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천 가지 표정의 도시 살림지식총서 330
유영하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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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방은 여성해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여성해방은 주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홍콩은 여성해방의 공간이다. - 8쪽

한 국가나 지역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그곳의 음식을 마음대로 시킬 줄 아느냐 하는 것이다. 현지 음식을 모르고 현지에서 적응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중화권에서 살면서 중국음식을 모른다거나 싫다고 하는 것은 중화권에서 그저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소극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이다. 중국음식은 중국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10쪽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체류국의 언어 실력이 현지 적응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현지어를 잘 할 경우 자신감을 가지고 현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 현지인 접촉을 가능한 기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외국어 실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경우 현지인과의 접촉이나 현저어로 된 정보의 취득이 그만큼 더 쉽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언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따라서 외국에서 외국어 실력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홍콩인들의 경우, 그들은 이미 세 개의 언어로 외국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홍콩인들은 세 가지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광둥어와 영어, 그 다음은 보통화이다. 이 말은 해외에서 그들은 그만큼 적응이 빠르고, 아울러 외국인과의 교류에 만반의 준비가 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이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 16, 17쪽

홍콩에 대한 주권 회복을 위한 담판을 전개하면서 중국정부가 내세운 최고의 카드는 1국가 2체제라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정치제도였다. 이른바 1국가 2체제 방침은 타이완과의 통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중국 측의 구상으로, 홍콩과 마카오의 주권 회수를 위한 방안으로 우선 적용되었다. 즉, 중국 본토에는 사회주의를, 타이완․마카오․홍콩은 자본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영국에 의해서 150년간 자본주의가 시행되어온 홍콩에 사회주의를 시행한다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을뿐더러 사회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선 고려한 해결 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바로 중국사회주의라는 주체 안의 홍콩에서 자본주의 제도와 그 생활방식을 실행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앞으로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 44쪽

주지하다시피 사회주의 발전 모델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 이론에 근거한다. 즉, ‘원시 공산사회-노예제 사회-봉건제 사회-자본주의 사회-사회주의 사회’의 발전 모델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으로 중국은 사회주의시기로 진입했다. 이에 대해 우파 성향의 학자들은 중국대륙의 자본주의 단계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한다.
즉,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전복해야만 진입이 가능한 것인데 중국대륙에 자본주의 시기가 과연 존재했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대해서는 아편전쟁 이후 외세에 의해 점령당한 조차지 내에 나타난 자본주의적 현상을 내세우고 있다. 작게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상하이를 비롯한 대도시에 출현했던 빈부격차를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 46쪽

주권 이양을 1년 앞둔 1996년 패튼 총독은 홍콩의 성공은 영국의 4대 공헌에 있다고 했다. 법치와 공무원제도, 경제, 자유, 민주화 등이다. 홍콩의 정치와 경제 관계의 특징을 집약하자면, 고효율성과 불간섭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불간섭 정책으로 일관되게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했고,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지지했으며, 무역보호주의를 반대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자유경쟁과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했다.
주권 이양을 1년 앞둔 1996년 패튼 총독은 홍콩의 성공은 영국의 4대 공헌에 있다고 했다. 법치와 공무원제도, 경제, 자유, 민주화 등이다. 홍콩의 정치와 경제 관계의 특징을 집약하자면, 고효율성과 불간섭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불간섭 정책으로 일관되게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했고,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지지했으며, 무역보호주의를 반대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자유경쟁과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했다. - 59쪽

영국의 법치와 고효율의 행정을 도입, 민주는 없지만 고도의 법치와 자유로 그것을 상쇄시켜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 내에 법률에 대한 보편적인 동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홍콩의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즉, 적자생존이 장려되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홍콩사회이지만, 적어도 그것이 공정한 룰에 의해 보장된다는 분위기야말로 홍콩을 홍콩답게 발전시키고 유지하고 있는 정신이다. 자유가 자유로서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제한이 정착되었다는 말이다. 홍콩에서 공적 신용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볼 경우 사실 민주는 없고 자유만 있다는 홍콩사회에서 민주는 합리성으로 존재한다. 요컨대 민주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사회 내 합리성은 어느 사회나 국가보다 앞서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59, 60쪽

홍콩을 아는 사람들이 말하는 홍콩문화의 장점은 중립, 개방, 자유이다. 이것은 홍콩문화에 대한 총괄적인 결론이지만, 마찬가지로 홍콩경제의 비약적인 성장 비결을 압축하는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자유항으로서, 상품과 외환의 진출입이 자유롭고, 기업경영이 자유롭고 대외 자본과 현지 자본이 동일시되는 곳이다. 그것에 앞서 지리적으로 중국대륙과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자,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통하는 해운의 요충이고, 아시아 태평양의 중심이다. 게다가 세계 3대 항구로 꼽히는 빅토리아항의 깊은 수심 역시 홍콩의 경제발전을 논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 60,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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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7 리커버 한정판 나무 에디션)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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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만 서면 명쾌해질 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우리의 지상 과제는 성공이나 이기는 것이 아닌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버티고 버텨서 다음 세대에게 후하고 창피하지 않은 우리가 됩시다. 버티고 버텨서 앞선 세대에게 손을 내밀고 관용할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 8쪽

나는 그날 이후로 영영 달라졌다. 힘들 때마다 내 비굴한 웃음을 기계적으로 떠올리며, 그날의 나를 해명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 웃음을 떠올리면 아무리 나쁜 것도 마냥 나쁘게만은 보이지 않고, 제아무리 아름답다는 것도 마냥 아름답게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받은 알량한 상처의 총량을 빌미로, 타인에게 가하는 상처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마해버리는 비겁함을 쉽게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 17, 18쪽

뉴스를 보다보면 세상의 속살이 드러나 그 추잡함과 헐거움, 촌스러움에 치를 떨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게 근본적으로 서로 앞다투어 멋지고 잘났고 괜찮고 근사하고 옳다고 믿는 사람들투성이라 초래된 세상이라고 본다. 그것이 체계 안의 인간이기 때문이든, 태생적 한계이든 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고 흠결투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 자신의 흠결을 들여다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부 세계의 그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고쳐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아가 남의 흠결을 공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제일 별로라고 말하고 다닌다. 너도 사실 별로라고 말하려고. - 21, 22쪽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책임을 진다는 건 말처럼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내 소신이 아니라 남의 소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일이다. - 33, 34쪽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주변 세계를 향한 애정을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 47쪽

사실 냉소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비관과 냉소는 대개의 경우 피폐한 자들의 가장 쉽고 편한 도피처다. 나는 냉소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가 제일 아늑하고 좋다. 글쓰는 자에게는 냉소적인 태도가 객관성을 담보해주기도 한다. 뜨겁고 충만할 때보다 냉소적일 때 했던 말과 글이 더 오랜 시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곧잘 타인의 진심을 무시한다. 정확히 말하면 진정성을 주장하는 말들을 무시한다.
실제 모든 종류의 ‘진심’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호소다. 진심, 진정성은 주관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 남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세상을 탓할 일도 아니다. - 101쪽

모든 노인이 지혜로운 건 아니지만, 시간의 녹을 먹은 노인들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울 수 있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세상이 늘 어리석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혜로운 노인이 늘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원리를, 그 모든 아비규환과 부정과 폭력과 살인과 슬픔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노인의 주름은 알고 있는 듯했다. - 110쪽

이 나라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70퍼센트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중산층은 4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이 놀라운 통계의 마술은 한 가지 명징한 진실을 환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가상의 필터를 ‘가치관’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장르영화들이 이 같은 소재를 다뤄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바로 이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유함이나 풍요로움 같은 부자의 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함께 수반돼 연상되는 보수적 언어를 ‘옳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혹은 어떤 정당이 서민을 대변하고 말고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공신화에 매료될 뿐이다. 부와 이익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에너지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 155쪽

도대체 내가 좌파여선 왜 안되나. 좌파라면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것인가. 너는 좌파라서 안 된다는 말을 꺼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나는 좌파가 아니라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잡음과 논란은 많을수록 좋다. 가져선 안 될 신념을 상정하고 현실화하는 것. 그것이 말의 힘이고 마법이다. - 175쪽

집단행위란 거기 가담하는 개인을 익명으로 만들기 때문에 개별의 지분을 축소하는 착시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스스로 폭력의 주체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1/N의 폭력이 무서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 185쪽

그렇게 한국의 디즈니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의 닌텐도를 찾는다. 십 수 년이 지났어도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공고해졌다. 지금 한국 문화계를 바라보며 혀를 차는 시장주의자들의 핵심 논점은 변함없이 ‘한국에는 왜 아무개가 없느냐’는 것이다. 저 수많은 문화계 지원정책의 핵심 키워드 또한, 여전히 ‘한국의 아무개를 육성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무개를 찾는 말들에는 당연한 오류가 있다. 그 아무개가 한국이라는 환경 아래에서도 그 놀라운 시장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냐는 문제다. - 211, 212쪽

살아 있는 누군가는 깎아내려짐으로써 상품화된다. 이미 죽은 누군가는 신화화됨으로써 상품화된다. 어제 잭슨을 욕해 배를 채웠던 사람들이 오늘 잭슨을 우러러 다시 배를 채운다. 잭슨에 대한 평가는 하루아침에 바뀌었지만, 정작 그를 둘러싼 세계의 동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진심과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본질에 대한 어떤 규명이나 확인도 없이 괴물은 우상이 되고 우상은 괴물이 된다. 돈이 된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천박하며 공공연한 진실이다. - 234쪽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일들은 대개,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 288쪽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다름 아닌 가능성이다. 우리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커티스와 남궁민수는 지금의 체계와 규칙을 물려주고 그 안에서 아프니까 청춘이고 밖은 추우니까 열차는 달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가능성을 물려준다. 그것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 310쪽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기르고 있다. 공공연한 폭력의 최전선은 전쟁터가 아니라 가정이다. 남이 하면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삿대질할 것도 엄마에게 형제에게 자식에게 남김없이 쏟아낸다.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나마 잠깐 후회하고 금세 망각하고 다시 되풀이 된다. 나와 나의 행동을 분리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저열함이다. 수십 년을 함께한 가족관계 안에서 나 자신과 부모와 형제자매를 개별적인 인격체로 객관화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317, 318쪽

<레 미제라블>이 제시하는 이슈는 정의의 궁극적 승리 따위가 아니다. 장발장과 자베르가 벌이는 신념의 대결, 장발장과 코제트-마리우스의 마지막 해후는 무엇을 의미하나. 혁명이라는 거대서사의 소용돌이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가치관과 계급과 세대에 속한 이들을 공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의 평생에 걸친 자기비판과 성찰,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박애뿐이라는 사실이다.
고작 상대 진영과 특정 세대에 책임을 돌리는 증오의 해법으로 이미 일어난 일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 텍스트에서만큼은 힐링을 누릴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이 숭고한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기 이전에 앙졸라가 아닌 장발장의 염려를 껴안아야만 한다. 장발장이 숲속에서 코제트를 만난 이후 최후의 순간까지 골몰했던 바로 그것.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 351쪽

세상에 운명 따윈 없다. 약속된 땅도 계획도 다음 생 같은 것도 기대하지 마라. 덜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기 위해, 결코 도래하지 않을 행복을 빌미로 오늘을 희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의 정체를 규명해야만 한다. 그것이 연애든, 고용이든, 혈연이든 마찬가지이다. 너와 나의 관계가 주는 만족감의 뿌리가 정말 이 관계로부터 오고 있는 것일까. 혹은 단지 세상으로부터 정의 내려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던 것뿐일까. 역할에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정말 관계를 할 것인가. 그 쉽지 않은 답을 찾는 것으로 우리는 정말 나아질 수 있다. 끝이 어떠하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 357쪽

인생의 좌표라는, 그 단어부터 너무나 거대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세상의 말에 더 이상 무심할 수 없는 나이에 닿아가면서, 결국 버티어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하되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는 것도, 좀더 많이 거머쥐는 것도 아닌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버티어내는 것. 록키 발보아가 그랬듯이 말이다. 언제나 록키 발보아 이야기로 끝을 맺고 싶었다. 마지막이다. 모두들, 부디 끝까지 버티어내시길. -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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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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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마키아벨리는 카스트루초를 이용해서 <군주론>의 내용을 뒤집고 있는 것입니다. 책략을 써서 늘 승리를 꿈꾸고,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여 성공을 거두는 삶도 다 무의미하단 뜻이지요. 그렇게 살아본들 남아 있는 것은, 감기에 걸려 죽게 되는 인간의 부질없는 운명이란 것입니다. 허무한 죽음을 앞둔 카스트루초는 양아들 피골로 귀니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너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과 너의 나라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네가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면 너는 평화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네게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이 방법이 내가 애쓰고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해서 얻은 결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 124, 125쪽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르투스Virtus(탁월함)의 삶보다 우선하는 것은 포르투나Fortuna(행운)의 힘에 굴복당하는 인간의 유한함이란 것입니다. 이런 유한함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르투나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평화의 방법으로 삶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125쪽

유럽의 자본주의는 근대화 작업을 통해 수백 년 동안 진행되어왔습니다. 문화 활동도 하고 신화도 만드는 등 사회적 담론을 통해 많은 것들을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사회는 어떤가요? 굉장히 짧은 시간에 어떤 보호막도 없이 급격하게 자본주의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그들이 유지해온 상징적인 우주 자체가 침범당하고 잔인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근간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문화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근본주의라는 보호막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신병적으로 혼미하고 배타적인 종교의 제 주장이 이뤄졌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초자아superego`가 부상하면서 이를 신격화했고, 이것이 무슬림 국가들에 신성한 현실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 176, 177쪽

사실상 ‘초자아’의 부상은 포스트모던주의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지나친 관용성과 유사점이 매우 많습니다. 초자아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 ‘희생’은 어떤 신성한 근본주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친 자유방임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신이 없다면 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효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 177쪽

진정한 보수주의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글로벌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의 어두운 면만 계속해서 부각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급격한 발전을 반기는 반면, 동시에 과거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적인 제도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의 역설적인 주장은 오늘날 가장 급진적인 좌파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183, 184쪽

진정한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접근법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 185쪽

그런데 기준을 외부에서 들여와 적용만 해본 사람들에게, 기준을 수입하여 사용만 해본 사람들에게 기준을 생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번도 기준의 생산자, 기준의 창조자가 되어보지 못하고 항상 외부의 것을 기준 삼아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준은 분명코 어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어느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엉뚱한 질문에 계속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결과 하나의 기준으로 생산되었을 것입니다.
항상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치와 이념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는 사람이나 사회는 자신이 직접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데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보겠다는 것입니다. - 207쪽

우리가 생존하는 공간, 우리의 지혜가 발휘되는 공간은 사건의 세계이지 이론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론은 하나의 사건을 정리해놓은 것이고, 우리가 그 이론을 공부하는 까닭은 다음에 일어날 사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건에 부합되는 이론은 어떤 것일지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윤편의 이야기는,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며 읽고 있는 것은 그것이 생산되는 그 순간까지만 진리였을 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찌꺼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 211, 212쪽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면 언어의 세계 속에 갇히게 됩니다. 개념 속에 제한되어 명사(名詞)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는 여전히 움직입니다. 동사(動詞)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세계와 제대로 접촉하려면 나 스스로 동사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언어가 세계의 진실을 표현한다는 것을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언어를 사용합니다. - 231쪽

우리는 보통 ‘생물’이라고 하면 그것이 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생물은 ‘살아 있다’는 것과 ‘물체(또는 물질)’의 복합어입니다. 물체 중에서도 살아 있는 물체를 생물이라고 부르지요. 그렇다면 물체 중에는 살아 있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많은 것들을 포함해서 우주의 대부분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들을 ‘생물’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서 바로 개념화시켜버렸습니다. 어느덧 생물의 의미는 살아 있지 않은 것과 차별화된 정의를 굳이 겪지 않은 채 생물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 239, 240쪽

열역학 법칙에는 0, 1, 2, 3의 네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그중 제1법칙은, 주어진 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고 말합니다. 이 에너지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되거나 또 모양이 변환될 수도 있지만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주의 시작 시점에 100이 있었으면 끝날 때까지 100으로 그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법칙에서는 운동 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위치 에너지가 다시 빛 에너지로, 빛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 원자력 에너지, 수력 에너지, 태양 에너지 등의 수많은 에너지로 이전되거나 변환될 때마다 떡고물 흘리듯이 유용한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이 떨어진 떡고물들, 쓸모없게 된 에너지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하게도 계 전체를 어지럽히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결국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잘 조직되고 질서를 가진 모습에서 점점 무질서한 모습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 242쪽

우리는 모두 한때 별이었습니다. 흩어진 별이 내가 되었고 다시 내가 죽어서 살아 있지 않은 물질로 흩어지면 이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 돌아갑니다. 나의 일부가 탁자가 될 수도 있고 그 탁자가 다시 새로운 생명체를 구성하는 질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살아 있는 물질인가, 그렇지 않은 물질인가 하는 것입니다. - 250쪽

이처럼 우리는 가능하면 유전적 배경이 자신과 다른 개체를 짝으로 선택하게 되며, 이는 겉으로 확인되는 외모나 집안 또는 당장의 직업이나 수입 등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등생물이 유성생식을 통해 최대한의 ‘다름’을 창출해내고, 다름 아닌 이 ‘다름’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짝을 찾아내어 성공적인 세대적 연속성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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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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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가후쿠는 잠시 생각했다. 그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도로는 정체되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고속도로에서 다케바시 출구로 향하는 참이었다.
"그런다고 달리 돌아갈 데도 없잖아." 가후쿠는 말했다.
마사키는 그 말에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 32쪽

"싫더라도 원래로 되돌아와.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그전과 조금 위치가 달라져 있지. 그게 룰이야. 그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어."- 37쪽

"대학은 시시한 데야." 나는 말했다. "들어와보면 실망할 거다. 틀림없어. 근데 그런 데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건 더 시시하잖아."- 74, 75쪽

"(...) 하지만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도 상당히 진지하게 말이죠.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140쪽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한탄 인간’이라는 출발점에서 맨몸뚱이나 다름없이 인생을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해 다행히 그럭저럭 먹고살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 장점도 특기도 없는 일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 굳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같은 거창한 가정을 들고 나설 필요는 없다, 고. - 142쪽

"어쨌든 학교 졸업하고 나니까 어느샌가 그를 잊어버렸더라. 스스로도 신기할 만큼 깨끗이.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 211쪽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것 정도였다. ‘기노’라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었다. - 226,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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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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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무력하게 느껴질 때, 어떤 노력도 부질없을 때,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눈물이 터지기 직전, 바로 이런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 64쪽

그 후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 주 예수가 그리스도, 그러니까 나의 주인임을 믿는다고? 그건 믿는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생애 전체를 통틀어 2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나는 엄청난 내 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을 깨닫는 행운을 누린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분이 나의 주인이 맞다. 그러면 그게 다일까?
한참 후에 나는 깨달았다.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설사 내 눈앞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쁜 일이 벌어진다 해도, 사랑한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싶은 나쁜 일이 벌어진다 해도, 산 같은 고통이 닥쳐온다 해도, 설사 내가 어이없이 죽는다 해도, 내 식구가 내 자식이 죽는다 해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여 벗을 삼고 싶어 하심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 65, 66쪽

내가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가서 아이가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예방주사를 맞히듯이, 내가 아이를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빼앗듯이, 내가 싫다고 해도 그분이 시키는 그것, 내가 아프다는데 그분이 나를 그 아픔으로 밀어 넣는 그것, 그것이 결국 끝끝내 그분이 나를 두고 하시는 사랑의 행위임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아마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 66쪽

나는 이혼하지 않게 해 달라고 정말이지 열심히 기도했었다. 열렬하고 열렬하게 빌었다. 행복한 가정을 달라고, 아이들이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책도 잘 쓰고 잘 팔리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하나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세 번째 이혼녀가 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나날이 속을 썩였다. 책 쓰는 것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빚은 갚을 길이 없었다.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화재 사건 앞에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토록 큰일도, 막으려고 맘만 먹으면 이렇게 막으시는 분이, 어떤 일이 일어나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그건 그분이 내게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모르지만, 더 큰 그분이 보시기에 그게 내게 더 유익해서 그냥 내버려 두셨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후 나는 매사를 예민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내가 아무 생각 없는 동안, 내가 다른 일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에서 그분이 나를 구해 주고 계신지 알고 싶어서. 내가 차마 그것의 백의 하나라도 알까마는. - 108쪽

그중에서 제일 먼저 내 가슴을 노크한 분이 안젤름 그륀(Anselm Grun) 신부님이었다. 그분은 냉철하지만 말할 수 없이 따스한 언어로 많은 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계셨다. 그분의 책들을 읽고 나면 내 영혼이 한 뼘은 자라 있는 것 같았고 상처는 조금 더 아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도 그 구절을 기억한다.

우리는 가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배심원으로 앉혀 두고 언제까지나 피고석에 앉아 변명을 지속하려고 한다. - 125쪽

"내가 처음 수도원에 입회하고 신부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갔을 때 대학은 이미 68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죠. 수도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옛날 우리 수도원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분들도 개혁적인 분들이었죠. 그러나 아시잖아요. 처음에 개혁적인 사람들이 개혁과 이상의 양날을 쥐고 모든 것을 개선해 나가지만 어느 순간 개혁의 열정만큼 열렬하게 안주해 버리고 보수화되지요. 저는 그런 분들을 모시는 젊은 수사였지요. 저는 수도원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절박했지요. 아니면 우리 모두는 그저 낡은 옷을 입고 사라져 가는 먼지같이 될 거 같았어요.(...)"- 141쪽

그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내가 불행해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내가 행복해하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자기 앞에 놓인 생의 길을 가는 것이다. - 147, 148쪽

"하루에 한 번 이상 당신의 그림자를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얼마나 약한지 알게 될 것이고, 당신은 당신이 경멸하고 증오하는 악인들과 진배 없음을 알게 되면서 저절로 겸손해지고 말 것이다."- 148쪽

"어떤 의미에서 신앙이란 자기 자신의 유한하고 불확실한 지식을 초월하려는 정신의 개방이다."-179쪽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뭐가 제일 위급한지, 무엇이 제일 긴요한지, 심지어 무엇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지조차 모른다. 이것 또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다만 우리가 그분을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거짓을 제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지적해 주신다. "마리아야, 아니다. 그게 아니다. 이게 네가 제일 아파하는 곳이다" 하고. - 191쪽

이제 나는 세상에서 내가 잘나갈수록 어쩌면 하느님의 은총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물론 내가 잘나가면 잘나가게 해 주시니 감사하면 되고, 내게 역경이 닥치면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 된 징표이니 자랑스럽고, 그러므로 이 지상의 저주처럼 느껴지는 가난이 축복이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역경과 수난이 월계관이 되는 이 오묘한 신비여!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기쁨에 넘친다. 누가 이 미친 듯한, 돈과 쾌락과 유혹 그리고 물질을 숭상하는 세상에서 이토록 신선한 진리를 우리에게 일러주었단 말인가. 이 진리를 알고 이 진리를 사랑하게 된 나는 그러므로 아직 많이 모자라긴 하지만 얼마나 복된가. - 201, 202쪽

진실한 관계는 결코 언제나 일치함을 의미하지도, 언제나 한마음인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런 관계는 꼭두각시 관계밖에 없다. 진실한 관계는 내 느낌이나 생각 그리고 주장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상대로부터 배척받거나 버림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조금 불편한 상태가 온다고 해도 그것이 근본적인 사랑을 절대 위협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양쪽이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가 자랄 대 부모로부터 바로 이런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교육학자들은 말한다. 어쩌면 이 지상에서 부모만이 그나마 자식이라는 존재들에게 이러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관계라면 어림도 없다. 그리고 사실, 그런 부모도 ... 참으로 없다. 그런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하느님은 진실하게 우리를 대하시기에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다는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느님도 우리에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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