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을 읽는가 -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이루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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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지 않아도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그래도 뒤늦게 책과의 사랑에 빠진 나는 지인들을 볼때마다 책 얘기를 함께 나누고싶은 억누를 길 없는 욕망 탓에 꽤 노골적으로 독서의 즐거움과 효용을 언급하며 얄팍한 독서 전도사를 자처하고 만다. 번번히 돌아오는 시큰둥한 반응에 이제는 그닥 실망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대의 관심 여부에는 전혀 개의치도 않고 전도만이 인류 구원의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열혈 기독교신자들의 심정이 다 이해될 지경이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샤를 단치의 『왜 책을 읽는가』는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독서에 대한 나의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얼마나 속시원하게 정당화해주었던지, 그동안 촌스럽게 들이대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최대한 소심한 태도로 내가 독서전도를 시도했던 모든 지인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나눠주고 싶을 정도다. 일단 그들이 이 책을 읽을 것인지가 관건이긴 하지만!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다독가라는 이야기가, 마치 그들이 책을(그것도 인문학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사업적 혜안과 성공을 가져왔다는 식으로 포장될 때 선뜻 "아, 그랬구나~."하지 못했던 나는 샤를 단치의 다음과 같은 단호한 문장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가 위대한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펀드매니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권력자들에게 친절한 시선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뭔가 다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57-258쪽) 

 

빌 게이츠는 다독가이기에 성공한 자본가가 된 게 아니라, 다독가이기에 기부하는 자본가, 인간적인 자본가가 된 거다. 책을 읽었으므로 부자가 되었다거나 세속적인 성공을 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책을 읽지 않는 부자도 많다. 아마도 책을 읽는 부자보다 그렇지 않은 부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가 빌 게이츠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그가 '뜻밖에도' 책을 읽는 부자여서가 아닐까?

 

어쩌면 '성공'하거나 출세하기 위해서는 책을 멀리하는게 유리할 수도 있다. 책을 읽을수록 '성공'을 향한 질주를 하기에는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게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독서에도 어떤 목적이 있다면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오로지 품격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무지한 단순성에 갇힌 야만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단치의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런 생각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단치는 "원래 비열한 인간은 라신을 읽는다 해도 비열한 인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가 교양이 없다면 교양을 두른 비열한 인간으로 바뀔지는 모르겠다"며 독서의 효용을 최대한 깎아내리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독서를 순수하게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교양'(그러니까 타인을 의식한 독서)이라는 불순한 목적만으로 대하려 할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의 책에는 이런 말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원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독서의 실용적 가치를 짜내보려는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으므로 이제 나는 조금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책을 읽거나 쓰는 이유 가운데 또 하나 강하게 공감했던 부분은 죽음의 부분적인 극복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책을 읽는 짧은 순간만큼은 우리를 유한하게 만드는 죽음을 극복하는 순간이며, 좋은 책은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저자보다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나를 제한하고 있는 모든 시간적, 공간적, 물리적 환경 뿐만 아니라 비루한 나 자신의 정신세계마저 초월하여 한껏 자유로워지고 고양되는 (설령 그것이 순간적일 지라도) 경험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매혹 때문에 허겁지겁 다음 책을 찾는다.

 

"죽음은 망각이며, 특히 단순화이다. 반면 독서는 죽음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을 회복시킨다. 무덤을 꺾을 유일한 경쟁상대는 결국 도서관인 셈이다." (259쪽)

 

"눈물이 없다는 건, 생각이 없다는 것. 이것이 죽음의 승이라면 그런 것이다."(260쪽)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 "눈물", "사유"... 새겨보게 되는 말들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단치가 시선을 보내는 곳은  "권력"이다. 얼마 전, 내가 최고의 독서 안내자라고 생각하는 로쟈(이현우)의 책에서 우리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속지않기 위해서"라고 하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단치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책의 끝맺음을 이 말로 하는 것을 보면 독서에 대해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하고픈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정보화된 미래는 권력자들에게 더 충실히 봉사할 것이고, 그럴수록 인류의 정신은 더욱 조그만 상자 안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인류는 자연으로 되돌아가 짐승들과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 미개하고 착하고 순한 독재자가 곳곳에 설치된 총천연색 화면들 속에서 미소를 지으리라!"

 

정말 섬뜩한 '위협'이다. 이런 말을 듣고도 어찌 책을 멀리하겠는가!

 

2013.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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