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삶의 경계와 허상을 넘는 욕망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리운 한국인, 아빠가 해준 음식이그리운 중국인,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문화적으로 보면, 한국 남자나 중국 남자나 다 공자의 후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남자다.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난 것일까? 중국 남자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를 무시하고, 부엌일은 여성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통 시대는 물론이고 근대 시기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 남자와 같았다.  - P102

그런데 사회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달라졌다.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를 두고 긍정적. 부정적 차원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녀관계 차원에서 보자면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는 가부장 문화를 단절하고, 남녀관계를 새롭게 세운 시대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을 제공하는 한편, 가사노동, 육아노동 부담을 줄였다. 밥도 공동 식당에서 먹거나 사다 먹어서 집에서 밥할 일이 없어졌다. 마오쩌둥 시대에 지은 아파트의 주방이 손바닥만 한 것은 이런 때문이다. 탁아소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출근할때 아이를 직장 탁아소에 맡기고, 퇴근할 때 찾았다. 심지어 아이를 일주일 동안 맡기는 시스템도 있었다.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은 보장되어 있지만, 밥하고 아이 키우는 부담이 여전하다면 여성은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오쩌둥 시대 중국은 여성의 가사와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확연히 달라지는 계기를 맞았다. - P103

여기에 가부장인 남자의 경제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남녀관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자녀의 결혼 같은 집안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이 가부장의 손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직장의 장에게로 넘어갔다. 노동 점수에 따라 집에 필요한 물자를 배분하고, 돈을 줄 때도 집안 단위로 가부장에게 주는 게 아니라 집안 식구 수에 따라 배분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P103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우리 정부가 코로나 생계지원금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장이 아니라 집안의 가장 통장에 넣어준 것을 떠올리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권력은 결국 경제권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마오쩌둥 시대에 가장이 지닌 경제권과 집안 의사 결정권이 해체되었고, 이게 가부장제 해체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 P104

남녀의 경계가 그렇듯이, 삶을 나누는 경계란 한 걸음만 깊이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참 부질없는 허상이다. 대개 인간의 삶에 놓인 수많은 경계는 현실과 대상을 관념으로 재단하고 나누어서 생긴다. 달에게는 어둠과 밝음이 원래 자신안에서 하나인 채로 있는데, 인간의 눈은 그것을 상현달과 하현달로 나눈다. 원래 하나이고 분절할 수 없는 현실과 대상을 원래대로 보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관념의 눈으로 나누고, 그것을 질서로 만들고, 심지어 그 질서에 가치와 우열을 부여한다. 그러한 관념의 질서는 당연히 허상이다.  - P104

여름철 산둥의 농촌은 붉은 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많은 수수는 식재료와 사료, 술을 만드는 데 쓴다. 붉은수수밭의 세계에 살던 순종 인간에게 고량주는 단순한 술이아니라 잠자는 야성을 깨우고 원시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도화선이었다. 그래서 고량주를 마실 때 첫잔은 으레 한입에털어넣어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한다. 소설에서 붉은 수수밭공간에 사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다들 술을 잘 마신다.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여성도 이곳에 시집와서는 독한 고량주 반병은 너끈히 마신다. 소설의 언급에 따르면 술은 이들을 의협심이 넘치게 만들고,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한다. 이들에게 술은 억압된 야성의본능과 원시적 충동을 불러일으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하는 마법의 액체다. - P162

인문여행에는 자연경관을 찾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인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문의 한자 뜻풀이는 사람의 무늬(人)다. 사람의 무늬는 슬쩍 봐서는, 겉을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보이고,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느낄 수 있다. 그래야 건물과 거리 풍경 속에 새겨진 사람의 무늬가 보인다 - P177

정신승리법은 아큐만이 아니라 누구든 사용한다. 그것은 정신승리법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방어 기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방어 기제로는, 유쾌하지 않거나 불안을 가져오는 일에서 도피하거나 부정하는 것,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그것을 투사하거나 전이하는것, 그리고 합리화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아큐도 이런 자기방어 기제로 정신승리법을 잘 사용한다. 이렇게 보자면 정신승리법은 자기를 보존하고, 힘들고 상처 입은 삶을 회복하는 방법의 하나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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