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천재는 요절한다는 생각 땜에 일찍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천재가 아니고 따라서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오래오래 잘 살고 싶다. 가늘고 길게, 오래 살아야만 보통사람들이 힘들게 도달한 경지를 맛이라도 볼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 사이 요절을 잊었더랬다. 그런데 어제 주문한 '엘리엇 스미스'와 '에바 캐시디'의 씨디를 받아놓고 한 곡 한 곡 듣다보니 아, 이상하다, 둘다 요절했구나! 그런데 음악이 그들이 요절 때문에 꼭 슬프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느낌이 강렬해서, 그래서 오랫만에 '요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 그들의 음악에 턱없는 아우라를 씌운 것은 아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미 자기 생의 극한까지 살아낸 사람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의미를 보태지 않는다. 죽음을 넘은 음악을 오랫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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