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직후사: 현대 한국의 원형>
매일 50쪽 이상 읽기~~
오늘의 미션 클리어(179쪽)
‘1장 ㅡ 폭풍: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총독부의 종전 대책과 이중권력의 창출‘
여운형과 건준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치안유지와 당시 일본의 패망이 유력한 가운데 식량이 배급되고 있던 상황을 감안하여 식량배급에 대한 혼란을 막기 위한 활동이 주된 목표였다. 하지만 이후 그 목표가 변질되는 과정 그리고 여운형이 남한에서 인민공화국 체제로 미국으로부터 정부의 행정권을 위임받으려 했던 과정과 단체가 와해되는 과정도 관계했던 여러 인물들의 기록으로 알 수 있었다.

인공의 실패 요인이 여럿 있었지만 후일을 생각했을 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면 ˝인공의 현실적 위치가 지방의 대중에게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는 사실˝ 부분이었다. 서울에서는 이미 미 군정이 인민공화국에서 국國이라는 이름을 빼라고 강하게 압박을 가한 점, 조선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임시정부의 역할이었음에도 ˝인민공화국˝ 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논리적 모순으로 대내외의 공격이 거세 존속이 어려운 실정이었던데 반해 지방의 인민위원회에서는 인공에 대한 과도한 맹신의 풍조가 있었는데 지방의 대중에게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시일을 끌면서 혼란을 가중시킨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1장은 에필로그: 총독부의 전후 공작‘만 남았다.
이 부분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전공이 아니라 교필이었기 때문에 책 한 권으로 끝.
못내 아쉬웠는데 궁금했던 부분 단편적이나마 더 알게 될 것 같다.

결국 1945년 말에 이르러 인공은 최초의 목표였던 민족통일전선체로서 임시혁명정권이라는 스스로의 규정과는 다른 지점에서 표류하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공의 현실적 위치가 지방의 대중에게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공은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결성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의해 조선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임시정부의 역할을 자임한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함으로써 논리적 모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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