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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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먼 남의 나라의 부러운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지쳐가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최근 읽었던 <행복의 기원>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둘 사이는 그저 막연한 단어인 '행복'으로만 연결이 되어 있을 뿐이지만 서점에 들러 진열된 책들을 보며 '행복의 다른 차원'을 고민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구매했다. 


행복의 다른 차원? 

<행복의 기원>이 인간 개체이자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며 그 행복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사회적인 체제나 시스템이 어떻게 다수의 시민에게 행복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 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아니며, 왜 같은 인간인데 우리는 스스로가 살고 있는 사회를 '헬조선'이라 칭하며 절망하는 한편, 덴마크는 자타가 행복하다고 공인하는 1위의 국가가 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질문을 바꾸어 '우리는 왜 불행한가?'를 생각해면 어떨까. 

어릴 때부터 주어지는 경쟁적인 환경을 보자. 명문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개인의 특성은 모두 배제된 채 공부를 잘 하는지, 성적이 좋은지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된다. 과장해서 말하면 '수능성적'이 남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당연히 초중고 학생들에게는 무엇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됐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그나마도 힘들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점 관리에 어학 연수에 토익 성적을 관리하며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고시를 준비하며 기한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직장, 힘들게 합격한 공직, 그 어디도 안정적이지 않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산다. 내가 남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혹은 뒤쳐져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차이를 넓히거나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덴마크 사회를 방문하고 그들의 삶에 깃든 생각과 체계들을 분석하여 덴마크가 행복한 이유에 대한 6개의 핵심요소를 뽑아냈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 그것이다. 

(임의로 순서를 조금 바꾸어 설명하면) 덴마크 사람들은 직업이 무엇이든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다(평등). 따라서 공무원이나 판검사, 의사를 부러워하지도 않으며 그런 직업을 가져야 할 유인도 없다. 이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자유). 따라서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하여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심지어 고등학교 진학 전에 1년간 '인생학교'에 가서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이런 자유는 사회가 언제나 개인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안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안정은 덴마크 성인들이 월급의 50% 가까이 내는 세금을 통하여 마련되고, 신뢰는 좌파이건 우파이건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은 유지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유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거두어들인 세금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믿음과 실제 그 혜택을 받은 이들은 자신이 받은 혜택을 미래세대도 동일하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비용을 감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연대가 가능하다(이웃). 이러한 유대감은 인간이 아닌 환경에 대해서도 확장되는 듯하다. 자전거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자전거가 많고, 원자력 발전이 아닌 재생에너지를 통하여 에너지를 자급하는 나라가 덴마크다.


물론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도 처음부터 복지국가였던 것이 아니라 우리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상황이 안좋은 나라였음을 안다면 그런 간단한 핑계는 댈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이번에야 알았다. 전쟁을 통하여 독일과 노르웨이에 국토를 빼앗기고 척박한 토양에서 우리나라의 경상도 크기만 남은 이 나라는 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안으로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것을. 이를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농촌에서부터, 아래에서부터 변화의 움직임을 일구어 내기 시작한 것을. 이를 통하여 덴마크는 노동자-경영자-정부라는 골든 트라이앵글이 신뢰를 기반으로 확고히 마련되었으며, 경영의 효율을 추구하지만 개인의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였고, 경쟁없고 자유로운 교육을 통하여 학교에서 배우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상과 사례를 접하고 나니 막연한 부러움 보다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나와 같은 개인은 아무 힘도 없는 존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변화를 욕망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복의 기원>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도 행복일 수 있지만, 이 구체적 한 장면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장면을 연출하기 까지의 내 삶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인 행복을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사회가 어떻게 변하면 좋을지, 행복에 대하여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개인을 넘어선 시민/국민의 입장에서도 고민해볼 일이다.

"한 번도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나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어요. 열쇠 수리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입니까?"
덴마크에 가기 전에 만난 한국의 한 대기업 간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비로서 참 부끄럽다"라고 했다. 또다른 나의 지인은 직업이 의사인데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페테르센은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도 자신이 식당 종업원이고 아들이 열쇠 수리공이라는 사실을 떳떳이 이야기한다고 한다. 아들이 자랑스러운 덴마크 웨이터와 아들이 못마땅한 한국 의사, 누가 더 행복할까? 이것은 부자 관계의 차이가 아니라 노동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 29쪽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죠. 그게 돈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 큰아들은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해요. 큰딸은 쇼핑몰 판매원이죠. 작은딸은 병원에서 일하게 될 것 같고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선택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요. 부모의 선택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선택이어야 하니까요. 부모가 특정 직업을 강요해서 그걸 선택했는데, 나중에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밀보는 자신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세속적 가치 기준에서 자유로운 듯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문득 덴마크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장의 말이 떠올랐다. 덴마크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즐거운 일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성적이나 등수로 비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한다. 밀보와 초등학교 교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덴마크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도 통하고 있다. - 36쪽

"덴마크는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무료지만 사립학교는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으면 학비를 정부에서 대줍니다."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적으로 고액 연봉자들인 이 회사의 간부와 직원들은 월급의 50퍼센트 정도를 세금으로 내는데도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그 세금으로 덴마크가 행복사회로 자리 잡은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엑스트란올센이 말했다.
"우리가 세금을 내기 때문에 덴마크는 걱정 없는 사회가 된 겁니다. 나뿐 아니라 내 친구들이, 그리고 내가 모르는 우리의 이웃들이 평생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고 진료받으며 건강을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 50쪽

덴마크 경영자들은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 사업을 한다. 사업이 계획보다 잘 안되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그런데도 덴마크 노동자들의 직장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70퍼센트 가까이 된다. 덴마크는 어떻게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했을까?
그 비결은 유연안전성(flexicurity)이다.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결합한 이 용어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한 덴마크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기업에는 노동자의 채용과 해고에서 유연성을 보장하고,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안정된 소득과 고용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 67쪽

덴마크의 유연안전성 시스템은 이렇듯 노동자와 경영자가 통 큰 양보를 주고받았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에 이런 신뢰가 가능했던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인 ‘신뢰받는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노사 간 신뢰에 강한 접착제 역할을 한 것이다. 정부 역할의 핵심은 시장에서 일시 탈락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다시 시장으로 진입하게 하는 일이다.
정부는 실업자에게 직업을 찾을 때까지 생활 자금을 지원해준다. 현재 법적인 실업보조금 지급 기간은 2년이다. 처음 1970년대에는 기한이 없었는데 차츰 9년, 7년, 4년, 2년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실업자들이 직업을 찾고 일정한 수입이 생길 때까지 정부와 사회가 도와준다는 기본 정책은 이어지고 있다. - 70쪽

덴마크 사회의 직업안정성은 직장인들을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눅 들지 않게 만들고, 이것은 다시 도전 정신의 확대로 이어진다. 헤넬리오위츠는 이러한 ‘선순환 효과’를 주목했다.
"덴마크 직장인들은 방어적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 직장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능력과 실력을 키워서 더 좋은 곳을 찾아야겠다고 공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는 당연히 경영자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사원들의 대우를 개선해서 떠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교. 그러니 직장과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선순환 효과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 78쪽

신뢰는 연속성에서 나온다. 진보에서 보수로,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자-경영자-정부의 ‘황금 삼각형’, 즉 신뢰의 체인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덴마크의 현대사는 진보파인 사회민주당이 주로 집권했지만 1968~1971년, 1982~1985년 등 드문드문 보수파가 권력을 잡았으며 특히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연속 두 차례 보수정당 연합이 집권했다. 이때 실업보조금 지급 기간이 단축되고 실업자의 취업 노력 강제가 더 엄격해지긴 했지만 실업안전망 자체에 대한 기본 정책은 유지되었다.
왜 그랬을까? 실업안전망으로 대변되는 사회복지는 덴마크 사회에서 정책이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그것은 탄탄한 문화가 된다. 그만큼 신뢰가 견고해진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와 신뢰는 여와 야를 초월한다. 만약 이것을 깨려고 드는 당이 있다면 선거에서 패배를 예약하는 셈이다. - 82쪽

신뢰는 현실적 이득을 체험하면서 생긴다. 덴마크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높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면 ‘황금 삼각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덴마크 국민들의 조세 및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은 2011년 기준 47.7퍼센트로 OECD 평균 34.1퍼센트보다 높고 우리날 25.9퍼센트의 두 배에 가깝다. 월급을 타면 절반은 세금으로 낸다는 뜻이다. 이 세금으로 덴마크 정부는 실업보조금 등 사회안전망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노동시장에서 유연안전성이란 말은 성립되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덴마크 국민들은 왜 월급의 절반가량을 기꺼이 세금으로 낼까? 실업하면 실업보조금을 받고 대학까지 공짜로 다니고 병원비가 평생 무료이기 때문이다. 내가 낸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증세에 저항감이 높은 이유는 ‘세금이 준 혜택’을 국민들이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명박 정부처럼 22조 원이나 되는 세금을 멀쩡한 강을 죽이는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 세금이 일부 대기업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83, 84쪽

"덴마크인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평등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등이 행복의 모든 요소들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서로 평등하면 특별히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해서 불행에 빠지는 일이 없잖아요. 남보다 잘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죠. 여기서는 의사나 청소부나 큰 차이가 없어요. 서로 어울려 등산과 스포츠를 함께 즐기고 비슷한 삶을 살아요. 의사를 그냥 친구처럼 이름으로 부르죠. 심지어 경찰관이나 공무원을 부를 때도 이름을 불러요." - 96쪽

덴마크의 협동조합은 출발부터 철저히 민간 주도로 이뤄졌다. 정부에서는 어떤 관여도 하지 않았다. 초창기 낙농 협동조합이 한창 발전할 때 정부에서는 왕립 농업대학이나 농업연구소를 통해 관련 기술을 간접적으로 지원했을 뿐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덴마크엔 협동조합법이 없다.
협동조합의 천국에 협동조합법이 없다니, 처음에는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거듭 확인했는데 정말 없었다. 조합원들끼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총회에서 만든 정관만으로도 모든 일을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으니 굳이 국가가 나서서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샤를로테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이런 사실에 당황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1920년대에 일본에서 덴마크 협동조합을 배우자는 붐이 일었다는데, 이때 시찰단으로 덴마크에 파견된 한 공무원도 여기저기 아무리 뒤져봐도 협동조합법을 찾지 못해 난감해했다고 한다. - 120쪽

덴마크 사회는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고 빈부격차도 크지 않은데 왜 스반홀름 사람들은 이런 특별한 공동체에서 살아갈까? 이곳에 오면서 품었던 핵심 질문에 대해 린드블래드는 미국 사회와의 비교를 예로 들었다.
"과연 미국에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건강보험, 실업보조금 등 사회복지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니 실패하면 타격이 크죠. 그런데 덴마크는 병원비가 평생 무료고 교육비도 대학까지 무료고 실업보조금도 2년 이상 나올 정도로 여러 기본 복지 제도가 잘되어 있잖아요. 실험을 하다 실패해도 괜찮은 거죠."
스반홀름 창립 멤버 레고르가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점 때문에 나도 대학 졸업 후에 바로 이 길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실패해도 위험부담이 없으니까요."
사회적 안정이 창의적 도전을 가능케 한다는 말이다. 궁핍, 척박, 고난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만들어낸 것과는 ‘삶의 질’이 달랐다. - 135, 136쪽

"덴마크의 전통적인 교육 방법은 기본적으로 아이들끼리 경쟁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8학년부터 시험을 보지만 등수를 매기지는 않습니다. 성적이 좋다고 상을 주지도 않아요. 물론 학생들끼리는 서로 점수를 알 수 있으니까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를 압니다. 그러나 담임교사나 학교가 공부 잘하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우거나 특별히 대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경쟁은 일어나지 않죠."
덴마크에서는 성적 우수상이 아예 없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상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교사의 애정이 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뉘어 모든 아이가 저마다의 장점을 칭찬받을 수 있다. - 155, 156쪽

신기한 것은 이렇게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운영되는데도 자유학교의 예산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점이다. 학교 운영비의 75퍼센트를 정부가 지원하고 실제 수업료의 25퍼센트만 학부모가 부담하는데, 학부모당 한 달에 우리 돈으로 20만 원 정도다. 자유학교뿐 아니라 덴마크의 모든 사립학교가 동일한 국고 지원을 받는다. 정부가 자유학교와 사립학교에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를 아우켄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헌법에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학생들은 꼭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자유로운 교육철학과 방법에 의해 배워도 됩니다. 이러한 정신은 그룬트비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86쪽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립학교가 아니더라도 ‘깨어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에 대한 지원 역시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에 학교 운영비의 75퍼센트를 국가가 부담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자유학교와 사립학교는 학생 선발권, 교사 선발권, 교과 편성권 등에서 자유를 누리면서도 국가로부터 학교 운영비를 지원받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186쪽

"덴마크에서는 모든 학교의 등록금이 무료에요. 대학도 마찬가지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정부에서 생활비를 대주니까 아르바이트 부담도 없고요. 독립해서 사는 대학생의 경우 매달 약 6000크로네(약 120만 원)씩 나오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이 금액의 반절 정도 나오고요."
비싼 대학 등록금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한국에서는 얼마 전부터 반값등록금이 이슈다. 그런데 덴마크에서는 등록금이 아예 무료고, 대학생들에게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의 나라들도 등록금이 없거나 매우 낮지만 생활비까지 지원하진 않는데 덴마크는 학생 복지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것이다. - 209쪽

왜 이렇게까지 할까?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가난한 학생도 돈 걱정 없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 기회의 균등이 완벽하게 보장된다. 교육을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시민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여기 드는 비용은 모두 기성세대가 내는 세금에서 충당된다. 어른들이 많게는 월급의 절반이 넘는 세금을 내기 때문에 이런 대학생 복지가 가능한 것이다. 덴마크의 성인들에게 불만이 없는지 물어보면 늘 한결같은 답이 돌아온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돈 한 푼 내지 않고 생활비까지 받았다. 그런 혜택을 누렸으니 이제 우리 후배들에게도 같은 혜택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 복지가 대를 이어 문화로 정착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209, 210쪽

"행복은 ‘have to(~해야 한다)’에서 나오지 않아요. ‘like to(~를 좋아하다)’에서 나오죠. 의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는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개개인이 자유롭고 동시에 서로 화합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교육비 무료, 의료비 무료 등 기본 사회복지가 되어 있으니까 남의 눈치,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죠. 우리는 부모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요. 내가 뭘 할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죠. 나 자신에게만 물으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도다른 이유는 서로 화합을 잘하기 때문이에요. 그룬트비 정신을 지닌 이 학교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매우 중시합니다. 이런 훈련이 돼 있기에 우리 덴마크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싸우지 않고 토론을 합니다. 그래서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아내죠." - 225, 226쪽

덴마크를 새로운 나라로 만든 농민학교(자유학교) 운동, 협동조합 운동, 국토 개간 운동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시민의 주체적 참여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국가나 어느 정파나 일부 지식인이 주도하지 않았다. 운동의 과정에서 ‘깨어 있는 농민’들이 탄생했고 세 가지 운동이 서로 어울려 좋은 화음을 냈으며 하나의 운동은 다른 운동을 더 발전시키는 시너지를 냈다. 학교에서 눈을 뜬 농민들은 협동조합과 국토 개간 사업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황무지를 농토로 일구는 과정에서 농민들은 땀을 흘리며 땅만 가는 것이 아니라 연대의 마음도 함께 갈았다.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농토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국토 개간과 협동조합에 참여하다 지치거나 실패하면 다시 농민학교에서 충전하며 새 길을 모색했다. - 259쪽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덴마크를 돌아보며 참 부러웠다. 새로운 나라 만들기가 농촌과 농민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말이다. 오늘날의 덴마크가 신뢰와 연대 속에 유지되고 있음은 바로 그 농촌과 농민의 건강함이 전 사회로 전이되고 있음을 말한다. 현재 덴마크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제조업이 24퍼센트, 서비스업이 70퍼센트다. 덴마크는 낙농 선진국이지만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나 농촌의 공동체 문화, 농민들의 근면과 신뢰의 정신은 현대 덴마크 사회에 깃들어 있다. - 260, 261쪽

다른 한편으로 농촌의 아들로서 부끄러웠다. 우리 농촌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청년들은 죽어가는 농촌을 뒤로 하고 서둘러 도시로 떠났다.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더니 초등학생이 사라지고, 중고등학생이 사라졌다.
서울로 간 그 많은 농촌 청년들은 어떤 마음을 품었던가? 나도 그랬지만 고향을 떠나는 순간부터 농촌의 앞날에 대한 걱정은 깨끗이 접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기억을 지워버리면서 ‘우리’까지 없애버렸다. 나 한 명의 출세로 우리 한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농촌사회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지 않았다. - 261쪽

덴마크에서는 우파 정당마저 사회적 연대에 바탕을 두고 탄생했다. 벤스트레의 중심에는 농민이 있었고 그들은 그룬트비 학교의 학생이었으며 협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체화한 깨어 있는 시민이었다. 출발선부터 그들은 대지주 등의 기존 특권 세력에 저항하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지금은 중도우파의 노선을 걷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와 정신이 살아 있기에 ‘사회적 연대’를 철학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복지 정책의 초당적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벤스트레는 당시의 시대정신과 맞았기 때문에 1901년 처음 집권을 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민당을 만들자 벤스트레는 그들에게 좌파의 자리를 내주고 상대적으로 중도우파가 되었다. - 274쪽

벤스트레는 1924년부터 사민당에 집권당 자리를 내준 이후 20세기의 대부분을 야당으로 보냈으며 가끔씩 집권을 했다. 그러나 야당일 때나 집권당일 때나 사민당이 주도한 사회복지 정책의 필요성과 핵심 정책에는 뜻을 같이 했다. 특히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연속 2회 집권했을 때도 사민당의 사회복지 정책을 보수적으로 다소 ‘개혁’했을 뿐 기본 틀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이런 역사가 있기에 덴마크 우파는 못 가진 자, 덜 가진 자를 향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덴마크는 지구 상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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