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용기는 사소한 상황에서 상당한 노력과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직면해야 할 도전은, 우리에게 엄습하는 불안을 극복하는 데 본질이 있다. 우리가 직업적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에 대한, 우리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지닌 자들과의 관게에 대한, 현세의 삶을 방해할지도 모를 모든 것에 대한 불안 말이다."      

 


컴퓨터 인공지능의 대표주자가 컴퓨터 만능의 사회를 비판하는 책이라 하여 관심을 갖고 봤다. 생각보다 얇고, 대담집이라 읽기도 매우 수월했다. 그만큼, 기대했던 이론적 비판보다는 바이첸바움의 인생과 신념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 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책의 중반 이후에서 전개되는 사상은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특히 인공지능의 주창자들이 하나같이 남자라는 점, 프로그래머 중에 여성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통해 생명을 창조하는 어머니가 되려는 욕망, 뭇 생명을 주관하는 신을 꿈꾸는 남성적 욕망을 비판하는 대목은 새로웠다. 책의 말미에 인용한 바이첸바움의 글은 요즘같은 광신의 시대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 우리가 이런 식으로 주저앉을 거라는 불안을 극복하자. 저들이 이길 거라는 끔찍한 불안을 기어코 극복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고에 실린 서평들이 하도 요란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캄캄하고 막막하더니 아무리 책장을 넘겨도 변함이 없었다. 통상 이 정도쯤 되면 서서히 드라마도 생기고 독자를 위한 쉼표도 찍어줄 거라고 생각한 페이지가 되어도 작가는 끈질지게 시종여일. 이제는 소설 속의 부자보다 읽는 내가 더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별다른 사건도 없이 그저 암담 무인지경을 더듬는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것. 결국 반나절 만에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계속 한숨 쉬고 답답해 하면서!

일흔이 넘은 작가가 열 살 난 아들을 보며 떠올린 소설이라는데, 그래선가 부성이 안간힘으로 붙잡는 희미한 희망이 느껴진다. 물론 확신은 없다. 섣부른 희망을 담기에 작가의 가슴은 너무 명징하다. 하지만 그래도 소설의 마지막에서 내가 읽은 것은 희망이다. 혹은 암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정직한 위로다.

소설을 읽고 나서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렸다. 둘 다 인간에 대해 절망적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악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밖에 만들지 못하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한다. 알레고리가 좀더 풍부한 것은 사라마구였다. 하지만 둘을 떠올린 건 비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유사함 때문이었다. 노년의 작가들이 이렇게 인간에 대해 정직하게 말할 힘을 지녔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어설픈 잠언을 허용하지 않는 날 선 지성도.  사라마구의 소설은 정말 읽기가 힘들었는데,  [로드]는 단숨에 읽었고 읽고난 뒤에도 마음이 덜 무거웠다. 역시 아버지의 시선이 깔려 있어서일까? 대신 그만큼 상상의 여운이 오래가지는 않았던 점이 아쉽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아주 싫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오히려 이만하면 살만하군, 하는 오기 같은 게 생겼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힘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쪼가리 자작]을 재미있게 읽은 뒤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나무 위의 남작]을 읽었다. 약간 긴 느낌은 있었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가슴 뻐근한 감동을 느꼈다.

열두 살 식탁에서 아버지에 반항해 나무 위로 올라간 코지모. 어쩌면 하룻밤 가출로 끝날 수도 있었던 그의 나무행은, 옆집 소녀의 도발에 자극받아 평생으로 이어진다. '나무 위에서 산다'는 황당한 상황은 칼비노의 능숙한 솜씨 덕분에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반쪼가리 자작]에서도 놀랐지만 역시 그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발군이다!

남작은 나무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그곳의 삶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다. 때론 땅의 삶을 질투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그러나 나무를 떠나지 않은 채 그는 삶을 마감한다. 그는 나무와 땅, 그 사이의 거리를 사랑하면서도 때론 못 견뎌하는데, 어쩌면 그 갈등 혹은 긴장이야말로 그를 살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곳을 떠난 삶을 꿈꾼다. 하지만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랴. 그 고독을 품을 용기가 없다면 꿈은 꿈으로 끝낼 일. 자신의 꿈을 살아내기 위해 많은 것을 잃은 나무 위의 남작이 내 삶을 위로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라인드 스팟 - 내가 못 보는 내 사고의 10가지 맹점
매들린 L.반 헤케 지음, 임옥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심리학 책은 70%의 공감과 30%의 허탈로 남는다. 이 책 역시 그렇다. 계속 맞아,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마지막에는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하는 반문으로 끝난다. 다 인정할 수 있지만 그래서 뭘 어째야 할지도 막연하고, 별로 달라질 것도 같지 않은 애매함이 언짢기도 하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심리학은 해결서가 아니다. 그저 내 심리의 일면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그 일면이 나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고, 그게 어떤 문제를 낳는지 얘기해주는 학문이다. 그러니 해결을 제시하는 건 기대하지 말자.

그렇게 접고보니 이 책 꽤 괜찮다. 뭣보다 내 사고 유형 중 상당부분이 맹점들로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맹점'이라고 인정하는 게 사실은 쉽지 않다. 내 성격이라거나 성향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게 성격이 아니라, 사고의 맹점이며 오류라는 것, 그러니까 성격이라고 우기지 말고 오류를 수정하라고 내 자신에게 가차없이 말해주었다. 그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책을 읽고나니 무엇보다 편집이 아쉽다. 좋은 편집자의 역량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거슬림없이 잘 만든 책이 증거다. 이 책은 저자의 의욕을 조절해주고 정리해준 편집자의 부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난삽한 구성과 서술 때문에 집중이 흔들린다. 아쉽다. 두 저자가 편집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지, 아니면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개정판을 냈으면 좋겠다.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을 과감히 삭제하고, 쓸데없이 끼어드는 외국 개념이나 이론들도 빼고 -필요한 경우라면 그게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쓰거나- 세대를 착취해서 버티는 한국 경제의 기형성에 초점을 확실하게 맞춰서 다시 정리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독서'에 넣게 되는 책이다. 그만큼 현 시점에서 꼭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