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성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지성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섹시한 지식인 강상중의 신작. <고민하는 힘>에 이어 기름기 없고 진지하면서도 세련된 그의 사유와 또다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따듯함과 드라이함이 이토록 조화롭게 만나질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스모폴리스
돈 드릴로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틀 전, 무려 두 박스의 책이 배달되었다.

내가 한국서 부친 책들이 6주가 지난 지금에야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음식이 잘 차려진 고급 부폐 앞에서 뭘 먼저 골라 접시에 담아야 할 지 몰라 초조해지기까지 하는 딱 그 심정으로, 박스에서 꺼내 주루룩 쌓아둔 책더미 가운데 가장 먼저 골라 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서울에 머무는 여름동안 보았던 몇 편의 영화 가운데,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 난해한 영화였기 때문에 돈 드릴로의 원작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고 있었던 터였으므로...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는 명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해도 이 경우 역시 영화가 원작을 넘어서지 못하는 전형적인 경우였다. (크로넨버그 감독, 지못미...)

나는 이런 종류의 책에 익숙하지는 않다. 누아르적이면서도 무지하게 철학적이며 동시에 유치하지 않은 비극적인 비장미가 있는 소설. 세련의 어떤 극치를 맛보는 느낌.

읽고 있는 내내 조금도 지루할 틈 없이(영화와는 달리... ㅜㅜ) 흥분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단지 이런 류의 소설을 처음 접한 사람으로서 느끼게 되는 신선한 충격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용의 만만치 않은 깊이가 내 뇌의 깊은 곳을 자극한 탓도 있다고 강변하고 싶다. 

자본주의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하며 살지, 그 파멸은 어떤 모양을 하게될지 궁금하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지금같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과 자본은 거의 한 몸인것 같다. 심지어 철학까지도 전유한 자본의 모습. 섬뜩하다. 수학과 경제학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사회과학, 기술과학, 의학, 종교까지도... 그 모든 것이 대자본가에 의해 채택되고 향유되고 사용되기를 기다린다....

이 정도면 거의 묵시론적 상황 아닌가. 대체 이 세계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걸까. 자본에 의해 포섭당하지 않고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기나 할 걸까...? 우리 개개인은 과연 이 거대한 시장 시스템의 쓰나미를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혹은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의 변방에도 가보지 못한 주변인으로 하여금 이런 거대한 세계의 흐름 같은 것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해 주는 책이라니, 소설의 힘은 바로 이런 데 있는게 아닐까.

아무튼, 이런 책은 문학의 역사는 아직 다하지 않은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까지 해준다.

돈 드릴로,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자 보라. 불길에 휩싸인 남자.(...) 킨스키는 틀렸다. 시장은 총체적인 것이 아니다. 시장은 이 남자를 포함할 수 없었고, 그의 행동을 흡수할 수 없었다. 이런 견고함과 공포는 흡수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시장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 (140-141쪽)

 

주인공 에릭의 파멸은 바로 이런 자기의심, 회의에서 이미 내정되어 있는 게 아닐까?

 

"저건 도용이야."

"저 사람은 가솔린을 뒤집어쓰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거야."

"전부 베트남 승려들이 했던 거야. 계속해서 했던 거, 가부좌 자세로."

"고통을 상상해 봐. 그걸 느껴보라고."

"영생을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는 거지."

"뭔가를 말하기 위해.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별로 독창적일 게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불교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인가? 저 사람은 진지하게 생각해서 한 거야. 목숨을 끊었잖아. 바로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141)

 

"난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고."

(...) "지금 중요한 게 뭐지?"

"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는 것. 타인의 상황,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간단하게 말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 나는 당신이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그건 이미 진실이 아냐. 오늘 오전에는 진실이었어. 그러나 그땐 진실이었던 것도 지금은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야." (166)

 

자신의 고통에만 집착하는 시인 아내 앨리스의 냉소주의와 대립되는 에릭의 인상적인 말들.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려는 의지에서 그의 현실적 파멸과 그로 인한 구원 가능성까지 읽어낸다면 내가 너무 나가고 있는 걸까?

 

뒤틀린 방에서 남자가 나에게 소식을 전했어

차가운 진실의 한 조각 같이 느껴졌지

나의 슬픈 영혼은 입에서 튀어나와

금니는 뿌리까지 찢어져버렸어

 

나를 예전의 나로 있게 해줘

운을 달 수 없는 바보

길을 잃었지만 살아 있어 (188)

 

옆과 뒤는 절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절로 되돌아 가고싶어도,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하나의 세계를 배반한 댓가로 받게될 파멸이 코앞에서 시퍼런 칼날을 내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머리를 자르러 작은 이발소로 간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이발사 앤소니의 이야기,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를 들으러. 중단 없는 전진을 휘몰아대는 시장의 지휘관으로서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질주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에릭에게 따듯한 위안을 주는 이 대목, 좋다.

물론 현재의 삶을 송두리채 부정당할 지도 모를 인생 '재점검'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유예하고 싶을테지만...   

나는 과거 일을 뒤돌아보는 걸 싫어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날의 일, 어느 주의 일 혹은 인생 전체를 재점검하다니. 으깨서 내용물을 짜내. 내장을 제거해. 힘이라는 것은 기억이 동반되지 않을 때 가장 잘 작용하는 거야. (...) 힘이란 것은 아무것도 구별하지 않을 때 가장 잘 작용해. (246-7)

 

기억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악마가 되지 않도록 해 주는 제어장치란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에릭이 자신의 고환이 비대칭이란 것에 집착하는 일, 이발사 앤소니가 머리를 깎을 때 좌우 대칭을 중시하는 것, 그러나 에릭이 머리를 한 쪽만 자른 채 이발소를 떠나는 일, 그리고 암살자 베노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한쪽으로 치우친 것, 조금 비뚤어진 것의 중요성 말이야. 너는 균형만 찾았지. 아름다운 균형을. 등변에 좌우대칭. 나는 그것을 알고 있어. 나는 너를 알고 있어. 너는 일본 엔의 변동을 그것이 경련을 일으키고 변덕을 부리는 흐름 속에서 추적했어야만 하지. 작은 변덕. 형태가 기묘한 것."

"구성이 이상한 것."

"바로 거기에 답이 있는 거야. 네 몸에, 전립선에." (266-7)

 

비대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기묘한 것, 질서를 벗어난 것, 바로 그런 것이 전체 흐름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말일까? 나아가, 거대한 금융자본주의의 흐름에 역행하는 듯 보이는 어떤 작은 징조들(여기서 등장하는 시위대의 시위, 분신, 무정부부의자의 파이 던지기 테러 같은것..?)이 미래의 어떤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는 이야기일까...? 마치 에릭이 다양한 애인들과 성관계를 맺고 충족감을 느끼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에게서는 섹스를 거부당하는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일처럼... 

 

기억, 추락, 타인의 고통과 어긋남에 대한 민감성의 복원... 이런 것들이 구원과 관련되어 있는 건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파멸과 죽음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구원에 다가갔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 에릭 역시 끝을 모르는 욕망-거대한 추락-기억(반성)-거의 자초하는 파멸의 단계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 있는게 아닐까? (너무 도식적이라 내가 써놓고고 맘에 안들긴 하지만...-_-) 평론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 목록에 또 하나의 텍스트를 추가해 넣고

싶다는 생각도 내 멋대로 한 번 해 본다.

 

암튼 이 소설은 스케일도, 흡입력도 대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고보니 그 집단에서 내가 가장 중요한 인간이었어!`라는 우울한 왕따의 뒤늦은 깨달음. 근데 왜이리 내가 다 민망해지는지... 줄리언 반즈식 과거 케기, 청춘시절에 대한 향수, 그리고 나르시시즘. 노년에 청춘 드라마 <선셋파크>를 내놓은 폴 오스터도 떠오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책을 읽는가 -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이루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지 않아도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그래도 뒤늦게 책과의 사랑에 빠진 나는 지인들을 볼때마다 책 얘기를 함께 나누고싶은 억누를 길 없는 욕망 탓에 꽤 노골적으로 독서의 즐거움과 효용을 언급하며 얄팍한 독서 전도사를 자처하고 만다. 번번히 돌아오는 시큰둥한 반응에 이제는 그닥 실망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대의 관심 여부에는 전혀 개의치도 않고 전도만이 인류 구원의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열혈 기독교신자들의 심정이 다 이해될 지경이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샤를 단치의 『왜 책을 읽는가』는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독서에 대한 나의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얼마나 속시원하게 정당화해주었던지, 그동안 촌스럽게 들이대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최대한 소심한 태도로 내가 독서전도를 시도했던 모든 지인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나눠주고 싶을 정도다. 일단 그들이 이 책을 읽을 것인지가 관건이긴 하지만!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다독가라는 이야기가, 마치 그들이 책을(그것도 인문학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사업적 혜안과 성공을 가져왔다는 식으로 포장될 때 선뜻 "아, 그랬구나~."하지 못했던 나는 샤를 단치의 다음과 같은 단호한 문장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가 위대한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펀드매니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권력자들에게 친절한 시선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뭔가 다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57-258쪽) 

 

빌 게이츠는 다독가이기에 성공한 자본가가 된 게 아니라, 다독가이기에 기부하는 자본가, 인간적인 자본가가 된 거다. 책을 읽었으므로 부자가 되었다거나 세속적인 성공을 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책을 읽지 않는 부자도 많다. 아마도 책을 읽는 부자보다 그렇지 않은 부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가 빌 게이츠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그가 '뜻밖에도' 책을 읽는 부자여서가 아닐까?

 

어쩌면 '성공'하거나 출세하기 위해서는 책을 멀리하는게 유리할 수도 있다. 책을 읽을수록 '성공'을 향한 질주를 하기에는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게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독서에도 어떤 목적이 있다면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오로지 품격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무지한 단순성에 갇힌 야만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단치의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런 생각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단치는 "원래 비열한 인간은 라신을 읽는다 해도 비열한 인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가 교양이 없다면 교양을 두른 비열한 인간으로 바뀔지는 모르겠다"며 독서의 효용을 최대한 깎아내리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독서를 순수하게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교양'(그러니까 타인을 의식한 독서)이라는 불순한 목적만으로 대하려 할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의 책에는 이런 말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원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독서의 실용적 가치를 짜내보려는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으므로 이제 나는 조금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책을 읽거나 쓰는 이유 가운데 또 하나 강하게 공감했던 부분은 죽음의 부분적인 극복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책을 읽는 짧은 순간만큼은 우리를 유한하게 만드는 죽음을 극복하는 순간이며, 좋은 책은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저자보다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나를 제한하고 있는 모든 시간적, 공간적, 물리적 환경 뿐만 아니라 비루한 나 자신의 정신세계마저 초월하여 한껏 자유로워지고 고양되는 (설령 그것이 순간적일 지라도) 경험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매혹 때문에 허겁지겁 다음 책을 찾는다.

 

"죽음은 망각이며, 특히 단순화이다. 반면 독서는 죽음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을 회복시킨다. 무덤을 꺾을 유일한 경쟁상대는 결국 도서관인 셈이다." (259쪽)

 

"눈물이 없다는 건, 생각이 없다는 것. 이것이 죽음의 승이라면 그런 것이다."(260쪽)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 "눈물", "사유"... 새겨보게 되는 말들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단치가 시선을 보내는 곳은  "권력"이다. 얼마 전, 내가 최고의 독서 안내자라고 생각하는 로쟈(이현우)의 책에서 우리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속지않기 위해서"라고 하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단치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책의 끝맺음을 이 말로 하는 것을 보면 독서에 대해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하고픈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정보화된 미래는 권력자들에게 더 충실히 봉사할 것이고, 그럴수록 인류의 정신은 더욱 조그만 상자 안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인류는 자연으로 되돌아가 짐승들과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 미개하고 착하고 순한 독재자가 곳곳에 설치된 총천연색 화면들 속에서 미소를 지으리라!"

 

정말 섬뜩한 '위협'이다. 이런 말을 듣고도 어찌 책을 멀리하겠는가!

 

2013. 07. 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착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 악과의 진지한 대결이 없는 아기같은 선량함... 너무 무력해서 싫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지온 2013-11-21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기 있는 걸로 이미 무력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