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만 해도 도서관의 주 이용층은 십대와 이십대였다. 그랬는데 최근에는 이용층의 연령대가 대폭 상향조정되었다. 연령층이 높아진 첫째 이유는 아이엠에프 사태다. 아이엠에프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 남성들에게 시립도서관은 싸고 건전하며 나름대로 면목이 서는 쉼터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이유는 자격증 열풍이다. 공인중개사, 공무원시험을 비롯해 각종 자격증을 준비하는 늦깍이 수험생이 늘면서 열람실은 중고등학생보다 20대 후반 이후의 세대가 더 많아졌다. 뭐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 분석이니 사실 여부를 지나치게 따질 필요는 없겠다.

어쨌거나 처음엔 도서관을 오가는 장년층들을 발견하면 은근한 동료애가 동하며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동료들이 왜 이리 불편해지는지... 얼마 전부터 열람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50대 아주머니. 오전 10시경에 출근하여 쉼없이 공부하는 아주 성실한 분이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난 1시 반에서 2시 사이가 이분에겐 마의 취침시간이다. 식곤증이야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니 탓할 것이 없다. 문제는 코골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잠깐의 낮잠치고 이분의 코골이는 꽤 걸다. 지난번 40대 남자의 무호흡증을 동반한 코골이에 놀라 남녀 공용 열람실엔 발을 끊은 지 오래이나, 이번엔 여자 열람실이니 피할 데도 없다. 아주머니의 코고는 소리가 높아갈수록 열람실은 점점 더 조용히 가라앉는다. 앞자리 옆자리를 둘러보니 모두들 얼굴이 굳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결국, 나이깨나 먹은 이 아주머니가 나서기로 한다. 몸을 벌떡 일으켜 코골이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제발 착한 분이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혼곤한 잠에서 나올락말락 희미한 눈으로 영문을 묻는 아주머니에게, "저, 코고는 소리가 좀 커서요..." 순간 아주머니의 눈이 화들짝 커지며 얼굴이 새빨개진다. "아이고, 죄송해요."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주위의 시선이 곱지가 않다. 나 또한 몹쓸 짓을 한 듯, 석연치가 않다. 모처럼 숙면을 취하는 아주머니를 기어코 깨웠어야 할까, 도서관에 코고는 소리쯤 울린다고 하루종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리 까칠하게 굴었어야 했나, 결국 내 스스로 더 견디지를 못하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오면서 생각해 보니 내 경우에도 도서관만큼 잠이 솔솔 잘 오는 장소가 드물었다. 불면증으로 며칠 잠을 설쳤을 때도 지루한 책을 들고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금방 치유가 된 경험, 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 내일부턴 도서관을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책도 보고 잠도 자는 곳으로 넉넉히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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