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 책을 이제야 읽다. 용서할 수 없는 게으름! 책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그런데 왜 들뢰즈, 가타리의 개념을 중간중간 사용하는지는 좀 의문이다. 반드시 그 개념을 사용해야 할 내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박지원에게서 발견되는 대목이 서구사상이나 누구누구에게서 이런 식으로도 발견되더라, 라는 정도의 인용이라면 모를까.

이 책도 그렇지만 요즘 대폭 늘어난 영, 정조 시대에 관한 책들, 특히 백탑파 인물들을 다룬 책들을 보다보면 몇 가지 지울 수 없는 의문들이 있다. 당시 사회에서 노론이 가진 위치를 생각할 때 박지원이 갖는 지점은 어딜까, 그의 진보성을 어느만큼 인정해야 할까, 박지원의 정치적 지향이 과연 그의 문체만큼 전복적이었을까, 왜 정조는 백탑파를 중용하면서도 문체반정을 한 것일까, 그것의 성공실패를 떠나 서학보다 문체를 문제시했던 정조의 사상적 지향은 뭘까, 아니 그의 정치적 구상은 무엇이었을까... 권력은 문체에서 작동하듯 정치의 현장에서도 관철되기에, 요즘의 책들을 보며 박지원의 정치를 그의 문체로 대치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니 문체가 문화가 정치의 전부인 양 순진하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사슬에서 풀리다 - 해방기 책의 문화사
이중연 지음 / 혜안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중연은 내가 늘 챙겨 보는 저자다. 읽은 책은 단 한 권, <책의 운명>. 두껍고, 요즘 내용보다 편집보다 중요해지는 디자인과는 담을 쌓은 참 무지막지한 책인데, 이 책을 읽고 오랫만에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의 다음 저작을 기다렸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얼마전 나온 신간을 찾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나온 걸 오래도록 몰랐다. 교재를 주로 내는 출판사에서 나온 까닭에 광고가 전혀 안 된 탓도 있지만, 내 게으름 탓이 더 크다. 어쨌거나 늦게나마 알았으니 읽자, 하고 도서관에 신청을 했다. 이런 책은 반드시 도서관에 구비되어 마땅하니까.

<책, 사슬에서 풀리다>는 책으로 보는 해방 직후의 문화사다. 과문한 탓인지, 이런 주제를 갖고 작업한 예를 아직 보지 못했다. 책의 전반부는 자료적 가치는 있으나 재미는 적다. 그래도 잊혀진 출판인 배종국에 관한 짧은 평전은 단숨에 읽힌다. 뭣보다 시인과 소설가 등 작가는 기억해도 그걸 출판한 출판인은 문화인의 궤적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우리의 풍토를 꼬집으며, 성실과 애정으로 그들의 흔적을 살려내려는 저자의 마음이 기껍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건,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쓴 책 이야기. 특히 국립도서관 사서와의 가상대담은 형식도 내용도 새로웠다. 남북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철저한 자료에 입각해 해방직후 금서의 문화사를 써내려간 점은 설득력이 있다. 금서는 무엇보다 권력의 문제라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권력의 행사방식은 또한 얼마나 다양한가. 미군정이 금서 라는 통제를 유보한 반면, 진보의 이데올로기로 출발했던 북한 사회주의 정권이 이미 해방직후에 금서와 분서(일본책의 대량수거, 말살)를 시행함으로써 스스로를 배반했다는 사실은 해방직후를 보던 내 자신의 낡은 관념을 다시 생각케한다. 결국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것에 담긴 염원일 것이며, 그것을 행동하는 사람과 삶일 것이다. 그러니 적국인 일본책이기에 폐기한다는 단순함이 순진함으로 포장될 수 없는 폭력이 되는 것이겠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책을 주제로 꾸준히 저술활동을 계속하는 저자가 그 마음을 잃지 않도록, 최소한의 지원은 부디 이루어지기를. 그만한 문화적 풍요와 배치는 이루어지고 있기를, 안간힘으로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의 목소리여, 조용하라. 사람의 생각이여, 쉬어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파악하려 함에 있어 이해력은 미치지 않는다. 동참이 필요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주석> 중에서

나약한 정신은 구체를 통해서 진리로 향한다.   -쌩드니의 시에서

진리는 지식이 아니라 '동참''구체'라는 경험을 통해 획득된다는 이야기. 진리는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이든 이들이,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타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경험에 의한 진리 획득을 당연시하는 순간, 이 금언들은 순식간에 추레해진다. 그런데, 애시당초 진리라는 게 손에 잡히는 것이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눈깜짝할 새, 서른 해가 흘렀다. 나는 바람을 잡고 싶었다. 헌데 오히려 바람이 날 잡으려는 걸 느낀다.

  -순원뽀어의 <고문의 류머티즘>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때, 천재는 요절한다는 생각 땜에 일찍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천재가 아니고 따라서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오래오래 잘 살고 싶다. 가늘고 길게, 오래 살아야만 보통사람들이 힘들게 도달한 경지를 맛이라도 볼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 사이 요절을 잊었더랬다. 그런데 어제 주문한 '엘리엇 스미스'와 '에바 캐시디'의 씨디를 받아놓고 한 곡 한 곡 듣다보니 아, 이상하다, 둘다 요절했구나! 그런데 음악이 그들이 요절 때문에 꼭 슬프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느낌이 강렬해서, 그래서 오랫만에 '요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 그들의 음악에 턱없는 아우라를 씌운 것은 아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미 자기 생의 극한까지 살아낸 사람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의미를 보태지 않는다. 죽음을 넘은 음악을 오랫만에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