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비디오 대여점이 다 없어졌다. 그 바람에 아쉽게 놓친 영화나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영화를 만나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해서, 길 가다 폐업정리를 내건 비디오 대여점을 만나면 가물가물한 노안을 부릅뜨고 진열대를 살핀다. 그렇게 만난 영화가 [문라이트 발렌티노]다. 영화의 낮은 지명도에 비해 나오는 배우들의 지명도는 사뭇 높다. 엘리자베스 퍼킨스, 기네스 펠트로, 우피 골드버그, 알베르타 터너. 이 여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 생각은 안 난다. 여기에 조지아 오키프를 알게 되는 건 보너스.

조지아 오키프는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꽃 그림을 그린 화가다. 그녀의 꽃 그림을 보고도 이내 꽃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사람, 빨간 잡지를 꽤 애독했음에 분명하다. 그녀는 37세 때 60세인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결혼하는데, 둘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준 환상의 커플이다. 오키프는 건강하게 백 년을 살았고, 죽기 전까지도 세계를 여행하고 사진작가들의 작업에 참여하며 밀도 높은 생을 살았다. 멕시코 사막에서의 그녀의 구도자적인 삶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었고 영감을 주었다. 기념 미술관을 가진 미국의 유일한 여성 화가이기도 한 조지아 오키프. 영화 속 미국 여자들에게도,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간 오키프는 달처럼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니, 문 닫은 비디오 가게에서 중고 비디오테이프를 뒤지는 한국의 아줌마야 더 말해 무엇하랴. 누구보다 정직하게 자신의 욕망과 승부했던 조지아 오키프, 그리하여 그 욕망을 훌쩍 넘는 자유를 구현했던 그녀의 그림도 삶도, 그래, 꿈결 같은 달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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