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미는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했단다.
"이 놈의 학교 다 싫고 배신감 들고 무섭고 지긋지긋해. 근데 못 그만두겠어. 떠날 수가 없어."
소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함께 불렀던 노래, 아무렇게나 엉켜서 잠들었던밤들, 만여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밤의 캠퍼스를 행진했던 일. 선배가 앞서고 후배가 뒤따라 정문부터 중앙도서관, 본관, 대강당을 통해 다시 정문까지 학교를크게 한 바퀴 돌아왔다. 그때 나는 행렬의 거의 끝부분에 있었는데 길게 늘어선 불빛들이 하얗게 반짝여 은하수 같다고 생각했다. - P231

그 여름의 일들이, 성과가 더 많이 언급되면 좋겠다. 인정받으면 좋겠다. 취업의 관문으로 전락한 대학이 여전히 지성과 정의의 장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여성들의 성취가 평가절하되는 관행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작은 승리의 경험이 더 큰 질문과 도전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새로운 문구를 적어넣었다. 
‘나는 강하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더 강하다.‘ - P232

나의 아버지는 능력 있고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랬나보다.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오열하는 모습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았다. 후배에게 커피 심부름 한 번 시킨 적 없다거나 친한 사이에도 항상 직함을 붙여 부르고 경어를 사용했다거나 부하직원이라도 늘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는 에피소드들을 흘려들으며 저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가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 P238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평범한 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첫째인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시험 때마다 성적이 떨어진 만큼 매를 맞았고 종아리가 보라색으로 멍들어 이른 가을부터 까만 스타킹을 신고 다녀야 했다. 쓸모없는 인간이라거나 쓰레기라거나 밥도 아깝다는 말들을 예사로 듣고 자랐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 P239

폭력이 때로 얼마나 은밀한지 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잘 알면서도 나는 그런 기사를 썼다.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다정하고 신기하고 안쓰럽고 눈물겨운 이야기들, 그 뒤에 또 누가 몸을 웅크리고  있을까. 나의 부주의와 무심함이 혐오스럽다.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기사를 쓰지 않고 여전히 그 밤의 택시기사를 찾고 있다. - P239

누구에게나 열린 광장, 스스로 모인 사람들, 같은 생각과 목적, 같은 목소리, 광장에 서니 약간 벅찬 기분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감정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굳이 가장 비슷한 단어를 찾는다면 "죄책감"일 것이다. 
살면서 잠시라도 치열했던 적이 있었나. 
고민하고 의심하고 질문했던 적이 있었나. 
그나마 평화로운 시절이었다고, 경기가 어려워
먹고살기도 바빴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보았지만 J씨는 마음 한구석이 계속 묵직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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