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라는 배는 짐을 많이 실으면 실을수록 더욱 깊어진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불공정함은 불가피하다. 삶의 가치에 관한 모든 판단은 비논리적으로 발전해왔으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비논리적인, 따라서 불공정한 존재이며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주어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동정심을 가지려면 강력한 상상력이 없어선 안 된다. 이렇게 도덕은 지성의 우수함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희망은 재앙 중에서도 최악의 재앙이다. 왜냐면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행위를 허영으로, 평범한 행위를 습관으로, 소인배적인 행위를 공포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잘못 판단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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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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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흐느낌 문학동네 시집 88
신기섭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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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절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스물이 넘고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서도 죽지 않았으니 이제는 죽어봐야 요절은 아니다. 그러고나니 오래 살고 싶어졌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나날의 목표가 된 듯, 병원을 들락거리고 약을 먹는다. 그러면서 요새도 요절하는 천재가 있나, 다들 잘사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신기섭의 시집을 선물받은 자리에서 첫번째 시를 읽고 '미치겠다' 싶었다. 한 편의 시에 이렇게 오래 마음이 머물기는 참 오랫만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시집을 펼쳐도 첫 시에서 자꾸 진도가 안 나간다. 시 한 편을 읽는 게 이렇게 무섭고 끔찍하기는....

신기섭은 요절한 시인이다. 죽음을 동경한 시인은 아니다. 아무래도 기형도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시와 삶, 둘 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죽음을 꿈꾼 시인은 아니었다. 둘 다 삶을 지독하게 사랑했으나 죽음을 정면으로 보았기에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신기섭의 시에는 죽음이 시종 함께한다. 그가 얼마나 끔찍하게 고독했을지, 차마 눈 뜨고 그의 시를 읽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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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겨레신문에 연재될 때 간간히 읽었는데 사실 그때는 큰 공감을 못 느꼈다. 그런데 책으로 나온 걸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으니 수긍이 가기도 하고 내 자신을 비춰보게도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읽다보면 왠지 거북하고 이물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었는데, 마음을 순하게 갖고 이 부분이 어쩌면 내 안의 억압인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이려 애썼다. 사실 이런 책들은 비판적으로 읽으면 별 도움이 안 된다. 이 책에서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도 없다. 책 한 권이 어떻게 마음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문제해결의 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으랴. 다만, 애써가는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한 가지,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자기분석의 중요성은 크게 공감한 부분이다. 자기분석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고 있던 참이라 더욱 그랬다. 자기분석과 원망 해소의 한 방법으로 편지쓰기는 실제적 도움도 될 듯했다.

다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핵으로 한 프로이트의 가족 로망스구조가 너무 부각되어서, 자칫 가족과 부모로 과도하게 경도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되었다. 이 책을 읽고 몇 사람과 토론했을 때도 그런 점이 많이 지적되었다. 가족과 부모의 역할이 강조되는 건 환경의 주요 요소로서이지 헤어날 수 없는 늪과도 같은 관계는 아닐진대, 프로이트의 부-모-자로 구성된 삼각형 애증은 너무 결정적으로 보이는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런 점이 보여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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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와 <생일편지>


격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황금빛 연꽃이 심겨질 수 있으리라.

 

1963년 실비아 플라스가 서른의 나이로 목숨을 끊었을 때, 이 글귀가 그녀의 묘비에 새겨졌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녀를 보며 전 남편 테드 휴즈가 자주 인용하던 산스크리트어 경구였다.

두 격렬한 시혼(詩魂)이 처음 마주친 곳은 책의 거리로 유명한 런던 채링크로스가였다. 둘은 바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결혼은 늘 그렇듯 사랑의 무덤, 영화 <실비아>는 두 시인의 무덤을 현실감 있게 재현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와 테드 휴즈의 시집 <생일편지>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서 기네스 펠트로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뜨겁고 순수한 한 영혼이 사랑으로 파멸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아프다.    

실비아 플라스는 “죽는다는 것은/ 예술, 다른 매사에 그렇듯이/ 난 그것을 예외적으로 잘한다”고 읊었듯이 오만과 절망을 동시에 내보였던 아름다운 천재였고, 그런 여자를 잊는다는 건 불가능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 그녀를 놓아버렸던 테드 휴즈는 35년 뒤, 실비아와의 첫 만남부터 죽음 이후까지를 담은 88편의 시를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한다. <생일편지>라는 제목의 이 시집을 펴내고 불과 보름 만에 테드 휴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에겐 실비아의 세상으로 떠나는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탄생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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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아플러스의 일기를 사려다 실비아dvd를 사면 실비아 플러스일기책을 주는 행사덕분에 2개를 다 가질수가 있었답니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네요..^^

스머프 2007-05-1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작년 겨울에 그런 행사를 했지요. 지금은 안 하는 것 같아요. [너무 너무]라는 책에 실비아 플라스의 아름다운 사진이 실려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