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 장기려
이기환 엮고 지음 / 한걸음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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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책은 장기려라는 훌륭한 분에 대한 이야기란다. 아빠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장기려라는 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님께서 장기려라는 훌륭한 의사를 소개해주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본 적이 있었어. TV 프로그램은 실제로는 보지 못했고, 기사만 봤어.. 유시민님이 훌륭한 분이라고 소개를 했다면, 정말 훌륭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분에 대해 한번 책이 있으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성산 장기려>라는 책이란다. 오래된 책이더구나. 그리고 어린이용으로도 장기려 선생님에 대한 책이 있어서 구입했는데, 너희들은 아직 읽지 않았지?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1.

장기려 선생님은 음력 1911 7 15일 평안북도 용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단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어. 그리고 평생 기독교 신자로 사셨어. 장기려 선생님도 10대였던 고보 시절 방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경성의전에 합격을 했다고 하는구나. 경성의전이라고 하면 오늘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란다. 장기려 선생님은 졸업 후 외과를 선택했고, 공부 때문에 늦어진 결혼도 하게 되었어.

장기려 선생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스승님은 백인재 교수님이라고 하는구나. 장기려 선생님이 여러 일화를 들려주면서, 소설가로 유명한 춘원 이광수를 치료한 이야기야. 춘원 이광수는 장기려 선생님이 환자를 다루는 것을 보고, 그는 성자 아니면 바보라고 했다는구나. 이미 장기려 선생님은 젊은 시절부터 의사 본연에만 충실했지, 의사로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던 거야. 이광수는 장기려 선생님을 모델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정작 장기려 선생님은 본인이 아니라고 했다는구나. 겸손함의 이유일 수도 있지만, 친일파로 변절한 이광수와 엮이는 것이 꺼림칙한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

장기려 선생님은 박사 취득을 하고 평양 기홀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어. 고향에서도 가까웠으니까그리고 병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다른 의사들과 갈등이 많았대. 단지 장기려 선생님이 세브란스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야. 평양 기홀 병원은 대부분 세브란스 출신인데, 경성의전 출신인 장기려 선생님이 와서 병원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두 달 만에 그만 두고 외과 과장을 맡으면 진료에 전념하셨대. 그리고 1943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설상절제 수술에 성공을 했다는 구나. 간암 환자의 간암 덩어리를 간에서 떼어내는 아주 어려운 수술이었대. 아직 광복이 되기 전이니 그가 그 어려운 시절 이런 의료기술을 터득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이겠니.


2.

일제 시대이다 보니 이유도 없이 투옥되는 일이 있었는데, 장기려 선생님도 짧은 기간이지만 투옥되기도 했대. 그 투옥 기간에 몸이 안 좋아져서 묘향산에서 요양을 하기도 했대. 요양을 하다가 우리나라 해방 소식을 듣게 되었어. 자신도 해방 조국에서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겠다고 생각했어. 그런 중에 조만식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에 동참해 달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어. 하지만, 조만식이 1946년 숙청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었지.

장기려 선생님은 당시 흔치 않은 의학 박사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제안이 왔단다. 김일성 의대로부터 초빙을 받아 외과의로 일하게 되었어. 하지만 공산주의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 불편해 하셨어. 시간이 지나고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일어났단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나라는 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어. 국군의 평양 점령으로 장기려 선생님은 국군 병원에서 일했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그쪽에 더 낫다고 생각했어.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이어지다 중공군의 공격으로 장기려 선생님의 식구들은 피난을 가기로 했단다. 중공군 공격이 평양까지 밀어닥쳤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병원에 있던 장기려 선생님은 첫째 아들 가용과 함께 집으로 향했어. 하지만, 이미 집은 모두 떠나고 늙으신 부모님만 계셨단다. 부모님들은 집을 지키겠다고 했어. 장기려 선생님도 이 피난길이 길어야 두어 달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마음으로 피난길에 올랐단다.

국군이 장기려 선생님을 배려하여 트럭으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첫째 아들 가용과 함께 트럭을 타고 피난길을 떠났어. 장기려 선생님은 몹시 불편해 하셨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걸어가는데, 자신만 차를 타고 말이야.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어. 그 자리에서 차를 세울 없었어. 자신의 식구들만 차에 태우는 것은 그의 성격상 할 수 없는 일뿐만 아니라. 그리고 차를 세우면 많은 피난민들이 차에 타려고 해서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이 피난길이 길어야 두어 달이라고 생각했고,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때 그렇게 헤어진 식구들은 결국 삶이 끝날 때까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슬프구나. 전쟁이 이렇게 나쁜 것이란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대. 북에 남은 장기려 선생님의 남은 아이들 다섯 명 모두가 나중에 커서 의료에 관련된 일들을 하셨어. 그래서 북한을 대표로 해서 외국에 나가도 했어.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나게 되어 서로 남북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대. 어렵게 편지도 주고 받았고, 사진도 주고 받을 수 있었어. 그리고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이 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가 있었고, 장기려 선생님도 제안이 왔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장기려 선생님은 자신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어. 그리고 며칠 만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시면서, 북쪽이나 남쪽에서 가족들과 계속 살게 해주면 만나겠다고 하셨대. 그리고 장기려 선생님은 조만간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통일이 되면 만날 생각을 하셨대. 그렇게 결국 북에 있는 식구들과는 영영 만나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건너건너 얻은 늙은 아내의 사진을 평생 간직했다고 하는구나. 사연 하나하나가 구구절절 눈물을 핑 돌게 하는구나.


3.

다시 그 피난길 이야기를 해볼게. 장기려 선생님은 장남 가용만 데리고 부산까지 왔단다. 북에서 왔으니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기도 했어. 심지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는구나. 감옥에서 나와서는 천막을 치고 병원 일을 시작하셨어. 미국 유학생 전영창이라는 분께서 모금한 돈을 가지고 와서 도와주었고, 장기려 선생님의 후배이신 전종휘라는 분께서 도와주어 병원을 운영했단다. 병원 이름은 복음 병원이라고 했어. 그들은 의료비를 받지 않고 UN의 지원을 받아 운영을 했어. 전쟁통에 지원이 얼마나 되겠니, 늘 돈이 쪼달렸단다. 월급도 의사나 병원장이라고 많이 받지 않고 가족수대로 월급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인 병원을 운영을 했어. 이제 지원금도 끊기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의료비를 받기 시작했대.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어. 의료비가 없다고 치료를 안 할 수도 없고, 치료를 해도 낼 돈도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지. 병원에서는 병원 운영을 해야 하니, 최소한의 돈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 그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거나 몰래 도망가라고 이야기했다는구나. 그리곤 밤에 아무도 모르게 환자를 도망가게 도와주었다고 하는구나. 병원 운영에 늘 돈이 부족했는데, 다행히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대기업들이 나타나면서 근근이 운영할 수 있게 되었어. 이렇듯 그에 대한 미담은 끊임이 없었단다. 부산의 의료 발전을 위해 노력도 했는데, 그의 노력으로 부산대학교에 외과를 창설하기도 했어.

1960년대에는 의료보험이 없었는데, 장기려 선생님은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인 청십자 의료보험을 창설하였고, 이 청십자 의료보험은 나중에 국민건강보험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장기려 선생님의 희생과 봉사 정신은 나라밖까지 알려져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을 하셨어.

장기려 선생님은 평생 의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사셨고, 기독교의 깊은 신앙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이 세상을 뜰 때 가진 것 하나 없이 그가 믿는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신 것 같구나. 비록 이승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헤어진 아내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 계시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나른한 오후였다.

책의 끝 문장 : 이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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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감각 -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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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동물들 중에 가장 고등한 동물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답을 할 거야. 과연 그럴까? 그렇게 고등한 동물이라서, 모든 생물들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이렇게 망쳐놓았을까?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

본격적으로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고등하다고 하는 인간들도 할 수 없는 능력이 있으니 하늘을 나는 능력이란다. 사람들에게 되고 싶은 동물이 있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새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구나.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 지구상에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 중에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을 새처럼 나는 것을 동경해왔단다. 결국 오늘날 여러 기계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새처럼 자유롭게 마음대로 본능적으로 날 수는 없단다.

새는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진화론으로 봤을 때도 새는 왜 날 수 있게 진화가 되었을까? 인간이 아무리 빠른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아직 도약 없이 바로 날 수 있고, 날아가다가 재빠르게 방향전환하는 새들의 원리를 밝히지 못했다고 들은 적이 있어. 이렇게 새의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새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참 많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새의 감각>도 그런 과학자들의 결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새의 여러 비밀 중에 감각에 대한 이야기란다. , 감각이라고 하면, 사람에게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잖아. , 새들도 이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을까? 그런데 있잖아, 새들은 이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새에게는 그것 이외에 또 다른 감각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무엇이냐고? 좀 이따가 이야기해 줄게. 아빠도 깜짝 놀란 새의 감각의 감각. 이로 인해 동물들 중에 가장 고등한 동물은 새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1.

도대체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새의 감각을 연구하여 이 책을 쓴 사람은 팀 버케드라는 사람이란다. 아빠는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지. 아마도 며칠 지나면 지은이의 이름을 까먹을 거야. 팀 버케드라는 사람은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로, 특이 조류학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아이센만 메달이라는 상도 받았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아빠가 앞서 말한 감각들 순서로 되어 있단다. 1장 시각부터 시작해서 감각에 대해 다루고 있단다. 새의 시력은 인간의 시력에 비해 아주 좋단다. 저 높은 하늘 위해서 땅 위에 작은 먹이를 발견하고 잽싸게 내려오는 매를 보더라도, 얼마나 시력이 좋은 지 알 수 있을 거야. 먹이를 잘 보기 위해 시력이 좋을 쪽으로 진화가 되었겠지만, 그런 이유라면 사람도 충분이 시력이 더 좋게 진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새는 그렇게 시력이 좋단다. 날 수 있는 능력도 그렇고 시력도 그렇고 새의 진화 속도는 엄청 빠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그뿐만 아니라, 두 눈의 용도가 다르고, 필요할 때는 동시에 각기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하는구나. 새들은 너무 완벽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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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4)

물론 사람은 대체로 오른손잡이 아니면 왼손잡이다. 눈도 우세한 쪽이 있다. 75퍼센트는 오른쪽 눈이 우세하다(우리가 눈을 다르게 쓴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눈이 양옆에 달린 새는 두 눈을 다른 용도로 쓴다. 이를테면 햇병아리는 먹이처럼 가까운 대상을 볼 때에는 오른쪽 눈을 쓰고 포식자처럼 먼 대상을 볼 때에는 왼쪽 눈을 쓴다. 게다가 한쪽 눈을 일시적으로 안대로 가린 기발한 행동 실험에서 새들이 어느 쪽 눈을 쓰느냐에 따라 과제(이를테면 박새와 유럽어치가 먹이를 찾는 것) 수행 능력에 큰 차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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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눈의 능력으로 인해 한쪽은 뜨고 잠을 자기도 한다는구나. 그러면 뇌의 절반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대. 이거 뭐, 기계가 아니고 이런 능력이 있다니.. 완전 사기 캐릭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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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짐작했겠지만, 오른쪽 눈을 뜨고 자는 새는 뇌의 우반구가 휴식을 취한다(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좌반구에서 처리하고 왼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우반구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한쪽 눈을 뜨고 자는 것이 무척 유용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근처에 포식자가 있을 때다. 오리, , 갈매기는 땅에서 잘 때 여우 같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에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게 유리하다. 청둥오리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무리 한가운데에서 자는-상대적으로 안전한-녀석들은 가장자리에서 자는-포식자에게 잡히기 쉬운-녀석들에 비해 눈을 뜬 채 자는 시간이 훨씬 적으며 무리 가장자리에 있는 녀석들은 포식자가 접근할 만한 방향을 바라보는 눈을 뜨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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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을 시작으로 새의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이야기를 시각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새의 능력이라면, 청각, 촉각, 미각, 후각에서도 아빠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서 새들의 뛰어난 감각 능력에 그리 놀라지 않았단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리에서도 촉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정도?


2.

그리고 5감각의 이야기를 마치고, 6장의 제목 자각(磁覺)을 보고 제목을 여러 번 보았단다.  제대로 본 것 맞나? 자각?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는 자석, 자기장을 뜻하는 한자란다. 뭐야, 그런 새는 자기장을 느낄 수 있다는 거야? 이 자각이라는 감각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사람들은 없지만 새에게 있는 놀라운 감각이란다. 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각을 볼 수 있다고 하는구나.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새들이 정확하게 목적지를 갈 수 있는 이유를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다고 하는구나. 예전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고 했어.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가설이고, 두 번째 가설이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가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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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13)

새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지에 대한 연구는 오래고 험난한 역사가 있다. 1800년대 중엽에는 비둘기 같은 새들의 귀소 방법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했다.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견해인데, 증거는 전혀 없다. 또 하나는 지구가 일종의 거대한 자석이며 새에게 여섯 번째 감각이 있어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비교적 최근의 발견을 바탕으로 삼는다. 소설가 쥘 베른은 이 견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해터러스 선장의 모험과 항해(1866)>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기력의 영향을 받아 늘 북쪽으로 걸었. 새가 사람과 달리 자각을 이용하여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스 폰 미덴도르프가 1859년에 처음 했지만,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앨프리드 뉴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류학자들은 여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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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학자들에 연구에 의해 오른쪽 눈을 통해서 자각을 인식한다는 것을 알아냈대. 유럽울새라는 새의 오른쪽 눈만 뿌옇게 처리한 렌즈를 씌웠더니 방향을 찾지 못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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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오른쪽 눈과 왼쪽 뇌는 어떻게 자각을 처리할까? 단지 오른쪽 눈이 빛에 더 민감해서일까? 빌트슈코는 진상을 알기 위해 유럽울새에게 일종의 콘택트렌즈를 씌우는 후속 실험을 실시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씌운 렌즈는 같은 양의 빛을 받아들이지만 하나는 뿌옇게 처리되어 영상이 흐릿하게 보였고 또 하나는 투명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놀라웠다. 오른쪽 눈에 뿌연 렌즈를 씌워 세상을 보게 했더니 유럽울새는 방향을 찾지 못했다. 이에 반해 오른쪽 눈에 투명한 렌즈를 씌웠더니 여느 때처럼 정밀하게 방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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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혹시 어벤져스의 아이먼맨의 특수 안경과 같이 모든 정보가 보이는 것은 아닐까? 혹시 다른 생물체의 마음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의 자기장까지 볼 수 있는데 말이야. 6장의 자각(磁覺)에서 놀라서 그런지, 7장에서 이야기한 새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새들이 유대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은 그저 그런 내용으로 읽혀지는구나. 이렇게 고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물체인데 한낱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도 있겠지.

아냐, 고등한 생명체라고 하면 멘탈도 강해서 스트레스도 없어야 맞는 것인가? 아무튼 새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 좀더 진화할 거리는 남아 있는 것 같구나. 만약 새들보다 좀 미개한 인간들이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생명체가 못살게 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런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새들, 특히 비둘기를 싫어하니?^^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망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기네 조류 동물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책의 끝 문장 : 현재 우리는 새의 감각을 (적어도 일부는) 기초적으로는 훌륭히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해야 할 것이 많다.


때때로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표현된다. 가식적으로 들리겠지만, 여기서 ‘진리’의 의미는 단순하다. 진리란 ‘자신이 가진 과학적 증거를 근거로 우리가 지금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누군가의 가설을 재검증했는데 검증 결과가 원래 가설과 일치하면 원래 가설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애초의 실험 결과를 재현하지 못하거나 현상을 더 훌륭하게 설명하는 새 가설을 찾아내면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견해나 더 나은 증거에 비추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과학적 진보의 구성 요소다. 그렇다면 ‘현재의’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재로서는 진리’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이다. - P17

마틴은 올빼미의 눈이 정면을 향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올빼미의 눈이 매우 커야 할 뿐 아니라-빛이 약한 곳에서 날아다녀야 하니까-귓구멍이 매우 커야 하는데, 이 때문에 두개골에서 눈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정면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틴이 묻는다. "그곳 말고 어디에 갈 수 있었겠는가?" 올빼미 두개골에 눈과 귀(그리고 뇌) 자리가 얼마나 부족한가 하면 귓구멍으로 눈알 뒤쪽을 볼 수 있을 정도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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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70호 - 2020년 1월~2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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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20 녹색평론

2020년 첫 번째 녹색평론을 읽었단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 제대로 된 눈 한 번 보지 못하고 지나갈 뻔한 겨울. 간신히 얼마 전 내린 눈으로 눈을 보긴 했지만, 우리의 겨울이 어쩌다 이렇게 변한 것인지 모르겠구나. 이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변화된 기후위기에 어떻게 잘 적응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겠구나. 녹색평론에서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했지만, 격월마다 발행되는 비주류 잡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나 보구나.

올 겨울 이상 기온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모습뿐만 아니라, 전 지구촌 널리 퍼져 있는 뉴스이고, 몇 십 년 만에 최고기온을 기록했다는 뉴스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구나. 자본주의사회라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평균적으로 풍족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경쟁심을 부추겨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고, 지구 환경은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인류멸종을 앞당겼으며, 인간 사회의 시스템은 불균형과 불평등한 사회로 만들었구나.

최근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결국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수상하였단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영화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구나. 자본주의 속에서는 빈부격차로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또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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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물론 인간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었던 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도 지나친 데다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니, 세계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부의 격차는 경악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세계의 최상위 부자 1%가 세계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0%가 그만큼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이 수준까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언론 지면에서도 우리는 부유층이라는 말 대신에 초부유층(super-rich)이라는 말에 자주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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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라는 영화의 성공으로 세계 각국의 지도층들이 빈부격차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문제점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고민들을 했으면 좋겠는데, 트럼프님은 뻘소리를 하고 있더구나..


1.

이번 호의 책제목은 인공지능에 대한 근본 질문들이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몇 년이 지났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경기를 떠올릴 거야. 당시 이세돌이 한 경기를 이겼지만, 그 이후 인공지능은 더욱 발전하고 진화해서, 이제 사람이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어 이길 수 없다고 했어. 작년에 이세돌이 은퇴를 하면서 인공지능과 또 바둑을 두었는데, 이번에는 접바둑으로 두 점을 깔고 두었다고 했어. 그래야 비등비등한 실력이 된다고 말이야. 비단 바둑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 이제 인공지능을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단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쓸 정도라고 하니 말이야.

그리고 최근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에 대한 대처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용했다고 했어. 이런 인공지능에 대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에 대한 이야기를 몇 꼭지를 이번 호에 실었단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면 직업은 사라지는가?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 미래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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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미래에 일자리 없는 세계는 오는 것일까? 사실 일자리 없는 세계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그런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가려 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런 세계를 만들려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누군가가 인공지능에 돈을 대고 있고 또 누군가가 이 미래를 정해진 미래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그런 세계를 만들려 노력하며 이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없이도 경험과 상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을 여전히 필요로 하며, 로봇은 환경을 통제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현실을 두고서도 마치 기술적 대량 실업이 예정된 미래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인간의 쓸모없음이라는 내러티브를 누가 생산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 없는 세상에 인공지능도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 없는 미래, 인간이 더는 필요 없어진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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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을 하려면, 일단 일간이 생존해야 할 텐데, 앞서 말한 것처럼 지구 생명체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기후위기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래야 공존을 하든 지배를 하든 지배를 받든 하지

이건 딴 이야기인데, 인공지능 관련 이야기하면서 어떤 분이 유발 하라리를 과학의 외피를 두른 예언자라고 비판하는 것이 있었는데, 몇몇을 두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아닌가 싶더구나. 그런 시각들이 늘 있어서 새롭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았지만 말이야.


2.

일본 도쿄 올림픽이 이제 다섯 달도 남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환경학자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방사능 때문에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아빠는 도쿄에서 올림픽을 열더라도 방사능이 그나마 적은 곳에서 경기를 열 것이라고 생각했어. 아빠가 순진했던 거냐? 일본은 후쿠시마가 안전하다면서, 그곳에서 몇몇 경기를 치를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로 올림픽 선수촌에 음식을 제공한다고 하는구나. 아니 이런 뻔뻔한 사람들을 봤나. 아빠의 지인들 중에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거나 구경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지 말라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런 사실들을 알면 사람들이 올림픽에 참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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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축구 훈련 시설은 물론,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 성화 릴레이 등, 올림픽 행사의 상당 부분은 일본정부가 원자력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역에서 행해진다. 이것은, 선수들과 일반인들에 대해서, 일본 이외의 세계의 모든 다른 경기시설에 존재하는 피폭 기준보다 20배나 높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 합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과학아카데미가 밝힌 대로 방사선에 있어서는 역치(유해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기준치)가 따로 없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위험성을 평가한다면, 올림픽에 참가는 선수들이 방사선 관련 질환에 걸릴 위험도 20배나 더 증가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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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후쿠시마 방사능 사태.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미 다 끝났고, 안전하다고 선언을 하고, 후쿠시마에 살던 사람들에게 다시 후쿠시마로 돌아가라고 했다는구나. 그것도 강제로 말이야. 그들이 들어와서 살아야, 세계 사람들에도 안전하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야. 일본 정부가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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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결론은 이렇다. 일본정부는 올림픽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도 제염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서 16만 명의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마치 실험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 피난민을 재차 오염된 지역에 귀환하도록 강제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세계인들더러 믿으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한 과학자들이 이 피난민들에 대한 방사선 영향을 정확히 조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림픽에 투입되고 있는 수십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은 후쿠시마 제1원전 재해 때문에 주거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들이 지금 귀환을 강제당하고 있는 오염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과 일자리와 새로운 공동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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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남은 다섯 달. 방사능 수치가 급격하게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정상적으로 열리겠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최근에 일본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방역체계가 뚫리면서, 우리나라도 걱정이지만, 일본도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단다. 방사능이 아닌 코로나19때문에 올림픽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어. 세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에 방사능 수치를 속이면서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나쁜 마음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되, 방사능 올림픽을 막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물론 4년동안 피땀 흘리면서 꿈을 키워온 선수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보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악마가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빠가 이 편지를 며칠 전에 쓴 것인데, 그 며칠 사이에 코로나19가 우리나라를 집어삼켜 먹을 지경이 되었구나. 충분히 호미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갈래로도 막을 수 없을 지경이 된 것 같아 안타깝구나. 정부와 모든 국민들이 온 힘을 다 모아야 할 시점에,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열 받더구나. 부디 최소의 피해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구나. 우리도 늘 손 깨끗이 씻고 조심하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금은 전례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끝 문장 : 심장이 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힘든 일이 될 지라도, 배를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화석연료와 광물자원이 무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매일같이 대량으로 소모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경제시스템을 그만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연장하고 확대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고 있다. 애초에 말도 안되게 불합리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진보니 발전이니 번영이니 하는 말로 떠받들어오다가 마침내 지금과 같은 파국 직전에 내몰렸음에도, 여전히 미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P6

석유가 현대 경제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왜 세계경제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논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는지, 우리는 이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에 근거하여 추리해볼 수 있다. 즉, 그 이전까지 꽤 잘나가던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둔화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이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책략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신유주의 논리였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1

중국의 지금과 같은 발흥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1990년에서 2017년 사이에, GDP는 903%나 성장했다. 세계의 최대 은행 4개는 이미 중국의 것이 되었다. 경제분석가 매케스가 말하듯이, "갑자기, 모든 글로벌한 사태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발칸반도의 커져가는 불안정한 상황이건, 짐바브웨의 쿠데타이건,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내정치이건, 모든 게 중국과 관련되고 있다." 이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저 ‘세계의 작은 고립된 부분’의 사람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 P145

이 올림픽은 역사상 최대, 최후의 눈가리개이다. 이런 눈가리개는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자신의 본래의 신체로,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싶다. 아이들이 원기 있게 웃는 얼굴로 뛰어노는 내일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쳐야 한다. 난 이 올림픽을 용납할 수 없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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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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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책 관련 SNS에서 좋은 평을 받은 것에 귀가 얇은 아빠가 접수해서, 이번에 읽은 책은 심윤경님의 <설이>라는 책이란다. 심윤경님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심윤경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이번에 읽은 <설이>라는 소설은 너무 좋았단다. 아빠가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고, 집중도 잘 못해서 오래 읽지도 못하는데, <설이>라는 책은 단숨에 읽어내려 갔단다. 앞으로 심윤경님의 작품들을 눈 여겨 봐야겠구나.

 

1.

이 책은 설이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란다. 설이의 나이는 12,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학생? 이었단다. 설이가 주인공이니까 좀더 설명을 해볼게. 주인공 윤설. 초등 6. 갓난아기 때 풀잎보육원 근처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려져 풀잎보육원의 원장이 그 아이를 발견하고 보육원에 데리고 와서 자랐어. 윤설의 사연이 TV에서 소개가 되어 후원을 많이 받기도 했단다. 윤설은 자라면서 입양을 세번이나 했는데, 세 번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파양을 당하고 말았단다. 7살부터는 위탁모 김은숙과 함께 생활을 했는데, 윤설은 김은숙에게 이모라고 불렀어. 김은숙은 원래 풀잎보육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윤설을 무척 좋아했어. 보육원 원장이 바뀌면서 김은숙도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데, 설이를 좋아해서 자격이 안되었는데도 이전 원장님을 졸라서 위탁모가 될 수 있었어. 조건은 좋은 자리가 있으면 설이를 입양시키는 조건이었어.

설이가 세 번째 입양을 하고 파양을 당한 것은 12살 때였어. 이 소설의 시작은 설이가 세 번째 파양을 당하고 돌아온 시점이었단다. 세 번째 입양은 미국 군인 가족이었어. 설이도 그들을 사랑하려고 했고, 그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몸이 자동 거부를 했단다. 계속 토를 하고, 말을 잃게 되었단다. 결국 다시 김은숙의 허스름한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진료를 받으러 동네 병원에 가서 곽은태 원장님을 만났어. 설이는 자신에게 더욱 친절한 곽은태 선생님을 좋아했어. 곽은태 선생님은 설이가 병원에 오면 뒷환자가 기다리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설이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 설이는 곽은태 선생님이 자신의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

설이는 파양당하고 오면 전에 다니던 학교에 가기가 어려웠어. 웬만한 학교는 모두 다녀서 이제 남은 곳은 사립초등학교였어. 인맥을 통해 교감의 허락을 받았어. 교감 선생님도 학기도 한 학기밖에 남지 않았고 해서 설이를 받아주었단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반대를 했어. 가난한 집안의 설이가 어떻게 그런 학교에 들어올 수 있느냐? 무슨 특혜를 받은 것이냐? 그래서 설이가 이 사립학교에 들어올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 부모님들 앞에서 평가를 받았단다.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 설이는 천재였어. 국어, 수학뿐만 아니라 영어도 무척 잘했어. 학원교육도 없이 보육원 출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설이는 <헝거 게임>시리즈를 좋아해서 소설로도 읽고, 영화로도 엄청 많이 봤어. 너무 좋아해서 영화 대본을 다 외웠다는 거야. 원서로도 읽고 말이야. <헝거 게임>으로 스스로 익힌 영어 실력은 그대로 평가 결과로 나왔어. 부모님들도 깜짝 놀라서 설이의 사립학교 입학은 받아들여졌어. 설이를 보고 자신들의 아이들도 분발해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셨거든.

 

2.

그 사립초등학교에서 설이는 시현이라는 부잣집 아들과 짝이 되었단다. 시현이는 키도 크고 춤도 잘 추어 인기가 많았지만, 몇몇 아이들과 몰려 다니며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그리 착한 아이는 아니었어. 설이한테도 곱게 굴지 않고 괴롭혔단다. 그런데, 설이는 시현이를 한 눈에 알아봤어. 동네 병원장, 설이가 존경하는 곽은태 선생님의 아들이었어. 곽은태 선생님 책상 위 사진 속 아이였거든. 설이는 겉으로 아는 척하지 않고, 속으로만 어쩜 아버지랑 어찌 다를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했단다.

어느날 시현의 괴롭힘에 참다 못한 설이는 시현이와 대판 싸웠어.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여서 병원에 갔어. 곽은태 선생님이 찾아와서 사죄를 했단다. 그리고 자신이 설이를 위탁해서 키워보겠다고 했어. 설이를 잘 보살펴 주었고, 설이가 공부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자기가 보살펴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이모는 허락해 주었어. 설이를 잘 보살펴줄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양보하기로 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설이는 곽은태 선생님 집에서 살게 되었단다. 곽은태 선생님의 아이는 시현 하나뿐이고, 부인도 설이을 무척 잘 대해주시려고 노력하고 대환영했단다. 시현엄마는 설이의 학업 실력을 알고 있었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설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유명한 학원을 보내주었어. 설이는 당연히 학원 숙제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무척 열심히 했지만,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숙제들이었단다. 그리고 시현이네 집에서 생활을 하면 할수록 왜 시현이가 부모님에게 비뚤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어.

곽은태 선생님도 병원에서의 인자한 모습이 아닌, 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현이를 대했어. 곽은태 선생님 입장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다 해주었는데,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에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지. (.. 아빠들은 아이들 교육에 무관심에 해야 되는데..^^) 그렇겠지. 시현이가 관심 있는 것은 공부가 아니고 춤인데 말이야. 그것도 자타가 공인해주어 학교 행사 때마다 시현의 춤을 보려고 아이들이 몰려다니는데 말이야. 분명 아이돌 그룹을 해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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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나는 시현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아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어. 자꾸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시현이에게 겹쳐 보였거든. 내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허드렛일을 하며 나를 키웠지.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내 학비를 내 손으로 벌면서 살았어. 사는 시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참을 수 없이 답답한 거야. 저 아이는 좋은 학교에 다니고 과외 선생님까지 있는데 이렇게 쉬운 수학 문제를 틀리다니. 제 방 가득히 책이 있는데 읽지 않다니. 외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는 데 영어가 싫다니. 나는 그 모든 걸 혼자 힘으로 다 해냈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 서투르다니!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고, 그 아이가 점점 미워졌던 거야. 그래,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미워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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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설이도 시현의 집의 답답한 공기를 참지 못하고 그 집에서 나와 버렸단다. 무작정 떠났어. 어디로 갈까? 설이 입양 가기 전까지 키우던 개 아코를 입양 보냈다고 하는 횡성을 가기로 했어. 하지만 그곳에 찾아온 곽은태 부부에게 들통이 나서 가지 못했어. 그리고 이모의 장문의 편지를 받았어. 야코가 차에 치어 죽었다고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고그리고 원장님도 요양원에 계시다가 자기와 심한 말다툼을 하고 얼마 뒤 돌아가셨다고 했어.

원장님한테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이모. 그리고 그 동안 숨겼던 옛 이야기도 꺼냈어. 숨겨서 미안하다며. 쓰레기통에서 설이를 주웠다고 한 것은 방송용 연출이었고, 보육원장이 설이를 이용해서 후원금을 많이 받아 보육원을 발전시키려는 수작이었다고충격적인 내용의 편지였으나, 설이는 담담했어.

결국, 설이는 이모의 집으로 들어왔어. 바뀐 것이 있던가? 비록 허름한 집이고, 돈도 많지 않았지만, 자유가 있었고, 여유도 있었어. 그러면서, 시현이가 자신의 집에서 생활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어. 시현이는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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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시현이 이모네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시현이네 집에서 살아보았지만 시현이는 이모네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허름함의 첫 충격을 극복하기만 하면 시현은 스마트폰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춤동작을 연구할지도 모른다. 곽은태 선생님 부부가 꿈꾸는 시현의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시현의 미래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만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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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이의 생일 잔치 좁은 임대 아파트에 시현이의 식구들을 모두 초대했단다. 시현의 아버지도 설이와 함께 지내면서 많이 깨닫고,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아버지학원에 다니고 바뀌려고 노력한다고 했어. 시현이도 설이와 화해를 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단다. 주인공 설이는 매력이 넘치는 아이였단다. 아빠도 설이의 매력에 푹 빠졌어. 스토리 전개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갔지만, 그래도 좋았단다. 그렇게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면 더욱 슬펐을 거야. 겉으로만 보기에는 설이의 눈에 곽은태 선생님은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결국 시현이는 곽은태 선생님의 어깨 위의 멀미를 이겨내지 못했어. 아빠도 너희들을 아빠의 어깨에 올려 놓고, 너희들에게 너무 많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래서 너희들이 소설 속 시현이처럼 멀미가 나서 참지 못하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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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곽은태 선생님의 반석 같은 어깨 위에서 엉덩이춤을 추며 자랐을 시현을 한없이 부러워한 시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두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한때 시현이 악마처럼 사악한 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아이도 나처럼 격렬한 어지러움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더 이상 시현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 속에서, 남들은 모르는 어깨 위의 흔들림을 견뎌야 했던 시현이 나보다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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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좀더 각성을 해야겠구나. 아빠가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너희들과 잘 어울려 주지도 못하고 있는데, 반성할게. 누군가 그러더구나. 얼마 남지 않았다고. 너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말이야. 초등학교 고학년만 가도 부모와 어울리는 것을 멀리하려고 한다고 하더구나. 너희는 그렇지 말기를 기대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또 다른 방식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소설의 끝까지 다 말해버렸구나.

 

PS:

책의 첫 문장: 동요가 흘러나온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춤추고 있다.


사실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같아.
그게 그렇게 무서우니까 세상엔 그렇게 많은 거짓말들이 있는 거겠지.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다 이해해. 너무너무 이해해.
나는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 P194

‘만약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면 나는 시현의 집에서 살 것이다’라는 문장은 잠시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늘 들었던 지겨운 조건법 시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If는 최고로 골칫덩어리라서 일단 그것이 달리면 문장의 시제는 4차원 시공간처럼 마구 뒤틀리고 아이들의 미간은 고통스럽게 찡그려진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시현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문장이 성립되고 강아지의 이름은 벡터가 되며 약속이 깨지는 순간 강아지는 쫓겨난다. 강아지는 수학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아버지학교가 곽은태 선생님에게 단단히 가르쳐주었을까? 호랑이 같은 눈을 가질 내 고양이에게 나는 결코 그런 이름을 지어주지 않을 것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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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와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칠레. 작년부터 그곳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고 있단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시작했다는 시위. 그 동안 칠레 국민들 마음 속에 쌓이고 쌓였던 것이 폭발한 것이겠지. 아빠는 인터넷 뉴스의 헤드라인을 통해서만 뉴스를 접해서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어.

칠레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궁금증이 일어서 뉴스를 찾아 읽어보기도 했단다. OECD 국가 중에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이고, 공기업이 했던 사회기반산업 대부분이 사기업으로 넘어가 버려서 물가가 치솟았다고 했어. 전기나 건강보험 등 국민들의 복지와 관련된 사업은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공기업에서 운영하고, 모자란 금액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데, 그런 것들이 전부 사기업으로 넘어가 버리면, 그들의 이익 창출을 위해 금액이 비싸질 수밖에 없게 된단다. 칠레 사정이 딱 그런 상황이었어.

우리나라도 빈부격차의 양극화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있는데 그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칠레의 일이 남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단다. 정부와 정치권은 칠레 사태를 보면서 그런 것을 깨달아야 할 텐데. 요즘도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려고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꼴불견 정당을 보고 있으면 겨울임에도 열불 받게 하는구나.

문득 칠레 시위를 보면서, 칠레의 유명한 대통령 아옌데가 떠올랐단다. 예전에 아빠가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아옌데 대통령을 다룬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아옌데 대통령을 다룬 책을 구입하기도 했었거든. 구입만 해놓고 읽지를 않고 있었는데, 최근 칠레 사태를 보면서 그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읽었단다.


1.

아옌데는 1908 6 26일 칠레의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할아버지가 의사였다고 하는구나. 아옌데는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변호사와 의사 중에 갈등을 하다가 의사가 되기로 했다는구나. (, 둘 다 되기 어려운 직업인데 둘 중에 선택을 하다니, 오늘날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이를 알면, 한 소리 듣겠구나..) 유년시절에 그는 충분히 부와 권력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노동운동과 아나키즘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나서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어.

그가 청소년기였던 1920년대 칠레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기였다고 하는구나. 그 와중에 카를로스 이바녜스 대통령이 1927 97%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 사람이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고 나서 독재를 하고 나섰다는구나. 대학생이 된 아옌데도 독재에 맞서는 학생 운동을 했어. 의대학생회장이 되기 했단다. 그는 자본론과 마르크스에 관련된 책을 섭렵해서 읽었어. 학생 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단다. 그의 대학시절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마치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 같구나.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니

독재체제에 대한 시위는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결국 대통령이 사임하게 되었어. 칠레에서도 일찍이 민주화 시위가 있었구나. 이바녜스가 불러나고, 전 내무부 장관인 에스테반 몬테로가 정권을 잡았어. 개혁을 위해 긴축 재정을 한다는 것이 군인인 수병들의 월급을 감축하는 바람에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2500여명이 죽기도 했대. 아무튼 독재는 끝났지만 혼란기가 이어졌어. 독재가 끝이 나고 망명하고 있던 마르마루케 그로배라는 장군이 돌아왔는데, 그가 공군참모총장이 되었고, 이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칠레를 사회주의공화국으로 선언했어. 이 사건은 미국과 영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하는구나. 남미에 사회주의공화국이라니.. 미국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칠레 정치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계기가 되었어.


2.

1933년 아옌데는 칠레 사회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했단다. 칠레 사회당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는데, 그로 인해 잡음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이 남미에 간섭하기 시작했다고 했잖아. 그것은 남미 전역에 걸쳐서 이루어졌단다. 미국이 배후에서 조정한 우파 정권에 의한 독재가 이루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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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지구촌 차원의 경제위기가 촉발한 혼란 속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제툴리오 바르가스 독재체제가 들어섰다.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도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됐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마르티네스 장군이 소규모 공산당을 짓밟고 3만여 농민을 학살했다. 니타라과에서는 1933년 소모사가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암살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트루히요가 집권했다. ‘볼셰비즘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이들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30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차관과 쌍무협정을 통한 간접 통제에 기반을 둔 경제체계가 형성됐다. 미국이 힘이 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를 11로 맞상태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정치적 체제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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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는 독특하게도 비밀단체로 알려져 있는 프리메이슨에 가입도 했다고 하는구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현재에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옌데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것은 그 이유가 있었단다.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이것이 칠레의 사회복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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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현실적인 보탬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아옌데는 프리메이슨에 고결하고 숭고한 사명이 있다고 여겼다. 프리메이슨 회원은 현대적 기준을 활용해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소외도 실업도 저임금도 없는 사회,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내려 했다. 이를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 효과적인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 모든 이들에게 폭넓은 문화적 혜택의 문호를 열어젖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옌데는 이 같은 내용을 프리메이슨의 사명으로 채택할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또한 노동계급 출신과 청년 지식인 회원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운영의 민주화에도 더욱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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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37년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하원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어. 칠레의 좌파 계열 정당들은 인민전선이라는 연합을 만들었고, 좌파와 우파의 대결 양상의 첫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고 하는구나. 미국이 배후에서 조정한 우파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인민전선의 후보인 페드로 아귀레 세르다라는 사람이 승리해서 대통령이 되었대. 그의 정권 하에서 아옌데도 1939년 보건부 장관이 되었어. 진보 정당은 지금이나 예나 분열에 상당히 취약한 것 같구나. 인민전선도 분열이 되어 같은 좌파까지 탄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는구나. 결국 사회당도 인민전선에서 떨어져 나와 소수정당이 되었고, 아옌데는 사회당 부활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한동안 역부족이었어.

...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에 대한 탄압이 전세계적으로 거세지면서, 칠레도 좌파의 영향력은 극도로 줄어들게 되었어. 한동안 우파 진형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단다. 아옌데는 1952년부터 1964년까지 세 번이나 대선에 출마를 했지만, 고배를 마시게 되었단다. 1970년 다시 한번 대선에 나온 아옌데. 오랫동안 정권을 잡지 못했던 진보진영은 정신을 좀 차렸어. 분열을 해서는 정권을 잡지 못할 거라고 이제서야 깨달은 것인지사회당과 공산당은 연합하여 인민연합을 결성하였단다. 아직 공산당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활동이 쉽지는 않았어. 공산당은 그래서 아옌데에게 희망을 걸었어. 그가 대통령이 되면 공산당도 합법의 길이 열리니까 말이야.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정작 아옌데의 정당인 사회당보다 공산당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대.

아무튼, 1970년 대선에서 아옌데는 2%의 박빙의 승부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단다. 오랜만에 정권을 잡은 진보 진영..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했단다. 자유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보수 진영보다, 그래도 복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진보 진영이 일반 백성들에게는 도움이 될 텐데, 전세계적으로 아직도 진보 진영이 당선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구나.


3.

드디어 대통령이 된 아옌데.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개혁이 필요했지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구리광산의 국유화라고 생각했어. 예나 지금이나 구리가 칠레의 경제 수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국적 기업이 구리 광산을 차지하고 있어서, 국부 유출이 심했다고 했어. 그걸 먼저 국유화하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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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아옌데는 구리 업계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사이, 칠레 정부가 차관을 얻기 위해 외국 정부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또 정부 내 어느 누구도 미국과 칠레 간 불평등한 구리협정이 체결됐다거나, 미국계 구리 업계와도 별도의 협정을 맺었다는 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는 이런 현실은 칠레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구리 업계의 오만한 태도와도 모순되며, 칠레의 국가적 자존심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구리 재벌 6명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칠레를 포함한 국제 구리 시장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아옌데는 구리 생산을 감독하고, 생산된 구리를 국제시장에 수출하는 업무를 총괄할 국영 구리 기업 창설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구리 생산원가를 파악함으로써, 칠레 경제의 중요한 부문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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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유아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우유를 무료를 배급하고, 일부 부유층에 몰려 있는 토지에 대한 개혁안도 내놓았어. 이에 다국적 기업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리고 미국도 좌파 정권인 아옌데 정권을 미워했어. 그들에게는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틈이 없었고, 인내도 없었어. 어떻게든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했어. 먼저 언론을 장악했어. 칠레 언론은 아옌데 정권을 공격했어.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 보수 언론들과 비슷하구나. 진보 진영은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깨고 거짓 선동하는 꼬락서니가 어쩜 이리 똑같은지이런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의 뒤에는 미국의 검고 커다란 손이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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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은 아옌데를 악마로 만드는 데 집중됐다. 미국은 아옌데의 정적을 적극 지원했다. 필요한 공작금은 아낌없이 투입했다. 오랜 세월 칠레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이 정도 규모로 개입한 것은 칠레 선거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CIA 칠레 지부는 1953년부터 우파 뉴스통신사와 교양 잡지, 주간 신문들을 지원해왔다. 1961년부터는 주요 정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반공 선동전을 확산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선거관리위원회가 워싱턴과 산티아고에 설치되어, 칠레의 민주적 선거 절차를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 방식을 조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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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옌데 집권이 칠레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남미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절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만큼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하루라도 빨리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결국 그들은 무리수를 두었어. 군사쿠데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무력으로 친정권을 잡겠다는 의도였어. 아옌데는 보수파와 밀당을 하면서, 한가지를 실수를 하게 되는데, 육군참모총장에 친미극우파인 피노체트를 임명한 것이었어.

왜 그랬을까. 설마 군사쿠데타까지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거야. 하지만, 피노체트는 군사쿠데타를 감행했단다. 탱크를 몰고 대통령궁으로 향했어. 그저 겁만 주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포탄을 날렸단다. 아옌데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통령궁에서 대비시켰단다. 최소의 경호원들만 남겨둔 채 말이야. 대통령궁에서 라디오 전파를 이용하여 방송할 수 있었는데, 그는 끝까지 국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으며, 쿠데타가 얼마나 불법인지 설명을 했단다. 그 장면을 한번 상상을 하면 얼마나 두려우면서도 힘들었을까 싶구나. 하지만 그는 죽음을 불사하고 항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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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군부 절대다수가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지난 1971년 제가 드렸던 말씀을 여러분께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차분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입니다. 저는 사도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닙니다. 저는 순교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민이 제게 부여한 과업을 완수하려는 사회적 투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리는 세력, 칠레 절대다수 인민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세력이 깨닫도록 할 것입니다. 순교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저는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반역의 무리에게 알리겠습니다. 듣게 하겠습니다.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칠레 인민들이 제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한 뒤에야 저는 모네다궁을 떠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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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적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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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옌데 대통령은 결코 그들에게 죽을 수 없다며 자살을 선택하게 된단다. 대통령이 된 지 3년만에 그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며, 칠레의 개혁도 마감되었고, 칠레의 민주화도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이후 1990년까지 17년간 군사독재를 하게 된단다. , 우리나라의 군사쿠데타 후 독재 정권을 18년동안 하신 그 분이 저절로 떠오르는구나. 젠장.

피노체트는 17년 군사 독재를 하면서, 칠레를 오늘날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게 된 거야. OECD 1위 양극화 국가. 그리고 1980년대 중후반부터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고, 그는 결국 하야했단다.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그는 2006 9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고 하는구나. , 못된 짓을 하는 이들이 장수를 하는 것을 보면, 절대자라는 존재가 진짜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아니면 죽어서 가는 곳이 정말 행복한 곳이라서 못된 놈들은 최대한 늦게 데리고 가려는 것인지

….


4.

아옌데가 군사쿠데타로 죽게 되고, 이후 들어선 군사쿠데타의 독재 정권이 오늘날의 칠레를 만들어놨고, 독재 정권이 물러난 다음에 민주정권이 들어섰지만, 오랜 독재 정권 기간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돌이키기는 쉽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단다. 만약 아옌데가 계속 대통령을 했었다면, 오늘날 칠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선거에 의해 몇 번 정권 교체가 되었더라도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단다. 그 옛날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의식 있는 국민들이라면 지금의 잘못된 시스템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부디, 그들의 민주화 투쟁에 값진 열매가 열리길 바래 보면서 오늘 편지를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정치인들은 대체로 살아생전에 한 일 때문에 유명해진다.

책의 끝 문장: 살바도르 아옌데와 인민연합이 남기고 간 유산에 기대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옌데는 부와 권력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발파라이소에서의 삶의 현실적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당시의 요동치는 정세는 아옌데를 부촌인 비냐델마르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프롤레타이아트의 항구도시에 걸맞게 했다. 1972년 레지스 드브레와의 인터뷰에서 아옌데는 스스로를 발파라이소 항구 출신을 일컫는 자랑스러운 ‘포르테뇨’이자, 포르테뇨 출신 첫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 P40

라틴아메리카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신생 국제연합(유엔) 무대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필수 천연자원을 싼값에 조달해온 상황을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해 마련한 마셜 플랜에 들어간 막대한 재원을 제공한 것도 결국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재개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칠레 소수 지배계급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공의식은 이제 미국 정부 및 미국계 다국적 기업과 공유됐다. 이때부터 이들 세 부류는 이른바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함께 싸우게 된다. - P92

당시 연설에서 아옌데는 칠레의 기존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그는 "현재 칠레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는 허울일 뿐이며, 권력과 생산수단을 손에 쥔 극소수만이 자유를 누리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 인식’에 기초에 ‘지금으로서는’ 칠레에서 사회주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당이 칠레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존중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현행 민주주의 체제가 선거 결과와 노동조합, 사회적 권리를 존중하는 한, 그리고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보장하는 한 우리는 법체제 안에서 활동해나갈 것이다." - P94

그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이며, 지속적으로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정신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민주주의는 원칙과 사상, 이념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물이지, 단순히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P95

아옌데의 집권은 칠레에서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 했던 미국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뜻했다. 아옌데 취임 이틀 뒤인 11월 6일 닉슨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닉슨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아옌데가 끼칠 영향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남아메리카의 잠재적 지도자들이 칠레와 유사한 시도를 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아예 우리 손에서 떠나간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수중에 유지하기를 원한다." 닉슨은 이런 식으로 말을 이었다. 이날 회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은 표면상 ‘냉정하고 적절한’ 입장을 이해하고, 칠레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며, 칠레의 모든 대외경제, 금융 분야 협력을 봉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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