, 일본, 유구(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등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이고 군례는 군대 의식으로 임금이 참석하는 활쏘기, 군대의 열병(閱兵), 무술 시범식이다. - P61

창덕궁을 제대로 답사할 양이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月臺)에서 시작해야 한다. 궁궐의 모든 주요 건물 앞에는 지표에서 높직이 올려쌓은 평편한 대가 있는데 이를 월대라 한다. 달 월(月) 자에 받침 대(臺)자를 썼으니 그곳에 서면 달빛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듯 하늘이 열린다는 뜻일 것이다. 언어의 묘미가 물씬 풍기는데 중국에서는 기차역 플랫폼을 월대라 부른다. - P106

건축적으로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건축 형식을 무량각(無樑閣)이라고 하는데 궁궐 건축에서만 보인다. 확실한 예기는 아니지만 임금이 머무는 대조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은 임금이 곧 용이기 때문에 두 용이 부딪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창경궁의 통명전 등 왕과 왕비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이 대개 무량각인 것을 보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 형식이 구중궁궐 안에서도 지밀한 건물임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 P163

우리나라 정원에서 건물은 마치 자연이라는 거실에 배치된 가구 같아서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경관이 생기고 건물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부용지를 거실이라고 치면 연못은 폭넓은 화문석(花紋席) 같고, 규장각 주합루는 듬직한 반닫이와 기품 있는 의걸이장 같고, 부용정 정자는 화려한 화초장(花草欌) 같고, 영화당은 단아한 서안(書案) 같고, 비각은 곱상한 연상(硯床) 같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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