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
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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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바꾸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역사를 신성한 정의를 찾아서 점점 더 정의를 향해 가깝게 (혹은 일거에) 걸어온 인간 정신의 험난한 도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맞춰 그것을 강요하는 억압도구 혹은 포장하는 이데올로기로 생각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정의의 역사’를 보면서 정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 46쪽

켈젠은 살인자가 살인자로 되는 것은 법이 그를 살인자로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법이 내린 규정을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들다.
(...)
우리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법정이 판단한 진실은 모두 법정의 진실일 뿐 진정한 사실관계는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켈젠 주장의 근거를 발견할 수는 있다. - 80쪽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사람들이 한 개인을 그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갇혀 있는 내부의 시선으로 내부를 보는 것으로는 절대로 내부현실의 한계를 인식할 수 없다.
(...)
마르크스는 법을 정치, 이데올로기와 같은 ‘상부구조’로 은유했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그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물질적 경제구조다. 법은 경제구조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은 경제구조를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법은 중세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세상을 건설했던 자연법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이 내린 인간의 순수한 ‘이성’이 발현된 관념의 산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된 자본주의 질서를 지키려는 법실증주의자들이 몸을 사리면서 변명하는 것처럼 법 그 자체만을 순수하게 연구하더라도 충분히 그 뜻을 올바르게 해석․적용할 수 있는 진공상태의 중립적인 규범도 아닌 것이다. - 90, 91, 92쪽

마르크스는 공산사회가 오면 법이 ‘고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을 생각하면 법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법의 고사’는 사회의 모든 규범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을 옭아매는 계급적 ‘강제규범’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사회가 실제로 온다면 굳이 사적 소유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공산주의 공동체를 위한 모든 규범도 자발적으로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실천되는 순간, 기존의 공산주의 규범은 이미 마르크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던 그런 법이 아니다. 한마디로 마르크스의 실현되지 못한 예언은, 자본주의적 강제법은 사라지고 공산주의적 도덕규범이 역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꿈같은 이상이었다. - 92쪽

법은 언제나 자신이 규정한 규범의 힘으로 세상이 완벽하게 그렇게 규제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탁상공론을 좋아하는 권력자일수록 법만 만들어놓으면 세상이 법대로 될 것으로 상상한다. 그들이 세상을 향해 "유토피아가 있으라!"는 법을 만들이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막상 세상에 태어난 법규범은 아주 혹독하게 자신을 검증해 가야만 한다. 모든 법규범은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별개의 힘과 맞서 그 ‘모순’을 이겨내는 힘이 있어야만 비로소 규범력을 가진 법이 된다. 그 힘이 없으면 동성동본금혼법처럼 주기적인 한시법으로 위반자를 인정해주는 굴욕을 겪다가 결국 법으로서 수명을 다하고 퇴출될 수밖에 없다. -214쪽

어쨌든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런 것이다. 위법이 전혀, 완벽하게 없다는 것은 사실상 법과 현실이 모순 없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규범적 의식작용을 통해 세상을 더욱 진보시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법을 개정하는 것은 위법을 예상하면서도 규범적으로 사회의 진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의도하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위법을 통해 현실의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다. 즉 적극적 의미든 소극적 의미든 위법은 법개정의 추동력이다. - 219, 220쪽

폭력에 대한 문화는 어떤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 분석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폭력에 대한 관념은 역사이면서 문화이고 문화이면서 또 법이 된다. 만약 경찰이 역사 속에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부끄러운 역사가 없었다면 민주경찰을 상대로 술주정 폭행을 하는 비정상적인 법문화도 생겨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재벌을 쉽게 풀어주는 비상식적인 법문화가 없다면 강간범을 솜방망이로 처벌하는 관대한 법문화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서로 무관해보이지만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 245쪽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이 하늘의 의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의지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 법은 인간의 관념적 의지로 폐지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시대적 한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담지하고 있는 물질적 생산관계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간통한 여인이 내적 성찰 속에서 자기반성을 하여 율법을 지키듯이 노동자가 내적 성찰에 의해 자본주의 법을 지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은 그 자체가 투쟁의 대상이다. 설령 법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입법투쟁이 성공한다하더라도 법 자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꿈꿀 수는 없다. 법은 공산혁명 후에는 궁극적으로 말라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51쪽

어떻게 그런 ‘법의 고사’가 가능한가? 법이 국가의 강제력을 사용해 계급적 착취를 실현코자 하는 ‘지배계급의 의지’라면 그 계급적 지배관계가 사라지는 날, 법이 사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법이라는 강제력을 통해 지켜야 할 이해관계가 무엇이겠는가? 공산사회에서 우리가 정의내린 그런 법의 존재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할 사실은 마르크스가 말한 ‘법’은 부르주아적 착취를 위한 강제규범이라는 점이다. 모든 자발적 규범, 즉 레닌이 강조했듯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 먼 사람들’을 사랑하는 공산주의적 도덕규범은 오히려 공산사회의 전제가 된다. -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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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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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해 준 이야기, 네가 지어낸 이야기가 나는 다 좋고, 더 덧붙일 게 없구나. 다만 배꼽에 대해서만은 어쩌면…… 배꼽이 없는 여자의 전형이 너에게는 천사지. 나한테는 하와, 최초의 여자란다. 하와는 배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한순간의 기분, 창조자의 기분에서 태어났어. 최초의 탯줄은 바로 그녀의 음부, 배꼽 없는 여자의 음부에서 나온 거야. 성경에 나온 말대로라면 거기서 다른 줄들도 나왔어, 줄 끄트머리마다 작은 남자나 여자를 매달고서. 남자들의 몸은 연속성을 지니지 못한 채 전혀 소용이 없었는데, 여자들의 성기에서는 저마다 끄트머리에 다른 여자나 남자가 달린 다른 줄이 나왔고, 이 모든 게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돼서 거대한 나무, 무한히 많은 몸들로 이루어진 나무, 가지가 하늘에 닿는 나무로 변했단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나무가 자그마한 여자 하나, 최초의 여자, 배꼽 없는 저 가여운 하와의 음부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렴." - 103, 104쪽

알랭이 계속 말했다. "이 네 가지 황금 지점은 각각 하나의 에로틱한 메시지를 나타내. 그러면 배꼽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에로틱한 메시지는 뭘까?"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한 가지는 분명해. 허벅지나 엉덩이, 가슴하고는 다르게 배꼽은 그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그 여자가 아닌 어떤 것에 대해 말한다는 거야."
"뭐에 대해서?"
"태아."
"태아라, 그렇지." 라몽이 인정했다.
그리고 알랭이 말했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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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스타일 - 지적생활인의 공감 최재천 스타일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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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랭엄이 이 책을 일반 독자를 겨냥하여 집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더 엄청난 폐해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지 않은, 그래서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독자에게 학문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그것도 다분히 선정적이고 단정적인 표현 방식을 빌어 서술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물론 이 같은 종류의 책을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된 분야의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이들이 주로 읽을 책이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들이 학술적인 원문을 참조하지 않고 이렇듯 어설프게 여과된 지식을 소화하여 각자 자기 학문에 응용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 186쪽

다만 독자들에게 중요한 결론을 내릴 때마다 학문적인 증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에 대한 학계의 객관적인 평가를 본인의 논리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최근 들어 서양 학계에는 과학의 대중화라는 기치 아래 많은 과학자가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교양서를 펴내고 있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제일의 임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독자들이니 전문가로서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다. 발견된 사실을 독자들에게 쉽게 그러나 자세히 모두 알려주고 함께 생각하게 하는 것이 과학의 대중화를 진정으로 꾀하는 길이다. - 187쪽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인간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등장하여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지구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찍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찍는다고 했을 때 인간이 또다시 등장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영에 가깝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이 지구에 탄생한 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다. 진화의 역사를 통해 일어난 여러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일 뿐이다. 그 옛날 생명의 늪을 떠돌던, 자기복제를 할 줄 알던 신기한 화학물질 DNA가 만들어낸 많은 생명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진화에는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다. 진화의 역사에 새로운 길을 연 모든 사건은 다 근시안적이고 우연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일단 DNA의 구조 속에 기록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충실한 복제와 번역을 수행한다. - 205, 206쪽

진리의 행보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진리는 화학, 지질학, 인류학, 미학, 음악 등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마구 돌아다니는데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어느 한 전공 분야에 틀어박힌 채 평생 진리를 탐구한답시고 앉아 있다. 더는 이런 구도로는 진리를 탐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 233쪽

풍요로운 시대가 오면 아무도 안 떨어질 수도 있다. 잘리지만 않으면 살아남는 게 진화이다. 그런데 마치 우리는 1등을 해야만 살아남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최적자생존이 아닌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r)인데 말이다.
두 친구가 산에 올라가 곰을 만나 도망을 가는데 한 명이 구두끈을 고쳐 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친구가 "소용없다. 우리가 곰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에 그 친구는 "내가 곰보다 빨리 달리려는 것이 아니라 너보다 빨리 달리려는 거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친구보다 한 발짝만 앞서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 261쪽

진화(evolution)의 다른 말은 다양화(diversification)이다. -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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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 - 최재천 교수가 초대하는 풍성한 지식의 만찬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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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을 먹는 짐승을 조심하라."라는 코스타리카 인디언 속담이 있다. - 82쪽

닭은 잠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임기’를 다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명의 숨을 이어온 알 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tler)의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알이 닭을 낳는다. - 160쪽

옥스퍼드 대학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제는 과학계의 고전이 된 그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살아 숨 쉬는 우리는 사실 태초에서 지금까지 여러 다른 생명체의 몸을 빌려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온 DNA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도킨스는 그래서 DNA를 가리켜 ‘불멸의 나선(immortal coil)’이라 부르고 그의 지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체를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라 부른다. - 161쪽

자연의 도살 현장에는 언제나 경제주의자 즉 인간중심주의자와 환경주의자 즉 생물중심주의자 간의 각축이 벌어진다. 조금 살만하다 싶을 때에는 환경주의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듯 싶다가 경제 지표가 조금만 나빠지기 시작하면 황급히 인간중심주의 논리로 복귀하고 만다. 급기야 우리는 열대우림 15곳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종의 절멸 위험에 처해 있는 ‘중요 지점(hotspots)’ 25곳을 지정하여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전생물학자들은 생명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들을 ‘하마’라는 뜻의 머리글자 ‘HIPPO’로 요약한다. 서식처 파괴(Habitat destruction), 침입종(Invasive species), 오염(Pollution), 인구(Population), 과수확(Overharvesting)이 그것이다. - 214쪽

병을 안고 그저 오래 살기만 한다고 좋을 리 없다. ‘건강 악화와 수명 연장을 바꾼 거래’는 결코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성공적인 노화’이다. 이른바 건강 수명을 늘려야 한다. 80세든 150세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질병이나 노쇠에 시달리지 않고 정력적으로 살다가 어느 날, 별 고통 없이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아침에는 마지막으로 화끈한 섹스도 한 번 즐기고 말이다. - 266,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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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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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쓸모없는 꿈은 없습니다. 그러니 꿈꾸었던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해서 가슴속에 자리 잡은 꿈을 내쫓진 마에쇼. 오히려 도망가지 않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입니다.
과학자로 살아오면서 깨달은 제 나름의 ‘성공 철학’이 있습니다. 바로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가장 성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란 가장 ‘자기답게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며 능력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습득해야 하죠. 때로는 ‘방황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 8, 9쪽

셰익스피어가 그랬다던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음과 지혜를 바꾸는 것이라고. - 200쪽

"기생충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평생 기생충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네. 학위라는 것은 그저 자격증일 뿐이야. 이 분야의 학자라는 인증인 거지. 그다음부터 자네가 무슨 연구를 하든 그것은 자네가 개척할 나름이라네." - 201, 202쪽

<이기적 유전자>는 그야말로 유전자의 관점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재해석하는 책이다. 나에게 삶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도킨스에 따르면 살아 숨 쉬는 우리는 사실 DNA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DNA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여러 다른 생명체의 몸을 빌려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왔다. 도킨스는 그래서 DNA를 가리켜 ‘불멸의 나선’이라 부르고 그의 지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체를 ‘생존 기계’라 부른다. - 207쪽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 없어져도 세상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그런 존재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없어질 필요는 없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나의 모든 상황에 온 힘을 다하고 즐기며 사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아름답게 가면 된다.’
자칫하면 운명론자처럼 보일 위험이 있지만 운명론자와는 다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담담히,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가면 세상도 나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무엇을 해보겠다고 욕심부리며 아등바등 살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은 어떻게 보면 내 유전자가 나한테 하락한 범주 내에서의 일들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내가 하고자 한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 212, 213쪽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행우도 역시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 6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행운은 무작위로 방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준비가 된 곳에만 방문한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이룰 수 없는 꿈이나 목표일지라도 조용조용 준비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리면, 언젠가는 행운의 여신이 악수를 청하게 되어 있다. 단지 그 여신이 비행기를 타고 올 수도 있고 KTX를 타고 올 수도 있고 정류장마다 서야 하는 완행버스를 타고 올 수도 있기에 시차가 날 뿐이다. - 257쪽

‘consilience’는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나는 책에 ’큰 줄기‘라는 뜻의 통(統)과 ’잡다‘라는 뜻의 섭(攝)을 합쳐, <통섭>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또한 부제를 ’지식의 대통합‘이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학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크고 깊게 통합된 학문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다. -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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