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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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부제가 말해주듯이 책 속의 여자들은 책을 읽고 있거나 가지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신분이나 연령대는 참으로 다양하고 책을 읽는 장소, 자세, 옷차림까지 볼거리도 넉넉하다. 그러나 그림의 주인공은 여자이지 책은 아니다. 저자는 다양한 신분과 연령을 넘어 그녀들 곁에 있는 책이 당대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림속의 여자들은 어린아이에서부터 화려한 드레스로 성장을 한 아름다운 여자, 곧 아이가 나올 것만 같은 만삭의 여자, 들고 있는 책의 행만큼이나 주름이 많은 노파에까지 이른다. 책을 읽는 장소 역시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숲속의 벤치, 소파나 침대 등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그녀들의 대부분은 서있거나 앉아 있지만, 읽던 책은 떨어뜨리고 한 손이 치마 속으로 들어간 채 몽롱한 시선으로 누워있는 여자도 있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발가벗은 채로 책을 읽고 있는 여자들의 그림이다. 오롯하게 자기를 만나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발가벗은 모습과 독서를 관련지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발가벗고 하는 일이라곤 섹스와 목욕 이외에는 없는 내게 전라의 모습으로 책을 읽는 여자의 심리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의 시대에 여자의 손에 들려있던 책은 종교서적이었다. 17,8세기 스웨덴의 루터교회는 그들의 교회 공동체 회원이 되기 위한 자격으로 글을 읽는 능력을 요구했다. 이성의 시대가 도래 했을 때 그녀들은 교리문답에 관한 지식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던 읽기 능력을 세속적인 지식의 섭렵에도 적극 활용하였다. 위생이나 육아정보를 읽고 생활에 활용하여 출산의 고통을 덜기도하고, 문학작품을 통해 자기만의 시간을 갖거나 자아인식,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회의 등 권위에 대해 반기를 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책 읽는 사람은 위험하다’가 아니라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말은 정치가, 독재자, 지배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들을 겨냥한 말이다. 말 속에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적대의식과 독서는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지적 우월감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다. 일군의 계몽주의자들은 독서의 폐해만을 인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개가 일치한다. 교육이론가 카를 바우어는 " 책을 읽을 때 생기는 신체 활동 부족은 상상력과 감정이 억지로 뒤바뀌는 것과 결부되어서 근육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가래가 들끓고, 가스가 차고, 변비가 생기도록 만들 것이며, 잘 알려진 것처럼 특히 여자의 경우 생식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간서치를 자처하는 조선의 검서관 이덕무조차도 “언번전기를 탐독해서는 안 된다. 집안일을 내버려두거나 여자가 할 일을 게을리 하며, 더욱이 돈을 주고 빌려 보는 데 빠져서 가산을 기울인 사람도 있다”고 여자의 지나친 책읽기를 경계하였다.

이 책은 책 읽기가 여자에게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림과 함께 보여준다. 책의 역사는 지배자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책의 역사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자의 역사는 언제나 반대편에 있었다. 여자는 책 읽는 남자를 사랑하지만 남자는 생각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트프리트 벤의 말을 빌리면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두뇌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이 자극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하다. 고트프리트 벤의 말이 아직도, 얼마만큼이나 유효한지.  그러나 남자들이 여자를 통해 어디를 자극받든지, 예의바르게 자신을 접근하기 힘든 존재로 만드는 유쾌한 고립행위인 독서행위는 여자들에게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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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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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일본 근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름도 갖지 못한 이 고양이로 말할 것 같으면 자칭 “머리로서 활동해야할 천명을 받아 이 사바세계에 출생한 고금에 없는 고양이”다. 게다가 그는 독심술까지 터득하고 있다. 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쥐를 잡지 않는다. 아니 잡으려고 온갖 작전을 세우고 퇴로를 차단할 궁리를 마쳤지만 오히려 쥐 두 마리의 공격을 받아 혼쭐이 난다.

이런 고양이의 주인은 중학교 영어선생으로 집에만 돌아오면 늘 서재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면학가 인줄 알지만 그가 서재에서 하는 일 중의 대부분은 침을 흘리며 잠을 자는 일이다. 그는 하이쿠 신체시 바이올린 수채화 등에 관심을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만고지사에 관심은 많아서 “지금 울었던 야옹하는 소리는 감탄사냐 부사냐, 알고 있나?”라고 아내에게 묻기까지 한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주인은 신경성 위염에 시달리는 고집불통, 우유부단, 요령부득인 사람이다. 이런 주인이긴 하지만 늘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자연히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메이테이와 간게쓰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학자임을 자처하는 메이테이는 허풍쟁이에다가 거짓말쟁이다. 그는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며 사람들을 골려주는 것이 취미다. 당연히 악의는 없다. 물리학자인 간게쓰는 ‘목매기의 역학’이라는 연설을 하기도 하고 도토리의 스태빌리티를 연구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 광선의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준비 중이다. 개구리 눈알을 뽑아 쓸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요즈음 하는 일은 유리구슬을 깎고 또 깎아 개구리 눈알처럼 만드는 일이다.

주인의 서재에는 수시로 메이테이와 간게쓰가 찾아온다. 더러 다른 사람들이 동참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곤 쓰잘 데 없는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이 쓰잘 데 없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고양이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인간이란 것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굳이 입을 운동시켜 우습지도 않은 것을 웃기도 하고, 재미도 없는 것을 기뻐하기도 하는 것밖에 별 재주가 없는 것들”이다. 또 인간이란 동물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다. 발이 네 개가 있는데도 두 개 밖에 사용하지 않으며 나머지 두발은 말린 대구포처럼 하릴없이 드리우고만 있다. 항상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아서 ‘바쁘다 바빠’에게 잡아먹히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데 얽매이고 있다. 고양이가 정의하는 인간은 한마디로 ‘오직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서 스스로 고생하는 자’이다.

소세키가 <호토토기스>라는 하이쿠 잡지에 연재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원래 일회분량의 글이었지만 그것이 연재된 후에 인기가 높아져서 계속 연재를 했던 소설이다. 영국유학에서 돌아와 처음 이 글을 발표했는데 이로써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부터 1년 동안 발표된 이 글은 이제 막 근대가 시작되어 서양문물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초기 근대인의 모습을 비웃기도 하고, 금전 만능주의,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기도 한다. 중학교 교사, 미학자, 박사과정에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엮었지만 그들 각각의 모습은 근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면서 동시에 소세키 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500쪽이 넘는 이 장편소설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모두 쓰잘데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당대로 시각을 옮겨서 바라보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재미와는 별개로 나는 장편에 익숙하지 못하다. 고양이의 죽음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맥주를 핥아 먹고 항아리에 빠져 죽는 고양이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채 두 살도 안 된 고양이의 입을 빌려 자기 하고 싶은 온갖 이야기를 다 해놓고는 이야기 마무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죽여 버린 것 같아 소세키가 너무 얄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소세키. 지갑속에 품었던 그를 이제 마음에 품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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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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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은 1066년 정복왕 윌리엄에 의해 처음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한때는 왕궁으로 또 감옥과 고문 및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헨리 8세의 아내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인 앤 불린이 이곳에 감금당했다. 영화 <천일의 앤>은 그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또 도끼가 목을 내려칠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내 목은 너무 짧으니 조심해서 다루시오”라는 말을 남겼다는 당시의 대법관 토마스 모어가 15개월 동안 감금되었다가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소세키는 유학생으로 영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지도에 의지해서 간신히 런던탑을 찾아갔다. 한 번 더 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남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는 끝내 다시 가지 않는다. 그리고는 사람들과 런던탑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고 두 번 다시 구경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왕궁보다 고문과 처형장으로 더 유명한 런던탑의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있었던 소세키는 역사적 유물로 남은 런던탑과 자신의 상상력을 곁들여 『런던탑』을 썼다. 처음부터 단테의 『신곡』 지옥문을 인용한 탓인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암울하다. 그가 영국에 유학하기 전에 영문학을 전공한 탓인지 영국의 역사나 문학작품 등 자신이 알고 있는 영국에 대한 지식을 이 단편 속에 응용했다. 그는 또 소설 말미에 자신이 인용한 작품이나 그림 역사적 사실 등을 모두 메모해두었다. 엘리자베스의 유폐.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 엔즈포스의 런던탑, 들라로쉐의 그림 등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그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전에 습작용으로 써둔 것 중의 하나인 셈이다.

소세키가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문단에 서서 자신의 뜻을 꺾지 않으려는 욕심이 있다면 무엇보다 사상을 함양해야만 하네. 사상을 먹고 또 먹어 배가 가득 찬 뒤에는 바로 붓을 휘둘러 그 생각하는 바를 서술함에 패연취우(沛然驟雨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이, 갑자기 대하가 바다로 쏟아지는 기세가 있어야하네.”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소세키에 있어서 영국유학시절은 이런 사상의 함양 기간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는 그야말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10년 동안 소설을 썼으니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와는 무관한 내용이지만 영화속 토마스 모어의 말을 옮겨둔다.  

You have, I believe, told the king not what he ought to do, but what he can do. 당신은 왕에게 그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말씀드렸나보군요. 

동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따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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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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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1900년 문부성 국비유학생 1호로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의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인한 배상금을 받고 국비 유학생을 대폭 늘리게 되는데 이 혜택을 소세키가 누리게 된 것이다. 연간 1800엔의 유학비와 300엔의 휴직수당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이 돈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녔는지 환산하기가 나로서는 쉽지 않다. 소세키는 생활비를 아껴 책을 사 모으고, 빈민가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등 그의 말대로라면 거의 부랑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런던 소식』은 소세키가 그의 친구이자 문우인 마사오카 시키에게 써 보낸 편지이다. 그는 1900년 9월 8일 요코하마 항을 출발해 10월 28일 런던의 빅토리아 역에 도착한다.  친구에게 소식도 전할 겸 당시 일본의 잡지 호토토기스에서 일기체 형식의 글을 공모하는 광고를 보고 그것을 의식하고 이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편지를 받은 시키는 소세키라는 필명으로 이 편지를 호토토기스에 보낸다.

영국에 도착한 소세키는 그곳이 자신의 나라 일본과는 다른 문명국임에 우선 놀란다. 일본에는 있는 무사라는 계급이 왜 영국에는 없고 대신 신사라는 말이 있는지 의아해 한다. 영국의 근교 하숙비가 싼 곳에 있으면서 소세키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시내에 나가기도 한다.‘이런 나라에서는 키가 큰 사람들에게는 세금이라도 물려야 키 작은 인간이 출현할 듯하다’‘이 나라에서는 내 피부색이 왠지 사람 같지 않은 색깔이라는 인식이 든다.’는 등 그는 일본과는 다른 다양한 영국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간다. 또 그는 길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least poor Chinese라고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거나, 공원에서 남녀가 자신이 중국인인지 일본인지를 놓고 싸우는 소리도 듣는다. 어쩌다 비단옷에 프록코트를 입고 나가서는 a handsome Jap라는 소리도 듣는다. 자신이 외부세계를 보고 느끼든, 남들이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든 소세키는 낯선 곳에 던져져 있는 자신을 늘 인식하고 있었다.

<런던소식>은 일기의 형식을 빌린 탓인지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가 읽은 신문에는 러시아 신문에서 발췌한 일본에 관한 평문이 실려 있다. 러시아가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되면 일본 본토를 공격해서는 안 되며 조선에서 일본과 자웅을 다투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점점 심각한 상태로 빠져 들어가는 러일전쟁을 소세키는 일본이라는 섬나라의 외부, 영국에서 신문을 통해 예감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국교를 경멸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한 소식도 있다. 하숙집과 하숙집 주인 등과 얽힌 이야기, 하숙집에서의 하루의 일과 등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들은 마치 <천변풍경>이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 장소만 바뀐 박태원의 소설들을 보는 것 같다.

 
* <<몽십야>>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24편이 실려있다. 소세키 전작읽기에 도전하면서 간단한 메모의 형식이나마 편편의 리뷰를 써보려고한다. 어느 누구도 읽고 쓰기를 강요하거나 못하게 하는 이 없는 이 일에 스스로  추진력을 얻고자 증거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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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1-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멋진 반딧불이님!!!!제 추천을 백개로 여겨주세요!!

반딧불이 2009-12-01 10:51   좋아요 0 | URL
아이참..부끄러버라..

2009-12-01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1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소세키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
고모리 요이치 지음, 한일문학연구회 옮김 / 이매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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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2월 9일 5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이때 아버지의 나이 50세, 후처였던 어머니는 42세였다. 결혼이나 출산연령이 많이 늦어진 요즈음에도 여자 나이 42세라면 출산하기에는 걱정이 앞서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인생 오십’ 상식이었던 당시에 아이를 낳은 부모는 그 출생을 감추려는 듯 처음에는 고물상 부부에게 그리고 1년 뒤에는 시오바라 쇼노스케 가에 양자로 보낸다. 그러나 소세키가 8,9세 무렵 양부모는 이혼하고 시오바라라는 성을 그대로 쓰면서 나쓰메 가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친부모를 조부모로 알고 지낸다.

그의 원래 이름은 긴노스케(金之助)였다. 그가 태어난 날은 경신(庚申)일이라고 해서 일본에서는 이날 태어난 아이는 훗날 큰 도둑이 된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부모는 이런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이름에 金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다. 이름 때문이지 시대적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생 동안 그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없었던 듯싶다.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인간과 돈의 관계가 등장 할뿐만 아니라, 양부모가 그를 다시 친부모의 호적으로 옮겨주면서 친부모로부터 그간의 양육비를 계산해 받는가 하면, 영국 유학시절 모자라는 생활비를 아껴 책을 사 모은 이야기, 그가 강단에 섰을 때 대학선생 역시 상품이며 가격은 연봉이라는 형태로 국가가 인준한다는 생각 등 돈과 인간과의 관계에 관한 소세키의 생각을 살펴볼 것들은 많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주머니에 한두 장씩은 갖고 있을 1000엔짜리 지폐에 얼굴이 박혀 죽어서는 아예 돈 그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세키의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패러디한 제목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는 이런 소세키의 개인사와 그의 작품의 연관성을 명료하게 짚었다. 소세키의 거의 모든 작품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들은 돈과 권력, 소세키의 여자와 남자, 의식과 무의식, 개인과 전쟁 등의 주제별로 묶었다. 먼저 읽었던 작품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이해되고 읽지 못했던 작품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 소세키의 <<문학론>>을 읽기 위해 이 책을 먼저 읽었는데 마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고 나서 카프카 작품의 해독 열쇠를 쥔 것처럼 떨리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친부모에서 양부모로 다시 친부모로 오락가락하는 사이 그는 스스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가 하면,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에 유학하면서 당시로서는 학문적 대상이 아니었던 문학을 심리학, 사회학, 생물학 등 문학외부에서 문학을 바라보려 한 점, 전쟁을 혹은 죽음을 상품화하던 신문이 전쟁이 끝난 후 상품화할 대상을 찾을 때 문학을 상품화했던 점 등 살펴볼 것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소세키에 대한 호감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고모리 요이치가 재구성해내는 소세키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내게는 역사서를 읽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도 풍요롭게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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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1-24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째 추천은 저에요~.ㅋ
여전히 별 5개의 리뷰시군요~.ㅎㅎ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마침,,,소세끼는 역시 매력적이군요!!

반딧불이 2009-11-25 00:19   좋아요 0 | URL
하하..귀여우신 나비님.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소세키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 다 풀어버릴 수 있으실 거에요. 그나저나 나비님 새이름 때문에 고민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