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먼 남의 나라의 부러운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지쳐가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최근 읽었던 <행복의 기원>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둘 사이는 그저 막연한 단어인 '행복'으로만 연결이 되어 있을 뿐이지만 서점에 들러 진열된 책들을 보며 '행복의 다른 차원'을 고민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구매했다. 


행복의 다른 차원? 

<행복의 기원>이 인간 개체이자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며 그 행복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사회적인 체제나 시스템이 어떻게 다수의 시민에게 행복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 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아니며, 왜 같은 인간인데 우리는 스스로가 살고 있는 사회를 '헬조선'이라 칭하며 절망하는 한편, 덴마크는 자타가 행복하다고 공인하는 1위의 국가가 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질문을 바꾸어 '우리는 왜 불행한가?'를 생각해면 어떨까. 

어릴 때부터 주어지는 경쟁적인 환경을 보자. 명문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개인의 특성은 모두 배제된 채 공부를 잘 하는지, 성적이 좋은지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된다. 과장해서 말하면 '수능성적'이 남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당연히 초중고 학생들에게는 무엇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됐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그나마도 힘들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점 관리에 어학 연수에 토익 성적을 관리하며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고시를 준비하며 기한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직장, 힘들게 합격한 공직, 그 어디도 안정적이지 않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산다. 내가 남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혹은 뒤쳐져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차이를 넓히거나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덴마크 사회를 방문하고 그들의 삶에 깃든 생각과 체계들을 분석하여 덴마크가 행복한 이유에 대한 6개의 핵심요소를 뽑아냈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 그것이다. 

(임의로 순서를 조금 바꾸어 설명하면) 덴마크 사람들은 직업이 무엇이든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다(평등). 따라서 공무원이나 판검사, 의사를 부러워하지도 않으며 그런 직업을 가져야 할 유인도 없다. 이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자유). 따라서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하여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심지어 고등학교 진학 전에 1년간 '인생학교'에 가서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이런 자유는 사회가 언제나 개인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안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안정은 덴마크 성인들이 월급의 50% 가까이 내는 세금을 통하여 마련되고, 신뢰는 좌파이건 우파이건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은 유지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유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거두어들인 세금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믿음과 실제 그 혜택을 받은 이들은 자신이 받은 혜택을 미래세대도 동일하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비용을 감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연대가 가능하다(이웃). 이러한 유대감은 인간이 아닌 환경에 대해서도 확장되는 듯하다. 자전거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자전거가 많고, 원자력 발전이 아닌 재생에너지를 통하여 에너지를 자급하는 나라가 덴마크다.


물론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도 처음부터 복지국가였던 것이 아니라 우리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상황이 안좋은 나라였음을 안다면 그런 간단한 핑계는 댈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이번에야 알았다. 전쟁을 통하여 독일과 노르웨이에 국토를 빼앗기고 척박한 토양에서 우리나라의 경상도 크기만 남은 이 나라는 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안으로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것을. 이를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농촌에서부터, 아래에서부터 변화의 움직임을 일구어 내기 시작한 것을. 이를 통하여 덴마크는 노동자-경영자-정부라는 골든 트라이앵글이 신뢰를 기반으로 확고히 마련되었으며, 경영의 효율을 추구하지만 개인의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였고, 경쟁없고 자유로운 교육을 통하여 학교에서 배우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상과 사례를 접하고 나니 막연한 부러움 보다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나와 같은 개인은 아무 힘도 없는 존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변화를 욕망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복의 기원>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도 행복일 수 있지만, 이 구체적 한 장면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장면을 연출하기 까지의 내 삶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인 행복을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사회가 어떻게 변하면 좋을지, 행복에 대하여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개인을 넘어선 시민/국민의 입장에서도 고민해볼 일이다.

"한 번도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나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어요. 열쇠 수리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입니까?"
덴마크에 가기 전에 만난 한국의 한 대기업 간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비로서 참 부끄럽다"라고 했다. 또다른 나의 지인은 직업이 의사인데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페테르센은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도 자신이 식당 종업원이고 아들이 열쇠 수리공이라는 사실을 떳떳이 이야기한다고 한다. 아들이 자랑스러운 덴마크 웨이터와 아들이 못마땅한 한국 의사, 누가 더 행복할까? 이것은 부자 관계의 차이가 아니라 노동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 29쪽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죠. 그게 돈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 큰아들은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해요. 큰딸은 쇼핑몰 판매원이죠. 작은딸은 병원에서 일하게 될 것 같고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선택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요. 부모의 선택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선택이어야 하니까요. 부모가 특정 직업을 강요해서 그걸 선택했는데, 나중에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밀보는 자신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세속적 가치 기준에서 자유로운 듯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문득 덴마크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장의 말이 떠올랐다. 덴마크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즐거운 일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성적이나 등수로 비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한다. 밀보와 초등학교 교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덴마크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도 통하고 있다. - 36쪽

"덴마크는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무료지만 사립학교는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으면 학비를 정부에서 대줍니다."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적으로 고액 연봉자들인 이 회사의 간부와 직원들은 월급의 50퍼센트 정도를 세금으로 내는데도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그 세금으로 덴마크가 행복사회로 자리 잡은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엑스트란올센이 말했다.
"우리가 세금을 내기 때문에 덴마크는 걱정 없는 사회가 된 겁니다. 나뿐 아니라 내 친구들이, 그리고 내가 모르는 우리의 이웃들이 평생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고 진료받으며 건강을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 50쪽

덴마크 경영자들은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 사업을 한다. 사업이 계획보다 잘 안되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그런데도 덴마크 노동자들의 직장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70퍼센트 가까이 된다. 덴마크는 어떻게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했을까?
그 비결은 유연안전성(flexicurity)이다.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결합한 이 용어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한 덴마크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기업에는 노동자의 채용과 해고에서 유연성을 보장하고,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안정된 소득과 고용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 67쪽

덴마크의 유연안전성 시스템은 이렇듯 노동자와 경영자가 통 큰 양보를 주고받았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에 이런 신뢰가 가능했던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인 ‘신뢰받는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노사 간 신뢰에 강한 접착제 역할을 한 것이다. 정부 역할의 핵심은 시장에서 일시 탈락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다시 시장으로 진입하게 하는 일이다.
정부는 실업자에게 직업을 찾을 때까지 생활 자금을 지원해준다. 현재 법적인 실업보조금 지급 기간은 2년이다. 처음 1970년대에는 기한이 없었는데 차츰 9년, 7년, 4년, 2년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실업자들이 직업을 찾고 일정한 수입이 생길 때까지 정부와 사회가 도와준다는 기본 정책은 이어지고 있다. - 70쪽

덴마크 사회의 직업안정성은 직장인들을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눅 들지 않게 만들고, 이것은 다시 도전 정신의 확대로 이어진다. 헤넬리오위츠는 이러한 ‘선순환 효과’를 주목했다.
"덴마크 직장인들은 방어적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 직장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능력과 실력을 키워서 더 좋은 곳을 찾아야겠다고 공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는 당연히 경영자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사원들의 대우를 개선해서 떠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교. 그러니 직장과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선순환 효과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 78쪽

신뢰는 연속성에서 나온다. 진보에서 보수로,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자-경영자-정부의 ‘황금 삼각형’, 즉 신뢰의 체인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덴마크의 현대사는 진보파인 사회민주당이 주로 집권했지만 1968~1971년, 1982~1985년 등 드문드문 보수파가 권력을 잡았으며 특히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연속 두 차례 보수정당 연합이 집권했다. 이때 실업보조금 지급 기간이 단축되고 실업자의 취업 노력 강제가 더 엄격해지긴 했지만 실업안전망 자체에 대한 기본 정책은 유지되었다.
왜 그랬을까? 실업안전망으로 대변되는 사회복지는 덴마크 사회에서 정책이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그것은 탄탄한 문화가 된다. 그만큼 신뢰가 견고해진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와 신뢰는 여와 야를 초월한다. 만약 이것을 깨려고 드는 당이 있다면 선거에서 패배를 예약하는 셈이다. - 82쪽

신뢰는 현실적 이득을 체험하면서 생긴다. 덴마크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높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면 ‘황금 삼각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덴마크 국민들의 조세 및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은 2011년 기준 47.7퍼센트로 OECD 평균 34.1퍼센트보다 높고 우리날 25.9퍼센트의 두 배에 가깝다. 월급을 타면 절반은 세금으로 낸다는 뜻이다. 이 세금으로 덴마크 정부는 실업보조금 등 사회안전망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노동시장에서 유연안전성이란 말은 성립되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덴마크 국민들은 왜 월급의 절반가량을 기꺼이 세금으로 낼까? 실업하면 실업보조금을 받고 대학까지 공짜로 다니고 병원비가 평생 무료이기 때문이다. 내가 낸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증세에 저항감이 높은 이유는 ‘세금이 준 혜택’을 국민들이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명박 정부처럼 22조 원이나 되는 세금을 멀쩡한 강을 죽이는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 세금이 일부 대기업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83, 84쪽

"덴마크인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평등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등이 행복의 모든 요소들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서로 평등하면 특별히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해서 불행에 빠지는 일이 없잖아요. 남보다 잘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죠. 여기서는 의사나 청소부나 큰 차이가 없어요. 서로 어울려 등산과 스포츠를 함께 즐기고 비슷한 삶을 살아요. 의사를 그냥 친구처럼 이름으로 부르죠. 심지어 경찰관이나 공무원을 부를 때도 이름을 불러요." - 96쪽

덴마크의 협동조합은 출발부터 철저히 민간 주도로 이뤄졌다. 정부에서는 어떤 관여도 하지 않았다. 초창기 낙농 협동조합이 한창 발전할 때 정부에서는 왕립 농업대학이나 농업연구소를 통해 관련 기술을 간접적으로 지원했을 뿐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덴마크엔 협동조합법이 없다.
협동조합의 천국에 협동조합법이 없다니, 처음에는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거듭 확인했는데 정말 없었다. 조합원들끼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총회에서 만든 정관만으로도 모든 일을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으니 굳이 국가가 나서서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샤를로테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이런 사실에 당황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1920년대에 일본에서 덴마크 협동조합을 배우자는 붐이 일었다는데, 이때 시찰단으로 덴마크에 파견된 한 공무원도 여기저기 아무리 뒤져봐도 협동조합법을 찾지 못해 난감해했다고 한다. - 120쪽

덴마크 사회는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고 빈부격차도 크지 않은데 왜 스반홀름 사람들은 이런 특별한 공동체에서 살아갈까? 이곳에 오면서 품었던 핵심 질문에 대해 린드블래드는 미국 사회와의 비교를 예로 들었다.
"과연 미국에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건강보험, 실업보조금 등 사회복지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니 실패하면 타격이 크죠. 그런데 덴마크는 병원비가 평생 무료고 교육비도 대학까지 무료고 실업보조금도 2년 이상 나올 정도로 여러 기본 복지 제도가 잘되어 있잖아요. 실험을 하다 실패해도 괜찮은 거죠."
스반홀름 창립 멤버 레고르가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점 때문에 나도 대학 졸업 후에 바로 이 길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실패해도 위험부담이 없으니까요."
사회적 안정이 창의적 도전을 가능케 한다는 말이다. 궁핍, 척박, 고난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만들어낸 것과는 ‘삶의 질’이 달랐다. - 135, 136쪽

"덴마크의 전통적인 교육 방법은 기본적으로 아이들끼리 경쟁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8학년부터 시험을 보지만 등수를 매기지는 않습니다. 성적이 좋다고 상을 주지도 않아요. 물론 학생들끼리는 서로 점수를 알 수 있으니까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를 압니다. 그러나 담임교사나 학교가 공부 잘하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우거나 특별히 대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경쟁은 일어나지 않죠."
덴마크에서는 성적 우수상이 아예 없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상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교사의 애정이 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뉘어 모든 아이가 저마다의 장점을 칭찬받을 수 있다. - 155, 156쪽

신기한 것은 이렇게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운영되는데도 자유학교의 예산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점이다. 학교 운영비의 75퍼센트를 정부가 지원하고 실제 수업료의 25퍼센트만 학부모가 부담하는데, 학부모당 한 달에 우리 돈으로 20만 원 정도다. 자유학교뿐 아니라 덴마크의 모든 사립학교가 동일한 국고 지원을 받는다. 정부가 자유학교와 사립학교에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를 아우켄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헌법에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학생들은 꼭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자유로운 교육철학과 방법에 의해 배워도 됩니다. 이러한 정신은 그룬트비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86쪽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립학교가 아니더라도 ‘깨어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에 대한 지원 역시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에 학교 운영비의 75퍼센트를 국가가 부담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자유학교와 사립학교는 학생 선발권, 교사 선발권, 교과 편성권 등에서 자유를 누리면서도 국가로부터 학교 운영비를 지원받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186쪽

"덴마크에서는 모든 학교의 등록금이 무료에요. 대학도 마찬가지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정부에서 생활비를 대주니까 아르바이트 부담도 없고요. 독립해서 사는 대학생의 경우 매달 약 6000크로네(약 120만 원)씩 나오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이 금액의 반절 정도 나오고요."
비싼 대학 등록금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한국에서는 얼마 전부터 반값등록금이 이슈다. 그런데 덴마크에서는 등록금이 아예 무료고, 대학생들에게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의 나라들도 등록금이 없거나 매우 낮지만 생활비까지 지원하진 않는데 덴마크는 학생 복지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것이다. - 209쪽

왜 이렇게까지 할까?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가난한 학생도 돈 걱정 없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 기회의 균등이 완벽하게 보장된다. 교육을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시민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여기 드는 비용은 모두 기성세대가 내는 세금에서 충당된다. 어른들이 많게는 월급의 절반이 넘는 세금을 내기 때문에 이런 대학생 복지가 가능한 것이다. 덴마크의 성인들에게 불만이 없는지 물어보면 늘 한결같은 답이 돌아온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돈 한 푼 내지 않고 생활비까지 받았다. 그런 혜택을 누렸으니 이제 우리 후배들에게도 같은 혜택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 복지가 대를 이어 문화로 정착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209, 210쪽

"행복은 ‘have to(~해야 한다)’에서 나오지 않아요. ‘like to(~를 좋아하다)’에서 나오죠. 의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는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개개인이 자유롭고 동시에 서로 화합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교육비 무료, 의료비 무료 등 기본 사회복지가 되어 있으니까 남의 눈치,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죠. 우리는 부모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요. 내가 뭘 할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죠. 나 자신에게만 물으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도다른 이유는 서로 화합을 잘하기 때문이에요. 그룬트비 정신을 지닌 이 학교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매우 중시합니다. 이런 훈련이 돼 있기에 우리 덴마크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싸우지 않고 토론을 합니다. 그래서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아내죠." - 225, 226쪽

덴마크를 새로운 나라로 만든 농민학교(자유학교) 운동, 협동조합 운동, 국토 개간 운동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시민의 주체적 참여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국가나 어느 정파나 일부 지식인이 주도하지 않았다. 운동의 과정에서 ‘깨어 있는 농민’들이 탄생했고 세 가지 운동이 서로 어울려 좋은 화음을 냈으며 하나의 운동은 다른 운동을 더 발전시키는 시너지를 냈다. 학교에서 눈을 뜬 농민들은 협동조합과 국토 개간 사업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황무지를 농토로 일구는 과정에서 농민들은 땀을 흘리며 땅만 가는 것이 아니라 연대의 마음도 함께 갈았다.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농토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국토 개간과 협동조합에 참여하다 지치거나 실패하면 다시 농민학교에서 충전하며 새 길을 모색했다. - 259쪽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덴마크를 돌아보며 참 부러웠다. 새로운 나라 만들기가 농촌과 농민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말이다. 오늘날의 덴마크가 신뢰와 연대 속에 유지되고 있음은 바로 그 농촌과 농민의 건강함이 전 사회로 전이되고 있음을 말한다. 현재 덴마크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제조업이 24퍼센트, 서비스업이 70퍼센트다. 덴마크는 낙농 선진국이지만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나 농촌의 공동체 문화, 농민들의 근면과 신뢰의 정신은 현대 덴마크 사회에 깃들어 있다. - 260, 261쪽

다른 한편으로 농촌의 아들로서 부끄러웠다. 우리 농촌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청년들은 죽어가는 농촌을 뒤로 하고 서둘러 도시로 떠났다.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더니 초등학생이 사라지고, 중고등학생이 사라졌다.
서울로 간 그 많은 농촌 청년들은 어떤 마음을 품었던가? 나도 그랬지만 고향을 떠나는 순간부터 농촌의 앞날에 대한 걱정은 깨끗이 접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기억을 지워버리면서 ‘우리’까지 없애버렸다. 나 한 명의 출세로 우리 한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농촌사회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지 않았다. - 261쪽

덴마크에서는 우파 정당마저 사회적 연대에 바탕을 두고 탄생했다. 벤스트레의 중심에는 농민이 있었고 그들은 그룬트비 학교의 학생이었으며 협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체화한 깨어 있는 시민이었다. 출발선부터 그들은 대지주 등의 기존 특권 세력에 저항하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지금은 중도우파의 노선을 걷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와 정신이 살아 있기에 ‘사회적 연대’를 철학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복지 정책의 초당적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벤스트레는 당시의 시대정신과 맞았기 때문에 1901년 처음 집권을 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민당을 만들자 벤스트레는 그들에게 좌파의 자리를 내주고 상대적으로 중도우파가 되었다. - 274쪽

벤스트레는 1924년부터 사민당에 집권당 자리를 내준 이후 20세기의 대부분을 야당으로 보냈으며 가끔씩 집권을 했다. 그러나 야당일 때나 집권당일 때나 사민당이 주도한 사회복지 정책의 필요성과 핵심 정책에는 뜻을 같이 했다. 특히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연속 2회 집권했을 때도 사민당의 사회복지 정책을 보수적으로 다소 ‘개혁’했을 뿐 기본 틀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이런 역사가 있기에 덴마크 우파는 못 가진 자, 덜 가진 자를 향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덴마크는 지구 상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 27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 치고는' 필기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교보문고에 가면 꼭 핫트랙스에 들러 새로운 연필이나 펜을 조금씩 사 모으곤 한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옆에 앉은 친구의 낯선 연필이 있으면 내 것 두 개를 주고서라도 바꾸어 써보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는 증상이 훨씬 더 심해져서 교과서에 싸인펜으로 표시를 할 때 빨간펜으로 밑줄 긋고 파란펜으로 설명을 달고 형광펜으로 키워드를 칠하고 초록펜으로 선생님이 강조한 부분 동그라미를 쳤었다. 혹시라도 잘못 표기하면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했느냐는 별개로) 아무튼 문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은 매력적인 제목과 표지의 책을 만났다.


아무래도 필기구의 연대기를 다룬 책이라서 그런지, 사실과 인물,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풍문에 의해 고착화된 이야기에 대해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대목이 꽤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보험설계사인 워터맨의 만년필에서 잉크가 새서 바로 고객과의 계약을 못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등 유명인들이 아꼈다던 노트가 사실은 (진짜) 몰스킨이 아니었다는 이야기, 또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블랙윙 연필이 원래의 블랙윙이 아니라는 이야기 등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사실을 파해쳐 그 진위를 밝히는 저자의 노력은 '연대기' 저술자로서 정확한 사실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무척이나 대단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이런 이야기들은 '낭만적인' 스토리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난 아직도 내 만년필을 보며 계약을 따내지 못해 망연자실한 워터맨이 만년필을 바라보며 '절대로 잉크가 새지 않는 만년필을 만들겠어'라고 다짐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만년필 촉, 볼펜의 볼, 연필의 흑연, 스테이플러 심과 같이 내가 소비자이자 사용자로서는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필기구에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고민들이 많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책의 중반까지 서술된 내가 알고 있는 워터맨 만년필이나 빅 볼펜, 스태들러와 파버카스텔 연필, 블랙윙 602, 더웬트 연필깍지 같은 것들은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는데, 나머지 알지 못하는 필기구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기는 품목들(지우개, 스카치테이프, 수정테이프, 클립, 스테이플러)의 설명은 다소 지루한 면도 있었다. 이런 나의 편향된 관심 영역에 상관없이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최대로 풀어놓았다. 이 책을 단순히 개인의 에세이를 넘어선 문구에 대한 연대기라 칭할만한 이유이다. 중반 이후 부분은 훑어 넘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여기에 나오는 문구들을 다 알고 있다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인데, 나도 내가 사용한 문구의 일대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초등학교때 사용하던 캐릭터가 그려진 문화 연필이나 점보 지우개,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던 제도 샤프, 중학생 때 사용하던 모나미 볼펜, 플러스펜, 파이롯트 볼펜, 톰바우 연필, 펜텔 젤러펜, 대학생이 되어 쓰게 된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만년필, 파이롯트 하이텍크 씨, 펜텔 0.3mm 샤프, 사쿠라 겔리롤, BIC 볼펜, 최근 몇 년간 쓰기 시작했던 라미 사파리 만년필, 오로라 만년필, 파버카스텔과 스테들러 연필, 십년이 넘도록 내 책상 한 귀퉁이를 지켜주고 있는 하이샤파 기차모양 연필깎이 까지... 시간 여유가 있는 날, 어지러운 책상 서랍을 열어서 심이 부러진 채 굴러다니거나 어느새 잉크가 말라버린 펜들을 한번씩 정리하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둘 만년필이 등장한 것은 1884년의 일이었다. 그것은 루이스 에든스 워터맨(Lewis Edson Waterman)이 디자인한 ‘아이디얼(ideal)` 만년필이었다. 1837년 뉴욕에서 태어난 워터맨은 아주 기초적인 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교사, 도서 영업상원, 보험 영업사원 등 여러 작업을 거쳤다. 그가 고성능 만년필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마지막 직업인 보험 영업사원을 하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고객과 대형 계약을 성사시키고 막 계약서에 서명하려는데 펜에서 잉크가 새는 바람에 중요한 서류에 잉크 얼룩이 크게 번져버렸다. 그가 새 계약서를 준비하는 동안 고객은 가버리고 말았다. 워터맨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귀에 솔깃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거의 전부가 거짓말이다. 빈티지펜스(Vintage Pens)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이비드 니시무라(David Nishimura)는 워터맨 펜 회사(Waterman Pen Company)의 홍보자료를 연구하여 (워터맨이 죽고 20년 뒤인) 1921년 이전에는 잉크 얼룩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50, 51쪽

지난 1960년대의 우주 경쟁 시대에 나사(NASA)는 큰 문제에 봉착했다. 우주인들은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도 잘 쓰이는 펜이 있어야 했다. 나사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150만 달러를 들여 우주 펜을 개발했다.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펜은 시장에서 인기를 약간 누렸다.
러시아인들도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그래서 그들은 연필을 썼다.

이 이야기는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최고의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흔히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가 1999년 자신의 저서 <뉴 밀레니엄을 위한 새로운 사고(New Thinking for the New Millennium)>에 이 이야기를 수록한 이유도 당연히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 74, 75쪽

내 책상 뒤의 가로 8인치, 세로 5인치인 오렌지와 크림색의 색인 카드 상자(이베이에서 산 벨로스 85 제품) 곁에는 작은 검은색 공책 세 권이 쌓여 있다. 이 공책에는 아이디어나 글귀 같은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끼적여두었다. 아마 다시 읽을 일은 절대로 없을 텐데도 보관하고 있다(다시 읽는다고 해도 무슨 말을 썼는지 알아보지도 못하겠지만). 그 공책은 바로 몰스킨(Moleskine)이다. 그렇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책은 몰스킨 외에 거의 없다. 작고 검은 몰스킨은 거의 종교적인 열광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 하면 허세의 상징으로 조롱받기도 한다. 전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똑같이 생긴 유명 커피숍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신이 독창적인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허세적 소도구라는 것이다. 작고 검은 몰스킨이나 희고 납작한 맥북 같은 것들. - 89쪽

몰스킨 공책 안쪽에는 공책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는 작은 안내서가 있다. 몰스킨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Bruce Chatwin) 같은 유명 인사가 사용한 전설적인 공책의 상속자이자 계승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속자이자 계승자`라는 문구다. 그런데 반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채트윈이 사용한 공책은 사실 몰스킨 공책이 아니었다. 그저 몰스킨 공책과 비슷한 종류의 공책이었을 뿐이다. - 89, 90쪽

리히텐베르크의 문제 조건을 충족시키는 반쯤 마술적인 비율은 1:(루트)2(대략 1:1.41)다. 이 비율로 만든 종이 한 장을 절반으로 자르면 원래 종이와 똑같은 비율의 종이 두장이 생긴다. 이것이 현대의 A시리즈(A3 용지를 반으로 자르면 A4 용지 두 장이 생긴다)에 사용되는 원리지만 그 기원은 적어도 1000년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볼로냐 점토판에 그려진 네 종류의 종이 규격 가운데 둘은 1:1.42의 비율로서 거의 정확하게 이 비율을 따른다). - 112쪽

리걸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이 레터 판보다 큰 8.5X14인치 사이즈는 흔히 법조계와 결부되곤 한다. 1994년 메사추세츠 출신의 토머스 홀리(Thomas Holley)라는 제지 노동자가 종잇조각을 한데 묶어 값싼 필기장을 만들었다. 200년 전 네덜란드 제지업자들처럼 체격이 작지 않던 홀리는 종이 크기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으므로 각 종이를 3인치씩 더 길게 만들고 미국 패드 앤드 페이퍼 회사(American Pad & Paper Company, AMPAD)를 세워 그 필기장을 팔았다. 문구류 세일즈맨인 윌리엄 보크밀러(William Bockmiller)가 그에게 연락하여 특별 주문을 했다. 보크밀러의 고객이던 어느 판사가 이 필기장을 사서 직접 줄을 그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판사가 원하는 것은 줄이 쳐지고 여백이 있어서 주석을 달 수 있는 필기장이었다. 홀리는 줄이 쳐진 필기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리걸 패드가 태어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리걸 패드는 항상 노란색 종이로 만들어졌다. 왜 그런지 이유는 불분명하다. 한 가지 통설은 원래 패드를 여러 제지 공장에서 남은 종이로 만들다 보니 통일된 외양을 갖추기 위해 노란색으로 염색했다는 것이다. - 119, 120쪽

뉘른베르크 외곽의 작은 마을인 슈타인에서 카스파어 파버(Kaspar Faber)라는 금고 제작자가 1761년에 연필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버는 원래 뉘른베르크에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그 도시의 규제 때문에 슈타인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스테들러의 뿌리가 시간상으로는 75년가량 더 앞섰지만 두 회사 모두 자기들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주장했다. 둘 사이의 분쟁은 계속 이어지다가 1990년대 법정이 공식적으로 파버-카스텔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하여 2010년 스테들러가 175주년을 축하할 때 파버-카스텔은 250주년 축하 계획을 짜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스테들러가 연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카스파어 파버보다 거의 100년은 앞섰는데도 말이다. - 133, 134쪽

지금도 쓰이는 H와 B 표시를 도입한 것은 런던의 연필 회사인 브루크먼(Brookman)으로 여겨진다(H는 단단한(hard) 연필, B는 더 검은(blacker), 혹은 더 부드러운 연필을 가리킨다). 브루크먼은 연필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H의 수를 늘렸다. 제조 공정이 더 복잡해지고 더 많은 등급이 만들어지자 H와 B라는 글자와 숫자를 함께 쓰는 편이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HHHHHHHH와 HHHHHHHHH를 구별하기 보다는 8H와 9H를 구별하기가 더 쉽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연필은 H와 B의 세계 중간 지점에 있는 HB로서 균등함과 조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모두 HB처럼 되기를 소방해야 한다. - 134쪽

딕슨 타이콘데로가 사는 그냥 연필만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그 회사는 "사람들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 생각, 사실, 아이디어, 꿈을 가질 능력을 부여하며, 그들 자신을 간단하게 연장해주는 도구를 사용하여 그런 것을 보존해준다". (딕슨 타이콘데로가에 의하면) 이 연필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연필"로서 값이 싸고 품질은 좋으므로 금방 미국 전역의 사무실과 교실 어디에나 익숙하게 보이는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 연필은 인기는 그처럼 좋았지만 부정적인 면이 하나 있었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Star Wars Episode 1: The Phantom Menace)>의 시나리오 초고를 쓸 때 사용한 필기구가 아마 딕슨 타이콘데로가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 연필은 자 자 빙크스(Jar Jar Binks)를 만들어낸 책임을 적어도 일부나마 져야 한다. - 139, 140쪽

딕슨 타이콘데로가를 사용한 유명 인사는 루카스 외에도 더 있다. 로알드 달(Roald Dahl)도 이 연필을 애호하여 매일 아침 그날 사용할 여섯 자루를 뾰족하게 깎은 다음에야 일을 시작하곤 했다. 달이 딕슨타이콘데로가를 쓰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후인 1946년의 일이었다. 그는 원래 사용하던 영국제 연필의 품질에 불만스러워졌다. 영국제 연필은 "마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목탄 조각으로 글씨를 쓰는 것 같았다".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기구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들이 연필의 품질에 예민하게 구는 것도 놀랍지 않다. "내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다. 매일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연필을 쓰는 바람에 생긴 것이다."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은 썼다. "알다시피 나는 매일 여섯 시간씩은 손에 연필을 쥐고 있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다. 정말로 난 조건화된 손을 가진 조건화된 동물이다." - 140쪽

스타인벡은 마음에 드는 연필을 찾아내면 한꺼번에 수십 자루씩 사두곤 했다. 그가 써본 것 중에는 브레이스델 캘큘레이터(Blaisdell Calculator),에버하드 파버 몽골(Eberhard Faber Mongol) 408("아주 검고 연필심이 단단해")도 있었지만 스타인벡이 제일 좋아한 품종은 블랙윙(Blackwing) 602였다.

새 연필을 찾아냈어. 지금껏 써본 것 중에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 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아. 아마 이걸 항상 쓸 것 같아. 이름은 블랙윙인데, 정말로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까.

블랙윙 602는 에버하드 파버가 1934년에 출시한 제품이었다. 특유의 부드러운 심은 흑연에 왁스를 더하고 점토를 섞은 결과물이었다. 그 연필의 광고문에 따르면 그 덕분에 손의 힘을 절반만 주고도 글쓰기 속도는 두 배로 높일 수 있다고 했다. - 144쪽

이베이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에버하드 파버의 원조 제품을 구매하는 블랙윙 열광자가 저지르는 아이러니는 그들이 연필 한 자루를 사용할 때마다 그들이 사랑하는 바로 그 대상을 소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연필깎이도 그 연필을 깎아낼 때마다 그 생명은 줄어든다. `블랙애더 시즌2`에서 에드먼드가 엘리자베스 1세에게 설명하듯이 "부인, 당신 없는 삶은 부러진 연필과도 같습니다. 무의미해요". 연필깎이는 문자 그대로 연필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것을 죽이기도 한다. 내가 알기로는 결혼도 그렇다. - 147, 148쪽

3M이 일련의 난관(강옥이 아니었던 강옥, 에드워드 애치슨이 개발한 인공 연마제, 기름 먹은 석류석)을 창의적으로 극복하고 광업 회사보다는 접착제 회사로 성공을 거둔 과정을 살펴본다면 이 회사가 강력한 혁신의 기업문화를 가지게 된 것이 의외가 아니다. 딕 두르가 원래는 사포를 만들어야 하는데도 테이프를 개발할 수 있었고, 실버가 (아직) 쓸모도 없는 풀에 그처럼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화 덕분이었다. 3M에는 `15퍼센트 규칙`이 있었다. 이는 직원들의 업무 이외에 다른 기획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쏟을 수 있게 하는 규칙이었다. 그들은 이런 창의적인 자유 덕분에 마감 시간에 쫓기며 과녁을 맞히는 데만 몰두했더라면 찾아내지 못했을 발견을 해냈고 서로 다른 부서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협업을 이룰 수 있었다. "3M에서 우리는 모두 아이디어의 저장고였어요. 어떤 아이디어든 그냥 내버리는 것이 없었어요. 누가 그걸 어디서 필요로 할지 모르니까요." 프라이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 301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aesar 2016-03-28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미 사파리 챠콜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로트링600을 쓰고 있는데, 책과 더불어 문구, 필기구도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워요…^^;

붉은눈 2016-03-28 16:43   좋아요 1 | URL
그러시군요. 저도 중저가 만년필의 가성비라는 매력에 빠져 사파리를 2개 구입했습니다. 초반에는 닙까지 블랙인 챠콜은 구입하기 어려워서 포기했었는데요... ^^ 참, 말씀을 듣고 보니 로트링도 있군요.
 
다윈의 식탁 - 논쟁으로 맛보는 현대 진화론의 진수 다윈 삼부작 2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 거대한 거짓말 혹은 픽션에 빠져버렸다. 


<다윈의 서재>를 읽은 후 연달아 읽게 된 <다윈의 식탁>에서 저자는 사실과도 같은 설정을 독자들에게 펼쳐보이며, 다윈주의/진화론에 대한 거대한 콘서트로 독재들을 초대한다. <다윈의 서재>에서는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문객들이 그의 서재를 볼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 끝에 데닛 교수가 다윈이 멘델의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을 밝혔다는 상황을 설정한다. 이 때문에 그동안 다윈의 유전학이 조야했다는 비난의 원인을 밝혀냈고, 이것을 계기로 '21세기에 다윈이 살아 있다면 그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꽂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예상 저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다윈의 식탁>에서는 윌리엄 해밀턴의 장례식에 진화론의 대가들이 총집합한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워, 진화론을 둘러싼 그간의 논쟁들을 도킨스와 굴드의 팀으로 나누어 각각의 견해 차를 듣는다는 설정이다. 거듭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설정'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게 된 독자들은 사실인 줄만 알았던 그 치밀한 '설정'에 배신감을 느끼기 이전에 진화론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을 살펴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나와 같이 진화론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윈의 서재>에서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하여, '통섭'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올리버 색스, '침팬치의 대모' 제인 구달 등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학자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이론을 대담 형식으로 설명하였는데, <다윈의 식탁>에서는 강간의 적응성, 이기적 유전자와 협동, 진화의 속도, 진화와 진보, 진화와 종교 등에 관하여 다양한 학자들의 생각과 이론을 접목시킨다. 이 책에서는 각 팀을 꾸리고 매회 팀의 멤버도 변경을 하는데, 이런 설정이 막상 쉬워보이지만 각각의 주제에 맞게 학자들을 배치하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빙의?) 주장을 제기하고 토론을 진행하는 것은, 각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였다면 만들 수 없는 설정이며, 쓸 수 없는 글이다.  


책을 읽다보면, 대중서이기 때문에 쉬운 표현으로 쓰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물론 이에 대하여 '깊이가 없다'는 등의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대중서는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덜 느끼도록 쉽게 쓰여져야 한다는 것에 찬성하는 나로서는 그런 비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 책에 빠져들었다. 일반인들이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와 같은 대가들의 논문을 접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는 이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학자들의 책을 읽어보면 될 일이다). 그들의 이론과 주장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여 이렇게 쉽게 풀어 표현한 것을 보면 저자인 장대익 교수의 내공에 대해 '깊이'를 운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앞으로는 어디로 갈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은 단순히 철학적인 사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변모해왔고 생명의 연결고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아는 것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답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다윈의 정원>이라는 미발간 책까지 3부작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과연 저자가 <다윈의 정원>에서는 어떠한 거짓말(설정)로 우리를 진화론의 논의에 초대할지 자못 기대된다.

자연선택은 복잡하고 정교한 형질들이 어떻게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생겨날 수 있는가에 대한 유일한 설명방식입니다. 가장 복잡한 형질이라고들 하는 인간의 눈이 자연선택으로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도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연선택의 이러한 강력한 힘을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것이 누적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선택은 정교함을 단 한번에 만드는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금고털이범 같이 일을 하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여러분이 만약 금고털이범이라고 상상해보세요. 지금 여러분 앞에 비밀번호 숫자 열 개를 순서대로 다 맞춰야 열 수 있는 금고가 있습니다. 어떻게 여시겠습니까? 제 아무리 금고털이의 신이라 해도 단 한 번에 그 숫자를 다 맞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마도 청진기를 다이얼 근처에 대고 일의 자리부터 돌리다가 덜커덕 하면 그 번호를 그대로 둔 채 다음 자리로 이동하는 식으로 하겠지요. 이런 과정을 열 번을 거쳐야 금고가 열립니다. 금고털이범은 이런 식으로 `누적적인 과정`을 거치며 `불가능해 보이는` 금고 열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 32쪽

자연에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형질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단번에 생겨날 수 있겠느냐"며 진화론을 의심하고 창조론으로 쉽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금고털이범의 예에서처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그렇게 단번에 일어나는 과정이 아닙니다. 게다가 복잡한 형질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이 아직 없다는 이유로 창조론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회피`이지, 더 좋은 대안적 설명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론자들은 "자연계는 너무 정교해서 자연적 원인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 자신들의 이론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32, 33쪽

어떤 능력이나 행동의 적응성 여부는 옳고 그름의 여부와 별개라는 것. 같은 적응이라도 고도의 언어 능력은 좋지만 강간은 나쁜 행위이다. 자연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선택하지 않는다. 자연은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처럼 여성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성 편도 아니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 - 94쪽

(도킨스) 일벌의 불임은 벌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일벌 자체를 위한 것도 아니며, 오직 유전자의 이득을 위한 행동인 것이지요. 자연계의 존재 방식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설명이죠. 이렇게 뒤집어 보면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이며 운반자(vehicle)일 뿐입니다. 주체가 인간 집단이나 개체에서 유전자로 바뀌었지요. 닭이 알을 낳는 게 아니라 알이 닭을 낳는다는 식이지요. -107쪽

(도킨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다수준 모형이 설명하는 모든 현상은 이기적 유전자 이론도 설명합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거든요. 물론 차이는 있죠. 어떤 현상에슨 `친족/비친족`의 분해를 통해 설명을 하는 것이 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되지만, 다른 현상에는 `집단 내/집단 간` 분해를 해야 더 쉬운 이해가 가능합니다. - 127쪽

(도킨스) 저는 이런 인간 중심주의적 시각이 탈색된 진보 개념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진보에 대한 적응주의적(adaptationist) 견해인데, 진보를 복잡성이나 지능 등의 증가로 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의 성공적 적응에 기여하는 특성들이 축적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예컨대 여러 계통에서 발생한 눈의 진화는 바로 진보적 진화 과정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사람의 눈이든 거미의 겹눈이든, 비록 형태는 다를지라도 명암과 색조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는 여러 계통에서 진화했죠. 그런데 이런 식의 진화가 가능하려면 각 계통들에서 보유한 시각 능력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조건이 돼야 하죠. 물론 그렇게 되려면 환경이 적어도 상당 기간 동안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고요. 만일 영장류 계통에서 갑자기 작은 두뇌 크기가 유리한 상황으로 환경이 바뀌었다면, 그런 환경 변화 속에서 진화는 진보적으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 219쪽

(도킨스) 제가 셋째 날, 이기적 유전자에서 어떻게 이타적인 개체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면서 인간이 유전자의 운반자(vehicle)라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유전자뿐 아니라 밈도 운반하고 전달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때로는 유전자의 `명령`과 밈의 `명령`이 상충하기도 합니다. 가령 독신(獨身)이나 만혼(晩婚)의 예를 생각해봅시다. 현대 사화에서 이 밈들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요. 주로 교육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흔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 밈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유전적 적합도를 생각해봅시다. 분명히 적합도는 낮아집니다. 그럼에도 밈들은 계속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되지요.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밈이 마치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이기적 유전자> 초판의 맨 마지막 문장을, "우리만이 이기적 유전자의 독재에 항거할 수 있다"고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242쪽

(굴드) 저는 전통적인 다윈주의가 세 가지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봅니다. 하나는 자연선택이 다양한 조직의 수준에서 작동하기보다는 주로 개체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선택이 진화적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이며, 나머지 하나는 개체군 수준에서 벌어지는 점진적 변화를 단순히 확장하기만 하면 생명의 전 역사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20세기 초반에 헤게모니를 쥐게 된 `근대적 종합`이 일어난 이후에 다윈주의의 이 세 가지 토대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죠 (...)
하지만 저는 자연선택이 유전자 수준에서만 작용하고 진화적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그런 변화가 누적되어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진화해왔다는 견해는 명백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견해는 한마디로 `울트라슈퍼 다윈주의`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 253, 254쪽

(굴드) 저는 창조론자들이 제 `NOMA` 원리를 제발 좀 이해하고 수용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 원리에 대해 뭐라고 했습니까? 종교는 가치와 의미만을 얘기할 뿐 객관적인 실재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창조론자들은 정확히 이 원리를 어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서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것 마냥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 어디에서 창조에 대한 `어떻게(how)`를 얘기한단 말입니까? 창세기는 인류 탄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아시아 지역의 신화일 뿐입니다. 창조론자들과 괜히 과학적인 주제들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 25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 - 평생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48가지 공통점
도쓰카 다카마사 지음, 김대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계발서는 대체적으로 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이 뻔한 내용을 어떻게 가공하여 전달가능한 메시지로 만드는가는 저자의 이미지나 역량에 달려 있다. 이미지에 집중하는 저자는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내세운다. 일반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했을 법한 실제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을 그만의 독창적인 메시지로 변환시키려 한다. 이 책이 그러하다. 저자가 갖고 있는 골드만 삭스, 하버드 MBA, 맥킨지와 같은 화려한 경력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기대하게 된다. 제목에 '기본'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라는 제목을 보면, 두 가지 키워드를 만나게 된다.

 

첫째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다. 이것만 보면 저자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인터뷰하거나 아니면 그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만 같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버드 MBA의 잔 리브킨 교수나 맥킨지의 (무명의) 선배가 등장할 뿐이다. 즉 이것은 저자 개인이 골드만 삭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맥킨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일화일 뿐이지, 명실상부한 세계의 인재들을 등장시킨 것은 아니다. 책 제목이 과장되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기본'이다. "당신의 기본은 무엇입니까?"라는 서문을 통하여 저자는 독자가 중요시하고 있는 '기본'에 대해 살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본'을 설파하는데 이미 알고 있으며 실천하고 있는 것과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렵다는 두 요소들을 포함한 '기본'에 대해 48가지를 열거해놓고 있다. 열거된 48가지는, (심하게 말하면) 목차만 읽어보아도 충분한 것들이다. 소제목 이하 본문을 읽으면 뭔가 특별한 설명이나 해설이 있을 것 같지만, 저자의 글쓰기는 일단 주장을 던져 놓고 다소 중언부언을 하는 느낌이다. 그가 중요시하는 화법인 '3가지 장점'을 억지로 붙여가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맥킨지의 컨설턴트들이 초안을 수작업으로 한 이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1. 생각하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다, 2. 수정이 빨라진다, 3. 본질에 초점을 맞춘다, 라는 장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컴퓨터 작업으로는 할 수 없는 수작업의 고유한 장점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내 입장에서는 저자의 '기본'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 투자"하라면서, "이해관계를 초월한 진정한 인간관계를 믿는다"라는 추상적인 요청을 하는 것이나 "선배, 상사와의 술자리를 피하지 않는다"라는 해묵은 주장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노라면 실망스럽다. 게다가 머리가 가장 맑은 아침 시간대에는 메일 답장과 같은 단순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메일의 회신 속도가 당신에 대해 말해 준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기도 한다(오전 8시에 메일 답장을 완료해서 일을 마쳤다는 에피소드이다).

 

(48개나 되는 '기본'을 열거하느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글의 전개도 다소 무리가 있다. 제1장(사람과의 관계에 투자한다)과 제2장(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가꾸는 일에 힘쓴다)의 내용들은 비록 뻔한 소리일지언정 그가 말하는 '기본'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만, 제3장(시간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업무술)부터 논조가 약간 바뀌더니 제4장에서는 "성과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 노하우", 제5장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료로 회의에 기여한다"와 같이 무엇에 대한 기본인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3장 이후에는 갑자기 맥킨지식 일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느낌이다. 좋은 업무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을 '기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맥킨지식 업무 방법이 모든 업무의 기본이라는 것인가?

 

결론은 이 책이 제목에서 받는 기대감에 비해 그 구성이나 내용은 많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기본에 대한 느낌을 되살리고 싶다면, 이 책의 목차를 몇번쯤 조용히 되새겨 보는 것을 족하다.

맥킨지의 컨설턴트가 주문처럼 외우는 두 가지 말이 있다. 첫 번째는 "So what?(그래서, 뭐?)", 두 번째는 "Why so?(그게 왜?)"이다. 전자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 때 `다음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지?`하고 또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내게 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하늘->비->우산`의 논의이다.

1. "잔뜩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어." -> "So what?(그래서 어떻다고?)"
2. "비가 올지도 몰라." -> "So what?(그래서 어떻다고?)"
3. "우산을 갖고 나가자."

`접는 우산을 갖고 나가자`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한 번 더 "So what?"을 반복한다. 그러면 "접는 우산을 넣을 수 있는 큰 가방을 갖고 가자."라는 말이 따라온다. 맥킨지의 컨설턴트는 모든 과정에서 이렇게 "So what을 다섯 번 반복하라."라고 교육받는다.
반면에 어떤 과제에 직면했을 때는 "Why so?"가 도움이 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표면적인 부분에서부터 심층적인 부분으로 세세하게 파고 들어간다. - 85, 86쪽

맥킨지 컨설턴트들이 잘 쓰는 말버릇 중에 "포인트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가 있다. 내가 직접 맥킨지에서 일하면서 `포인트를 세 가지로 정리하는 이유`에 대해 배워 보니 이러한 말버릇이 생기는 이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맥킨지에서는 `포인트를 세 가지로 정리하는 사고 훈련`을 반복하면서 논리사고력, 시간 관리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단련시킨다. - 92쪽

시간마다 달라지는 생산성을 적극적으로 염두에 두고 스케줄을 짜면 효율성은 분명히 높아진다. 나는 다음 세 가지를 특히 염두에 두고 있다.

1. 아침 첫 한 시간은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나 아이디어 떠올리기에 사용한다.
2. 메일 처리는 절대 아침 시간에 하지 않는다. 이동 중 시간이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오후 시간대에 처리한다.
3. 그날 할 일은 전날 퇴근 전에 미리 정리하고, 아침 업무를 시작할 때는 확인만 한다.

아침에 출근해 가장 머리가 맑은 그 한 시간 동안 막혔던 일의 해결책을 찾아본다. 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시간으로 삼는다. 또는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사용해도 좋다.
모처럼의 귀중한 아침 시간대에 무심코 하기 쉬운 업무는 메일의 답장을 보내는 일이다. 혹은 그날 무슨 일을 진행해야 할지 정리하는 일이다. 머리가 가장 맑은 시간대에는 소위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단순 업무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침의 첫 업무를 시작할 때는 머리를 회전시킬 필요가 있는 일에 할당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 129, 130쪽

나는 퇴근 전에 다음 날 할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 미리 정리하고, 출근하면 우선순위의 첫 번째 일부터 처리하려고 머리와 마음의 준비를 해보았다. 놀랍게도 이 간단한 습관은 일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었다. 퇴근 전에 다음 날 할 일을 미리 정리해 놓으면 다음 날 아침에 집을 나선 순간부터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머릿속에서 되새겨 볼 수 있고 그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 133, 134쪽

맥킨지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흑백이 기본이다. 단색만으로도 충분히 클라이언트를 설득시킬 자료를 작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자료 내용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할 때 컬러로 보완하려는 시도는 매우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그 경우는 배색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의 표현,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도표의 배치가 효과적인가 등으로 판단해야 한다. - 184쪽

맥킨지의 컨설턴트는 맥킨 노트를 쓸 때 반드시 연필을 사용한다. 손쉽게 수정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표의 형태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는 방법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연필을 이용해 손쉽게 도표를 그리면서 어떤 형태의 도표가 효과적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도표의 초안을 그를 때는 반드시 맥킨 노트를 사용하고, 몇 번이고 수정해서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도표를 완성한다.
컨설턴트는 연필로 초안을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컴퓨터를 켠다. - 193쪽

하나의 차트에 하나의 메시지를 담으면서 데이터를 만든다는 발상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해서 메시지를 이끌어내느냐가 아니라 메시지를 가장 먼저 완성하고, 그다음에 메시지를 위한 데이터를 준비해야 한다.
우선 메시지를 명확하게 정하고, 그 메시지를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데이터를 찾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자료실에서 찾든, 구글에서 검색하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정보를 찾아낸다. 그리고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차트를 작성한다. - 198, 19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김정운 교수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읽고 나서이다. 책에서 그는 행복의 구체성에 대해 강력히 주장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태기 위해 언급된 책이 바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었다. 이 주장에 격하게 동감하며, 드디어 <행복의 기원>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행복이란 좋아 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김정운 교수는 '하얀 침대 시트 위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거창하거나 추상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걸 누가 몰라?', '연구의 결과가 고작 이거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순한 결론을 얻게 되는 것 외에도, 이 책을 읽으며 행복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하기까지의 과정들을 따라가는 것은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언제부턴가 '부자가 되는 것'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사람들의 목표가 바뀐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이 행복이라는 것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행복해지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이 행복의 도구로 복권당첨을 생각하듯이. 그렇다면 이것은 부자라는 단어를 행복으로 치환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 여전히 물질에 의한 만족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이것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설득한다면, 잡히지 않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즐기지도 못한 채 그렇게 큰 희생을 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알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땅 속에 묻힌 보물을 파내는데 열중하느라 눈 앞에서 팔랑 거리며 날아다니는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장 삽자루를 버리고 만원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반면 이 책의 핵심 질문은 `why`다.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또, 이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이 중요한 행복의 속성을 이해하기 전에 행복의 비결이나 기술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 역으로, 이 본질적 모습을 이해하면 행복이라는 것이 어쩌면 매우 단순한 현상임을 알게 된다. 너무 똑똑한 현대인들의 실수는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삶을 바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행복의 본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 9쪽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철학자들의 주장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모든 일상의 노력은 삶의 최종 이유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매우 비과학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 10쪽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팀 윌슨(Tim Wilson)은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 같은 낯선 존재라고 했다(Wilson, 2002).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의식은 아주 한정된 용량의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오해를 하면 인간을 그저 `생각하는 단백질 덩어리`로 착각하며 살게 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문제도 생각이라는 아주 좁은 테두리 안에서 논하게 되고, 결국 행복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게 된다. - 23쪽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도 아니고, 그 역할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의식만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항상 좌우한다고 착각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주술사의 현란한 기우제 춤 때문에 비가 온다고 믿었다. 춤은 눈에 띄지만, 비의 원인은 아니다. - 27, 28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행복을 뭔가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생사가 향하는 최종 종착지로 보았다. 이 철학적 관점이 빚어낸 행복의 모습이 2천 년간 큰 흔들림 없이 유지돼왔고, 이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행복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오랜 관점과 진화론은 정면 대립된다. 앞서 보았듯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도구다. 밀러에 의하면,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고차원의 정선적인 특성도 이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
피카소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다. 보다 진화론적인 해석은 피카소라는 한 생명체가 그의 본질적인 목적(유전자를 남기는 일)을 위해 창의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의 정신적 산물들은 사실 몸의 번성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 59, 60쪽

생명체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의 존재 이유도 벌, 선인장, 꽃게와 마찬가지로 생존이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이것을 행복과 연결시키면 당연하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 71쪽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행복감(쾌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고까지 생각한다.

지난 30년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행복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도 확고한 결론은 무엇일까? 긴 시간 행복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98쪽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 111, 113쪽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La Rouchefecould)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 116, 117쪽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유학 시절,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잇따.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123, 125쪽

최근 등장하는 행복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행복의 증상을 원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긍정성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Archontaki, Lewis & Bates, 2013).

첫째, 성격. 행복한 사람들은 월등히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성이 높았다. 둘째, 대인관계. 행복지수 상위 그룹의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사실 두 가지 특징의 공통분모는 `사회성`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저자들은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 140쪽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타인이 모든 판단 기준이 되면 내 행복마저도 왠지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행복의 본질이 뒤바뀌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왜곡된다. - 171쪽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혁명적이다.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Kenrick & Griskevicius, 2013). - 184쪽

우선,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189쪽
둘째,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인간만큼 쾌감을 다양한 곳에서 느끼는 동물이 없다. 쇼팽과 셰익스피어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190쪽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 19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6-03-13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제목을 김정운의 책에서 보았어요. 좋은책 같습니다

붉은눈 2016-03-13 20:21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책을 읽으며 좋은 책을 소개 받는 것도 소소한 기쁨인 것 같아요.

희망여행 2016-05-08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공감합니다. 그 사람에 중독되어 있는 나의 뇌에 대하여

붉은눈 2016-05-08 07:31   좋아요 0 | URL
이미 좋은 사람과의 행복에 중독 되셨나 보네요. 따로 이 책을 읽으실 필요는 없겠는데요? 계속 행복을 키워 나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