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은 만인을 위해 존재하며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소원을 그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다만 몇몇 사람만이 그들이 바랐던 소원을 기억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만이 자신의 소원이 나중에 자신의 삶 속에서 성취되었음을 깨달을 뿐이다.

-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한 도시에서 길을 헤매는 일은 많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가지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은 -마치 숲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처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때 거리의 이름들은 마치 메마른 어린 나뭇가지처럼 방황하는 자에게 말을 건네며, 마치 움푹 패인 평지처럼 아주 분명하게 하루의 시각들을 비춰준다."로 시작하는 벤야민의 글을 읽다가 몇 번이고 눈을 들어 창밖을 본다.

동화에는 세 가지 소원을 말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모두들 기대에 부풀어 무얼 말할까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소원을 말할 때에 이르면 기대와는 무관한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말하게 된다. 그렇다. 지금의 일상은 언젠가의 내 소원일 것이다. 다만 그 소원을 빌었던 내 자신을 잃었던, 잊었던 것뿐. 그리고 소원을 빌 때의 내겐 이 일상의 남루함이 보이지 않았을 터, 그러니 스스로 성취한 소원에 아연해져서 우는 소리를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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