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은 만인을 위해 존재하며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소원을 그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다만 몇몇 사람만이 그들이 바랐던 소원을 기억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만이 자신의 소원이 나중에 자신의 삶 속에서 성취되었음을 깨달을 뿐이다.

-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한 도시에서 길을 헤매는 일은 많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가지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은 -마치 숲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처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때 거리의 이름들은 마치 메마른 어린 나뭇가지처럼 방황하는 자에게 말을 건네며, 마치 움푹 패인 평지처럼 아주 분명하게 하루의 시각들을 비춰준다."로 시작하는 벤야민의 글을 읽다가 몇 번이고 눈을 들어 창밖을 본다.

동화에는 세 가지 소원을 말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모두들 기대에 부풀어 무얼 말할까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소원을 말할 때에 이르면 기대와는 무관한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말하게 된다. 그렇다. 지금의 일상은 언젠가의 내 소원일 것이다. 다만 그 소원을 빌었던 내 자신을 잃었던, 잊었던 것뿐. 그리고 소원을 빌 때의 내겐 이 일상의 남루함이 보이지 않았을 터, 그러니 스스로 성취한 소원에 아연해져서 우는 소리를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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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만 해도 도서관의 주 이용층은 십대와 이십대였다. 그랬는데 최근에는 이용층의 연령대가 대폭 상향조정되었다. 연령층이 높아진 첫째 이유는 아이엠에프 사태다. 아이엠에프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 남성들에게 시립도서관은 싸고 건전하며 나름대로 면목이 서는 쉼터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이유는 자격증 열풍이다. 공인중개사, 공무원시험을 비롯해 각종 자격증을 준비하는 늦깍이 수험생이 늘면서 열람실은 중고등학생보다 20대 후반 이후의 세대가 더 많아졌다. 뭐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 분석이니 사실 여부를 지나치게 따질 필요는 없겠다.

어쨌거나 처음엔 도서관을 오가는 장년층들을 발견하면 은근한 동료애가 동하며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동료들이 왜 이리 불편해지는지... 얼마 전부터 열람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50대 아주머니. 오전 10시경에 출근하여 쉼없이 공부하는 아주 성실한 분이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난 1시 반에서 2시 사이가 이분에겐 마의 취침시간이다. 식곤증이야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니 탓할 것이 없다. 문제는 코골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잠깐의 낮잠치고 이분의 코골이는 꽤 걸다. 지난번 40대 남자의 무호흡증을 동반한 코골이에 놀라 남녀 공용 열람실엔 발을 끊은 지 오래이나, 이번엔 여자 열람실이니 피할 데도 없다. 아주머니의 코고는 소리가 높아갈수록 열람실은 점점 더 조용히 가라앉는다. 앞자리 옆자리를 둘러보니 모두들 얼굴이 굳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결국, 나이깨나 먹은 이 아주머니가 나서기로 한다. 몸을 벌떡 일으켜 코골이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제발 착한 분이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혼곤한 잠에서 나올락말락 희미한 눈으로 영문을 묻는 아주머니에게, "저, 코고는 소리가 좀 커서요..." 순간 아주머니의 눈이 화들짝 커지며 얼굴이 새빨개진다. "아이고, 죄송해요."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주위의 시선이 곱지가 않다. 나 또한 몹쓸 짓을 한 듯, 석연치가 않다. 모처럼 숙면을 취하는 아주머니를 기어코 깨웠어야 할까, 도서관에 코고는 소리쯤 울린다고 하루종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리 까칠하게 굴었어야 했나, 결국 내 스스로 더 견디지를 못하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오면서 생각해 보니 내 경우에도 도서관만큼 잠이 솔솔 잘 오는 장소가 드물었다. 불면증으로 며칠 잠을 설쳤을 때도 지루한 책을 들고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금방 치유가 된 경험, 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 내일부턴 도서관을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책도 보고 잠도 자는 곳으로 넉넉히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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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다니던 직장 건물은 요즘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오는 건축학도들도 많고, 지나다가 '멋있다'며 구경하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 멋있는 작품에 사는 사람은 죽을 맛이었다. 사방 막힌 데 없는 공간 배치 탓에 회사 어디에도 비밀이 없었다. 좋을 것 같다고? 글쎄... 거기에 사방이 온통 유리다 보니 조금만 해가 들어도 뜨겁고 눈이 부셔서 죽을 맛이었다. 더구나 겨울에 천장이 높고 툭 트인 공간을 덥히려면 하염없이 연료가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도 건축잡지에 소개된 이 집의 콘셉트는 환경친화! 그리하여 나는, 건축은 사기다, 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읽으니, 그 유명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집에 입주한 집주인, 끊임없이 물이 새는 천장 덕에 아이는 폐렴으로 요양소 신세를 지고 온 가족이 류머티즘으로 고생했단다. 더구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 때문에 이 뻔한 문제점조차 개선하지 못했다니! 

보통은 건축이 미학과 과학 사이에서 시소를 타던 이야기를 소개하며 건축가들이 밟아온 허방을 슬쩍 보여준다. 물론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다. 내가 듣고 싶은 얘기였을 따름이지. 집은 짓는 사람의 꿈과 철학의 반영체이며 동시에 그 집에 사는 삶의 구현체이기도 함을, 보통은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 속에 담아 보여준다. 요즘처럼 집이 삶이 아니라 돈이 되어버린 세태에 [행복의 건축]이란 제목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다. 집을 샀다 하면 얼마에 샀냐로 시작해서 오를 것 같으냐로 이어지는 게 대화의 순서가 된 마당에, 과연 건축은 행복을 지을 수 있을까? 값이 전혀 오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을 먼저 건축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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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이 내 생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이십여 년 전쯤. 이사한 집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었던 우연 덕분이엇다. 산 비탈에 위치한 도서관은 지은 지 오래된 듯, 전체적으로 낡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청소상태는 깨끗해서,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올라가 금방 청소를 끝낸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열람실에 앉으면 기분이 환해지곤 했다. 후미진 위치 탓인지 도서관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한 1,2년 다니다 보니 웬만한 출입자들은 다 눈에 익게 되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는 이들을 죽 관찰하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통상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정상에서 슬쩍 벗어난 사람이 많다는 사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자료열람실에서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펴놓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뿡!" 하는 소리가 열람실을 울렸다.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었지만 그저 조용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다시 책에 코를 박는 순간, 다시 한번 "뿡" 연이어 다시 "뿡뿡!" 하, 이거야 원. 조용한 열람실에 뻔뻔하게 울리는 방귀소리에 기가 막혀 사방을 주욱 둘러보았다. 나처럼 어이없는 눈길로 주위를 살피는 사람들과 시선이 오가던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한 군데로 모아졌다. 50대 혹은 60대의 남자가 책에 눈길을 고정시킨 채 주위의 부산함과 상관없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어찌나 태연한지 방금 전의 "뿡" 소리가 나의 이명은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뿡의 연원은 알았으나 그 뿡에게 다가가 "뿡 소리가 시끄러우니 방귀가 나올 것 같으면 밖으로 나가서 뀌어주시지요"라고 말할 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뿡의 연배가 열람실에 있었던 이들 중 가장 높은 편이었던 것도 이런 사태에 일조를 했다. 사서들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열람실에는 "뿡"이 울려퍼졌고, 그건 내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끝내고 자료열람실에서 퇴각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엔 그 뿡이 냄새 없는 뿡임에 감사할 지경이었으니, 사람은 역시 환경의 동물인가.

그런데 십 년 넘게 도서관을 다니며 '애서가상'까지 받은 내 경험에서, 이 뿡 사건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도서관이란 단지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 곳이기도 함을 나는 그후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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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음 글이 기대되는군요. 아직 도서관에 오래 다니지 않아서 저런 풍경은 잘 못본 듯.^^

스머프 2007-07-0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슴다! 기다려주세요~
 

동네에 비디오 대여점이 다 없어졌다. 그 바람에 아쉽게 놓친 영화나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영화를 만나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해서, 길 가다 폐업정리를 내건 비디오 대여점을 만나면 가물가물한 노안을 부릅뜨고 진열대를 살핀다. 그렇게 만난 영화가 [문라이트 발렌티노]다. 영화의 낮은 지명도에 비해 나오는 배우들의 지명도는 사뭇 높다. 엘리자베스 퍼킨스, 기네스 펠트로, 우피 골드버그, 알베르타 터너. 이 여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 생각은 안 난다. 여기에 조지아 오키프를 알게 되는 건 보너스.

조지아 오키프는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꽃 그림을 그린 화가다. 그녀의 꽃 그림을 보고도 이내 꽃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사람, 빨간 잡지를 꽤 애독했음에 분명하다. 그녀는 37세 때 60세인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결혼하는데, 둘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준 환상의 커플이다. 오키프는 건강하게 백 년을 살았고, 죽기 전까지도 세계를 여행하고 사진작가들의 작업에 참여하며 밀도 높은 생을 살았다. 멕시코 사막에서의 그녀의 구도자적인 삶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었고 영감을 주었다. 기념 미술관을 가진 미국의 유일한 여성 화가이기도 한 조지아 오키프. 영화 속 미국 여자들에게도,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간 오키프는 달처럼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니, 문 닫은 비디오 가게에서 중고 비디오테이프를 뒤지는 한국의 아줌마야 더 말해 무엇하랴. 누구보다 정직하게 자신의 욕망과 승부했던 조지아 오키프, 그리하여 그 욕망을 훌쩍 넘는 자유를 구현했던 그녀의 그림도 삶도, 그래, 꿈결 같은 달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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