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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평점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일본 근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름도 갖지 못한 이 고양이로 말할 것 같으면 자칭 “머리로서 활동해야할 천명을 받아 이 사바세계에 출생한 고금에 없는 고양이”다. 게다가 그는 독심술까지 터득하고 있다. 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쥐를 잡지 않는다. 아니 잡으려고 온갖 작전을 세우고 퇴로를 차단할 궁리를 마쳤지만 오히려 쥐 두 마리의 공격을 받아 혼쭐이 난다.
이런 고양이의 주인은 중학교 영어선생으로 집에만 돌아오면 늘 서재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면학가 인줄 알지만 그가 서재에서 하는 일 중의 대부분은 침을 흘리며 잠을 자는 일이다. 그는 하이쿠 신체시 바이올린 수채화 등에 관심을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만고지사에 관심은 많아서 “지금 울었던 야옹하는 소리는 감탄사냐 부사냐, 알고 있나?”라고 아내에게 묻기까지 한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주인은 신경성 위염에 시달리는 고집불통, 우유부단, 요령부득인 사람이다. 이런 주인이긴 하지만 늘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자연히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메이테이와 간게쓰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학자임을 자처하는 메이테이는 허풍쟁이에다가 거짓말쟁이다. 그는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며 사람들을 골려주는 것이 취미다. 당연히 악의는 없다. 물리학자인 간게쓰는 ‘목매기의 역학’이라는 연설을 하기도 하고 도토리의 스태빌리티를 연구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 광선의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준비 중이다. 개구리 눈알을 뽑아 쓸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요즈음 하는 일은 유리구슬을 깎고 또 깎아 개구리 눈알처럼 만드는 일이다.
주인의 서재에는 수시로 메이테이와 간게쓰가 찾아온다. 더러 다른 사람들이 동참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곤 쓰잘 데 없는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이 쓰잘 데 없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고양이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인간이란 것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굳이 입을 운동시켜 우습지도 않은 것을 웃기도 하고, 재미도 없는 것을 기뻐하기도 하는 것밖에 별 재주가 없는 것들”이다. 또 인간이란 동물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다. 발이 네 개가 있는데도 두 개 밖에 사용하지 않으며 나머지 두발은 말린 대구포처럼 하릴없이 드리우고만 있다. 항상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아서 ‘바쁘다 바빠’에게 잡아먹히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데 얽매이고 있다. 고양이가 정의하는 인간은 한마디로 ‘오직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서 스스로 고생하는 자’이다.
소세키가 <호토토기스>라는 하이쿠 잡지에 연재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원래 일회분량의 글이었지만 그것이 연재된 후에 인기가 높아져서 계속 연재를 했던 소설이다. 영국유학에서 돌아와 처음 이 글을 발표했는데 이로써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부터 1년 동안 발표된 이 글은 이제 막 근대가 시작되어 서양문물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초기 근대인의 모습을 비웃기도 하고, 금전 만능주의,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기도 한다. 중학교 교사, 미학자, 박사과정에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엮었지만 그들 각각의 모습은 근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면서 동시에 소세키 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500쪽이 넘는 이 장편소설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모두 쓰잘데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당대로 시각을 옮겨서 바라보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재미와는 별개로 나는 장편에 익숙하지 못하다. 고양이의 죽음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맥주를 핥아 먹고 항아리에 빠져 죽는 고양이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채 두 살도 안 된 고양이의 입을 빌려 자기 하고 싶은 온갖 이야기를 다 해놓고는 이야기 마무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죽여 버린 것 같아 소세키가 너무 얄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소세키. 지갑속에 품었던 그를 이제 마음에 품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