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스
돈 드릴로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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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무려 두 박스의 책이 배달되었다.

내가 한국서 부친 책들이 6주가 지난 지금에야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음식이 잘 차려진 고급 부폐 앞에서 뭘 먼저 골라 접시에 담아야 할 지 몰라 초조해지기까지 하는 딱 그 심정으로, 박스에서 꺼내 주루룩 쌓아둔 책더미 가운데 가장 먼저 골라 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서울에 머무는 여름동안 보았던 몇 편의 영화 가운데,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 난해한 영화였기 때문에 돈 드릴로의 원작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고 있었던 터였으므로...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는 명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해도 이 경우 역시 영화가 원작을 넘어서지 못하는 전형적인 경우였다. (크로넨버그 감독, 지못미...)

나는 이런 종류의 책에 익숙하지는 않다. 누아르적이면서도 무지하게 철학적이며 동시에 유치하지 않은 비극적인 비장미가 있는 소설. 세련의 어떤 극치를 맛보는 느낌.

읽고 있는 내내 조금도 지루할 틈 없이(영화와는 달리... ㅜㅜ) 흥분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단지 이런 류의 소설을 처음 접한 사람으로서 느끼게 되는 신선한 충격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용의 만만치 않은 깊이가 내 뇌의 깊은 곳을 자극한 탓도 있다고 강변하고 싶다. 

자본주의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하며 살지, 그 파멸은 어떤 모양을 하게될지 궁금하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지금같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과 자본은 거의 한 몸인것 같다. 심지어 철학까지도 전유한 자본의 모습. 섬뜩하다. 수학과 경제학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사회과학, 기술과학, 의학, 종교까지도... 그 모든 것이 대자본가에 의해 채택되고 향유되고 사용되기를 기다린다....

이 정도면 거의 묵시론적 상황 아닌가. 대체 이 세계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걸까. 자본에 의해 포섭당하지 않고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기나 할 걸까...? 우리 개개인은 과연 이 거대한 시장 시스템의 쓰나미를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혹은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의 변방에도 가보지 못한 주변인으로 하여금 이런 거대한 세계의 흐름 같은 것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해 주는 책이라니, 소설의 힘은 바로 이런 데 있는게 아닐까.

아무튼, 이런 책은 문학의 역사는 아직 다하지 않은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까지 해준다.

돈 드릴로,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자 보라. 불길에 휩싸인 남자.(...) 킨스키는 틀렸다. 시장은 총체적인 것이 아니다. 시장은 이 남자를 포함할 수 없었고, 그의 행동을 흡수할 수 없었다. 이런 견고함과 공포는 흡수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시장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 (140-141쪽)

 

주인공 에릭의 파멸은 바로 이런 자기의심, 회의에서 이미 내정되어 있는 게 아닐까?

 

"저건 도용이야."

"저 사람은 가솔린을 뒤집어쓰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거야."

"전부 베트남 승려들이 했던 거야. 계속해서 했던 거, 가부좌 자세로."

"고통을 상상해 봐. 그걸 느껴보라고."

"영생을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는 거지."

"뭔가를 말하기 위해.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별로 독창적일 게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불교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인가? 저 사람은 진지하게 생각해서 한 거야. 목숨을 끊었잖아. 바로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141)

 

"난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고."

(...) "지금 중요한 게 뭐지?"

"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는 것. 타인의 상황,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간단하게 말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 나는 당신이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그건 이미 진실이 아냐. 오늘 오전에는 진실이었어. 그러나 그땐 진실이었던 것도 지금은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야." (166)

 

자신의 고통에만 집착하는 시인 아내 앨리스의 냉소주의와 대립되는 에릭의 인상적인 말들.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려는 의지에서 그의 현실적 파멸과 그로 인한 구원 가능성까지 읽어낸다면 내가 너무 나가고 있는 걸까?

 

뒤틀린 방에서 남자가 나에게 소식을 전했어

차가운 진실의 한 조각 같이 느껴졌지

나의 슬픈 영혼은 입에서 튀어나와

금니는 뿌리까지 찢어져버렸어

 

나를 예전의 나로 있게 해줘

운을 달 수 없는 바보

길을 잃었지만 살아 있어 (188)

 

옆과 뒤는 절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절로 되돌아 가고싶어도,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하나의 세계를 배반한 댓가로 받게될 파멸이 코앞에서 시퍼런 칼날을 내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머리를 자르러 작은 이발소로 간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이발사 앤소니의 이야기,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를 들으러. 중단 없는 전진을 휘몰아대는 시장의 지휘관으로서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질주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에릭에게 따듯한 위안을 주는 이 대목, 좋다.

물론 현재의 삶을 송두리채 부정당할 지도 모를 인생 '재점검'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유예하고 싶을테지만...   

나는 과거 일을 뒤돌아보는 걸 싫어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날의 일, 어느 주의 일 혹은 인생 전체를 재점검하다니. 으깨서 내용물을 짜내. 내장을 제거해. 힘이라는 것은 기억이 동반되지 않을 때 가장 잘 작용하는 거야. (...) 힘이란 것은 아무것도 구별하지 않을 때 가장 잘 작용해. (246-7)

 

기억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악마가 되지 않도록 해 주는 제어장치란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에릭이 자신의 고환이 비대칭이란 것에 집착하는 일, 이발사 앤소니가 머리를 깎을 때 좌우 대칭을 중시하는 것, 그러나 에릭이 머리를 한 쪽만 자른 채 이발소를 떠나는 일, 그리고 암살자 베노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한쪽으로 치우친 것, 조금 비뚤어진 것의 중요성 말이야. 너는 균형만 찾았지. 아름다운 균형을. 등변에 좌우대칭. 나는 그것을 알고 있어. 나는 너를 알고 있어. 너는 일본 엔의 변동을 그것이 경련을 일으키고 변덕을 부리는 흐름 속에서 추적했어야만 하지. 작은 변덕. 형태가 기묘한 것."

"구성이 이상한 것."

"바로 거기에 답이 있는 거야. 네 몸에, 전립선에." (266-7)

 

비대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기묘한 것, 질서를 벗어난 것, 바로 그런 것이 전체 흐름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말일까? 나아가, 거대한 금융자본주의의 흐름에 역행하는 듯 보이는 어떤 작은 징조들(여기서 등장하는 시위대의 시위, 분신, 무정부부의자의 파이 던지기 테러 같은것..?)이 미래의 어떤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는 이야기일까...? 마치 에릭이 다양한 애인들과 성관계를 맺고 충족감을 느끼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에게서는 섹스를 거부당하는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일처럼... 

 

기억, 추락, 타인의 고통과 어긋남에 대한 민감성의 복원... 이런 것들이 구원과 관련되어 있는 건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파멸과 죽음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구원에 다가갔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 에릭 역시 끝을 모르는 욕망-거대한 추락-기억(반성)-거의 자초하는 파멸의 단계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 있는게 아닐까? (너무 도식적이라 내가 써놓고고 맘에 안들긴 하지만...-_-) 평론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 목록에 또 하나의 텍스트를 추가해 넣고

싶다는 생각도 내 멋대로 한 번 해 본다.

 

암튼 이 소설은 스케일도, 흡입력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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