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부터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에 관한 책들을 훑어보았다. 대문자역사부터 미시사까지, 기원전 이야기부터 불과 30여 년 전의 푸코까지, 서양부터 동양까지 닥치는 대로 살폈다. 부분만을 본 것도 있고 전체를 통독한 경우도 있다. 적고 보니 양이 엄청난 듯 하지만 그렇다고 깊이까지 갖춘 것은 아니다. 내가 살펴본 것들은 다음과 같다.
『탐史』- 마리아 루시아G, 팔라레스 버크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부분 - 폴 벤느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
『역사철학 강의』부분 -헤겔
『세계역사의 관찰』- 부르크 하르트
『반시대적 고찰』』부분 - 니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사기- 본기』- 사마천
『사기 - 세가』- 사마천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들에 놀라워하며 바람든 풍선처럼 몸이 가벼웠다. 그런데 중간에 감기를 앓으면서 잠깐 쉬는 동안 나는 이러한 관점들로 내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감기가 몸살로 옮겨가면서 사나흘을 앓았다. 그러면서 지금 몸이 아픈 것은 바이러스나 육체적인 무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 몸살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지나간 내 삶을 바라보는 망원경 혹은 현미경으로 사용했을 때, 나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내 마음의 반응과 맞닥뜨려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번 몸살은 역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겪은 커다란 부작용이었던 셈이다.
거리를 두고 내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거기 오목렌즈에는 여우 한 마리가 있었다. 바람 부는 저물녘의 거리를 서성이는 털이 거친 여우 한 마리. 그것이 현재의 내 모습으로 부각되었다. 잘못 든 길도 다 지름길이라며 뻔뻔하리만큼 씩씩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린 듯 겁먹어 흔들리는 눈빛, 제 때 식사를 해보지 못한 듯 윤기 잃은 털. 의지할 짝도 없이 기운 빠지고 야윈 다리. 도대체 이런 자기 연민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삶을 위해 역사를 이용하기는커녕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인간은 천둥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 언제나 매순간 만들어져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르트르와 성좌구조로서 역사를 바라보았던 벤야민이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 같았다. 또 사기 본기의 책장을 넘기면서 한 행마다 사라지고 생겨나는 수많은 나라들, 그 매 순간마다 존재했었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에 대한 연민까지 보태졌다.

여기에 우주항공연구원과 천문대 등을 견학하면서 보고 느꼈던 외적인 요인들이 더해졌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목성은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내가 나이를 알 수 없는 북극성과 눈을 맞춘 것은 불과 1분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그 빛은 북극성이 일주일전에 보내온 빛이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生도 내가 별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과 다르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인간의 삶이 이처럼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자들을 통해 수없이 읽고 들어왔다. 그러나 내 것이 되지 못하던 것들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마음에 압정을 박듯 아프게 꽂혔다.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진아에 다름 아니다.
돌이켜보니 내 삶은 씁쓸한 발견의 역사였다. 아이들이 내 품을 벗어나자 알게 된 것이었으니 그 발견도 뒤늦은 것이었다. 첫 번째 발견은 내가 한 마리 자벌레와 같다는 것이었다. 나뭇가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뭇가지에 붙어 그 나무의 생명을 빨아먹는 자벌레. 타인의 피로 생명을 유지하는 흡혈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발견이 곧바로 실천으로 옮겨가서 자벌레 같은 삶을 살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여전히 인간의 형상을 한 자벌레로 살아간다는 것. 매 순간 그것을 확인하면서 숨 쉬고 있다는 것. 씁쓸함은 발견에만 있지 않고 바로 여기에 있다.
자벌레
전셋집을 옮겨 앉을 때
꽃사과나무 한 그루 선물 받았네
볕 잘 드는 창가에 놓아두니
연두 빛 혀들의 수다는 즐거워
꽃 같은 사과 달릴 날 손꼽아 기다렸네
바람은 대추나무를 건너오며
가시를 세우는데
꽃 사과나무
어쩐 일인지 빛을 잃었네
짧아지는 겨울 해를 좇아 자리를 옮겨주어도
자꾸만 시들어가서
아주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아픈 가지 하나를 꺾으려다가
손가락 끝에 물컹!
가던 마음 저버리고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음지의 탄력.
꽃 사과나무 시들어간 만큼
통통하게 살이 오른 벌레 한 마리
나만큼이나 놀라
온 몸을 오그라뜨리며 나뒹구네
어떤 보이지 않는 눈 있어
천연덕스레 나 꽃 사과나무였네
어디에도 몸 두지 못한 바람이
생의 흐린 창문을 세차게 흔드는 이 겨울날
마른 꽃 사과나무 가지 아래
온 몸 꿈틀거리며 몸부림치네
언제나 사과가 문제였다. 아담과 이브에게도, 중력이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뉴턴에게도, 백설 공주에게도, 한입 베어 먹힌 사과를 회사의 로고로 사용하는 스티븐 잡스에게도. 그놈의 사과가 문제였다. 사과나무 가지 아래서의 내 몸부림은 저들의 몹쓸 사과에 묻어가기로 하자.
또 하나의 발견은 내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울타리
어떤 이는 나를 보고 목련 같다 하고
어떤 이는 잠자리 날개 같다 했다
또 어떤 이는 배추속잎 같다 했다
담장 없는 저 말의 울타리에 갇혀 살았다
사람들은 나를 목련처럼 환한 여자,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하고 여린 여자, 햇빛이나 바람 한 점 가까이 해 본적 없는 여자로 생각했다. 나는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말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남들의 말에 나는 자발적 복종을 하고 산 셈이다. 보이지 않게 강요된 삶을 사는 것이 최소한의 안정은 보장해주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뒤늦은 씁쓸한 발견들은 여전히 발견으로만 남아있다. 씁쓸한 발견이나 후회의 역사를 쓰지 않고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한 삶의 역사를 쓸 수는 없는 걸까? 헤겔과 니체와 마르크스, 푸코(니체, 계보학, 역사)에게서는 알 수 없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열정은 내게 담뱃불의 온기만큼도 전염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살얼음이 낀 차가운 물의 사주를 타고난 나를 덥힐 만큼 그들 가까이 가지 못했을 것이다. 열정을 가진 학자들의 열정이 내 것이 아니었듯이 행복이나 기쁨 편에서 보면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기로 하자.
사람들은 역사를 공부하면서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공부는 내게 힘이 되거나 봉사하기를 거부하고 몸살과 우울의 씨를 흩뿌리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다는 것을 배웠지만 어느 것 하나도 온전히 내 몫이 되지 못한 상태다. 그래도 끝까지 가보기로 하자. 우울에서 어떤 싹이 트고 어떤 꽃이 필지 못내 궁금하다. 언어로 남은 이 역사의 진창을 뒹굴다보면 바닥을 치고 솟아오를 날이 있다고 믿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