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러시아 할머니의 미제 진공청소기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정영문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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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소설이 사회주의/시오니즘과 자유주의/자본주의 간의 체제 경쟁을 상징하는 두 형제(이스라엘 정착을 선택한 이념형 인간 아하론 할아버지와 미국으로 가서 성공한 현실주의자인 그의 쌍둥이 형제 예사야후) 간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막 혼자서 예상하며 읽어갔다. 사회주의/시오니스트 사회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괴짜 할머니의 독특한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갈등의 해소를 암시하는 뭐 그런 방식으로 전개되겠지 하는 섣부른 추측과 함께... 그러나 그 갈등이 깊이있게 전게되기를 기다리며 전반부를 지루하게 읽어나가다던 나는 점점 이 소설이 심지어 이스라엘의 중요한 한 역사적 지점의 전체적인 시대상을 살만 루슈디의 방식으로 그려보여주는 소설도 아닌, 단순히 성격이 약간 독특한 자신의 할머니와 가족사에 대한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회고담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중간 쯤에 접어들면서는 이 소설을 그만 접을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된 이유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 소설이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는 사실과 이 소설의 정체가 궁금했던 탓이다.

 

결국 나는 이 이야기가 그리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소설이 아니며, 작가 개인의 가족사에 대한 향수 어린 회고담에 가깝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의 작은 묘미는 청소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을 보이는 할머니의 강박장애와 그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관대하고 따듯한 시선에 있다. 나라면 키부츠의 집단주의를 거부하는 할머니의 '자유주의적' 태도가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독재적이었는지, 그 아이러니에 대해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었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끔 어딘가로 "도망을 가버리는" 아하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장례식 직후, 오로지 청결 유지를 이유로 평생 출입을 금지당했던 침실의 소파와 침대 위에서 껑충껑충 뛰었던 어머니와 이모의 심정에 훨씬 더 공감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 추억담이라고 해서 1930년대 이스라엘의 한 부분에 대한 멋진 풍속화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어쨌건 우리에게 이스라엘과 유대인은 나치의 '피해자' 혹은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가해자'라는, 분명 중대한 진실을 담고 있지만 다소 경직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켜줄 그림들이 아주 많이 부족한건 사실이니까. 게다가 전체적인 그림이라는 것도 작은 세부들을 무시하고 그려질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사족: 이 책을 읽고나면 막 청소를 하고싶어지는 효과가 생긴다. 토니아 할머니 덕분에 나도 간만에 집안 구석구석 걸레질을 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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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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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배경묘사, 삶에 대한 철학적 통찰, 우울과 따듯한 감성이 8:2 정도로 버무려진 아름다운 추리소설. 도시, 눈, 바다, 얼음... 차가운 것들의 향연. 그러나 공간과 사물에 대한 강박적일 정도로 세밀한 묘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라면 지루해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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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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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장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는 뿌듯하고 감격적인 순간을 맞아, 그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혹은 이미 많은 부분을 잊어버린 복잡한 이야기들을 더 망각하기 전에 이번 독서가 내게 남긴 것을 기록해 본다. 살만 루슈디가 언어와 피클을 이용하여 내 기억을 영원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그 명성을 말로만 듣던 한밤의 아이들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는 솔직히 이 책의 주된 특징인 마술적 사실주의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긴장감보다는 서술 내용과 방식의 독특함 때문에 낯설고 신기한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천일야화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사소하고 비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의 연속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 책만 펼쳐 들면 펼쳐지는 아련한 환상의 세계가 꿈으로, 그러니까 잠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나날들(근 일주일! 왠만한 소설들은 길어도 이삼일이면 끝내곤 한 것에 비하면 저조하기 짝이 없는 속도다…. L)을 보내었지만 감히 내던져버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부커상을 세 번이나 수상하고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열렬한 칭송을 받은 권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 탓만은 결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주인공 살림 시나이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 개성이 풍부하고 매력적이고, 그를 둘러싼 가족사 이야기도 무척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며, 주인공의 일생을 통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지적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독립, 연이은 파키스탄의 독립, 인도와 중국,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 동파키스탄을 도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 공산주의 운동, 인디라 간디와 아들 산자이 간디가 이끌었던 국민전선의 독주와 부패, 그리고 비상사태 선포, 그 기간에 일어난 지식인 탄압, 강제 도시미화사업과 강제 불임시술이 모든 분열과 배반과 저항의 역사가 어쩌면 우리 역사와 이토록 오버랩 되는지! 대체 누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인지, 어찌하여 역사는 이토록 시간적, 공간적으로 반복되게 되어 있는 것인지슬프고 아프게 읽어나가면서 마치 나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의 맨 얼굴을 엿본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강점은 슬픔과 아픔이 유쾌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데 있다. 코찔찔이, 얼룩상판, 중대가리, 코훌쩍이, 붓다, 달덩어리, 오이코라는 다양한 별명을 가진 주인공 살림 시나이가 바라보고 이해한 세계가 환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속한 세계 자체가 눈물겹다 못해 코미디처럼 웃기고 아이러니한 부조리에 가득 찬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접한 역사라는 단어는 언제나 비장함이라는 감성만이 허용된 대상이었다. 그러나 너무 말이 안 되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일단 하고 웃는 수밖에 없는 노릇인 것처럼, 사실상 수많은 제3세계의 역사가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들이야말로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웃기는 짜장면 같은 코미디의 연속 아니었던가. 그런 슬픈 코미디를 동시대인들과 후대인들에게 상세하게 들려줌으로써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역사의 의미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이 책은 그런 문학의 역할을 백이십 프로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인도의 역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이 책에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숨어있다. 따라서 인도의 역사적 지식에 해박한 고급독자(?)들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나보다도 몇 배는 더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살림의 운명 자체가 인도 민중 전체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면, 살림이 사랑했던 누이 놋쇠 잔나비의 어린시절의 반항적인 태도와 어른이 된 뒤에 종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은 인도 내의 서자같았던 이슬람 집단이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살림의 외할아버지 아담 아지즈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일 역시 종교와 분리된 세속적인 국가 수립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싶다. 다른 많은 등장 인물들의 특징 역시 이런 식으로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리라 추즉하지만 지식의 짧음만 아쉬워하면서 훗날의 재독을 기약해 본다.

 

2013.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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