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다니던 직장 건물은 요즘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오는 건축학도들도 많고, 지나다가 '멋있다'며 구경하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 멋있는 작품에 사는 사람은 죽을 맛이었다. 사방 막힌 데 없는 공간 배치 탓에 회사 어디에도 비밀이 없었다. 좋을 것 같다고? 글쎄... 거기에 사방이 온통 유리다 보니 조금만 해가 들어도 뜨겁고 눈이 부셔서 죽을 맛이었다. 더구나 겨울에 천장이 높고 툭 트인 공간을 덥히려면 하염없이 연료가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도 건축잡지에 소개된 이 집의 콘셉트는 환경친화! 그리하여 나는, 건축은 사기다, 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읽으니, 그 유명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집에 입주한 집주인, 끊임없이 물이 새는 천장 덕에 아이는 폐렴으로 요양소 신세를 지고 온 가족이 류머티즘으로 고생했단다. 더구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 때문에 이 뻔한 문제점조차 개선하지 못했다니! 

보통은 건축이 미학과 과학 사이에서 시소를 타던 이야기를 소개하며 건축가들이 밟아온 허방을 슬쩍 보여준다. 물론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다. 내가 듣고 싶은 얘기였을 따름이지. 집은 짓는 사람의 꿈과 철학의 반영체이며 동시에 그 집에 사는 삶의 구현체이기도 함을, 보통은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 속에 담아 보여준다. 요즘처럼 집이 삶이 아니라 돈이 되어버린 세태에 [행복의 건축]이란 제목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다. 집을 샀다 하면 얼마에 샀냐로 시작해서 오를 것 같으냐로 이어지는 게 대화의 순서가 된 마당에, 과연 건축은 행복을 지을 수 있을까? 값이 전혀 오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을 먼저 건축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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